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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019
  • 나, 시몬 베유
    시몬 베유 (지은이), 이민경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19년 8월 "20세기의 목격자이자 21세기의 개척자"

    이 자서전의 저자 시몬 베유는 프랑스의 정치인이다. 1927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의 딸로 태어나 홀로코스트 속에서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고, 이후 법조계에서 일하다 보건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 임신중단 합법화를 이뤄냈다. 그래서 이 법은 ‘베유법’이라 불린다. 끝이 아니다. 유럽의회 최초의 선출직 의장을 맡아 유럽 통합의 길을 닦았다. 2017년 눈을 감은 그는 프랑스의 국립묘지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건조하게 사실만 나열했음에도 그가 걸어간 길이 결코 간단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이 여전히 이어져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성의 삶이 인간다움에 이르도록, 폭력의 20세기를 넘어 평화의 21세기를 열어가도록, 평생을 외치고 싸우며 마음의 한 걸음을 현실의 한 걸음으로 옮겨낸 그의 삶과 사유는, 여전히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위안과 용기와 지혜를 전한다. 부디 그 변화 속에서 그의 삶이 더 오래 깊이 기억되길 기대한다.

  • 나인폭스 갬빗
    이윤하 (지은이), 조호근 (옮긴이) | 허블 | 2019년 7월 "2019 휴고상 최종 후보! 이윤하의 구미호 설화 모티프 SF"

    우주 제국의 장교 체리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제국의 기계 3부작'의 첫 번째 책으로, 2017년 로커스상 최우수 장편 부문을 수상했다. 해당 시리즈는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휴고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적 이미지를 토대로 설계된 SF 건축물'이라는 작가의 표현대로, 작품의 모티프가 된 구미호 설화부터 등장인물들이 모두 동양인이고 쌀밥과 '양념한 양배추 절임(김치)'을 주식으로 한다는 점 등, 이윤하가 구축한 우주는 그간 주류를 이루던 서구 작품들과 다른 결을 지니며 새로운 자극을 선사한다.

    코넬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작가는 깊은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치밀하고 장대한 서사를 그려나간다. 사람들이 어떤 역법을 믿느냐에 따라서 세상의 물리 법칙이 변하고, 전쟁 병기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발상도 신선하고 흥미로운 포인트다. 휴고상 수상 작가 N. K. 제미신의 '숨 막힐 정도로 독창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추천사를 비롯해 앤 레키 등 대표 SF 작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수작이다.

  • 눈 속의 구조대
    장정일 (지은이) | 민음사 | 2019년 7월 "28년 만의 귀환, 오직 시로만, 장정일"

    "우리가 사는 현대 / 그 잘난 현대가 행방불명이다"라는 문장. 시인 장정일이 돌아왔다. 소설과 희곡과 산문을 발표해왔지만, 시집로는 28년 만의 귀환이다. 일찍이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시도했던 시인이 지금을 둘러본다. "2018년 3월 30일 맥도날드 경희대학교점이 폐점했다" 이 사태를 기해 시인이 쓴 <시일야방성대곡>, "온통 맥도날드인 세상에서 우리는 장소를 잃어버렸다"고 시는 여전히 시대를 선언한다.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조차 더이상 의미가 되지 않는 시대. 그로테스크함, 소수자성, 도시적 감수성, 의도된 위악. 우리가 장정일답다고 이야기해온 지점들이 더는 기이하지 않은 이 시대와 시가 어떻게 어우러질지, 시인은 오직 시로써 말한다.

    "시베리아에는 참이라는 동물이 산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산문시 <참>의 서늘함은 장정일다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시베리아의 겨울. 길눈이 어두워 실종한 사람. '눈 속의 구조대'는 당도하지 않고, 조난자는 생존을 위해 인간을 좋아하는, 빙글빙글 웃고 있는, 한때는 자신의 동료였던 참의 배를 가른다. "살려줘, 살려줘, 나는 너의 친구잖니?"라고 호소하는 참을 기억하는 수치심. 날카롭게 벼린 문장이 가리키는 악덕과 위악들. 구조대조차 보이지 않는, '햄버거'조차 잃고 만 이 시대를 오직 시로 말하기 위해 드디어 장정일이 왔다.

