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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예술

이름:김종길

출생:1968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 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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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세트] 한국 미술 다시 보기 1~3 - 전3권>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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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2.0’을 위한 실천 고백서> 심광현․유진화가 지은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가 출간되었다. 책 출간과 함께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전도 3월 16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삼육빌딩에서 열렸다. 책을 살피고 전시를 읽는다. #0. 파미르 고원 이 책은 유라시아를 사슴뿔(生角)로 크게 틔우고, 장구의 궁편과 채편을 휘모리로 몰아가듯 좌뇌(左腦)와 우뇌(右腦)를 뒤흔들어 뇌들보(腦梁)의 불꽃을 일으켜야 잘 읽힌다. 유라시아를 가르는 파미르 고원이 한반도 신화의 한 수원지라는 것을 기억하자. 파미르 고원이 또한 유라시아의 뇌들보이므로. 그가 [그림-1]로 제시한 “4가지 실존양식의 좌표 속에 위치한 개인구성체의 다중스케일 네트워크”(10쪽)는 맑스(좌뇌/궁편)와 칸트(우뇌/채편)의 두 편이 어긋매끼면서 직관-판단력-감정-정동-신체가 뇌들보에서 증폭되는 구조다. 좌우가 돌돌 이어 꼬이면서 환빛(神明)의 회오리로 내리 솟구치는 꼴이랄까! 내릴 때는 생활양식/자연적 미메시스(스피노자, 프로이트)로 드러나고, 솟을 때는 통치양식/사회적 미메시스(알튀세르, 푸코)로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철학적 전통에서 ‘내림’은 공자의 유학에 가깝고, ‘솟음’은 노자의 도학에 가깝다. 공자의 인의예지는 사실 통치양식이 아니라 생활양식이고, 노자의 무위적 성인(聖人)은 통치학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생활양식의 보편성은 정치학으로 넓어지고, 성인의 통치학은 ‘스스로의 깨달음’이라는 생활수행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공자는 죽을 때까지 ‘(인간)사회’를 놓지 않았고, 노자 또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자연(만물)’을 놓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사유구조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책은 유라시아 반대편의 사유구조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삶과 예술을 되묻는다. #1. 삼위일체 이 책은 삼위일체론을 제시한다. ‘개인 구성체의 위기’, ‘사회구성체의 위기’, ‘자연구성체의 위기’의 삼위기(三危機)가 하나로 몰려들어 땅구술(地球)을 극심한 혼란 속에 빠뜨렸다는 것.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로의 개념정립이 옳다며 ‘삼위일체 트라이앵글’을 그들이 판단한 가장 현실적인 난제로 제시한다. 이 난제를 뒤집어엎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해 그들은 삼위기 그물코에 잇대어 미학-문명사-자본-예술학-인지생태학-이야기의 그물을 짓는다. 그물과 그물코의 중층적 알고리즘에서 그들은 하나의 대안을 뽑아낸다. 그 대안은 러시아 철학자 바흐친이 역설한 ‘대화적-다성적-민중적’ 이야기와 소설의 전통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판소리나 한글 가사체(춘향전, 용담유사와 같은 이야기체 글), 굿의 본풀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은 ‘창조적 굿짓’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 민중적 현실의 고치에서 뽑아낸 이야기가 짓고 일으키는 그림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손-그림과 입술-이야기의 사용을 재결합하는 것이다. 이 오래된 방법의 재사용 장점은 그림과 이야기를 결합하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와 달리 복잡한 기술과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면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13쪽)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침놀’을 향한 미학의 파고듦이다! 삼위일체를 부수고 ‘다시 개벽’의 세계를 열기 위한 이들의 계획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실천이 문제일 뿐! #2. 