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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018
  • 소녀와 여자들의 삶
    앨리스 먼로 (지은이), 정연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앨리스 먼로의 유일한 장편소설"

    캐나다 작은 마을, 호기심과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 델 조던은 주변 여성들의 삶을 주의깊게 관찰한다. 백과사전 판매원인 엄마는 '여자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충고를 건넨다. 반대편에는 남자와 여자의 일은 분명히 다르다고 믿으며, 남자의 그늘에 사는 것을 편안히 여기는 대고모들의 삶이 있다. 자라면서 델의 주위에는 여러 스펙트럼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친구 나오미가 공장에 취직해 결혼을 준비하며 계속해서 삶의 다음 단계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델은 자신이 '평범한 삶'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 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여성'의 삶을 섬세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1940년대 시골 마을에서 작가를 꿈꿨던 먼로의 자전적인 경험이 소설에 녹아들어 있다. "내가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라 고백하며 오로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한 발을 내디디는 델의 모습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 다산의 마지막 공부
    조윤제 (지은이)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다산 정약용이 '죽는 날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힘을 다하고자' 읽은 책, 정조대왕이 '경전의 가르침과 성현의 공부를 집대성했다'며 신하들과 함께 읽은 책, 바로 중국의 고전 <심경心經>이다. <심경>을 쓴 진덕수는 마음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마음이 늘 위태롭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데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온갖 욕망과 부조리에 둘러싸인 현대인들에게 자기 성찰의 시간은 마냥 요원해 보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힘써야 한다. 다산과 정조가 그랬던 것처럼, 책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독자들이 송나라 시대에 집필된 <심경>을 직접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옛 경전들이 으레 그렇듯 아무래도 쉽게 풀어낸 책들을 먼저 찾게 되는데, 고전연구가 조윤제는 그런 방식에 일가견이 있는 저자다. 그는 <심경>의 정수를 보다 쉽게 전하기 위해 <논어>, <중용>, <대학>, <명심보감> 등 옛 고전의 지혜를 총동원하며, 말미에 전문도 함께 실어 이해를 돕는다. 그 중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 본다. "임중도원기감혹태任重道遠其敢或怠, 짐은 무겁고 갈 길이 머니 어찌 게을리 하겠는가?" 우리가 마음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다.

  •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회사는 민주주의 예외 지역이 아니다"

    너무 익숙해서, 다른 말로 길들여져서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와 민주주의가 이렇게 어색한 조합이라는 것을. 돌아보니 한국에서 회사만큼 민주주의의 언어와 원칙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나 싶다. 숫자로 압박하는 이익 앞에서, 경력을 앞세우는 조직문화 앞에서, 발끈 했다가도 뭐가 바뀔까 싶어서, 입을 열다가도 나만 다치지 싶어서, 물 흐르는 듯 지내온 시간이 너무나 많지 않았던가.

    경제학자 우석훈은 한국사회의 절실한 과제로 ‘직장 민주주의’를 꼽는다. 사회 구성 원리로서의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음에도 현실이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 까닭, 그렇게 효율과 수익을 강조하며 다른 가치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달려온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 모두 ‘직장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을 하는 이들에게 또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직장은 삶의 중요한 축이다. 그곳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보다 짧은 시간을 머무르며 적은 영향을 받는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직장 민주주의는 직장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기업과 기업 사이의 민주주의, 나아가 기업과 국가, 결국에는 시민과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와도 영향을 주고받을 게 분명하다. 직장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끝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의 새로운 출발점이라 하겠다.

  • 건반 위의 철학자
    프랑수아 누델만 (지은이), 이미연 (옮긴이) | 시간의흐름 | 2018년 11월 "피아노로 사색하고 사랑하고 꿈꾸었노라"

    철학자에게 피아노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피아노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유할 수 있을 테고, 호기심이 있는 이라면 건반을 두드리며 세계의 질서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고, 때로는 세상과 대결하느라 지친 영혼을 위로하며 멋진 곡을 연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철학자도, 피아노를 연주해보지도 않은 이(=나)의 상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정말 피아노를 연주한 철학자들은 어땠을까? 늘 피아노 연습을 쉬지 않으며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꾼 사르트르, 스스로 음악가라 생각하며 삶의 마지막까지 쇼팽과 피아노를 떠나지 않은 니체, 아마추어리즘을 적극적으로 내보이며 슈만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바르트. 이 책은 세 철학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건반 위에서 사유의 리듬을 발견하고 삶과 세계의 화음을 구현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참, 나와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철학 교수이니, 세 철학자의 사유와 연주로 펼치는 새로운 사유와 연주를 기대해도 되겠다.

