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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017
  •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은이), 김선영 (옮긴이) | 현대문학 | 2017년 7월 "글 속에 심은 음악이 피워낸 드라마"

    현재 일본에서 소설에 주어지는 상 중에 대중성을 보증하는 두 개의 상이 있다. 일본서점대상과 나오키 상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상은 지금까지 같은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올해 그 벽이 무너졌다. 바로 이 소설,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이다. 말하자면 <꿀벌과 천둥>은 최초로 교차 검증된 '재미있는 소설'인 셈이다.

    작년 일본서점대상 1위 수상작이었던 <양과 강철의 숲>과 비슷하게 <꿀벌과 천둥> 역시 피아노 음악의 세계를 다룬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더 동적이고 격렬한 순간들이 등장한다.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들의 뜨거운 경쟁과 음악 비즈니스의 냉정한 세계가 함께 펼쳐진다. 서로 다른 사연과 개성을 가진, 아직은 젊은, 어쩌면 어리다고도 말할 수 있는 영재들이 건반 위에서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한다. 온다 리쿠는 음악을 글로 묘사한다는 어려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화려한 비유를 사용해 정면으로 헤쳐 나간다. 강력한 경쟁자와 경연에서 만나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치고, 이 과정의 감정적 진폭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일본의 성장 만화나 드라마들이 많이 써 온 방법이다. <꿀벌과 천둥> 역시 이 익숙한 공식을 이용해 금방 독자들을 친숙한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꿀벌과 천둥>은 경연에 참여한 영재들의 삶을 때로는 거의 냉정할 정도로 드러내며, 화려한 연주의 뒤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열광하고 낙담하고 의심하고 비아냥대는지도 잘 보여준다. 마치 만화 속의 캐릭터들이 현실 세계로 뛰어든 듯하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독특한 괴리감이야말로 피아노 콩쿠르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피아노에 재능을 가졌다고 인정받은 수십 수백 명 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재능을 찾기 위한 순간들은 언제나 더 멋진 드라마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꿀벌과 천둥>은 그런 욕구를 잘 만족시켜준다. 아름답게 묘사된 명곡들을 연주하는 영재들 또는 관객들의 내면 속으로 독자가 빠져드는 순간, 이 소설에서 빠져나오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웃는 남자
    황정은, 윤성희, 이기호, 김숨, 편혜영, 김언수, 윤고은 (지은이) | 은행나무 | 2017년 7월 "2017 김유정문학상, 황정은! "

    황정은이 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며 지난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뛰어난 작품을 선별해 시상해온 김유정문학상의 1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아무도 아닌>에 실린 '웃는 남자'와 <파씨의 입문>에 실린 '디디의 우산'을 기억하는 독자가 반가워할 이가 작품 속에 등장한다. d로 명명되는 이 사람은 아버지의 목공소에서 자라면서 '세계가, 이미 너무 시끄러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d를 성가시게 했던 세계의 잡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dd를 잃고, 그는 다시 잘 들리지 않는 것들이 내는 소리의 세계로 침잠한다.

    40년이 넘도록 세운상가에서 앰프와 스피커를 고치고 있는 60대 중반의 남자 여소녀와 세운상가에서 노동을 견디는 d의 삶이 겹친다. 소음과 소리의 세계에서 전쟁과 재난과 개인적인 죽음들이 회고된다. 황정은 식으로 묘사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과 가차없는 슬픔들. 그러나 그 고통과 절망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작은 기대만으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김숨의 정련된 소설 <이혼>, 윤성희의 소탈한 소설 <여름방학> 등의 이야기도 반갑다. 상의 취지에 따라 출간 후 1년 동안은 5,500원으로 판매되어 소설 읽는 즐거움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 나인
    제프 하우, 조이 이토 (지은이), 이지연 (옮긴이) | 민음사 | 2017년 7월 "기술을 따라잡는 아홉 가지 방법"

