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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종교/역학

이름:라인홀드 니버 (Karl Paul Reinhold Niebuhr)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892년 (쌍둥이자리)

사망:1971년

최근작
2019년 6월 <기독교 윤리의 해석>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

윤리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정치철학자인 니버는 1892년 미주리 주(州)의 라이트(Wright) 시에서 태어났으며, 에덴 신학교와 예일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디트로이트에서 13년 동안 목회활동을 했다. 1928년에는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 기독교 윤리학 교수로 부임하여 1960년에 은퇴할 때까지 머물렀다. 옥스퍼드,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1939년에 미국인으로서는 5번째로 에든버러대학(Edinburgh University)의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의 강단에 섰다. 그의 신학은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비롯하여 후대의 수많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니버의 저서들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I,II (종문화사 출간)
The Nature of Man and his community (종문화사 출간)
Children of Light and Children of Darkness (종문화사 출간)
An Interpretation of Christian Ethics (종문화사 출간)
The Christian Realism and Political Problems (종문화사 근간)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종문화사 근간)
Beyond Tragedy (종문화사 근간)
Love and Justice (종문화사 근간)
Faith and History(종문화사 근간)
The Irony of American History
Discerning the Signs of the Times
Christianity and Power Politics  

출간도서모두보기

<기독교 윤리의 해석> - 2019년 6월  더보기

1956년판 서문 25년 전에 처음 착상한 작품을 재발행한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철저히 검토해야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번째 충동은 거의 모든 장(章)을 주석으로 뒤덮고 그것을 통해 이전에 전개했던 견해와 다른 부분을 설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새로운 서문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원래 어떤 풍조 속에서 쓰였고, 인상적이었던 지난 25년간 이루어진 사상의 전개와 삶의 흐름으로부터 저자가 체득한 추가적인 지혜를 어느 정도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 작품은 본래 “라우센부쉬(Rauschenbusch)” 강연으로서 출판되었으며, 라우센부쉬가 선구자로 추앙받은 “사회 복음(Social Gospel)”의 목적들에 대한 저자의 전반적인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동시에 기존의 사회 복음과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기독교(social Christianity)의 형태 사이에서 점차 벌어지는 차이점들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차이점들은 주로 정의와 사랑을 극명하게 구분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구분은 사회 복음주의자들이 인간행동에 대해 제시한 분석이 지닌 결함, 즉 원죄 교리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 결함에 대한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촉진되었다. 사회 복음은 곧 자유주의 운동 내에서 사회 정의에 대한 책임이라는 의식을 지녔던 부분이었다. 사회 복음은 사랑이 개인적인 관계들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들에서 삶의 법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러한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 복음은 대체로 사도 바울이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운다]”라고 묘사했던 인간행동의 측면을 도외시했다. 요컨대 사회복음은 개인의 측면과 집단의 측면 모두에서 이기심이 지닌 힘과 지속성을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은 갈등하는 이해관계들과 세력들을 정의의 구조들과 사회의 기관들을 통해 관리하고 균형을 맞춤으로써 정의를 이루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복음은 그러한 정의의 구조들과 사회의 기관들에 별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25년 전에 공동체 속에서 정의를 이루는 공동의 문제들에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사랑의 윤리를 연관 지으려고 하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사랑이 사회행위의 동기일 수 있지만 이기심이 모든 단계에서 사랑의 원리들을 거스르게 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정의가 반드시 사랑의 도구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랑이 정의와 맺는 관계 속에는 당시는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보다 분명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많은 복잡성들이 존재한다. 내가 기존에 피력한 관점들에 대한 몇몇 수정안은 우호적인 비평가들과 적대적인 비평가들에 의해서도 촉진되었다. 몇몇 통찰들은 기독교 윤리학의 핵심 문제에 대해 더 숙고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러한 과정들을 되짚어 가는 것은 중복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을 그 불완전함 속에 내버려두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핵심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복음서들의 절대적인 윤리로부터 어떻게 사회 윤리를 끌어내는 것이 가능한가이다. 복음의 윤리는 단지 자유의 최종적인 율법,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제시하기만 하므로 절대적이다. 사회 윤리는 반드시 삶의 무난한 조화들, 정의의 무난한 형태들 그리고 삶의 유동성의 무난한 안정을 이루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이기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라고 요구하지도, 그들의 이기심을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고 이루어져야 한다. 즉, 사회 윤리는 반드시 이기심의 지속성을 상정해야 하지만, 또한 어떤 형태든 간에 부분적이거나 지역주의적인 충성심 혹은 집단이기주의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명백한 결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 공동체에 지속적으로 부과되는 이 임무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의 조국은 자유세계의 최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자유와 공산주의적 독재의 투쟁 속에서 막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책이 쓰인 후로 사회 윤리의 문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의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자원은 미국에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원 중 하나로는 현실에 대한 만족에 의해서 저하되지도 않고 국가와 인류에게 불가능한 목적들을 설정하며 우리가 당면한 책임은 격렬한 갈등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재앙을 피하고 무난한 평화를 지키는 것임을 잊어버린 무책임한 이상주의에 의해 저하되지 않은 적절한 기독교 신앙을 들 수 있다. 물론 국제적인 상황은 인간이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마주하는 유일한 상황이 아니며, 신앙이 그저 이상주의로서 계시되어선 안 되며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되었듯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헌신이라는 지침 아래 삶의 모든 우여곡절을 책임 있게 다루는 자원으로서 계시되어져야만 하는 유일한 상황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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