12.72018
  •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 (지은이)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혜민 스님이 들려주는 맑고 깊은 이야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전하며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혜민 스님. 3년 만에 출간한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은 '혜민 스님의 마음돌봄' 3부작의 완성편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하고 소란한 이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고 지키는 법을 스님의 맑고 깊은 문장으로 펼쳐 보인다.

    스님은 현대인의 여러 심리적인 문제들 중 '자기 소외'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간다. 현대인들이 워낙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지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는 것, 힘들고 지친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삶의 고요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하여, 고요함의 시간을 가져야 본연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바, 꿈꾸는 삶의 방향, 추구하고 싶은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강조한다. 스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내하는 고요함의 길을 조용히 따라가면, 마음의 평온과 쉼을 얻게 될 것이다.

  •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스펜서 존슨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2월 "그가 마지막까지 지켜 낸 삶의 원칙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스펜서 존슨의 이야기가 20년 만에 이어진다. 꼬마 인간 헴과 허,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생쥐, 이 넷을 주인공으로 펼쳐졌던 그 단순한 이야기는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지만 동시에 많은 의문점을 남기기도 했다. 책에 담긴 변화의 메시지를 읽어내며 나만의 '치즈'를 찾겠다고 다짐했지만 삶은 쉽게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자들의 고민을 방관할 수 없었던 스펜서 존슨은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치즈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미로를 헤매던 헴의 이야기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된다. 헴은 치즈를 찾아낼 것인가? 헴은 어떻게 미로를 탈출하게 될 것인가? 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 독자들은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책 마지막에 수록된 그의 편지 역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의사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나며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이어 가던 그는 세상을 떠나서도 그 활동을 멈추지 않은 듯하다. 그가 남긴 '치즈'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 그림책 다이어리 (2019년 한정판)
    서천석 (지은이) | 창비 | 2018년 11월 "한 주에 한 권, 서천석의 그림책 여행"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 다이어리. 전작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서 그림책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 혹은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이 느낄 감정을 조곤조곤 설명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아이와 부모의 소통을 위해 그림책 다이어리를 펴냈다.

    이 책은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그림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다양한 주제에 맞추어 엄선한 그림책을 소개하는 안내서이다. 또한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친절히 설명한 육아서이기도 하다. 한 주에 한 권이면 충분하다. 그림책을 함께 읽는 시간, 아이와 즐거움을 나누고, 아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시간,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 히피
    파울로 코엘료 (지은이), 장소미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파울로 코엘료의 자전적 소설"

    1970년대, 돈이 없어도 세계 여행에 나선 이들이 있다. 독특한 패션을 추구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했던 이들은 '히피'라 불렸다. '매직 버스'를 타고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터키, 이란, 인도 등을 경유하여 네팔까지 가는 일명 '히피 순례길'. 이 여정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동참했고, 브라질 청년 파울로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길 위에서 파울로는 다채로운 사연을 가진 이들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2018년 최신작이다. 작가 이름을 그대로 딴 주인공 이름처럼, 실제 '히피'로 살아간 청년 시절의 모험과 방황이 생생히 녹아들어 있다. 그 어떤 약속이나 보장도 없이 모든 것을 무릅쓰고 떠난 이들의 여정이 아름답다. '갈수록 비인간화되어가는 사회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모든 이들을 위한 해독제(토도 리테라투라)'와 같은 빛나는 소설이다.

12.112018
  •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지은이)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생산되지 않는 지식, 측정되지 않는 고통"

    인간의 몸은 인류가 가장 오래 탐구해왔고 마지막까지 탐구할 대상이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생명의 과정뿐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낸 거의 모든 지식이 인간의 몸을 관통하여 흔적을 남기고 새로운 몸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식은 모든 몸에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몸은 건강을 확인하는 지표에 포함되지 못하고, 어떤 몸은 질병을 예방하는 대상에서 배제된다.

    지식을 만드는 데에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돈과 시간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돈과 시간과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만들려 하고, 결국 돈과 시간과 권력을 갖지 못한 이들은 지식의 대상과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이 책에서 주목한 “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않는 고통”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조선과 일제강점기, 중세 서양과 현대 서구, 시장과 병원, 대학과 회사를 종횡으로 오가면서, 어떤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어떤 지식은 왜 생산되지 못하는지를 살피며, 지식과 과학에 사회와 윤리가 따져물어야 할 것들을 짚어간다. 핵심은 평등한 건강이다. "건강은 사랑하고 일하고 도전하기 위한 삶의 기본 조건"이자 모두에게 필요한 안전한 출발점이니, 우리의 앎과 지식이 마련해야 할 토대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은이), 장성주 (옮긴이)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 동시 수상작!"

