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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018
  •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지은이), 김경영 (옮긴이) | 글항아리 | 2018년 3월 "한 번이라도 북유럽을 꿈꿔보았다면"

    북유럽, 지도에는 분명 존재하는데 왠지 현실에는 없을 것만 같은 곳이다.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나라이고 별다르지 않은 사람들일 텐데, 유독 북유럽 나라들이 온갖 긍정 지표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하니, 비결이 궁금하다기보다는 그냥 그곳으로 건너가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와 각각이 마주하는 삶의 현실은 분명 다르다 하겠으나, 그것마저도 완벽한 나라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말처럼 들릴 정도로 북유럽은 꿈만 같은 곳이다.

    북유럽에서 수년에 걸쳐 생활을 했고, 북유럽 사람들이 영리하고 진보적이며 동시에 특이한 사람들이라며 애정을 감추지 못하는, 더불어 바깥에서 북유럽을 바라보는 단선적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는, 그래서 이참에 제대로 북유럽 사람들을 취재하고 분석하여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보려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부스다. 그는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데, 그 덕분에 북유럽 사람들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게 다시금 확인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나라는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다. 한중일을 동아시아로 묶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듯, 이들을 북유럽이라 묶고 한번에 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다섯 나라는 서로를 거울 삼아 자신의 특성을 설명하기에, 다섯 나라 사람들이 주고받은 영향에 주목해야만 북유럽이라는 공통분모 그리고 그 안에서 각기 다른 개성을 동시에 살필 수 있다. 박람강기와 재기발랄로 가득한 이야기를 통과하고 나니, 그간 꿈만 같은 곳으로 그려지던 그곳이, 이제야 손에 잡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고, 더 만나고 싶어진다, 정말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룬 거의 완벽해 보이는 나라를.

  • 거의 정반대의 행복
    난다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네가 태어나 비로소 세상이 밝아졌다"

    유쾌한 생활만화 <어쿠스틱 라이프>와 임신부터 출산 과정을 담은 만화 <내가 태어날 때까지>의 난다 작가가 처음으로 만화가 아닌 에세이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아이를 낳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난 저자는 그 안에서 느낀 부분들을 매우 진솔하게 <거의 정반대의 행복>에 담아냈다. 중간중간 귀여운 일러스트와 짧은 만화를 삽입해두어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 살려준다.

    아이를 낳고 30여 년간 단단하게 지켜온 자신만의 바운더리가 무너졌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쌀'이라는 태명을 가진 아이는 태어난 후 사랑스러운 이름의 '시호'로 불리게 되었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은 시호가 때어나 세 살이 되기까지의, 한 몸 같던 시절의 이야기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는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고통과 고민의 순간뿐 아니라, 작가 일을 병행하며 마주한 고충까지 솔직하게 들려주면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선사해주었다고 고백한다.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를 기다리는 예비 부모, 긴장감과 행복감 속에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부모 모두에게 따뜻하고 뭉클한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수전 브라운밀러 (지은이), 박소영 (옮긴이) | 오월의봄 | 2018년 2월 "네, 그것은, 그것도, 당연히 강간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것도 성폭행인데?” 성폭행과 강간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질 때마다 튀어나오는 반문이다. 여기에 적합한 답은 하나밖에 없다. “네, 그것은 성폭행입니다.” 인류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강간은 강간으로 불리지 않았고, 성폭행은 성폭행이라 불리지 않았다. 여성들은 강간에 맞서 싸우기 전에 강간을 강간이라고 지칭하는 데에 엄청난 힘을 쏟아야 했으며, 그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960년대 ‘뉴욕 급진 페미니스트’로 활동한 수전 브라운밀러가 이 책을 펴내던 1975년, 그 역시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럴 가능성도 없다는 수준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으나, 다른 여성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펼쳐내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강간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지만, 이 책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엄청난 힘을 가진 출발점이다.

    그가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강간을 추적하여 시대별, 주제별로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강간에 대한 오해를 짚고,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강간문화를 파헤친 후에 이른 강간의 정의는 이렇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강간 피해자가 믿을 만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피해자의 평판에 흠집을 내지 못해 안달"이지만, "수치와 불신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성폭력에 대항하는 전투를 통해 놀라운 발전을 쟁취해낸 것"도 사실이다. 출발점이 달라졌다. 아직 이곳에 당도하지 못했다면, 서두르기 바란다.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Vol.1 세트 - 전6권
    박상순, 김경후, 이기성, 이장욱, 유계영, 양안다 (지은이) | 현대문학 | 2018년 3월 "핀, 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다"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가 '핀'이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인다.
    1. 사물을 여미거나 연결하는 데 쓰는 뾰족한 물건
    2. 꽃이나 웃음 등이 개화한 상
    3. 무대 위의 피사체나 세밀한 일부분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쏘아주는 빛
    여섯 명의 시인의 시집을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셋 중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연결하고, 개화하고 주목하는 시들. 한 손에 들어올 만한 판형의 감각적인 책의 외피에 박상순, 김경후, 이기성, 이장욱, 유계영, 양안다의 시와 짧은 에세이가 담겼다.