    모든 것은 지나봐야 안다고 했더랬다. MS의 스티브 발머가 아이폰을 무시했던 일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의 앞날을 예견하지 못했던 일, 모스가 전신기를 만들고도 전화를 떠올리지 못한 것, 축음기가 오디오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에디슨. 당대 최고의 기술을 만들고도 그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기하급수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드론이 공원을 날고 인공지능이 바둑을 두는 것은 알겠는데, 지금 내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원서 제목 'Whiplash'가 독려와 재촉의 의미였다면 번역서 제목 '나인'은 이것이 생존의 문제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아홉수, 내신 9등급, 각종 교향곡 9번 같은 것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다. 물론 저자들이 미래 대응 원칙을 일부러 아홉 가지로 제시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우리의 뇌가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선지자들처럼 세기의 발명가가 될 것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버스가 떠났는지 오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 [세트] 어린이 대학 과학 세트 + 사회 세트 - 전4권
    최재천, 오세정, 이은희, 이희주 (지은이), 김소희, 최진영 (그림) | 창비 | 2017년 7월 "어린이가 묻고 석학이 답하다"

    사회 과학 분야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싶은 초등학생을 위한 책. 역사, 물리, 생물, 경제에 관한 어린이 150명의 질문을 가려 뽑은 다음, 이 시대 최고의 석학들을 찾았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강조해온 생물학자 최재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역사학자 이만열,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로 꼽히는 물리학자 오세정,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제'를 모색하는 경제학자 이정전이 아이들 눈높이에 꼭 맞는 재미있는 비유와 설명으로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어린이 대학에서는 각자의 행복을 위한, 그리고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위한 지식을 함께 가르친다. 어제와 오늘 자연과 사회를 움직여온 법칙을 배우고, 앞으로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꿀 세상과 어떻게 호흡하며 살아갈지 예측한다. 지적 포만감과 즐거움이 동시에 따라온다. 석학들의 지혜롭고 위트 있는 강의와 함께, 거대한 학문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설레임을 느껴보자.

8.42017
  • 악의 해부
    조엘 딤스데일 (지은이), 박경선 (옮긴이) | 에이도스 | 2017년 7월 "기대와는 달리, 악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니다"

    세상에는 악인이 적지 않고, 악인 없는 세상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악인이 나타나면 놀라기 마련이고, 세상은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곤 한다. 악인을 깡그리 물리치고 선으로 가득한 세상을 구현하고픈 마음에 비해, 누가 악인인지 파악하고 악인의 겉과 속이 어떠한지 분석하고 그들이 행하는 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차리는 능력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악의 무리로 지목되는 나치 전범 그리고 그들의 심리를 파헤치려 도전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나치 전범 재판이 펼쳐진 뉘른베르크, 이미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얼마 후면 전범으로 형량을 받게 될 이들, 그들 각각을 수십 시간에 걸쳐 면담하고 심리검사를 실시하며 재판정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까지 관찰했던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때 자료를 구석구석 살피며 아직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악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정신의학자. 악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놀랍고도 기구한 여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한 가지는, 기대와는 달리 악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대표적인 전범들조차도 우울증, 호감형 사이코패스, 기억상실과 해리, 편집성 조현병 등으로 진단이 엇갈렸고, 이들을 분석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악은 기대처럼 단순하지 않고, 예상보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악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주의, 악을 대하는 더 많은 방법과 대응책이 필요하겠지만, 악을 하나로 뭉뚱그려 단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다. 여전히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으나 악을 악이라 규정하고 처벌하고 반성해온 인류의 역사와 노력을 이 책에서 다시금 확인하며, 악이 전하는 교훈과 다짐을 되새긴다.

  • 독립 수업
    그레이스 보니 (지은이), 최세희, 박다솜 (옮긴이) | 윌북 | 2017년 7월 "자신만의 일과 공간을 찾은 사람들"