  • 아무튼, 문구
    김규림 (지은이) | 위고 | 2019년 7월 "<뉴욕규림일기> 김규림의 즐거운 문구 생활기"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의 유쾌한 협업으로 탄생한 '아무튼 시리즈'. 피트니스, 서재, 택시, 스릴러, 비건, 술, 문구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흥미로운 에세이를 소개하며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해오고 있다. 새롭게 스물두 번째로 출간된 책은 김규림 작가의 <아무튼, 문구>.

    뉴욕을 여행하면서 수집한 사소한 것들을 손그림과 손글씨로 기록한 <뉴욕규림일기>를 펴낸 바 있는 작가는 <아무튼, 문구>에서 자신의 특별한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한껏 풀어낸다. 용돈의 8할을 문방구에서 탕진하는 어린이였고, 이제는 월급의 반 이상을 문구 구입에 탕진하는 어른이 된 김규림은 자타 공인 문구 덕후다. 평생을 문구와 함께하고 싶은 문구인답게 문구에 얽힌 추억, 문구 쇼핑, 애장 문구의 특장점 등 풍성한 문구 이야기로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웠다. 작은 문구가 주는 큰 기쁨에 관한 기록을 읽다 보면 작가와 함께 손잡고 문구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고 싶어진다.

8.62019
  • 조선의 미식가들
    주영하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9년 7월 "음식은 글로 남겨야 제맛"

    맛깔나는 음식 이야기를 선보여 온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의 신작이다. 오래도록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정성껏 차린 일품요리 같다. 그가 새롭게 내놓는 '요리'의 재료는 음식을 글로 남긴 조선의 미식가 15인이다. 밥맛을 돋운다며 고추장을 예찬했던 영조대왕, 구하기 어려운 석이버섯 같은 식재료를 소개했던 '홍길동전'의 허균, 음식 예절을 비롯한 '잔소리'로 유명했던 조선 후기의 문신 이덕무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남긴 글은 음식의 맛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식재료 조달법과 조리법, 음식을 대하는 태도까지를 망라한다.

    책은 새삼 글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선대들이 기꺼이 생생한 기록을 남겼고, 주 교수가 그것들을 찾아내어 정리하는 수고를 했기에 우리는 해당 시대의 취향과 유행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종원, 김수미 등이 쓴 오늘날의 요리책들도 훌륭한 사료가 될 수 있겠다. 먼 훗날 누군가에 의해 맛있는 이야기로 재탄생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무더운 아침, 공복에 추천글을 쓰고 있자니 성균관 유생 이옥이 여름에 즐겨 먹었다는 '상추쌈'에 구미가 확 당긴다. 모쪼록 식후에 읽기를 권한다.

  • 와일드 로봇
    피터 브라운 (지은이), 엄혜숙 (옮긴이) | 거북이북스 | 2019년 7월 "어느 날, 로봇이 야생의 섬에 남겨진다면"

    거친 파도 탓에 로봇들을 싣고 가던 화물선이 침몰하고, 단 한 대의 로봇 '로즈'만이 살아남는다. 야생의 섬에 떨어진 로즈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섬의 곳곳을 살피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한편, 동물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고, 홀로 남겨진 아기 기러기와는 서로의 가족이 되어 함께 의지하고 성장해나간다. 서툴지만 늘 진심을 다하는 로즈의 모습에 낯선 존재를 반기지 않던 동물들도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동물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로즈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봇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야생'과 '로봇'이라는 소재를 엮어 이토록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피터 브라운의 상상력과 다정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앞으로도 이어질 로즈의 이야기가 더없이 기대된다.

  •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은이), 박경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19년 7월 "21세기 베케트,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생의 시작과 끝"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아 '요한네스'라 불리게 될 아기. 그가 노르웨이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생을 시작하고 또 스러져가는 순간들이 마침표 없이 띄어쓰기와 쉼표로 이어진다.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분리되어 혼자가 되고, 삶의 높은 파고를 넘기도 하고, 인연 속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다시 처음 있었던 곳으로 '무에서 무를' 향해 흘러간다.