    박상순의 시집 <밤이, 밤이, 밤이>는 시인이 직접 작업한 이미지들과 활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그럼 수요일에 오세요. 여기서 함께해요. 목요일부턴 안 와요. 올 수 없어요. 그러니까, 수요일에 나랑 해요. 꼭, 그러니까 수요일에 여기서......" 소리내어 읽어보면 더 말맛이 느껴지는 시.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中) 음악적인 경쾌함이 입 속을 구른다. '카페'를 주제로 한 시론이 담긴 에세이 한 편과 정다운 작가의 표지 그림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어 다채로운 감각으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3.62018
  •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
    브라이언 크리스천, 톰 그리피스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청림출판 | 2018년 3월 "컴퓨터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

    컴퓨터와 인간은 사고방식이 다르다. 당연히 각자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다르다(물론 인간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면서 마주하는 일상의 문제를 컴퓨터의 방식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도 있겠고, 때로는 빈틈없는 알고리즘 덕분에 쉽게 해결될 일을 꼬아버릴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면 장점도 단점도 없는 일이니 시도해볼 이유가 없는 것 아닐까.

    장단을 따지기 전에 이미 시도해본 이들이 있다. 컴퓨터과학과 철학을 공부한 브라이언 크리스천과 인지과학 교수 톰 그리피스는 주차, 옷장 정리, 주택 계약, 결혼 결정 등 온갖 삶의 국면에서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알고리즘 방법을 찾아봤다. 최적 멈춤, 과적합, 무작위성 등 열한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수백, 수천의 과제와 풀이를 제시한다. 진작 이렇게 할 걸 싶은 해법과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은 해법 사이에서, 컴퓨터를 믿어야 할지 인간을 믿어야 할지 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과정은 큰 도움이 된다. "알고리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기본 구조와 그 해결책의 특성을 알아낸다면, 우리는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지를 간파하고, 자신이 어떤 오류를 저지르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과제처럼 단절되어 있지 않다. 해법을 찾는다고 종료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컴퓨터에게는 정답만 요구하는가. 컴퓨터와 인간, '우리'는 함께 해법을 찾아갈 따름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시도한 것처럼 말이다.

  • 책 잘 읽는 방법
    김봉진 (지은이) | 북스톤 | 2018년 3월 "책과 친해질 수만 있다면!"

    독서법은 늘 인기 있는 콘텐츠다. 책 읽는 법을 읽을 시간에 다른 책을 읽으라는 볼멘소리도 들리지만 어쨌든 이것도 독서다. 평소 다독가로 유명한 배민 김봉진 대표가 책과 썩 가깝지 않았던 독자들을 위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SNS에 읽은 책을 자랑한다거나 책을 인테리어로 활용한다거나 하는 과시적 독서 역시 그가 적극 권장하는 방법이다. 책 말미에는 그가 추천하는 서른한 권의 도서가 소개되어 있는데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폼 나게 읽기에도 아주 제격이다. 아무렴 어떤가. 이 또한 독서다.

    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꾸준하게 훈련하여 좋은 책을 골라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더 나아가 자녀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기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그의 진솔한 이야기에 연신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값을 무제한 지원한다는 그의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이 몹시 부럽지만, 막 <랩 걸> 알라딘 특별판을 장바구니에 넣어 두고 이 글을 쓰는 내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언제나 내 돈 주고 읽는 책이 최고라는 점이다. 그리고 '많이 사야 많이 본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점 직원이어서 하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 늙지 않는 비밀
    엘리자베스 블랙번, 엘리사 에펠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노화를 늦추는 가장 과학적이며 일상적인 방법"

    텔로미어란 염색체 끝단을 지칭하는 단어로 시간이 지날수록 길이가 점점 짧아져 결국엔 세포복제가 멈추게 된다. 이 과정이 노화이며 수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텔로미어를 계속 생성해내는 효소, 텔로머라이제의 역할을 규명하며 이 책의 저자는 2009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노화를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것은 인간이 오랜 세월 가져왔던 소망이자 궁금증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집대성한 과학 지식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냈으며 더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요새 들어 부쩍 몸이 무겁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당신에게 가장 과학적이며 가장 일상적인 '수명 연장'의 방법을 제시해준다.

  • 동화 쓰는 법
    이현 (지은이) | 유유 | 2018년 2월 "직접 쓰지 않아도, 동화의 가능성"

    동화를 쓰려는 이라면 <짜장면 불어요!>, <우리들의 스캔들>, <로봇의 별> 등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온 이 책의 저자 이현의 작품은 여럿 읽어보았을 테고, 한국 어린이문학 작가가 직접 쓴 동화 작법, 창작 도서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도 이 책을 눈여겨볼 거라 생각한다. 그러한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책이니 이번에는 다른 쓸모를 소개하려 한다.

    유난히 어린이와 이야기를 잘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이기에, 동화를 쓰는 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너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다. 동화를 쓰는 일은 이를 다듬고 닦는 과정과 다름없으니,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픈 이라면, 이 책의 쓸모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모든 어른은 어린이였지만, 어떻게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는지 기억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행히 여러 동화에서 성장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고, 불행히 여러 동화에서 성장을 억압하는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은 동화를 쓰는 법을 설명하지만, 동시에 동화를 읽는 법을, 나아가 동화로부터 건강한 아이와 어른의 모습과 관계를 찾아내는 방법을 전한다. 어린이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어른이라면, 이 책의 쓸모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3.92018
  •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은이), 노지양 (옮긴이) | 사이행성 | 2018년 3월 "더 이상 혼자 웅크려 있지 않아도 됩니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는 키가 190센티미터다. 몸무게는 가장 살이 쪘을 때 261킬로그램이었고, 지금은 64킬로그램 정도가 줄었다. 그에게 몸은 불편하다. 가벼운 걷기로도 땀이 나고 숨이 차는가 하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릎과 척추에 무리가 간다.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관계에서도 불편을 겪는다. “뚱뚱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문화의 태도”는 불편한 몸에 불편을 얹어 몸을 가누기 힘들게 만든다.