    유명 디자인 사이트의 운영자인 저자는 지난 10년 간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고 이름을 날린 100여 명의 여성을 인터뷰했다. 오프라 윈프리, 아리아나 허핑턴, 메르켈 총리, 혹은 비욘세나 아델 같은 사람은 물론 아니다. 록산 게이처럼 잘 알려진 인사도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인물들이 훨씬 많은데, 이것은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작용한다. 언제까지 우리 이웃, 동료, 유명인, 연예인의 이야기만 듣고 있을 것인가. 이 책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 많은 사업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분야도 각양각색, 저마다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둔 그들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1번 취업 2번 유학 3번 창업, 아니면 1번 현실안주 2번 이직 3번 창업이라는 선택지 앞에 고민 중인 이들에게 이 책은 이른바 100인의 답 찬스와도 같다.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 리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고, 지금의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것. 즉 기회를 억지로 만들려 하지 말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인생을 마냥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휴먼스 오브 뉴욕>의 느낌이랄까, 책에 담긴 커다란 초상들은 그들의 성공 마인드를 함축해 놓은 듯하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 몹시 부럽다.

  •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신용목 (지은이) | 창비 | 2017년 7월 "신용목 신작 시집, 가능한 시들 "

    시집 <아무 날의 도시> 이후 5년,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등을 발표하며 오래 벼려온 신용목의 시가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여 독자를 찾았다. 시인 허수경의 추천대로 "아름답고 참혹한 시집의 순간들이 나타나서는 오랜 벗인 듯 허물없이 머물"곤 하는 시들. "이 시간이면 모든 그림자들이 뚜벅뚜벅 동쪽으로 걸어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습니다"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中) 같은 시가 묘사하는 풍경들에 오래 골몰하게 된다.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공동체 中) 라고 묻는 시. "나는 알고 있지 / 목숨이 / 꿈의 갱도에서 활자로 부서졌으므로" (나는 알고 있거든 中) 라고 기억하는 시. '눈보라의 미래, 물의 숲, 혼자 도착한 아침과 꿈의 정거장인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가능한지 물어보는 슬픔'(우리 中)을 시는 가능하게 한다.

  • 영어는 3단어로
    나카야마 유키코 (지은이), 최려진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7월 "일본 아마존 종합 1위 베스트셀러"

    2016년 가을 출간 이후 지금까지 일본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는 영어 책이 있다. 일본의 스타 영어강사 나카야마 유키코의 <영어는 3단어로>다. 이 책은 일본의 TED라 불리는 니혼TV 〈세계에서 가장 받고 싶은 수업〉에 소개되며 큰 화제를 일으켰다. 어렵고 긴 내용도 짧고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하게 만드는 3단어 영어를 통해,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출연자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하게 만드는 기적을 보여준 것이다.

    “What’s your job?”이란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답할까? ‘나의 직업은 영어강사입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가정하고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My job is an English teacher.” 이 문장은 맞는 영어다. <영어는 3단어로>를 만나면 이 문장은 이렇게 바뀐다. “I teach English!” 어떤가? 문장이 짧아진 데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쉽다.

    복잡한 문장을 구성하느라 애쓸 필요 없이 ‘누가, 하다, 무엇을’ 단 3단어로 문장을 만들었다. 짧고 간단하고 쉽기 때문에 무엇보다 실수할 염려가 없고 완성된 문장으로 빠르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든다.

8.82017
  • 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안드레 애치먼 (지은이), 정지현 (옮긴이)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이 날들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탈리아 해안에 면한 작은 도시가 있다. 여름에는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겨울에는 모두들 떠났다가 크리스마스만 잠시 즐기러 돌아오는 휴양촌이다. 열일곱 살인 엘리오는 명망 높은 학자인 아버지가 초대하는 손님들과 이곳에서 매해 여름을 보내는 게 익숙하다. 익숙하고도 지겹다. 스물네 살의 젊은 학자 올리버가 여름을 보내기 위해 그들을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태연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도, 그러다 거절당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오는 관찰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엘리오는 기다리고 있다. 만약 올리버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호기심을 드러낸다면, 혹시라도 욕망을 가진다면 자신은 금방 그에게 빠져버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말이 태어나는 순간에.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이제 마법 혹은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이 둘은 서로에게서 뜨거움을 느끼고 그 열기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특히 엘리오는 마치 수많은 실연을 겪고 나서 지쳐버린 사람처럼 소심하고 조심스럽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엘리오는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게 될 까봐 두려워한다. 엘리오는 사랑을 향한 열망이 너무 커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그 강렬한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그는 지친 게 아니라 마치 자신의 초능력을 두려워하는 슈퍼 히어로처럼 보인다. 그 정도로 이 젊음은, 젊은 사랑의 힘은 강력하다.