    어릴 적 우는 ‘나’를 달래기 위해 엄마는 선물 포장지로 종이 동물들을 접어주곤 했다. 엄마의 종이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 동물들은 마법처럼 살아나 '나'와 놀아주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존재가 주변의 백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나'. '나'는 엄마와 닮은 모든 것을 부정하며, 종이 동물들을 상자에 넣고 잊어버린다. 그렇게 성년이 되고 엄마와 영영 보지 못하게 된 어느 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종이 호랑이가 다시 움직인다.

    표제작 '종이 동물원'으로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석권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켄 리우가 국내 첫 소개된다. 지구 종말의 위기를 피해 우주로 떠난 인류를 다룬 ‘모노노아와레’, 인공지능에 모든 것을 맡긴 미래를 다룬 ‘천생연분’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14편의 단편이 일상과 환상의 경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 훈의 시대
    김민섭 (지은이)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교훈, 사훈, 가훈을 넘어 '자신의 제안'으로"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훈의 시대’였다. 교문 앞이나 구령대 위에 큼지막하게 자리한 교훈에, 교실에 들어서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급훈 액자, 책상 오른쪽 위에 붙인 각자의 좌우명까지. 지켜야 할 것과 목표해야 할 것 들은 넘쳤는데,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를 나누는 기회는 전혀 없었다. 과정과 무관하게 각자는 그 훈에 적합한 결과로 행동하고 존재해야만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대리사회’라 하겠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훈의 시대'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대리인간'으로 살아가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고 제안한다. 추억 속, 아니 지금까지 살아있는 교훈에서 시작해, 있는지도 몰랐지만 오늘의 삶을 강력하게 규정하는 사훈, 무엇보다 강렬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아파트 광고의 문구를 살펴보며, 추억담이 아니라 여전히 '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더불어 자신을 규정하며 자신의 지향으로 여겨지는 언어를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을 확인한다.

    이제 '훈의 시대'를 추억으로 넘기며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각자의 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저자의 훈을 제안해본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 당신이 잘되도록 격려하는 훈을,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이를 응원하는 훈을, 그리하여 모두가 나아지는 훈을 고민하고 나눈다면, 최소한 '훈의 시대'를 새롭게 맞이할 수 있을 테고, 어쩌면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도 있겠다. 저자 김민섭이 걸어가고 있듯 말이다.

  • 열한 살 미영
    푸른하늘 은하수 (지은이) | 나는책 | 2018년 11월 "1980년대 어린이 생활사"

    컬러TV가 불티나게 팔리고,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에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게 대유행이었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평균 시청률은 무려 78%를 기록하고, 명절 무렵이면 대중목욕탕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전화기, 세탁기 각종 가전제품 광고가 신문을 장식했으며, 오후 6시가 되면 누구나 하던 일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여기는 1983년의 서울, 삼원칼라 사진관집 딸 초등학교 4학년 미영이가 써 내려간 일기 형식으로 1980년대 초 한국인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지금은 자취를 감춰버린 과거의 풍경과 사람, 세간살이를 담은 반가운 사진 자료들이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서민들의 생활이 급속도로 풍요로워지던 그 시절의 추억이 단숨에 되살아난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에 다녔던 세대라면 사진 속 얼굴들이 다 우리반 애들 같고, 그 사진 한 켠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구슬치기, 공기놀이, 스카이콩콩, 고무줄뛰기, 종이인형... 어린 시절 열광했던 대상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보물상자를 선물 받은 것처럼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미영이 또래가 아닌 이들에게도 1980년대 초로 떠나는 짜릿한 시간 여행은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30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의 초등학생들이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상상보거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놀이 문화, 학교 생활을 비교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다.

12.142018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당신의 이름을...> 박준 신작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단 한 권의 시집과 단 한 권의 산문집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시인 박준의 시가 6년을 흘러 도달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기억하는 조심스럽고 다정한 말들. 우리가 함께 한 일들. 우리는 (겨우)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을 뿐이)다. (<선잠> 中) 이 고요한 감정의 교류를 '겨우', '뿐이다' 정도의 말로 한정지어 과장하는 게 조심스러울 정도로 언어는 사려 깊은 태도로 의중을 묻는다.