    그의 삶에는 두 개의 ‘비포’와 ‘애프터’가 있다. 하나는 몸무게가 늘기 전과 몸무게가 늘어난 후, 다른 하나는 강간을 당하기 전과 강간을 당한 후다. 둘이 동시에 진행된 건 아니지만, 둘 다 그의 몸에 일어난 일이기에 따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의 “몸에 관한 고백”이다. 그의 “몸에게 혐오와 경멸만 내비치는 이 세상 안에서도 이 몸을 사랑하려고, 적어도 참아내려고 노력”해온 이야기다.

    그는 죄책감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려, 그러니까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음식으로 몸을 채운다. 그렇게 부풀어오른 몸 때문에 다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이 고백을 거치며 "더 이상 내 몸이 나의 존재를 지배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적어도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한다." 더불어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의 몸과 허기는 충만함에 이르렀다. 고백, 말, 이야기의 힘과 가능성을 다시금, 절실히 깨닫는다.

  •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마쓰이에 마사시 (지은이), 권영주 (옮긴이) | 비채 | 2018년 3월 "청춘의 격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는 마흔여덟 살의 다다시. 남편의 책과 레코드로 가득찬 방과 '비합리적인' 성격을 못마땅해 했던 아내와는 얼마전 이혼했다. 남자는 그동안 막연히 동경해오던 삶을 살기로 한다. 큰 나무가 있는 공원 근처 낡은 목조주택을 취향대로 고치고 고양이와 함께 '우아한' 인생 2막을 시작한 것. 국수집에서 옛 사랑과 우연히 마주하며 일상에 잔잔한 물결이 일기도 한다.

    노건축가와 그를 따르는 청년의 여름날을 담은 데뷔작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보여준 건축 미학이 이번 책에도 깊게 배어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출판사에 몸담았던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모습이 주인공 다다시에 투영되어 있는 듯 하다. 청춘의 격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느끼는 허무감과 애상을 담백한 문체로 담아내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아껴 읽게 된다.

  • 카피 공부
    핼 스테빈스 (지은이), 이지연 (옮긴이) | 윌북 | 2018년 3월 "60년 숙성 카피 철학"

    미국의 전설적인 카피라이터가 1957년에 펴낸 이 책은 1,060개의 격언으로 카피 쓰기의 기본을 익힐 수 있는 광고인들의 경전이다. 격언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카피이자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준다. 그런데 그들만의 책으로 남기엔 너무 아깝다는 것이 문제다. 광고쟁이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책에 담긴 사이다 같은 지침들은 글쓰기는 물론,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말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하기에도 좋은 이 책은 잠깐 짬을 내어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하나 이상은 건질 게 있다.

    그래서 글을 쓰다 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더니 공교롭게도 이런 문장이 나왔다. - "짧게 써!" 말은 쉽다. 하지만 한입거리인 단어 속에 산더미 같은 내용을 넣고, 핵심을 알려주고, 몇 안 되는 문단으로 감명을 주고, 소비자의 인간적 측면을 움직이고, 호감을 일으켜 물건을 사게 하려면 이만저만한 재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 휴, 갈 길이 멀다. 이 글은 이쯤에서 접어 두고 카피의 기본부터 다시 챙겨야겠다. 틈틈이 곱씹다 보면 '이 책을 100번 쓰면 누구나 카피라이터가 된다'는 어느 독자의 추천평대로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친구 사귀기
    김영진 (지은이) | 길벗어린이 | 2018년 3월 "초등 1학년 그린이의 첫 번째 위기!"

    초등 1학년이 된 그린이는 모든 게 낯설고 서툴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친구 사귀는 일은 두렵고도 어렵다. 짝꿍과도 부딪히고 교실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느낌의 그린이는 유치원 시절 친구들이 그립기만 하다. 유치원 친구들과의 놀이터 동창회를 통해, 지금은 단짝인 친구들과도 함께 보내는 시간과 이해가 필요했다는 걸 깨달은 그린이는 먼저 용기 내 마음을 열고 새 친구들에게 다가간다.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로 아이들의 일상을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김영진 작가의 신작. 사진을 찍어놓은 듯이 생생한 놀이터, 학교, 우리 동네 풍경 속에, 그린이와 함께 초등 1학년이 된 여덟 살 아이들의 성장통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고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커다란 도전 앞에 선 세상 모든 그린이들이, 두려움과 불안함을 벗어 버리고 신나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음 다해 응원한다. '누구나 처음엔 다 그런 거야.'

3.132018
  • 날마다 천체 물리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은이), 홍승수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2월 "바쁜 지구인이여, 우주적으로 보라"

    망원경이 발명되기도 전에 살았던 지구인은 하늘을 종종 올려다보며 삶에 도움이 되는 이치를 알아내려 노력했다. 그보다도 앞서 살았던 지구인은 하늘의 조화에 놀라며 그 변화에 어울려 살아가려 애썼다.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 즉 우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한 오늘날 지구인은 하늘을 올려다 볼 겨를도 없이 지구에서의 삶을 유지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책의 제목은 <날마다 천체물리>지만, 저자는 소박하게 "날마다는 무리일지 몰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만이라도 진면목을 아직 드려내지 않은 우주적 진실들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면 어떨"지 제안한다. 오늘날 지구인은 자신이 우주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모두의 생명이 우주의 탄생에서 시작되었다는 진리에 공감하기에는, 아는 게 너무 많고 사는 게 너무 바쁘기 때문이겠다.

    그럼에도 우주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우주적 시각'이다. 언뜻 보면 넓은 우주를 기준으로 지구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삶을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말하는 듯하지만, 그렇기에 넓고 넓은 우주에서 인류의 유일한 안식처인 지구는, 외롭고 위험천만한 우주에서 만난 한 명 한 명의 인류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칼 세이건의 후계자로 불리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 <코스모스>에 이어 21세기 첫 과학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이 책은, 바쁜 인류를 우주로 초대하는 친절하고 애틋한, 무엇보다 짧은 초대장이다.