    작가 욘 포세는 연극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언어 사이의 침묵을 파고드는 특유의 형식으로 '21세기의 사뮈엘 베케트'라고 불려왔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는 그의 작품에는 사람보다 오래 그 자리를 지켜온 고향 노르웨이의 피오르, 바다, 비와 바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생의 아침과 저녁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소설은 묻는다. 우리 인생이 결국 '무에서 무'일지라도, 그 속에는 푸른 하늘이나 이파리를 틔워내는 나무들처럼 삶에 의미와 색을 부여해 '무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있지 않겠냐고. 쉼표와 쉼표 사이 여백이 깊은 작품이다.

  • 담을 넘은 아이
    김정민 (지은이),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흉년이 깃든 조선 시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간 푸실이는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글자를 읽을 수 없었던 푸실이는 효진 아가씨와의 만남을 통해 책의 제목이 '여군자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읽기 위해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대감댁 젖어미로 팔려가듯 떠나고, 어린 동생의 몸 상태는 나빠져만 간다. 푸실이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대감댁으로 향하는데….

    대감댁에 젖어미로 팔려간 어머니, 이름조차 없던 여동생, ‘여군자’라는 단어가 이상하다는 효진의 말, 마음껏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수를 놓아야 했던 효진. 글을 배우고,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 푸실이는 이 모든 것들에 의문을 갖게 되고, 마침내 '여군자전'이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문이 막히면 담을 넘으면 되지 않습니까.”

    대감댁 담뿐만 아니라 차별이라는 거대한 담을 또 하나 넘어 보인 푸실이의 모습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주변의 담들을 함께 허물고,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전하는 작품이다. 담의 그늘에 가려 소외받던 존재들을 새롭게 조명해 "등장인물의 개성이 뚜렷하다."라는 평과 함께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8.92019
  •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지은이) | 난다 | 2019년 8월 "故황현산 1주기, 그가 남긴 문장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통해 좋은 문장은 어떤 것인지, 좋은 스승은 어떤 모습인지 몸소 보여주었던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황현산. 2018년 8월 8일 세상을 떠난 그의 1주기를 맞아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잘 표현된 불행>이 출간되었다.

    생전 그는 트위터 공간에서 나이와 직위에 상관없이 수평적 관계를 맺으며 자유로이 소통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2014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그가 기록해왔던 트위터의 글을 그대로 모은 것이다. 평소에 즐겨 하던 농담들, 은유와 이야기들, 글쓰기와 번역에 대한 생각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사유들, 고양이와 함께한 일상의 단면들이 8,500개 이상의 글을 이룬다. 그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하면서도, 누군가의 반론을 경청하고,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기존 생각을 주저 없이 수정했다. 때로는 예리한 언어로 표현하기도 하였으나 유머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유연한 모습도 보였다.

    그의 깊이 있는 인생관과 빛나는 통찰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에 마음과 눈이 오래 머무른다. 비록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이 좋은 문장들은 오래도록 빛을 발하며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가 닿을 것이다.

  • 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은이) | 문학동네 | 2019년 8월 "2019 이상문학상 대상, 윤이형 소설집"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윤이형의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2015년 겨울부터 2019년 초여름까지 발표된 열한 편의 소설을 모았다. 환상적인 세계를 상상해내는 윤이형, 혹은 우리 사는 세상의 사적인 자리의 그늘을 들여다보는 윤이형. 어떤 윤이형을 기대하든 만족스러울 만한 단단한 세계가 열린다.