    '보고 싶다'는 바람의 말도, '보았다는 회상의 언어도 아닌, '볼 수도 있겠다'로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는 조심스러움. 우리가 언젠가 함께할 수도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시인은 지나간 우리의 일에 안부를 건넨다. 봄의 우리,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을 마주 앉은 당신에게 묻던 내 심정.(<그해 봄에> 中) 여름의 우리, "당신은 어렸고 나는 서러워서 우리가 자주 격랑을 보던 때의 일".(<여름의 일> 中) 아직 장마는 오지 않았고,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는 그 철까지는 시일이 있어 우리는 계속 쑥국을 먹고 도라지 무침을 먹고 메밀국수에 동치미를 먹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이름' 같은 끼니를 함께 나누는 동안, 신형철의 발문대로 이 시가 '당신'을 돌보고 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 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은이), 권남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있지, 우린 잘못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후미오. 여느 때처럼 헌책방에 들른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H전집'을 사고 만다. 전집의 속표지에는 표주박 모양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고, 이를 우연히 보게 된 약혼녀 세쓰코의 부탁으로 후미오는 책의 전 주인의 행적을 좇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작가 시바타 쇼가 서른 살에 자신의 대학시절을 담아 쓴 장편소설로,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55년, 혼란의 시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생의 의미를 좇은 ‘청춘들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그렸다. 출간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신형철 평론가가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라고 다시 없을 추천사를 남겼다.

  • 쾌락독서
    문유석 (지은이)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언제나 실패하지 않는 독서"

    이곳저곳에서 책을 소개하다 보면, 재미있는 책을 권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게 된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책이 무엇일까 고민이 깊었다. 이번에는 다들 재미나다고 하겠지 싶은 책을 가져가도 반응이 시큰둥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니, 결국 재미나게 읽어야 재미난 것이지 재미난 책을 재미나게 읽는 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내 결론이 타당하다고 해서 당신이 재미나게 읽지 못해서 책이 재미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 나는 늘 재미난 책을 소개하는 데에 실패해왔다.

    다행히 실패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개인주의자 선언>의 문유석 판사는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 책을 읽었고, 재미가 없으면 망설이지 않고 덮어버렸고, 책에서 의미를 얻었건 지적 성장을 얻었건 그것들은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린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지금, 여전히 어떤 재미로 자신에게 남아있는 기억과 기록을 모아 일종의 인생 독서력을 정리했으니, 당신이 이 책을 재미나게 읽건 재미없게 읽건 그의 독서는 여전히 재미날 게 분명하다. 이런 독서에는 실패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재미난 책을 권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이 책을 권할 생각이다. 이 추천에도 실패가 없길 기대할 따름이다.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 민음사 | 2018년 12월 "25년만에 재단장한 하루키 월드"

    무라카미 하루키가 미국 출간을 맞아 직접 다듬은 <태엽 감는 새 연대기> 개정판이 새로운 번역과 표지로 국내에 소개된다. 소설은 고양이가 집을 나가고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 이후 아내 구미코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작된다. 남편 오카다 도오루가 아내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과 과오, 무자비한 역사로 인한 고통 등 폭력의 역사가 촘촘히 그려진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이전의 하루키는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청춘을 그린 작가로 인지됐지만,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성공으로 비로소 하루키에 대한 ‘진지한’ 비평이 쏟아졌고, <1Q84><기사단장 죽이기>등 후속작들이 세계적으로 현대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이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 곳인지에 대해 정직한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묘함으로 가득한 이 소설 속 세계를 무사히 통과한 독자는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12.182018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지은이) | 나무연필 | 2018년 12월 "엄기호, 고통과 동행하려는 이들에게"

    “넌 내 고통을 모른다.” 고통을 겪는 이들이 종종 내뱉는 말이다.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는 있으나, 아무리 가까운 곳에 서 있다 해도 그 고통을 알 수는 없다. 이 고통을 알 수 있게 하는, 결국 그곳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리하여 고통을 나누며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는 방법은 없을까.

    엄기호는 고통을 말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라는 자리가 아니라, 고통을 겪는 이들이 ‘고통의 자리’에서 나와 ‘고통을 말하는 자리’에 서는 일, 그리하여 고통의 곁에 선 이들이 고통을 통한 직접적인 연대의 불가능에서 허우적대다 자리를 잃지 않고, 서로의 곁을 지키며 고통과 동행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고통은 동행을 모르기에 끝끝내 동행을 파괴한다.” 결국 고통의 곁은 무너져 ‘고통을 말하는 자리’는 가능하지 않고, ‘고통의 자리’만 남아 어떠한 가능성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능할까. "고통과 동행하는 그들에게 동행하는 것" 아닐까. "그들이 대면하고 있는 고통의 자리에 아직 새로운 것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곁이 되는 것 말이다."