  • 며느라기
    수신지 (지은이) | 귤프레스 | 2018년 1월 "2018년 지금 가장 뜨거운 책 "

    수신지 작가가 2017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연재한 만화를 단행본으로 묶었다. 민사린이라는 주인공이 결혼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한국 기혼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고, 2017년 10월에는 '오늘의 우리 만화' 상을 받았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며느라기'는 시댁 식구에게 예쁨 받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넓게는 이 사회를 공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성 고정관념을 이 단어에 압축적으로 담아내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지만, 그동안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미묘한 불편함을 잘 녹여낸 이 작품은 절묘한 에피소드와 강렬한 대사들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 흔들리지 않는 돈의 법칙
    토니 로빈스 (지은이), 박슬라 (옮긴이), 정철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투자 역시 마음먹기에 달렸다"

    오래전 '부자 아빠' 로버트 기요사키가 말했던 것처럼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해서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 벌면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소득이 늘면 지출도 함께 늘어난다. 수중에 남는 돈은 늘 비슷하다. 버는 만큼 쓰는 건지 쓰는 만큼 버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어쨌든 근로 소득만으로 재정적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바로 사표를 던져서는 곤란하다. 지금 당장 해야하는 일은 따로 있다. 돈을 불리는 일 즉, 투자다. 머니 트레이너로 변신에 성공한 세계적인 비즈니스 전략가 토니 로빈스는 이 책에서 흔들리지 않는 투자의 기본 원칙을 이야기한다.

    일찍 시작하고 오래 기다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핵심이다. 둘 다 흔들리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시장과 함께 요동친다. 지금 들어가면 떨어질까 두려워서 못 하고, 일시적 조정에 공포를 느껴 중도 포기하거나 조금 오른다 싶으면 기다리지 못하고 작은 수익을 취한다. 그래서 책은 시장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가 소개하는 투자 전략 역시 마음을 다스렸을 때 비로소 제 효과를 낼 것이다. 책의 수익금 모두를 기부할 예정이라는 그는 일찍이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며 우리의 성공적인 인생을 응원했다. 그의 진심 어린 조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자, 이제 내 안에 잠든 투자 본능을 깨울 시간이다.

  • 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은이), 이선화 (옮긴이)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롤랑 바르트의 죽음과 사라진 비밀문서"

    1980년 프랑스의 기호학자이자 문예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다. 소설은 바르트가 비밀 문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가정하며 출발한다. 비밀 문서에는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마법 혹은 주문적인 기능'이라 표현했고, 소설 속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힘'이라고 칭한 '언어의 7번째 기능'이 담겨 있다. 파리 정보국 경찰 바야르는 롤랑 바르트의 주변 인물을 탐문 수사하지만, 기호학계의 용어들을 이해할 수 없어 뱅센 대학의 젊은 강사 시몽에게 도움을 청한다. 바야르와 시몽은 기호학을 이용해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수사 과정에서 움베르토 에코,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사르트르, 노엄 촘스키 등 당대 유명 지식인들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작가 로랑 비네는 데뷔작<HHhH>로 공쿠르 신인상을 수상했고, 존 르 카레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신작으로 프낙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에서는 이 책을 가리켜 '올해 가장 발칙한 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3.162018
  • 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은이), 양병찬 (옮긴이) | 알마 | 2018년 3월 "웃으며 안녕! 올리버 색스"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 특히 작가들과 독자들과의 특별한 교제를 즐겼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올리버 색스는 2015년 8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글 '나의 생애'는, 자신의 삶을 간결하게 정리하며 아직 살아있는 이들의 삶에 특별한 감흥을 전했다. 그리고 2년 반이 흐른 오늘,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가 도착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에 윤곽을 잡고 출간을 제안한 이 책에는, 그에게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을 전해준 앞선 과학자들, 생명, 진화, 의식 등 그가 평생 고민한 주제들, 지루함을 불편해하고 엉뚱함에는 귀 기울이는 태도, 이로부터 만들어졌을 깊은 통찰과 따뜻한 긍정이 가득하다. 이제야 슬픔과 아쉬움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를 만나는 기분이다. 그가 건넌 '의식의 강'에 살며시 발을 담그고 상상한다, 그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 화염과 분노
    마이클 월프 (지은이), 장경덕 (옮긴이) | 은행나무 | 2018년 3월 "트럼프는 왜?"

    도널드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기대와 우려가 이어졌다. 그래도 이제 대통령이니 책임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겠지 하는 기대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우려다. 트럼프 행정부에 몸을 담은 인사들은 자신들이 “이 일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최소한 이 일이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있다”는 판단으로 트럼프와 함께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반, 기대와 우려는 어느 쪽으로 향했고, 자신감과 판단은 아직 유효할까? 저널리스트 마이클 울프는 백악관 내부에서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취재했고, 앞선 물음에 대한 답변을 책으로 내놓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트럼프 백악관을 취재한 결과는 이렇다. "트럼프 임기 중 첫해의 4분의 3이 지났을 뿐인데 고위 참모들 가운데 더 이상 그 전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는 말 그대로 거의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저자가 "목격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를 위해 일하는 것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위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고충을 겪는" 사람들이었고, "이 책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 국민과 미국과 영향을 주고받는 전 세계 대다수 국가 역시 마찬가지 고충을 겪는 중이다. 과연 트럼프의 등장, 도전, 시도는 기존의 정치를 뒤집는 일일까, 아니면 온전한 세계를 뒤엎는 일일까. 이제 이들,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 차례다.