부활 스무 살이 되던 1987년과 그 이듬해 88년,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타 올랐던 그 두 해 어디쯤에서 평론은 시작되었다. 민중미술 작품을 보고 그들의 작가론을 읽고 그 시대의 상황을 알고 싶었다. 읽고 쓰고 토론하면서 평론의 맛을 익혔다. 때마침 사회구성체 논쟁이 뜨겁게 번졌고 이쪽저쪽의 갈림길로 미끄러지듯 몰려가는 예술가들을 보았다. 정치에 빗대어 미술의 민주화(민중미술)와 미술의 자유화(미술시장)가 서로 맞섰다. 미술비평연구회(미비연)도 그 무렵 발족했다. 미비연은 평론의 정치성을 줏대로 내세운 최초의 비평그룹이었다. 민중미술 평론도 그 무렵 가장 첨예한 담론을 쏟아냈다. 비판적 리얼리즘, 민중적 리얼리즘, 당파적 리얼리즘이 날 선 대립각을 세웠고, 그 경향성에 따라 활동이 갈렸다. 참으로 그 시대는 이론의 시대였다. 미비연의 출현으로 한국현대미술은 본격적인 평론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들은 모더니즘 비평과 맞장뜨며 민중미술에서 미학의 정치성을 분석하고 해체하고 다시 구조화하면서 ‘전투적 아방가르드 미술운동’(70쪽)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술을 시각예술 장르로 재정의하고,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시각예술의 혁명성을 넓히고자 했다. 그런 민중미학의 확장적 개념으로 대중문화의 이면을 파고든 것은 선구적 작업이었다. 당시 서울미술관 기획실장을 지낸 심광현의 평론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맑시즘과 후기구조주의를 무기로 미비연의 맨 앞자리에서 칼 같은 글쓰기를 수행했다. 사회현실의 논점을 파고들었고, 예술정치성의 세목을 판독하면서 민중미술 진영의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따져 물었다. 그는 진영 내부의 날카로운 논객이었다. 1990년의 시대령(時代嶺)을 넘을 때 그는 ‘90년대 미술담론’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나 민중미술 담론이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하지 못한 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의 <민중미술 15년 : 1980-1994>(1994)전이 열리자, 문화이론가로 길을 바꾸었다. 이 책에는 “전시장 바깥의 가두시위나 민중적 삶의 현장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제도가 강제로 분리시킨 그림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12쪽)하면서 “(그림과 이야기) 양자를 탁월한 유머와 해학으로 결합한”(13쪽) 민중미술에의 오마주가 깊게 깔려 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의 부활을 기획하는 중이다. #3. 아시아 시각문화, 문화연구, 문화공학, 예술과 과학기술, 인지과학, 문화정치, 기술-사회 공진화, 신경과학-윤리학의 공진화, 맑스코뮤날레, 인간혁명, 사회혁명…. 예술 어귀의 안팎을 넘나들고 문화과학을 가로지르며 마르크스 이론가 심광현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들이다. [표-5]의 “축적 순환 주기 및 국면변화와 상응하는 근현대 사유의 계보학”(60쪽)에 밝혀 놓았듯이 그는 자본/제국의 헤게모니에 따라 철학적 계보학을 분류한다 : 네델란드 헤게모니(1618~1789), 영국 헤게모니(1789~1929), 미국 헤게모니(1929~2008․10), 새로운 이행기(2017~ ). 각 헤게모니의 국면에서 a(이행기)의 20세기는 프로이트, 베르그송, 후설, 존듀이, 화이트헤드, 레닌, 그람시, 벤야민, 비트겐슈타인이 있고, b(실물팽창)의 20세기는 바슐라르, 하이데거, 라캉이 있으며, c(국면전환)의 20세기는 H.르페브르, G.베이트슨,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시몽동이, 그리고 d(금융팽창)의 20세기는 들뢰즈, 푸코, 데리다, 그 외 가타리, 바디우, 발리바르, 랑시에르, 네그리, 고진 등이 있다. 이 사유의 계보학에 남북중앙아시아,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철학자는 없다. 왜 이 대륙의 철학자는 이곳에 없는 것일까? 아시아 한반도에 발 딛고 유럽(유라시아 좌뇌)의 지식체계로 전환의 알고리즘을 짜고 있는 이 영민한 이론가는 21세기 이행기의 예술적 잠재력을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성장의 계기로 제시한 “애니미즘→신화적 인식→종교적 인식→과학적 인식→예술적 인식”에 주목한다(62쪽). 그는 “과거의 모든 이행기란 곧 인류가 유년기에서 사춘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는 단절적-불연속적인 성장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과 지구생태계 및 사회생태계의 환경 전체와 전면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단계, 즉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자기 인식’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성장’과 그의 ‘인식 단계’로서의 ‘일방향 화살표(→)’는 다소 갸우뚱거림이 있다. 