    <그해, 여름 손님>은 무덥고 아름다운 휴양촌의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씩 열기를 더해 가는, 젊고 작은 사랑 이야기다. 여기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을까. 독특하거나 기발한 전개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이 겪었거나 상상할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부드럽고 아름답다. 격한 순간에도 정제된 문장은 이 소설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그해, 여름 손님>이라는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한다. 마치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 작은 마을이 세계의 모든 영역인 것처럼. 이 소설은 많은 이들의 꿈속에 등장했던 바로 그 이야기이다.

  • 센스메이킹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 (지은이), 김태훈 (옮긴이)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7월 "데이터에 인간의 일을 맡길 수는 없다"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다.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차고 넘친다. 감독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기에 출전할 라인업을 결정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면 감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야구다. 그래서 감독의 감이 중요하다. 물론 그 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날그날 선수들의 기분, 몸상태, 팀 분위기 등 팀을 오롯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귀중한 진실 역시 말해주지 않는다. 데이터의 양이 많아질수록 잘못 판단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 책이 빅데이터에 대한 맹신을 강하게 꼬집는 이유다.

    각종 수치가 곧 진실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빅데이터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넓게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깊게 제대로 아는 것이다. 책은 깊게 알기의 방법으로 인문학적 통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센스메이킹은 그 통찰력을 기르는 일이다. 알고리즘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경험과 행동에 주목하여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센스메이킹은 유용한 분석 도구가 되어 줄 것이다.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야구를 잘 아는 감독과 사람을 잘 아는 감독, 어느 쪽이 명장일까. 이제 감독도 경영자도 모두 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는 의사결정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판단의 결과 역시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줄리언 반스, 커트 보니것, 스티븐 킹 (지은이), 존 위너커 (엮은이), 한유주 (옮긴이) | 다른 | 2017년 8월 "글이 안 될 때 펼쳐보시오"

    글쓰기에 관한 조언은 차고 넘친다. 성실한 이라면 이런 조언 없이도 무언가 써나갈 테고, (나처럼) 불성실한 이라면 이런 조언 가운데 글쓰기를 피하거나 미루는 데 도움이 될 조언만 골라서 핑계거리를 마련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찾아 읽는 건, 그러거나 말거나 글쓰기에 관한 조언만큼 재미난 글도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기 싫을 때나 하기 힘들 때, 무언가보다 무언가에 관한 무언가를 찾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겠다.

    이 책에는 무려 400여 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같은 상황을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내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애초에 “쓰지 않으면 된다”며 위로를, 일단 “완성하라”며 용기를 건네기도 한다. 물론 읽는다고 완성되는 건 아니다(이 소개글이 그 증거다). 그럼에도 작품 안에서 인물과 대화를, 작품 바깥에서 동료 작가, 독자, 편집자를, 삶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차례로 읽다 보면, 지금 내가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지 비빌 언덕이 보이기 시작한다. 착각이라 해도, 기분 좋게 제자리로 돌아와 도움닫기를 하는 데에 충분한 말들이다.

  • 신이 없는 달
    미야베 미유키 (지은이), 이규원 (옮긴이) | 북스피어 | 2017년 8월 "미미여사의 종합 선물세트"

    에도 시대, 춘하추동 사계절의 풍물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삶 속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갈등을 변화하는 계절의 모습과 함께 그려낸 연작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세 번째 시대 소설 작품집으로 달력의 열두 달에 해당하는 열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표제작인 '신이 없는 달'은 말 그대로 당시 사람들에게 신이 자리를 비운 달로 일컬어지던 10월 밤에만 도둑질을 하는 이상한 도둑에 대한 이야기다. 탐정(?)이 등장하면서 고전 추리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다가 가슴 아픈 이야기로 이어진다.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드라마 코드라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꽤 코믹한 이야기도 있고, 당연히 괴담 류의 단편도 은근슬쩍 자리잡고 있다. 천재적인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대체로 평범한, 시대는 다르지만 이웃 같은 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집 답게 내용 자체가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인물들이 안겨주는 친근감이 가득해서 흐뭇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환상적인 동네이고 과거의 동네이지만 어쩐지 내가 아는 동네인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많은 부류의 인물들을 엮어낸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 언제 어느 때나 읽기 좋은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 종합 선물세트다.