  •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은이), 장영은 (엮은이) | 민음사 | 2018년 3월 "자기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의 탄생 "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한, 근대의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글을 여성주의의 시각으로 만난다. 연구자 장영은이 나혜석이 남긴 소설, 논설, 인터뷰, 대담 등의 자료를 근대 여성문학, 연애와 결혼, 사랑과 이혼, 모성과 육아, 정치와 삶을 주제로 나누어 배치했다. 내밀하면서 정치적인, 1896년에 태어나 글로 자신을 이야기한 한 여성의 화두를 접하며 그의 고민과 현대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여자가 잘나면 못 써." 같은 말을 듣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마음 같은.

    널리 알려진 대로 나혜석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예술가로서 성취를 거두던 중 연애와 결혼과 이혼 등의 개인사로 인해 그의 표현 대로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빛나던 인생 전반부와 쓸쓸한 인생 후반부를 대비시키며 비극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영은은 서문에서 그녀의 생애를 몰락, 혹은 파국으로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글을 통해 부당함에 대해 묻고,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데' 평생을 몰입한 이에게 패배란 없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한다. 실천이기도 했던 나혜석의 글쓰기, 끝나지 않은 질문을 다시 만난다.

  • 나의 첫 세계사 여행 : 중국.일본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은이), 이경석 (그림) | 휴먼어린이 | 2018년 3월 "중학교 가기 전 미리 읽고 준비하는 세계사"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이 중학교 교과 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세계사의 기초를 탄탄하게 쌓을 수 있도록 기획한 책이다. 유럽.아메리카/중국.일본/인도.동남아시아/서아시아.아프리카로 구분한 네 개 지역의 역사를 여행하듯 차례로 살피며 세계사의 시간과 공간,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이해하게 한다. 중국과 일본, 우리 역사와 여러 길목에서 만났던 두 나라의 이야기 속에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사실들이 가득하다. 오랜 세월 큰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앞으로도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하기에 더욱 중요하고 특별한 두 나라다.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듯이 친근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재구성한, 간결하고 명료한 서술 덕분이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역사 지도, 도판과 일러스트, 잡지를 보는 것처럼 흥미로운 편집도 세계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3.202018
  •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조지 레이코프,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은이), 나익주 (옮긴이) | 생각정원 | 2018년 3월 "프레임을 넘어 더 나은 삶을 향하는 정치"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은 이제 정치와 선거에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진실과 사실보다 강력하게 작동하는 프레임 덕택에 보수는 대체로 유리한 상황을 확보하고, 진보는 대체로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는 분석이다. 똑같이 프레임을 활용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벌어지는 걸까? 진보주의자들이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유권자 각자가 성장하며 보수 프레임에 길들여지기 때문이기도 하다(보수가 이긴 역사가 길고 깊으니 당연한 노릇이라 하겠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가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걸까? 현실정치에서는 두 이념의 정당을 오가는 정치인을 흔히 볼 수 있고(물론 이념보다는 사리사욕 때문인 경우가 잦지만),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데 사회보장 강화에 반대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와 진보 양쪽 프레임에 모두 반응할 수 있는 이중개념 소유자들에 주목한다. 이들은 현상이 적정선을 넘어선다고 생각하면 평소 입장과는 반대의 선택으로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이들의 내적 갈등을 이해하는 게 권력 다툼에서 승리할 근거이자 더 많은 시민의 삶에 도움이 될 기회 아닐까. "강력한 보수의 질주와 온화한 진보의 반격, 승부는 이제 시작이다."

  •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은이), 박제이 (옮긴이) | 책세상 | 2018년 3월 "'바보가 되는 공부'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저자 지바 마사야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로, 도쿄대학교 교양학부를 졸업하고 파리 제10대학과 고등사범학교를 거쳐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에 대학 교수가 되었다. 1978년에 태어나 서른다섯 되던 2012년에 앞선 과정을 마쳤으니, 공부의 달인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겠다. 이런 그가 전하는 ‘공부의 철학’이라니, 답답하고 지루한 공부를 뻥 뚫어줄 비법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여기까지 고개를 끄덕였다면, 한국사회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저자는 이렇듯 이력으로 치환되는 공부가 아닌 '깊은 공부'를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깊은 공부란 "동조에 서툴러지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좀더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하는 방식, 그러니까 적극적 동조에서 벗어나, 언뜻 보면 (남들과 달라) 바보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남들과 같은) 바보에서 탈출하는 도전과 용기를 품은 '깊은 공부' 말이다.

    그는 오늘날 '공부의 유토피아'가 열렸다고 평한다. 넘쳐나는 자료와 언제든 접속 가능한 환경 덕분에 그야말로 무엇이든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동조하는 공부'로 가득해, 각자가 마주하고 도전하는 '공부의 세계'는 좀처럼 넓어지지 않는다. 공부의 방법이 아니라 공부의 태도가 문제다. 그간 공부는 획득에 중심을 두었으나 이제 공부는 상실이어야만 한다. "기존의 방법대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자신을 상실"하고, "새로운 의미의 동조를 손에 넣는" 과정을 거쳐야만, '깊은 공부'에 이를 수 있다. 바야흐로 '바보가 되는 공부'에 도전할 시대다.