  • 문신 1
    윤흥길 (지은이)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등단 50주년, 집필 20년, 거장 윤흥길의 족적"

    <장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의 작품을 문학사에 남긴 작가 윤흥길. 등단 50주년, 집필부터 출간까지 무려 20년이 소요된, 총 다섯 권에 달하는 초대형 장편소설을 독자에게 선보인다. 일본 식민통치하에 놓인 대한제국. 산서(山西)의 천석꾼 대지주 최명배와 그의 아들들을 둘러싼 질곡의 역사를 세밀하게 그려 보인다.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야마니시 아끼라'로 개명한 후 최명배는 입신양명을 위해 친일행각 등을 하면서도 거리낌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받은 그의 자녀들은 폐병이 걸리거나, 기독 신앙에 의지해 집안을 지탱하거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며 아버지와 대립하는 방식으로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난 삶을 살아나간다. 이들의 삶을 서술하는 언어의 정확함이 '한국문학'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생생하게 욕망하는 인물들이 다음 시대엔 사라질지도 모르는 섬세한 입말로 역사의 용광로 속으로 뛰어드는 격렬한 이야기. 소설가 오정희의 말대로 "우리가 잃고 잊고 버렸던 언어들이 바로 목숨과 시대와 삶의 영토라는 것을 문학의 이름으로 충실히 보여주고 깨우쳐" 주는 소설. 우리 시대에 다시 만나기 어려운 거장의 작품이다.

  • 과자가게의 왕자님
    마렉 비에인칙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긴이) | 사계절 | 2018년 12월 "6.5미터 길이의 환상적인 아코디언북"

    달콤한 디저트를 음미하며 두 남녀가 나누는 행복에 관한 수다. 펼치면 6.5미터까지 늘어나는 아코디언 제본의 초대형 그림책이다. <잃어버린 영혼>으로 2018 볼로냐 라가치 픽션 상을 수상한 요안나 콘세이요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한 바닥씩 넘겨보는 것도 좋지만, 책을 세우거나 눕힌 다음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길게 늘어뜨려보자. 롱테이크 촬영을 하듯 몸과 시선을 이동시키며 감상하다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해진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과 한참 후에야 알게 될 행복,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강박, 행복과 불행의 사이의 균형 문제, 행복할 자격이나 행복의 대가, 그리고 행복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 행복에 대한 복잡한 상념을 늘어놓는 남자와 행복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여자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저마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보게 될 것이다.

    과자가게에서 뛰어다니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작은 동물들과 당장 품에 안기고 싶을 정도로 거대한 곰의 이미지, 먹음직스러운 설탕 과자, 도넛, 슈크림... 섬세한 연필 드로잉 사이로 스며드는 파스텔 빛깔 행복의 기운. 단지 사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고 케이크에 올려진 크림을 핥아먹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을 느끼는 여자처럼, 고단한 하루가 끝나갈 때쯤 과자가게에서 맛있는 걸 시켜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 머무를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 여우가 되어라
    에리카 베너 (지은이), 이영기 (옮긴이) | 책읽는수요일 | 2018년 12월 "<군주론>에 더불어 읽을 첫 번째 책"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오늘날 널리 읽히는 고전이지만, 수백 년 동안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고, 혹자는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릴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여전히 평가와 해석이 엇갈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텍스트다. 특히 일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가로저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인간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하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내지 못하니,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저술하고 몇 년이 지난 뒤에 “나는 오래 전부터 내가 믿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내가 말하는 것을 믿지 않아 왔다네. 가끔 진실을 말해야 할 때면, 쉽사리 발견되지 않도록 많은 거짓말 속에 진실을 숨긴다네.”라며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과연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 담아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고, 누구를 향했고, 어떻게 흘러왔을까. 마키아벨리 전문가 에리카 베너는 당대의 문헌과 마키아벨리가 남긴 흔적을 종합하여 16세기 피렌체와 마키아벨리의 삶을 복원한 후, 당대와 이후 사람들이 <'군주론>에서 읽고자 했던,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며 마키아벨리가 고민한 '더 나은 삶'의 원칙과 방법을 새롭게 정리한다. <'군주론>과 함께 읽을 책이 한 권 늘어났으나, 당분간은 이 책이 가장 앞선 자리에 놓일 듯하다.

12.212018
  •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엘러리 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피터 러브시, 캐서린 에어드, 로버트 바나드, 콜린 덱스터, 수전 무디,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론 굴라트, 토머스 하디, 메레디스 니콜슨, 질리언 린스코트, 에드워드 D. 호크, 피터 토드, 존 D. 맥도널드, 노벨 페이지, 조지프 커밍스, 펫 프랭크, 퍼거스 흄, 맥스 앨런 콜린스 (지은이), 오토 펜즐러 (엮은이), 이리나 (옮긴이) | 북스피어 | 2018년 12월 "미스터리 독자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뉴욕의 미스터리 전문 서점 'The Mysterious Bookshop' 주인, 에드거 상을 수상한 추리소설 전문 에디터, '미스터리의 살아있는 백과사전'… 여러 수식어로 불리는 오토 펜즐러가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단편들을 엄선해 엮었다. '크리스마스가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때라고 외치는 것은 참으로 쓸데없는 짓이다'라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미스터리 독자들을 위한 매력적인 선물 세트다.