8.112017
  •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에드 용 (지은이), 양병찬 (옮긴이) | 어크로스 | 2017년 8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알아가는 기쁨"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하기란 어렵다. 아무래도 감각보다는 지식을 통해 이해하는 쪽이 빠르고 정확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역시 눈에 보이지 않으면 금세 잊거나 없는 듯 지내기 마련이고, 대체로 살아가는 데에 별 지장이 없으니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그런데 그간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존재를 모르고 지냈을까 싶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미생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미생물 없이, 아니 미생물을 모르고 살아온 삶이 너무 황망하여,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왜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미생물을 그간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하소연하고 싶을 정도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를 너무나 흥미롭게 펼쳐낸 주인공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 블로거 에드 용이다. 인류가 미생물을 처음 알게 되어 두려움에 떨다가, 이내 흥미를 느끼며 미생물을 차츰 알아가고, 마침내 미생물이 인류와 너무 닮았음을, 미생물 없이는 지구의 생태든 인류의 생존이든 한순간도 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미생물만큼이나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생물만큼이나 세세하고 구체적인 이야기 속에 풀어낸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토록 풍성했다니, 내 생명이 이토록 풍부하게 더불어 살고 있다니, 미생물이 너무 고맙고 나도 부쩍 훌륭해진 기분이다.

  •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지은이) | 문학동네 | 2017년 7월 "세상의 슬픔을 증언하기 위해 인간의 말을 배운 "


    여기 첫 시집을 엮은 젊은 시인이 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고 말하는 시인. 평론가 신형철은 이 시인의 시를 "슬픔을 증언하기 위해 인간의 말을 배운 천사의 문장으로 쓰인 시"라고 설명한다. 슬픔을 호명함으로써 슬픔을 그저 슬픔으로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는 시가 슬픈 이들의 편에 가만히 서 있다.

    시는 눈물의 이미지를 정련한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는 사람의 모습.(<눈물의 중력> 中)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유빙> 中)는 인식. 그 사려 깊은 슬픔에 대한 태도로 '우비를 뒤집어쓰고 등을 돌린 채 직사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을, '해변에 맨발로 서있던 유가족'을 본다. 꾹꾹 눌러담은 과장되지 않은 슬픔을 읽는 사이 "오른쪽 눈에 눈물이 가득차고 기억이 주르륵 쏟아"지는 (<연인> 中)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슬퍼야 마땅한 별에서 지구만큼 슬플 줄 아는 시인을 만난다.

  •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에이미 스튜어트 (지은이), 엄일녀 (옮긴이) | 문학동네 | 2017년 8월 "이 여자는 지지 않는다"

    소설의 배경인 1914년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실존했던 인물) 콘스턴스 콥은 여성에게 주어진 이미지를 거의 모든 면에서 부셔버린 사람이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에 관심이 없으며, 여자에게 어울린다고 알려진 일에도 관심이 없다. 180cm가 넘는 키에 건장한 몸을 지녔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경찰이나 보안관을 하면 어떨까. 딱 어울리는 직종 같은데, 문제는 아무도 여자가 보안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뉴저지 주 역사상 여성 보안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지만 콘스턴스에게 이런 점은 별 문제가 아니다. 딱 어울리는 일 같으면 해야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면 해야지. 그거 말고 다른 뭘 생각한다는 거야.

    그래서 총 8부작으로 기획된 이 기나긴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콘스턴스 콥은 어떻게 근심하기를 그만두고 여성 보안관보가 되었는가'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에는 설마 그녀가 좌절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할 부분이 없다. 힘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콘스턴스와 자매들이 탄 마차를 자동차로 받아버린 지역 유지 코프먼은 콘스턴스가 자신을 법정에 세우려 하자 '가난한 주제에 건방진 여자들' 을 괴롭히려 폭력까지 동원한다. 값비싼 변호사 선임은 기본이다.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자에게 대항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콘스턴스는 명백한 불의에게 지고 싶지 않다. 그뿐이다. 그녀는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 대체 이런 사람이 보안관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한단 말인가?