    시위에 참여하고 싶은 자신들의 마음을 가족에게 설명하기 위해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작은마음'이라는 책을 엮기로 한 여성들.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은 이 과정에서 미묘하고도 결정적인,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작은마음동호회>), 퀴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승혜와 미오>), 지구의 많은 남자들을 납치해 간 외계의 어느 세계. 인간 남성에 대한 외계인의 관심은 그들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현실과 환상 사이, 작은 마음들은 갈등하고 그 마음들의 세세한 결이 내는 음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소설은 노력한다. "말을 할 때마다 상처가 생기지만 그래도 말을 건넨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갈등이 이야기되는 곳이어야 비로소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마흔을 위한 경제학
    우종국 (지은이) | 북카라반 | 2019년 7월 "경제적 주체로 거듭나려는 이들에게"

    홍 차장은 아이가 점점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전원주택 카페에 가입하고 타운하우스 소개 유튜브를 기웃거린다. 그렇게 흔들리던 마음은 그래도 아파트가 편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외제차를 탐닉하던 수많은 김 과장들은 결국 눈에 띄지 않는 국산 중형차를 구입한다. 정 팀장은 주식이 10% 하락하면 손절하라고 책에서 배웠지만 결국 팔지 못하고 언젠간 다시 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런 상황 자체가 싫은 우 기자는 아예 주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갈팡질팡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막막한 중년, '마흔'의 이야기다.

    마흔은 꿈꿔왔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절감하기 쉬운 나이다. 그리고 그 괴리는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부터 생긴다. 문제는 그것이 경제 이론만으로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어놓는 '현실 경제학'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런데 책 속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비단 내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불혹'을 위한 경제학이라 부르고 싶다. 경제적 문제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취향과 기분을 존중하며 사는 것. 그것은 모두가 귀기울여야 할, '우리'의 이야기다.

  • 삼체 : 3부 사신의 영생
    류츠신 (지은이), 허유영 (옮긴이) | 단숨 | 2019년 8월 "2015 휴고상 수상 <삼체> 드디어 완결!"

    2015년 휴고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류츠신의 <삼체> 3부작이 드디어 완간됐다. 이야기는 나노 소재 연구자 왕먀오의 집으로 군인과 경찰이 들이닥치며 시작된다. 얼떨결에 군 본부 비밀 작전센터로 불려온 그는 저명한 물리학자 양둥이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그뿐 아니라 유명 물리학자들이 연이어 자살하고 있다는 것도. 왕먀오는 ‘과학의 경계’라는 학술 단체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의심되니 회원으로 잠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단칼에 거절한 그의 눈앞에 수수께끼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하고, 불안감에 휩싸인 왕먀오는 결국 ‘과학의 경계’ 회원인 선위페이에게 접촉한다. 그리고 그녀가 하고 있던 의심스러운 가상 현실 게임 ‘삼체(Three Body)’에 접속하게 되는데…

    소설은 전국 시대부터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은 물론, 외계 문명의 다양한 생태와 정통 과학기술 아이디어까지 드넓은 세계들을 하나의 우주로 직조해 종횡무진 누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작품 스케일이 워낙 커서 백악관의 일상사가 사소하게 느껴졌다"고 언급했을만큼 장대한 세계관이 매력적이고, 그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흡인력이 돋보인다. 인문학적 통찰과 치밀한 서술이 인상적인 수작이다.

8.132019
  • 일본 제국 패망사
    존 톨랜드 (지은이), 박병화, 이두영 (옮긴이),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와이 오아후 섬을 여행하던 때가 기억난다. 저 멀리 호놀룰루 국제공항 너머 진주만 부근에서 대낮부터 폭죽이 터졌다. 무슨 행사였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진주만 공습으로부터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머무르던 알라모아나와 와이키키 해변은 서쪽을 향하고 있어 이후 '일몰'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 <The Rising Sun>을 보고 떠오른 역설적인 장면이다. 아니 어쩌면 태평양전쟁 자체가 모순과 역설 덩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 혼란스럽던 시절을 최대한 혼란스럽지 않게 읽어 내기 위해 <아돌프 히틀러>로 유명한 전쟁사학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존 톨런드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15개월 동안 극동지역을 돌며 자료를 조사하고 500여 명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하여 1936년부터 1945년까지의 태평양전쟁 통사를 완성해 냈다. 철저한 고증과 객관적 서술이 뒷받침되었기에 퓰리처상(1972년)의 영광도 가능했다. 국내에는 이제서야 소개되지만, 그 무모했던 전쟁의 여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는 마냥 반가울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역사'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그는 힘주어 말한다. 역사에 단순한 교훈은 없으며,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문만 1,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결코 가벼이 읽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계절이다.