    크리스마스 푸딩 속 동전의 비밀을 다룬 <먹어 봐야 맛을 알지>, 크리스마스 파티장에 준비된 수수께끼의 민스 파이 <황금, 유향 그리고 독약>, 사람들의 눈 앞에서 도난당한 <왕세자 인형 도난 사건> 등, 으스스한 사건부터 가슴 따뜻한 사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엘러리 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피터 러브시 등 20인의 거장들이 선사하는 크리스마스의 다양한 맛을 만끽해보시길.

  • 팝업으로 만나는 도구와 기계의 원리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은이), 이충호 (옮긴이) | 크래들 | 2019년 1월 "<도구와 기계의 원리> 팝업북으로 다시 태어나다"

    아마존이 뽑은 '평생 동안 읽는 어린이 책 100', 영국 더 타임즈 교육 분야 최우수 도서상 수상작이자 지난 30년 동안 사랑받아온 과학 분야의 고전 <도구와 기계의 원리>를 팝업북으로 만난다. 힘과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다양한 플랩과 팝업을 통해 익힐 수 있다. 과학 교양서의 거장 '데이비드 맥컬레이' 특유의 위트와 탁월한 묘사 능력, 꼼꼼한 주석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나무늘보와 코끼리땃쥐가 동물원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여러 가지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 집념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두 친구는, 세 개의 쐐기로 이루어진 지퍼부터 거의 모든 기계에 쓰이는 톱니바퀴, 자전거처럼 여러 가지 단순 기계를 합쳐 만든 복합 기계까지 마스터하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이 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쐐기, 축바퀴, 지레, 빗면, 나사, 도르래의 종류와 작동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은 물론, 재미있는 스토리까지 더해져 과학에 대한 호감을 한껏 키워준다.

  • 그해 가을
    유은실 (지은이), 권정생 (원작), 김재홍 (그림) | 창비 | 2018년 12월 "청년 권정생이 만난 한 아이 이야기"

    예배당 문간방에 사는 나는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며 글을 쓴다. 나의 문간방에는 지체 장애와 지적 장애를 가진 열여섯 살 창섭이가 가끔 찾아온다. 울 줄도 모르고, 아픈 줄도 모르고, 글쓰기를 항상 기다려주는 창섭이. 어느 비 내리는 가을날, 나는 창섭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함께 찬송가를 부르며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다.

    권정생의 산문 <그해 가을>이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제6회 권정생 창작기금을 수상한 동화작가 유은실이 어린 독자들이 알기 쉬운 문장으로 새롭게 글을 썼다. <동강의 아이들> 작가 김재홍은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로 스산한 가을 풍경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냈다. 담담한 이야기 속에 청년 권정생의 후회와 아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따스함이 가득하다.

  • 모르그 디오라마
    박민정, 윤이형, 우다영, 이주란, 정영수, 최은영, 최진영, 한유주 (지은이)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2019 현대문학상, 박민정!"

    2019년 제64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세실, 주희>로 2018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박민정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수상작 <모르그 디오라마>는 <세실, 주희>와 함께 읽히는 결의 이야기이다. 'yeslut'이라는 포르노 사이트에 게시된 '주희'의 당황한 얼굴. " '우리를 비참하게 하지만', '직면해야 할'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한 여성의 얼굴이 소설 속에 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115센티미터의 작은 '여자애'였던 그 때의 나. 망해가는 대형포털에서 벌어진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의 무단 유포 사건과 영상 속에서 '인도코끼리12, 인도코끼리-M14'등의 이름으로 명명된 어떤 신체들. 파리의 센강 가운데, 시테섬의 시체 공시소 모르그. '센강의 신원 미상의 소녀'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려 쇼케이스 앞엔 하루에 만 명 이상이 몰려들기도 했다. 하얀 플래시가 터지고, 그 이후. 박민정의 소설은 겹겹이 이야기를 쌓아 압도적인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기까지 차마 눈을 감을 수 없게 한다. 수상작가 박민정의 자선작과 함께 우다영, 윤이형, 이주란, 정영수, 최은영, 최진영, 한유주의 수상후보작이 함께 실렸다.

12.262018
  • 궤도의 과학 허세
    궤도 (지은이)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과학꾼'의 등장"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세대의 감각으로 과학을 전하며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 본격 과학 채널 ‘안될과학’, 누적 다운로드 300만 회에 이르는 과학 팟캐스트 ‘과장창(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 고품격 과학 생방송 ‘곽방TV’까지. 과학을 보고 듣고 알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출몰하여 과학의 재미와 과학자의 열정을 듬뿍 전하고는, 유유히 돌아서며 이내 새로운 과학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학꾼’이다.