    원예 칼럼니스트(!)이자 출판 평론가였던 에이미 스튜어트는 다른 책을 쓰기 위한 자료 조사 중에 우연히 이 놀라운 실화를 발견한 뒤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다. 이 소설은 이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다. <술 취한 식물학자>를 읽어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감성적인 비유와 독특한 유머를 자랑하는 에이미 스튜어트의 문장은 리볼버와 보안관이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언뜻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는 의외의 성과를 보여준다. 담담하게 등장하는 아름다운 묘사와 센스 있는 대사들은 20세기초의 사람들과 우리 시대의 독자들을 잇는 교묘한 가교 역할을 한다. 좋은 솜씨다.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는 멋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소설가' 에이미 스튜어트의 행보를 지켜본다는 측면에서도 앞으로 나올 일곱 권의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멋진 데뷔작이다.

  • 바람으로 그린 그림
    김홍신 (지은이) | 해냄 | 2017년 8월 "침묵으로 곁을 지키는 사랑, 김홍신 장편소설"

    성당에서 복사로 섬기며 신학대학을 꿈꾸던 남학생이 연상의 성가대 반주자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서로를 세례명인 '리노'와 '모니카'로 부르며 소통하는 이들. 운명은 여러 번 인연을 흐트러트리고, 함께 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사랑은 계속된다.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인물을 향한 연민을 깊게 한다.

    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의 장편소설. 전작 <단 한번의 사랑> 에 이어 다시 한 번 사랑이라는 문제에 천착한다.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침묵의 사랑으로 곁을 지키는 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8.252017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은이), 김명남 (옮긴이) | 창비 | 2017년 8월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문제의 목록들"

    지난 2, 3년 동안 (한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짧게 설명하기란 어렵겠지만, 그간 문제로 인지되지 않았거나 문제가 아니라며 묻혔거나 문제이지만 해결하기 어려우니 일단 문제가 아닌 것으로 하자며 모른 척해오던 문제들을, 정확하면서도 여전히 의미 확장이 가능한 언어로 표현하고 지적하여, 문제들의 목록을 만들고 나누고 타파할 가능성을 넓혔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 목록의 대표적인 예가 맨스플레인, 여성혐오, 데이트 강간/폭력이고, 이 책은 ‘맨스플레인’을 그 목록으로 제안하고 널리 퍼뜨린 리베카 솔닛의 다음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맨스플레인 이후 벌어진 페미니즘 이슈와 각종 사건과 논란을 짚어가며 목록에 오른 말들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그 말들의 가능성을 한층 넓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목록도 제안하는데, 그 가운데 ‘무지권’이 기억에 남는다. 특권이 있어 문제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권리라고 이해하면 될 텐데, 이들은 여지없이 몰라서 말을 하지 않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문제는 아니라거나 잘 모르지만 큰 문제는 아니며 해결되는 과정에 있다고(그래도 이쪽이 다행이랄까)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각자의 경험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몰라도 되는 무지의 권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각자의 경험이 모두의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다 알거나 알 필요가 없는 이야기로 방치하는 게 아니라 알아야 하는 이야기임을 확인하고 확산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간 페미니즘이 해온 일이 바로 이것이고, 덕분에 침묵을 거부하고 말하기 시작한 이들이 늘어났고, 덕택에 문제의 목록이 쌓여 해결해야 할 일이 폭발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끝내야 하는 일이고,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일이니, 무지권 따위는 던져버리고 온전한 권리와 책임을 수행하길 바랄 따름이다. 해결은 하지 못하고 문제의 목록만 늘어난다면, 더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 숨바꼭질
    앤서니 브라운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 웅진주니어 | 2017년 8월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긴장감 넘치는 놀이의 세계"

    "아홉... 열... 이제 찾으러 간다!"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우울한 남매는 뭔가 재미있는 놀이를 하기로 하고,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숲속에 꼭꼭 숨은 동생, 동생을 찾기 시작하는 누나. 예전과 다르게 숨어있는 동생을 찾기가 쉽지 않고, 동생도 누나가 쉽게 찾지 못하자 점점 불안하고 무서워진다.