  • 테베의 태양
    돌로레스 레돈도 (지은이), 엄지영 (옮긴이) | 열린책들 | 2019년 8월 "우아한 스페인 미스터리"

    유명 작가 마누엘의 일상을 무너뜨린 경찰의 방문. 15년을 함께한 배우자 알바로가 갈리시아 지방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다. 알바로와 아무 연고가 없는 곳이라 의아해하며 사고 장소로 향한 마누엘은 더욱 이상한 일들을 맞닥뜨린다. 두 개의 휴대전화, 없어진 결혼 반지, 처음 보는 배우자의 가족들, 그리고 그들이 갈리시아 지방의 명망 높은 후작 집안이며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졌다는 사실도. 배우자가 자신을 철저히 속여왔다는 생각에 마누엘은 깊은 상처를 입고 분노에 휩싸인다. 아름답지만 뭔가 꺼림칙한 마을을 떠나려 할 때, 한 경찰이 그를 찾아와 붙잡는다. 알바로가 살해당했다는 확증이 있는데도 상부에서 귀족의 일이라는 이유로 이를 덮으려 한다는 것. 절망적이고 적대적으로만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마누엘은 진상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고, 이를 틈틈이 소설로 기록한다.

    스페인 대표 추리 작가 돌로레스 레돈도의 장편소설이다. 2016년 스페인어권 최고 권위 문학상인 플라네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조는 물론, 목가적인 전원 풍경과 유럽 마을 특유의 분위기, 상황에 꼭 맞는 음식과 술의 묘사가 뛰어나다. 현대에 존재하면서도 17세기에 갇혀버린 듯한 귀족의 화려한 장원과 무소불위의 권력,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폐쇄성이 독특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후, 굳건했던 신뢰의 균열을 비집고 마구 솟아나는 망상과 계속 싸워야 하는 마누엘의 심리 묘사도 압권이다. 720페이지의 분량이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 작가라서
    파리 리뷰 (엮은이), 김율희 (옮긴이) | 다른 | 2019년 8월 "<파리 리뷰> 60년 인터뷰 총결산"

    <파리 리뷰>는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 평가받는데, 그 가운데서도 저자 인터뷰는 참여한 작가만큼이나 명성이 높고 그들의 작품 못지않게 흥미롭게 읽혀왔다. 이 책은 <파리 리뷰> 1호부터 224호까지 60여 년에 걸친 작가 인터뷰를 주제와 질문에 따라 새롭게 구성했는데, 어떻게 또는 어쩌다 작가가 되었는지, 어떤 생각 혹은 어떤 상태로 글을 쓰는지, 작품으로 돈을 벌거나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지 등 34개의 질문에 303명의 작가가 답한 919개의 생각이 담겨 있다.

    차례대로 읽을 필요가 없는 터라 첫 질문과 마지막 질문부터 살펴보았는데, 첫 질문은 “책을 즐겨 읽으셨습니까?”이고 마지막 질문은 “미래에도 당신의 작품이 읽힐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다. 쓰기의 출발인 읽기의 경험에서 시작해 쓰기의 완성인 작품의 미래를 물으며 마치는 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데, 역시 작가들은 이 리듬을 깨고 자기만의 호흡으로 흥미로운 답변을 붙인다. 첫 질문의 첫 답변은 이렇다. “독서광은 아니었고, 사실 살면서 책을 끝까지 읽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독서가 아니어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마지막 질문의 마지막 답변은 이렇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한, 어떤 종류든 미래는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이 질문에 한마디로 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반짝이는 답변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글뿐 아니라 삶과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과 안목에 놀라게 되는데, 답변을 읽으며 상상한 작가의 이름을 문단 끝에서 발견할 때면 반가움에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이렇듯 읽고 쓰는 사이에 사랑하게 된 이야기, 그러니까 글로 만들고 나눌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어떤 조각들을, 앞서 나눈 첫 질문의 첫 대답과 마지막 질문의 마지막 대답 사이에서 찾아내고는, 이내 만지작거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는 누군가를 꼭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책 안에서.