  • 히트 리프레시
    사티아 나델라 (지은이), 최윤희 (옮긴이) | 흐름출판 | 2018년 3월 "새로고침 버튼이 된 어느 리더의 이야기"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CEO가 직접 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두 명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머지않아 밝혀졌고 나는 실망스런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하긴, 양대 산맥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손을 놓은 지 오래다. 그런데 인도스러운 이름인 사티아 나델라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다. 어쨌든 지난 2014년,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한 스티브 발머의 후임으로 MS의 세 번째 CEO가 된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인도 출신의 엔지니어 사티아 나델라다. 이 사람이 낯선 것은 나 혼자가 아닐 것이다. MS는 늘 곁에 있지만 관심을 둔 적은 별로 없는 그런 존재다. 매일같이 윈도우를 사용하고, 엑셀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지만 그게 특정 회사를 애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 이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들을 간간히 접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열었던 전임자 발머의 말년은 썩 좋지 못했다. 익스플로러는 웹브라우저의 왕관을 크롬에 내줬고 윈도우는 계속되는 혹평 속에 깨진 유리창처럼 흔들거렸다. 그랬던 MS가 연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클라우드 시장을 발 빠르게 장악한 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 내면을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인도인은 어떻게 게이츠와 발머가 하지 못한 일들을 단숨에 해냈던 것일까.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회고를 통해 리더의 역할과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것은 곧 영혼을 재발견하고, 사명을 재정의하고, 회사의 성장 동력을 각인시키는 일이다. 이 낯선 CEO의 자서전이 성공담에 그치지 않아 다행이다. 서문을 쓴 게이츠의 말대로 이 책은 기술이 낳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과정, 그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 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참 쉬운 정치
    알렉스 프리스, 로지 호어, 루이 스토웰 (지은이), 켈런 스토버 (그림), 신인수 (옮긴이) | 어스본코리아 | 2018년 3월 "초등 <사회> 심화 학습을 위한 필독서"

    좌파와 우파는 무엇일까? 선거와 투표는 왜 필요할까? 일상생활 속 여러 가지 문제들은 정치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그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크고 작은 집단의 구성원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부터 민주 시민의 역할까지, 정치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책이다.

    효과적으로 고안된 그래픽은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정치가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무엇보다 정치가 따분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게 한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인다. 교육, 외교, 전쟁, 보건 복지, 환경, 노동, 교통, 경제, 주택, 문화, 법질서 등 교과서와 뉴스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념과 현상들을 찾아보는 사전처럼 활용할 수 있다.

3.232018
  •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은이), 김신회 (옮긴이) | | 2018년 3월 "좋은 사람들만 고민을 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2017년에 출간되어 단기간 내 화제작으로 급부상한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김신회 작가가 보노보노에서 건져 올린 따뜻한 이야기들을 풀어낸 에세이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보노보노의 인생상담>은 <보노보노>의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와 김신회 작가가 함께 작업하여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책은 삶과 관계, 꿈이나 마음 등의 고민에 관해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답을 해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귀여운 일러스트는 덤.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요?' 같은 진지한 질문이나, '겨울 잘 나는 법을 알려주세요' 같은 가벼운 질문, 혹은 '도저히 토마토를 못 먹겠어요.' 같은 사소한 고민까지, 잔뜩 실려 있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다양한 고민을 두고 순수한 대화를 이어가다 별일 아니라는 듯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내놓는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대화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새어 나오고, 모든 고민들이 다 해결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이상한 손님
    백희나 (지은이) | 책읽는곰 | 2018년 3월 "남보다 못한 현실 남매, '한편'으로 거듭나다!"

    어느 비 오는 오후, 남매만 남아 집을 보고 있다. 어둑어둑한 날씨에 으스스해진 동생은 누나 방을 기웃거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몰차기 짝이 없다. "누나 바빠! 너 혼자 놀아!" 더도 덜도 아닌 딱 현실 남매의 모습. 바로 그때 "형아..." 라며 나타난 이상한 아이. 하늘 위에서 타고 온 구름을 잃어버렸다는 이 아이는 엄청난 방귀로 살림을 모조리 날려 버리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부엌을 흰 눈으로 뒤덮기도 하고, 앙앙 울어서 집 안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이 이상한 녀석의 집은 도대체 어디일까? 설마 진짜로 하늘? 남매는 아무 탈 없이 달록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사고뭉치 애물단지 달록이에게 아이들은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을 내어놓는다. 누나는 말없이 동생의 짐을 나누어지고, 또 동생은 누나에게 의지하여 이 엄청난 위기를 헤쳐나가며, 남보다 못했던 남매는 진정한 '한편'으로 거듭난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손 내밀어 주는 세상, 그런 선한 마음에 값하는 선한 보답이 돌아오는 세상. 백희나 작가는 언제나 그랬듯이, 현실과 마법이 어우러진 행복한 꿈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본격 한중일 세계사 1
    굽시니스트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역사만화의 본좌 굽시니스트, 10년 만의 귀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역사 만화계에 홀연히 나타나 정말 역사를 이렇게 그리고 써도 되나 싶은 의문과 충격을 안기고 시사 만화계로 잠시 떠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굽본좌 굽시니스트다. ‘역사를 공부하는 만화가’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20세기 세계 최대의 사건 제2차 세계대전을 두 권의 만화로 깔금하게 정리하고는, 매주 벌어지는 오늘의 역사를 시사 만화로 기록하며 새로운 시선과 내공을 쌓던 그가, 드디어 역사 만화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충격보다는 안정과 깊이를 확보한 관점, 구성, 통찰이 돋보인다. 한국, 중국, 일본을 한데 묶어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동아시아사의 범위를 한층 확대하여 '한중일 세계사'라는 신선한 관점을 확보하고, 오늘의 국제정세를 꾸준히 다루던 시사 만화의 구성을 가져와 각국의 이전투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역사와 시사로 갈고닦으며 통찰한 권력과 욕망의 속성을 가감없이 담아낸다. 굽시니스트의 정점인지, 오늘 역사 만화의 정점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얼 붙여서라도 '정점'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작품이다. 이어질 시리즈의 끝에서 보다 풍성하고 정확하게 무엇의 정점인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지은이), 이원열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년 3월 "커트 보니것 미발표 단편소설집"