    누구에게나 간단하고 익숙한 숨바꼭질 놀이를 통해 일어나는 긴장감과 심리의 변화, 그리고 "찾았다. 너희 둘 다!"라는 누나의 외침과 함께 느껴지는 행복감과 안도감.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빽빽하게 겹쳐진 나뭇가지, 바닥을 가득 메운 나뭇잎 등 인물과 배경이 오롯이 살아 있는 그림이 아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 별의 계승자 2
    제임스 P. 호건 (지은이), 최세진 (옮긴이) | 아작 | 2017년 8월

  • 꼬마 흡혈귀 1
    앙겔라 좀머-보덴부르크 (지은이), 파키나미 (그림), 이은주 (옮긴이) | 거북이북스 | 2017년 8월 "흡혈귀와 인간 소년의 아찔한 우정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에 중독된 아홉 살 소년 안톤의 방 창가에 어느 날 수상한 녀석이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 뾰족한 송곳니, 괴상한 곰팡이 냄새의 주인공은 바로 꼬마 흡혈귀 뤼디거!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둘은, 흡혈귀들의 본거지인 공동묘지와 인간 세계를 오가며 아기자기하고도 위험천만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흡혈귀란 미신 속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때문에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 되는 안톤, 인간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된 흡혈귀 사회의 일원인 뤼디거는 과연 언제까지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인간과 흡혈귀가 친구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무수한 장애물은 예측불허의 사건 사고를 몰고 온다. 마주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탐색하는 뤼디거와 안톤의 모습은 현실 속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생동감 넘친다. 어처구니 없는 소동들에 가슴이 조마조마 심장이 콩콩 뛴다.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도 점점 더 깊어지는 달콤짜릿한 우정 이야기. 오빠의 인간 친구에게 첫 눈에 반한 여동생 흡혈귀 안나를 비롯해, 당차고 개성 강한 캐릭터 모두가 사랑스럽다.

    1980년대 독일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꼬마 흡혈귀> 시리즈의 리메이크작이다.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연극, 뮤지컬, TV,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1990년대 한국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을 사로잡았던 명랑소설들 가운데서도 단연 인기작으로 꼽힌다. 2017년 새로운 번역과 함께 새로운 일러스트로 단장했다. 한 장면 한 장면 떼어다 걸어 두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이 멋진 일러스트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8.292017
  • 힐빌리의 노래
    J. D. 밴스 (지은이), 김보람 (옮긴이) | 흐름출판 | 2017년 8월 "빈곤 속에서 일어선 한 청년의 진솔한 기록"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역인 러스트벨트에 사는 백인 노동 하층민을 '힐빌리'라 부른다. 힐빌리 출신의 저자는 <힐빌리의 노래> 단 한 권의 책으로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책은 정신적.물질적 빈곤에서부터 이혼, 폭력, 마약 중독에 이르기까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역에서 자란 그가 어떻게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성공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기나긴 삶의 궤적에 관한 담담한 기록이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 책은 감동적인 성공담에 무게를 두지는 않는다. 문화와 교육에서 소외되고, 가족 관계가 붕괴된 환경 속에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채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해버리는 힐빌리의 민낯과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엘리트 세상으로 옮겨간 저자는 '문화적 이주자'의 시각으로, 가진 자와 없는 자, 교육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상류 계층과 노동 계층의 차이점을 보여주며, 빈곤층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들을 모색하고, 정책적인 대안과 비전까지 제시한다.

  • 인간증발
    레나 모제 (지은이), 이주영 (옮긴이), 스테판 르멜 (사진) | 책세상 | 2017년 8월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가 다다른 곳"

    1년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것도 스스로? 일본에서는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런 현상을 일본에서는 ‘증발’이라고 부른다.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이들. 이 가운데 3만 명 남짓한 이들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니, 나머지 7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지 않는 어딘가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겠다.

