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네 발 밑을 조심해."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 댄버스 부인의 기척이 지배하는 저택에 발을 디딘 '나'는 맨덜리 저택의 공간감에 이미 압도된다.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영국식 고택의 외관을 보고 잠시 말이 멎는 숙희. 이 공간이 범상한 곳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면서도, 매혹되어 내딛는 발을 멈출 수 없다. 메리 셸리와 대프니 듀 모리에가 선보이던 그 이야기가 우리의 불안과 만난다. 여성 서사, 고딕-스릴러를 테마로 이 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여덟 명의 젊은 여성 작가가 모였다. 강화길, 손보미, 임솔아, 지혜, 천희란, 최영건, 최진영, 허희정. 이들이 다루는 것은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 뒤돌아보는 여성의 눈빛이다.
"게다가 사라지는 건 전부 여자들뿐이거든요.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여자들뿐이에요. 여자들이 사라지는 사건은 몇 번이고 겪어봤는데, 대부분은 범죄가 많아요." (허희정, <숲속 작은 집 창가에> 248쪽) 숲은 사라지는 여성을 지켜볼 뿐이다. "네 발 밑을 조심해, 남의 발밑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40쪽)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부모님의 금기에 따르던 여성은 끝내 저택의 마지막 층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손보미 <이전의 여자, 이후의 여자>) 이상한 여자, 거짓말하던 여자, 헛소리하던 여자. (임솔아 <단영> 114쪽), 동네에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웠던 여자. (지혜 <삼각지붕 아래 여자> 126쪽), 출신도 사연도 알 수 없는 여자들이 모여사는 집. (천희란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그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떤 여자들은 모욕당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기척을(유령이든 환각이든) 느끼는 다음 여자. '이전의 여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분노하고 많은 원한을 느끼게 되기를, 자기 자신의 뼛속 깊이 새겨진 고통과 모멸감의 정체를 깨닫게 되기를' (90쪽)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는 곳에, 다음 여자가 발을 내딛는다.
- 소설 MD 김효선 (202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