    이 책은 그간의 경험과 반응과 고민을 담아 펴내는 ‘궤도’의 첫 책으로, 그간 횡행하던 유사과학을 사이언스피싱으로 지목하고는, 과학이라는 말에 위축되어 쉽게 속아넘어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전한다. 과학은 늘 틀려왔고, 어설프게라도 아는 것은 아예 관심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응원에 더해, 아무리 어설프게 알아도 집에서 실수로 폭탄을 만들 수는 없으니 괜찮다는 진심 어린 격려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의 장점은 분명하다. 읽고 나면 블랙홀, 인공지능, 암호화폐, 양자역학 등에 대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단, 질문이 나온다면 뒷일은 책임질 수 없다. 궤도의 다음 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하는 까닭이다.

  • 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은이),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긴이)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최신작"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루프마이제공화국. 꽃과 나무의 정령을 믿는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 나라에는 손에 꼭 맞춘 뜨개 장갑과 평생을 함께 하는 전통이 있다. '마리카'의 일생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특별한 장갑이 함께한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받은 첫 번째 장갑, 첫사랑에게 직접 떠서 선물한 장갑, 청혼을 수락하는 의미가 담긴 장갑, 소중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든 장갑... '털실로 쓴 편지'처럼 각각의 장갑에 마리카의 생이 오롯이 담긴다.

    <츠바키 문구점>의 작가 오가와 이토가 라트비아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신작 소설이다. 라트비아의 문화와 역사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슬픈 일이 닥치더라도 삶을 원망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을 그린다. 여행에 동행한 일러스트레이터 히라사와 마리코의 섬세한 삽화도 다정한 분위기를 더한다. 오가와 이토가 인터뷰를 통해 전한 말을 옮겨놓는다. "보석함처럼 반짝이는 라트비아라는 작은 나라에서 이야기 조각들을 모았다. 그곳에서 만난 숲, 바람, 햇빛, 호수, 사람들의 선량한 웃음이 독자 여러분께 전해지길 바란다."

  • 개념연결 만화 수학교과서 초등 3학년
    최수일, 신동호 (지은이), 전국수학교사모임 초등수학사전팀 (원작), 김석 (그림) | 비아에듀 | 2018년 12월 "교과서 진도에 맞춘 개념 중심의 해설"

    초등 수학사전 분야 부동의 1위 <개념연결 초등수학사전>을 바탕으로 만든 또 한 권의 수학 교과서. 최신 교육 과정을 반영하고 아이들에게 친근한 만화 형식을 도입했다. 초등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개념을 학년별 77개 질문으로 정리하고 명쾌하게 풀이했다. 교과서 순서에 맞춰서 학습할 수 있고 매 챕터마다 단원명이 표기되어 있어서, 학교 수업에서 배운 수학 개념을 복습하는 용도로 알맞다.

    10여 년 이상의 현장 경험 및 수학 교과서 개발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수학교육 전문가들의 알짜배기 노하우가 담긴 책이다. 초등 수학에서 가장 필수적인 개념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충 설명, 전문 용어 풀이 등의 심화 내용은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가능하다. 본문에서 배운 개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문제 풀이까지 해보면 수학에 대한 집중력과 자신감이 생긴다.

  • 나는 나다
    정민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이덕무의 진짜 시, 박제가의 시의 맛 "

    허균, 이용휴, 성대중, 이언진,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이 조선 문장가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한시 미학 산책>으로 한시의 숲을 거니는 즐거움을 대중에게 전한 정민 교수가 시, 산문, 편지, 평설 등 수십 편의 문헌을 고증해 문장가의 시론을 보여준다.

    "시를 쓰는 목적은 이백과 두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한 허균. "규격화된 좋은 시만 따라 하느라 저만의 진짜 시를 잃고 말았다. 시는 좋은데 내가 없다. 내가 없으니 좋아도 허깨비 시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이덕무. "나는 나고, 여기는 여기고, 지금은 지금이니, 나는 지금 여기를 사는 나의 목소리를 내야겠네."라고 말한 이옥 등의 시론을 통해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시의 향을 느낄 수 있다.

12.282018
  •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C. 누스바움, 솔 레브모어 (지은이), 안진이 (옮긴이) | 어크로스 | 2018년 12월 "나이듦의 기쁨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지적 여정"

    해가 바뀌면 자연스레 나이를 먹지만 나이 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변화하는 몸을 어떻게 대할지,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지나온 시간과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무엇일지, 놓지 못하고 꾸역꾸역 해내는 일들을 도대체 몇 살까지 해야 할지, 이렇게 나이 드는 게 도대체 나와 세상에 어떤 의미일지 등등. 일단 나이를 떠올려 생각을 시작하면 삶과 세계 전체가 나이를 축으로 놓이고 복잡한 상관관계가 예상하지 못한 그래프를 그린다.