    그들이 증발한 이유는 여럿이다. 취업 실패, 시험 낙방, 이혼이나 퇴사 등 사회에서 관문과 책임으로 정해놓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느꼈을 때, 주변과 사회로부터 쏟아지는 압력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가능할까, 가족은 그들을 찾을 수 없었을까 찾지 않았을까, 그들은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끊이지 않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 년에 걸쳐 세상 아닌 세상으로 뛰어들어 담아낸 그들의 목소리에서,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가 다다른 곳을 확인한다. 그곳은 사회가 압박하는 책임만 가득할 뿐 사회가 맡아야 할 책임은 고려되지 않는, 사회가 증발한 곳이었다.

  • 어두운 범람
    와카타케 나나미 (지은이), 서혜영 (옮긴이) | 엘릭시르 | 2017년 8월 "부담 없는 어둠"

    제66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 수상작인 표제작을 포함한 단편집. 일본 미스터리계에서 꾸준히 활동 중인 와카타케 나나미의 신작이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아무리 어두운 소재를 다루더라도 분위기가 어느 이상으로 어두워지는 일이 없는데, 아무래도 간결한 정황 묘사와 더불어 음험한 인간 군상의 내면을 직접 묘사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소년 탐정 코난이 등장하는 세계와 비슷하다고 할까. 와카타케 나나미의 세계에서 악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경계 바깥에 있고, 독자들은 그 경계 안에서 '괜찮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세계는 호러-스릴러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악에게 정서적으로 침범당할 여지가 없는 깔끔한 세계다.

    이번 단편집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에 등장하는 '탐정'들 중에는 그 자신이 대단한 스트레스에 함몰돼 불안을 노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어둠은 작품 속에 내려앉지 않은 채(또는 내려앉기 전에) 이야기는 끝난다. 그렇다고 신본격 미스터리 풍의 기발한 트릭이 나오냐면 그렇지도 않다. <어두운 범람>은 담백하다. 트릭은 간결하고 반전은 성실하다. 어느 한쪽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보다는 심적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다. 이런 방향 설정은 꽤 현명한 선택 같다. 어떤 장르건 매니아들을 흡수하는 세부 장르들이 존재하며, 그 바깥에는 자신의 취향을 아직 확실히 하지 않은 팬들이 많다. 주로 해당 장르의 고전 소설들이 이들을 흡수하며 각각의 세부 장르들로 안내해 주지만, 동시대 창작물들 중에서도 그런 역할을 가진 작품들이 꾸준히 나와 주면 좋을 것이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그런 면에서 잘 해내고 있다. 미스터리 장르 초입의 난망한 교통 흐름을 잘 안내해주면서 부담없이 그 매력을 전달해 준다. 잠들기 전에 읽어도 전혀 심란하지 않은 추리소설로, 조금 특별한 의미에서 권해 드린다.

  •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
    프리먼 다이슨 (지은이), 드와이트 E. 노이엔슈반더 (엮은이), 하연희 (옮긴이) | 생각의길 | 2017년 8월 "노과학자의 조언, 항상 새로운 실수를 하라"

    미국 대학에서 교양 강좌로 개설된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는 강좌 이름처럼 단조로운 수업이 아니다.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12주 동안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를 읽고 토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의견과 질문을 정리해 저자 프리먼 다이슨에게 편지를 보내고 곧 답장을 받고 다시 편지를 보내며 이야기를 나눈다. 1993년 시작된 이들의 편지는 무려 2014년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프리먼 다이슨은 1923년생으로 살아있는 물리학자 가운데 손꼽히는 석학이다.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대학생들과 소통하며 나눈 대화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길고 넓고 깊은데, 다이슨이라는 특이한 성이 청소기 회사 다이슨과 연관이 있느냐는 엉뚱한 질문부터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민간과학자로서 회한을 듣고 싶다는 아픈 질문, 과학과 종교의 갈등과 타협, 인간과 사회의 미래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프리먼 다이슨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답변은 이것이다. 90세가 되었다고 더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성급한 결정을 피하고 필요할 때 경로를 바꿀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실수를 하자,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