    커트 보니것이 학업 중단 후 가족 부양을 위해 잡지에 기고를 시작할 무렵 쓴 미발표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표제작 '세상이 잠든 동안'은 돈과 킬로와트 경쟁으로 변질된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 콘테스트를 그린다. 성공한 기혼남들 사이에 자살이 유행하게 되는 '유행병', 천재 공학자가 자신이 만든 기계 여인에 반해 아내를 떠나는 '제니' 를 비롯한 16편의 단편들에서 젊은 보니것이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던 아주 합리적이며 믿을 만한 그러나 고루하거나 이빨 빠진 노인 같지는 않은" 보니것만의 목소리가 빛을 발한다. 블랙 유머와 절제된 위트,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보니것 특유의 문체의 시원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3.272018
  • 레이디 조커 1
    다카무라 가오루 (지은이), 이규원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년 3월 "다카무라 가오루, 사회파 미스터리의 걸작"

    공허한 일상과 불투명한 미래에 지친 다섯 남자가 경마장에 모인다. 한 쪽 눈이 먼 노인, 승진 경쟁에서 밀려난 형사, 장애인 딸을 키우는 트럭 운전수, 고아 출신 선반공, 재일조선인 신용금고 직원. 원한과 동기가 제각각인 그룹 ‘레이디 조커’는 업계 1위의 대기업 히노데 맥주에서 돈을 뜯어내기로 한다. 히노데 사장이 자택에서 납치되던 밤, 형사 고다가 속한 경시청에 비상이 걸리고 각 언론사는 특종 경쟁에 돌입한다. 급변하는 히노데의 주식으로 이득을 보려는 투기꾼과 긴밀한 관계로 얽힌 대기업, 야쿠자, 정치권의 악취까지 뒤엉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1984년 일본을 휩쓴 기업 테러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모티브로 한 다카무라 가오루의 대작이 드디어 국내 출간됐다. 당시 범인은 유명 제과회사 글리코의 사장을 납치하고, 유통 상품에 독극물을 주입한 후 협박장을 보냈지만 결국 용의자 미검거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마이니치 신문에서는 이 작품을 "소설의 형태를 취한 현대 일본사회의 르포르타주"라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는 냉정하고 치밀한 시선으로, 차별받아야 했던 사람들, 조직의 책임을 떠맡은 사람들, 사회의 변두리로 몰린 사람들을 빈틈없이 바라본다. 199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순위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제치고 1위에 올랐으며, 평단과 독자들의 꾸준한 호평 속에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은이) | 창비 | 2018년 3월 "한 인간주의자의 '살아남는' 삶"

    정찬우라는 이가 있다. 일제강점기 만주로 이주해, 일제 말 조선의용군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해방 후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와 교사로 일했다. 이 사람의 삶은 전쟁 이후 뒤틀리고 만다. 상부의 지시로 남쪽으로 내려온 뒤, 인천상륙작전 뒤 낙오한 인민군과 함께 지리산에서 체포된 정찬우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전향서를 쓰고 석방되었다. 역사 속에 놓인 인물의 삶을 소설로 옮겨온 작가 안재성은 이 정찬우라는 인물이 남긴 수기를 접한 후, 이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길 결심을 하게 된다. '소설로 각색하는 작업을 거치는 내내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진주, 광주, 대구, 목포를 거치며 겪는 한 인간주의자의 수난기.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의 힘이 묵직한 감동이 되어 다가온다. 북한 엘리트에서 남한으로 전향한 그의 눈에 비친 전쟁의 풍경은 초국적이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잊혀진 전쟁'과 함께 잊힌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통해 필요한 전쟁은 없다는 자명함을 새삼 곱씹게 된다.

  •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지은이), 장혜경 (옮긴이) | 어크로스 | 2018년 3월 "모두의 역사를 쓰는 새로운 출발점"

    최근 재미난(?) 통계 자료를 읽었다. 드라마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 가운데 여성이 54.1%, 남성이 45.9%인데, 갈등을 해결하는 인물의 성별은 여성이 39.1%, 남성이 60.9%라는 기록이다. 문득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이 떠오른다. 수십 권짜리 세트로 구성된 위인전 가운데 여성 인물은 손가락을 채우지도 못할 정도였다. 시대가 바뀌어 위인전의 구성은 달라졌겠으나,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통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과거는 어떨까.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기, 문명은 열렸으나 여전히 근력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남성이 역사의 주된 역할을 맡았고 여성은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맡았으니, 역사를 균형 있게 서술한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게 온당한 걸까? 이 책은 이런 생각들이 “여성에 관한 기억을 지우려 한 남성들의 전략”이라 지적하며, 그 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진 여성들을 최대한 살려내려고 노력한다. 그저 여성이라는 집합명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름과 행위를 밝히고 기록하려 애쓴다. 덕분에 새로운 진실 위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최대한의 역사를 써나갈 넓은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바탕 위에서 훨씬 많은, 성별이 무엇이든간에 훨씬 많은 존재가 함께하는 역사가 만들어지고 쓰이길 기대한다.