그가 64쪽과 65쪽에서 밝히고 있듯이 “원자화된 개인들이 사회적 개인들로 재탄생하고, 흩어진 개인들을 다시금 역동적인 링크로 연결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로서”를 말하는 부분과,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경향적으로 발전해 온 수많은 민중들의 대화적-다성적-해방적 목소리의 반복적인 표현으로 수렴된다(물론 이 반복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들뢰즈가 강조했듯이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이다)”라고 한 부분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예술창조의 다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에서 다소 무색해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해석이 아니라 창조를 생각해 보라. 창조는 해석보다 더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카오스가 아닌가(64~65쪽). 카오스-플랙탈을 오가는 그의 이론은 아주 흥미롭게도 다분히 아시아적이다. 그의 『흥한민국』(2005)은 ‘사유의 계보학’이 ‘심광현’이라는 한 한국인의 사유체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유라시아의 우뇌인 아시아는 21세기로 깊숙이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화두일 수 있다. #4. 민중적 리얼리즘 2021년 12월 심광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민중미술계 1세대 평론가인 원동석(1938~2017), 최민(1944~2018), 박용숙(1935~2018), 김윤수(1936~2018) 선생이 작고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성완경(1944~2022) 선생의 부음(訃音)이 전해졌다. 성완경은 1980년대 초반 「한국 현대미술의 빗나간 궤적」을 발표하며 1970년대 백색 모노크롬의 시대를 간단없이 뛰어넘는 ‘발언의 현실’을 도전적으로 제시했다. 미학적 실천을 밀고 간 그의 비평은 담대했다. 그는 또 미비연의 탄생을 주도했다. 그런 성완경의 부음과 심광현의 퇴직은 민중미술 비평이 ‘역사화’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림의 새로운 시작>전과 같은 이름의 책을 보고 읽었다. 그런데 심광현은 이들 1세대의 비평 유산을 다시 읽기하며 ‘역사화’와 ‘현재화’를 나누지 않고 ‘이행기’의 관점으로 두 과제를 이어 붙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김윤수다. ‘김윤수 리얼리즘 미학의 재조명’(76쪽)을 위해 유고집을 촘촘히 읽는다. 그가 인용한 ‘예술의 건강성’에 대한 김윤수의 평론 : “건강한 예술, 예술에서의 건강성의 추구는 첫째 예술적 종합을 형상화하는 일과, 둘째 그것을 저해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리는 일,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 건강을 되찾기 위한 예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80쪽) 심광현은 김윤수가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린다”고 강조함으로써 예술이 “몽상을 따라간다”고 말했던 프로이트를 훌쩍 뛰어 넘는다고 해석했다(81쪽). 현실적 모순을 그리는 극복의 꿈. 여기에 심광현과 유진화가 더하려는 것은 관객과의 다성적 쌍방향 대화를 촉진하는 ‘민중미술의 새로운 실천’이다. “‘포스트-민중미술’을 넘어서는 ‘민중미술2.0’의 개화”, “이야기-그림과 그림-이야기의 쌍방향 대화의 촉진”, “수많은 장벽에 막힌 개인들의 무의식적 소원-성취(인간과 인간,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을 재결합하는 에로스의 소원-성취)를 다양한 미학적 형식을 통해 연결해 줄 효과적인 사회적 통로”(101쪽). 바로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민중적 리얼리즘’이리라. #5. 옹알이 이 책의 2부 1장은 작가 유진화의 그림 읽기의 이야기다(109~167쪽). 그가 이야기꾼으로 나설 때는 작가의 옷도, 평론의 의식도 내려놓았다. 그는 관객이 아무 정보 없이 작품 앞에 설 때처럼 그 자신의 눈과 앎으로만 이야기를 풀었다. 예술가의 이력도, 그 이력의 내력담이 작품주제로 파고들어 줄기차게 이어가는 어떤 함의도 따지지 않았다. 문맥은 오롯이 그가 읽어낸 글의 줄기를 따라 이어졌다. 그러므로 어떤 글은 싱싱하고 어떤 글은 들뜨고 어떤 글은 달라붙지 않고 어떤 글은 어이없고 어떤 글은 소름 돋았다. 가령, 박은태의 <철골-여보세요>를 풀어서 “노란 안전모를 쓴 건설 관계자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현장에서 급히 걸음을 옮기며 여보세요!를 외치고 있는 이유. 그 이유를 헤아려 보기 위해 그림의 풍경 속을 다시 더듬어 본다. 분주함 대신 정갈함. 꽉 참 대신 휑함. 현장으로부터 멀고 높은 시선. 그림자와 관. 침대와 선물 꾸러미. 그런데 이런 것들로 유추한 추리의 세상 속에서 문든 뿌연 먼지가 인다. 혹시 철골을 턱없이 모자라게 사용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끔찍하고 참혹했다. 