  • 어디에 있을까 지평선
    카롤리나 셀라스 (지은이), 오진영 (옮긴이) | 문학동네 | 2019년 7월 "2019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작"

    '여기, 보인다.
    곧게 가로지르는 그것.'

    지평선, 잊고 지내지만, 어디에나 있다. 빌딩 숲 사이에, 복잡한 인파 속에, 고요한 내 방 안에. 내 눈이 맑은 날에는 더 가까이. 어떤 날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별들이 떠다니는 우주처럼 무한히. 땅에 누워버리면 이제 보이지 않는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까? 어디에나 있고, 내 안에도 있고, 언제까지나 이어질 그것, 지평선. 나에게 '지평선'은 무엇일까?

    무수히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숨어 있는 그림을 대담한 구도와 사랑스러운 색채로 그려낸 이 그림책은 포르투갈 작가 카롤리나 셀라스의 첫 그림책이다. 2019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글로벌 일러스트레이션 어워드에서 어너러리 멘션 상을 받았다.

8.202019
  • 두 얼굴의 법원
    권석천 (지은이) | 창비 | 2019년 8월 "무너진 사법부, 강제징용 재판과 판사 뒷조사"

    대한민국 사법부가 무너졌다. 법이 언제부터 약자의 편이었냐고,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지고 최근에서야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사법농단’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사법부가 조직의 이익을 위해 판결에 개입하는 등 사법권력을 남용했다는 점에서, 게다가 일련의 과정이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서, 그중에서도 사법부의 수장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개별 판결에 대한 비평이나 개별 판사의 양심에 대한 비판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하겠다.

    그렇다고 법원을 무너진 채로 방치하고 법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법농단이 더욱 안타까운 까닭은 이 사태의 이유과 과정과 방향이 그간 한국사회에서 숱하게 벌어진 일들과 궤를 같이 한다는 데 있다. 돌아보면 그런 사회에서 법과 법원만이 온전히 기능할 거라는 기대가 어불성설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에서 벗어나 자유, 평등, 정의가 바로 서는 사법부 그리고 그 사법부의 기반이 되는 한국사회를 이루는 길은 하나뿐이다. 저간의 사태를 정확히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양심을 지키려 저항하고 좌절한 이들과 마주하는 일. 책을 가득 메운 사법부의 어두운 얼굴 못지않게 이 얼굴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제 사법부가 세상으로 나왔으니, 엄중하지만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면 어떨까 싶다. 시민의 몫이자 의무로서 말이다.

  • 아홉 살 독서 수업
    한미화 (지은이) | 어크로스 | 2019년 7월 "읽기를 시작한 7~9세, 아이가 즐거운 독서"

    스스로 읽기를 시작한 7~9세. 아이를 품에 안고 그림책을 읽어주던 부모들은 이제 아이가 혼자 동화책을 읽기를 바란다. 권장 도서 목록을 찾아 열심히 권해보지만 아이는 만화책만 보거나 부모에게 읽어달라기 일쑤다. '책이 싫다는 우리 아이, 무슨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할까요?' 25년 차 어린이 책 평론가이자 출판 칼럼니스트 한미화가 독서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한 질문에 답하며 아이들의 독서를 즐거운 경험으로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다.

    글자를 읽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읽는 뇌'는 지속적인 훈련을 거쳐야 성장한다. 이 읽기 능력이 자라기 시작하는 초등 저학년 시기에 읽기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평생 가벼운 독서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강요에 의한 자발성 없는 독서는 아이를 책과 더 멀어지게 하고 부모와 아이 사이의 골을 만들 뿐이다. 아이들에게 독서는 즐거운 경험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책을 읽어주고 함께 공감하고 대화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즐겁고 꾸준한 읽기를 거치며 아이는 고급한 독서가로 성장할 것이다.