  • 한밤중 달빛 식당
    이분희 (지은이), 윤태규 (그림) | 비룡소 | 2018년 3월 "제7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식당 밖으로 솔솔 풍겨 나온다. 따스한 불빛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한밤중 달빛 식당'에서는 앞치마를 입은 두 마리의 여우가 손님을 맞이한다. 여우가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것보다 더 이상한 점은 돈이 없어도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나쁜 기억'을 '맛있는 음식'과 교환해주는 독특한 계산법이다. 그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에 대해 말했을 뿐인데, 여우들은 기꺼이 초코 시럽 푸딩을 대접하거나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접시를 내준다. 이렇게 달빛 식당에 털어놓은 사연들은 주인의 기억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가진 손님들이 '한밤중 달빛 식당'으로 모여든다. 순간의 실수로 친구의 돈을 훔치게 된 연우도, 아내와 이별한 후 괴로워하던 검은 양복의 아저씨도. 그런데 나쁜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까? 삭제된 기억은 웃지 못할 소동을 일으키지만 중요한 깨달음도 준다. 어떤 기억을 간직할지, 잊고 살아갈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모든 기억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마법의 세계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만 같은 '한밤중 달빛 식당'은 고단하고 지친 모두를 위해 활짝 열려 있다. 굳이 기억을 팔지 않아도, 서비스로 제공되는 향긋한 차 한 모금이면 충분한 위로가 될 것이다.

3.302018
  • 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 대니얼 크라우스 (지은이), 김문주 (옮긴이) | 온다 | 2018년 3월 "다크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소련과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일하는 청소부 엘라이자는 어느 날 수조에서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를 발견한다. 엘라이자는 신비로우면서도 자신처럼 외로워 보이는 그에게 이끌려 다가가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 실험실에서는 괴생명체를 해부하여 우주 개발에 이용하려 하고, 엘라이자는 어떻게든 그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직접 집필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원작 소설이다. 올해 제90회 아카데미 감독상.작품상.미술상.음악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소설에서는 영화 속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엘라이자의 마음이 보다 생생히 그려진다. 두 시간의 러닝 타임에 다 담기지 못했던 자일스와 젤다 등 주변 인물들의 숨은 사연도 포함되어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다.

  •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더 넥스트
    클라우스 슈밥 (지은이), 김민주, 이엽 (옮긴이) | 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4월 "새로운 업데이트를 설치하시겠습니까?"

    일명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인 슈밥 회장이 2016년을 제4차 산업혁명의 원년으로 선포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상징적인 선언이었지만 나름 중대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더욱이 그곳이 세계 최대 규모의 지식인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슈밥 회장은 지난번 방한 때 두뇌, 영혼, 심장, 그리고 용기를 갖고 영토와 시장의 경계를 넘어설 것을 주문했다. 사회 전반에 4차 산업혁명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중국에도 한참 뒤진다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점검과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많은 책에서 다루는 미래 기술들은 대동소이하다. 중요한 것은 맥락 속에 그것들을 녹여내는 힘이다. 슈밥 회장은 행정학 석사, 경제학 박사, 공학 박사 학위를 가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통섭의 메시지를 던지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이력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해석에는 분명 남다른 통찰이 담겨 있다. 또한 그의 책에는 권위가 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이 책에 참여했는데 그 역시 슈밥의 힘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이 유독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책이 다시금 우리 사회가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 <참고문헌 없음> 준비팀 (지은이), 권김현영 (엮은이) | 교양인 | 2018년 3월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너머의 페미니즘"

    피해와 가해라는 말은 명확하다. 정말 그런가? 미투 운동을 거치며 벌어지는 각종 논란을 들여다보면, 이 구분과 규정이 생각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데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무엇이 성폭력인지 묻고 답하는 데에서 시작해 어디까지를 2차 가해로 볼 수 있을지, 이를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등등 성폭력을 둘러싼 피해와 가해의 문제는 끝없이 물음을 이어가다 종종 방향을 잃기도 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피해와 가해를 구분하거나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사상이 아니라고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피해와 가해라는 문제는 ‘누구’ 혹은 ‘무엇’의 문제에서 ‘권력과 폭력’의 문제로 재설정되어야” 하며, 따라서 피해와 가해 자체뿐 아니라 “사회가 피해와 가해의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고 번역하고 정당화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폭력을 바라볼 때 우선시되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어떻게 “피해자를 타자화”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인’의 전략으로 사용”되는 2차 가해와 2차 피해라는 용어가 어떻게 “성폭력을 다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만”드는지 살펴보면, 상황과 맥락이 가해와 피해로 요약되는 과정에 갇혀 제대로 살피지 못한 혹은 잊어버린 페미니즘의 애초 목표를 되살피게 된다. 이 과정을 건너뛰자는 게 아니라,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며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자는 제안이니, 오늘 고발의 목소리가 다음 변화의 메아리로 이어지는 데에 무엇이 필요할지, '사회적 약자로서 타자와 연대하는 페미니즘'의 내용과 의미를 세심하게 들여다보자.

  •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손경이 (지은이) | 다산에듀 | 2018년 3월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의 유쾌한 아들 교육법"

    아들과 함께 성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동영상 '엄마와 아들의 성교육 상담소'로 화제를 몰고 온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의 아들 교육법. 아들을 성교육 하면서 실천했던 팁을 포함해, 17년 동안 현장에서 만난 부모와 남자아이들의 현실적 고민과 수만 명의 사례를 통해 검증받은 처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성(性)은 근본적으로‘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성교육의 핵심은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성적결정권’과 상대방의 성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젠더감수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성 지식을 전달하는 성교육은 의미가 없으며 성 의식과 성 평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그동안 아들 성교육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던 부모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교육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닫힌 아들의 방문을 보며 어찌할 줄 모르는 부모뿐 아니라, 성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식으로만 교육해왔던 딸을 둔 부모에게도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