    손꼽히는 당대의 지성 마사 누스바움과 솔 레브모어는 60대에 접어든 친구로서 나이듦의 대화를 나눈다. 우정, 회고, 은퇴, 사랑, 빈곤, 나눔 등 고대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나이듦의 주제를 각자의 문제의식과 학문적 경향을 바탕으로 풀어내는데, 나이듦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을 지혜롭게 맞이하는 태도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지만 필요하거나 희망하는 것들을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을 깊고 넓게 살핀다.

    무엇보다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사려 깊은 자세와 우아한 말투, 품격 있는 사유에서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 있으니, 올해가 지나기 전에, 그러니까 한 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 유머니즘
    김찬호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모멸감> 김찬호, 경솔함이 아닌 진솔한 유머"

    사회학자 김찬호는 전작 <모멸감>에서 남을 모멸해야만 자신의 존엄을 확인할 수 있는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을 제시해, 처참한 사회의 상태를 드러내고 신뢰의 공동체로 나아갈 방향을 전했다. 이번에는 유머와 휴머니즘을 주제로 거짓 웃음이 만연한 사회에서 웃음의 가능성과 가치를 어떻게 찾아 나눌 수 있을지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을 제시하며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경쾌한 통로를 찾는다.

    탐색의 과정은 자못 진지하다. 인간의 삶에서 웃음이 왜 필요했고 어떻게 기능했는지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유머의 네 가지 문법과 유머 감각의 여섯 기둥을 거쳐 웃음이 제대로 기능하며 소통될 수 있는 맥락과 감수성을 살피고 마침내 웃음이 창조하는 새로운 의미와 이로써 가능하게 되는 생각의 해방에 이른다. 쉽고 빠른 웃음의 경로만 찾으려다 서로를 다치게 만드는 '병적인 웃음'을 마주한 현실을 떠올리면, 수긍하며 끄덕이는 고갯짓에서 시작해 공감하며 짓는 엷은 미소를 거쳐 마침내 이르는 함박웃음이야말로 오늘날 찾아야 할 절실한 유머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유머는 경솔함이 아닌 진솔함에서 우러나온다."

  •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이규천 (지은이)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국민아빠' 이규천의 특별한 교육 이야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소연, 가수이자 법조인 이소은의 아빠 이규천. 그는 SBS [영재 발굴단] '아빠의 비밀' 편 주인공으로 출연해 두 딸을 독립적이고,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이끈 비법을 '방목'이란 키워드로 제시한 바 있다. 육아법이나 교육론 관련 책을 세심히 읽어본 적 없는 그가 어떻게 '국민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방목 철학'은 무엇인지 이 책에서 진솔하게 풀어낸다.

    좋은 부모가 되기 이전에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저자는 체면, 권위, 소심함, 어색함은 모두 거둬들이고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가기로 다짐했다.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를 늘 자문하며,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놀고 공부하고 생활하게 하는 '방목'을 자녀교육의 모토로 삼았다. 치열한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깨달음으로 두 딸들에게 '잊어버려(Forget about it)'란 말을 자주 들려주었다. 과거의 실수와 판단착오에 따른 고뇌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용서할 수 있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아이들에게 주체적,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왔다.

    이 책은 A부터 Z까지 특별한 교육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아이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 지지를 보내며 아빠의 길을 천천히 걸어온 저자의 지난 시간을 가감 없이 담아낸 책이다. 자연스럽게 부모의 역할, 소중한 인생의 가치들을 함께 배우게 되는 이 책은 양육 에세이에 국한되지 않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삶의 지혜서로 봐도 좋을 책이다.

  •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고티에 다비드, 마리 꼬드리 (지은이), 이경혜 (옮긴이) | 모래알(키다리) | 2018년 12월 "당신의 작은 새는 누구입니까?"

    작은 새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고, 겨울잠을 준비하던 곰은 새가 너무 보고 싶어 편지를 쓴다. 그리고 새를 만나기 위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곰의 여정은 험난하기도 하다. 숲을 지나고 사막을 건너고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전쟁터를 피해 몸을 숨겨야 할 때도 있다. 즐거움도 있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새 분장을 한 채 축제를 즐기기도 하고, 친절한 동물들의 호의에 지친 몸을 쉬어 가기도 한다. 길고 긴 곰의 여행에는, 매 순간 작은 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만남에 대한 기대가 가득 담긴 편지들이 함께 한다.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하는 글과 곰의 여정을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이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긴다. 한장 한장 그림책을 넘기며, 사랑하는 '나의 새'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