  • 수영장의 바닥
    앤디 앤드루스 (지은이), 김은경 (옮긴이) | 홍익출판사 | 2019년 8월 "더욱 힘찬 도약이 시작되는 그곳"

    세계적 베스트셀러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로 유명한 앤디 앤드루스의 신작이다. 그는 어린 시절, 수영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와 친구들은 잠수 상태에서 누가 더 높이 튀어오르는지를 겨루는 게임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친구가 깊숙이 잠수하더니 밑바닥에 완전히 착지했다. 그리고 힘차게 튀어올라 1등을 차지했다. 게임의 룰은 단번에 바뀌었다. 늘 하던 대로만 해 온 친구들은 놀랐다. 왜 바닥을 짚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바닥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고, 바닥은 위험한 곳이라고 배웠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바닥을 쳤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주식이나 인생에 반등을 기대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이 책에서 앤디 앤드루스는 바닥을 쳤다는 말을 단순한 반등의 차원이 아닌, 이전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회복력을 회복탄력성이라 강조하여 전달하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그는 바닥을 박차고 올라온다는 것이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스물한 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도약을 응원한다. 어색하다고 느꼈던 '수영장의 바닥'이 멋진 제목으로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 신기한 방귀 가루
    요 네스뵈 (지은이), 페르 뒤브비그 (그림), 장미란 (옮긴이) | 사계절 | 2019년 7월 '해리 홀레 시리즈' 요 네스뵈, 첫 판타지 동화

    북유럽 추리 작가 요 네스뵈가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로 찾아왔다. 말만 들어도 웃음이 빵빵 터지는 '방귀' 이야기다. 해리 홀레 시리즈 등 이전 저작들에서 보여주었던 흥미진진한 플롯과 속도감 있는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곳곳에 숨겨둔 단서들을 살피며 읽는 재미가 가득하다.

    이야기는 프록토르 박사가 우주선 없이도 우주 비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방귀 가루 제조에 성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조수인 될겐 초등학교 학생 불레와 리세는 이 초강력 방귀 가루를 '미국 항공 우주국 나사'에 판매하려 하지만, 방귀 가루를 빼앗으려는 나쁜 어른들의 음모에 빠져 죽음의 지하 감옥에 갇혀버린다.

    세 명의 주인공은 언뜻 이상한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괴짜 박사, 왜소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만 하는 아이, 존재감 없고 조용한 모범생으로만 보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며 우정을 나누고, 방귀 가루를 탈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이 엉성한 조합을 자연스레 응원하게 된다. 과연 이들이 무사히 방귀 가루를 되찾을 수 있을지, 요 네스뵈가 선사하는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로 함께 떠나보자.

8.232019
  •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지은이), 정연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19년 8월 "영국 아마존.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 1위"

    9년째 그래픽디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디자인에 아무 관심이 없고 매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괴짜' 엘리너 올리펀트. 수년째 반복되는 엘리너의 일과는 대략 이렇다. 평일엔 출근해 혼자 점심을 때우고 신문에 실린 퍼즐을 열심히 푼다. 퇴근 후엔 '생명을 유지시키는 필수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동물의 사료 같은'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TV를 보거나 책을 읽다 잠든다. 수요일마다 엄마와 통화하고, 금요일엔 피자와 와인, 보드카 큰 사이즈를 사서 귀가한 후 피자와 와인은 바로 다 먹어치우고 보드카는 주말동안 마시며 취한 것도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지낸다. 세상사에 서툴러 식물 폴리를 제외하곤 친구가 없지만 '나는 혼자로 충분한 독립체'라 생각하며 '괜찮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너의 견고한 일상을 허물고 더욱 괜찮은 삶의 가능성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스코틀랜드 작가 게일 허니먼이 마흔에 발표한 첫 소설로, 출간 이후 입소문을 타고 영국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독자 투표로 선정한 '브리티시 북 어워드 올해의 책'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미국에서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영화화가 확정되기도 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이토록 사랑하게 된 이유는 엘리너만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져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자신을 '우주에서 가장 혼자인 생명체'로 여기며 감히 누군가 함께 있어주길 바랄 자격도 없다고 믿었던 엘리너가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예상치 못한 친절과 우정의 힘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외로움과 희망, 그리고 인간애에 대한 사랑스러운 이야기.