이야기는 그림과 아귀가 딱 맞아서 울렸으므로. 그의 글들은 글마다 그 속에서 조금씩은 싱싱했고, 조금씩은 무거웠고, 조금씩은 놀라웠으며, 조금씩은 아귀가 맞아서 시원했다. 물론 이론적이거나 주제만 너무 파고들거나 지식 정보에 기댄 경우도 적잖았으나, 어쩌면 바로 그런 읽기의 방식이야말로 ‘비평의 옹알이’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그림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6. 뱀발(蛇足) 책의 부제인 “문명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를 위해 좀 더 과거를 되짚어야 한다면 민중신학과 실천문학일 것이다. 1970년 전태일 분신이후 교회 내부의 신학은 바깥으로 나와서 제 몫을 갖지 못한 민중들과 해우했다. 그 무렵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가 발족했다. 1975년 민중신학의 이름으로 ‘민중’이 누구인가를 물었고,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조우했다. 1960년대 후반 문학평론가 조동일은 민족미학과 관련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1970년대 민족문학의 씨알이었고 그것은 문화 전반으로 파고들었다. 1970년대 후반 민중미술 소집단들이 숨을 고르며 결성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학습한 것은 김지하의 「현실동인 제1선언」이었다. 여기에는 고구려 벽화는 물론 고려 불화, 조선 민화에 대한 이론적 회오리가 여러 방식으로 솟아오른다. 영화적 문법과 다른 고구려 벽화, 고려불화의 몽타주론은 1980년대 걸개그림의 주 형식이 되었다. ‘민중 메시아’는 광주와 서울의 민중미술가들이 ‘신명’에 기초해 길어 올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실체였다. 당시 청년 예술가들이 깊게 탐독한 책들은 송건호 외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마루쿠제의 『위대한 거부』와 『이성과 혁명』, 전미카엘의 『노동자의 길잡이』, 린다H.존스의 『제3세계의 인권운동』,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P.프레이리의 『페다고지』, N.C.C.의 『산업선교는 왜 문제시 되는가』,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 브리이덴시타인의 『인간화』, 염무웅의 『민중시대의 문학』,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장일조의 『사회운동이념사』, 우인기의 『건국전야의 비화』, 김응삼의 『오늘의 민족노선』, 김윤환 외의 『한국노동문제의 구조』등이다.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지만, 이 책들은 판금도서였다. 민중미술의 첫 샘은 여러 뿌리의 물줄기가 이어 붙어서 솟구친 것이다. 깃발, 걸개, 만장, 플래카드, 벽보, 전단지, 신문, 슬라이드, 이야기그림 등 전시장 바깥의 민중미술은 현장성을 앞세웠다. 시각매체 미디어의 변화에 대응한 동시대 ‘바깥미학’은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고분벽화, 불화, 민화의 불연속적 시간성의 몽타주는? 집회시위의 다성적 목소리를 크게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은? 공동체 신명의 아우라를 심어낼 수 있는 미학적 실천은?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처럼 사건의 혁명성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의제는? 심광현과 유진화의 책과 전시는 이제야말로 민중미술을 다시 읽기하면서 새로 질문하고 새로 모색하고 새로 역사화해야 한다고 따진다. 그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위대한 미술이 먼지에 쌓여 잊히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을까? 미술시장의 급성장과 K-미술의 급부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지나쳐 온 민중미술에 대해 다시 말해야 한다. 어쩌면 그 미술에 우리 미술의 ‘동시대성’이 웅숭깊게 뿌리박혀 있을지 모르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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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장편(掌篇)이요, 시화문학이렷다! 손바닥 지면에 시 그림 버무린 꼴이 문사(文史)요, 그 글역사로 현실의 후경(後景)을 내리치니 철학이 따로 없다. 게다가 그 시그림글이 사뭇 숭고하지 않은가! 에잇, 그림 따위나 비평하는 후배는 뭔 꼴로 살란 말이고. 좋다! 그럼 선배 그림이나 따져볼까? 하아, 그런데, 이것저것 훔치다가 따지다가 다 놓쳤다. 풍경들이 글아귀를 비집고 다 도망갔다. 시를 따라서, 역사에 빠져서, 철학이 되어서 바람처럼 흩어졌다. 흩어진 자리에 발자국만 남았다.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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