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다시 생각하기"
우울: 공적 감정
앤 츠베트코비치 지음, 박미선.오수원 옮김 / 마티
어떤 감각, 감정, 상태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엔 특정 프레임이 씐다. '우울'을 키워드로 한 마인드맵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연결된 가지들엔 여러 약물의 이름이나 병원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사회의 편견, 그리고 편견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 따위도 있을 것이다. 우울의 원인 또한 하나의 가지를 차지할 것이며 우울 삽화 시기의 증상도 줄줄이 딸려있을 것이다. 이제 한발 물러서서 이 마인드맵을 포괄적으로 바라보자. 여기에 적힌 것들은 특정한 경향성을 띤다. 개인적이다. 부정적이다. 병리적이며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다. 그러나 우울은 우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상태일 뿐, 특정한 위치에 못 박혀있지 않다. 우울을 바라보는 방식은 모조리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앤 츠베트코비치의 이번 책은, 말하자면 우울에서 뻗어나가는 마인드맵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새로 써나기를 제안한다. 츠베트코비치는 우울을 사적 영역에 가둬놓지 않는다. 그는 우울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공적 감정으로 개념화하며 집단적으로 사고해야 할 대상으로 둔다. 우리의 우울은 신자유주의의 압박과 떨어져서 설명될 수 없으며 현재의 노동이나 과거부터 이어져온 폭력과도 별개의 것이 아니다. 종과 횡의 연결 안에서의 우울을 인식하며 그는 우울을 쉽게 부정적 감정으로 치부하고 극복을 말하는 대신 고유한 특성을 바라보고 그 안에 내재된 생산적 가능성을 발견한다.
츠베트코비치가 시도하는 주류 담론에서의 탈피는 책의 형식으로도 구현된다. 그 자신의 우울을 상세히 회고하는가 하면 우울에 관한 문화, 역사적 아카이브를 기록함으로써 책은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담아낸다. 이 낯설고 생생한 접근은 우울이라는 개념에 닿는 우리의 인식과 감각을 확장한다. 내용과 형식 양면으로 해방감과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선사하는 책.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매일의 느낌을 공적인 토론장으로 끌어내면서 우리가 꾀하는 목적은 행위주체성을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상적 느낌에는 부정적 느낌이 포함된다. 이 느낌들은 몸과 마음을 매우 쇠약하게 할 것 같고, 미래나 사회운동이 품는 희망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적 우울이라는 개념이 우리를 완전히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강조해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