  •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메리 파이퍼 (지은이), 서유라 (옮긴이) | 티라미수 더북 | 2019년 8월 "우린 언제든 좋은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지"

    “신문 부고란에서 70세 언저리의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읽으면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흠, 살 만큼 살았네.’ 하지만 잠시 후에는 어김없이 충격적인 깨달음이 찾아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 사람 나랑 거의 동갑이잖아? 난 아직 죽을 준비가 안 됐는데!’” 나이를 깨닫는 순간은 각기 다르지만, 대체로 이런 상황 속에서 감각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런 장면일 수도 있겠다. 어릴 적 부모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감사와 실망의 감정을 오갈 때, 문득 그때 부모의 나이가 기껏해야 지금 내 나이 정도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말이다. 이처럼 세월은 많은 걸 이해하게 해주고 내일을 새롭게 맞이할 가능성을 전한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이야기는 바꿀 수 있다.”

    40여 년 동안 심리치료사로 일했고 이제 70대에 접어든 작가 메리 파이퍼는, 인생의 나이 듦을 세월의 강을 따라 노를 젓는 여행자에 비유한다. 강이 흘러 흘러 바다로 향하듯 삶이 노년으로 흐르는 것이야 거스를 수 없겠지만, 오늘을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 삶의 방향을 이어가려는 나름의 노력은 가능하다는 말이겠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다. 선택은 우리가 고인 물로 남을지, 온전히 충족된 사람으로 성장할지를 결정하는 핵심 열쇠다." 당신이 노를 어떻게 잡고 젓든, 오늘의 삶이 그저 흐르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면, “우린 언제든 좋은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

  • 구체적 사랑
    이서희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우리의 사랑은 눈부시게 구체적이어야 한다""

    첫 산문 <관능적인 삶>으로 강렬하게 등장한 에세이스트 이서희. 이후 <유혹의 학교> <이혼일기> 두 권의 산문을 펴내며 매혹적인 글쓰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관능과 유혹, 사랑과 이별에 관한 전작들과 달리, 이번 책에서는 어두웠던 성장기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존재와 관계,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의 글을 펼쳐 보인다.

    아버지는 어머니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주저 없이 폭력을 일삼았고, 어머니는 젊고 자유로운 자신의 삶을 어쩌지 못해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했다. 대학 시절까지도 이어진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듯 유학을 떠났고, 사랑하여 결혼했고, 때가 되어 이별했다. 작가는 암울한 유년기와 성장기, 온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기꺼이 이별해온 삶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두 딸과 함께 성장해온 과정, 여러 관계 속에서 부딪치며 깨달은 사랑의 의미와 구체적인 사랑의 힘, 성찰과 치유의 시간까지 흡입력 있는 문장으로 이 한 권에 담았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는 아프지만 마지막 장까지 마음으로 함께하고 결국 공감하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빛과 어둠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설민석의 삼국지 2
    설민석 (지은이) | 세계사 | 2019년 8월 "재미에 재미를 더한 오늘의 삼국지"

    우리에게 삼국지는 저마다의 이유로 각별하다. 누군가는 도원결의와 적벽대전 같은 명장면으로, 다른 누군가는 공명과 사마의의 지략 대결로 혹은 여포, 조자룡 같은 장수들로, 또 누군가는 밤을 지새우게 했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삼국지를 기억할 것이다. 심지어는 나처럼 '열 권'으로 기억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터다. 이문열, 황석영이 그랬고 고우영, 이현세의 만화도 그랬더랬다. 그렇다. '오늘의 삼국지'라 부를 만한 설민석의 삼국지가 이렇게 두 권으로 완간되었다는 사실에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삼국지의 진정한 묘미는 읽을수록 새롭다는 데 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전해진다. 그러나 삼국지를 여러 번 읽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런 삼국지를 다시 읽게 하는 것. 설민석표 삼국지의 효용은 바로 거기에 있다. 설민석은 그 친절한 특유의 화법으로 나관중의 원전과 실제 역사를 버무리며 이해의 폭을 넓힌다. 단 두 권 뿐이라 아쉽다 했지만, 총 천 페이지에 육박하니 만만히 볼 분량은 아니다. 삼국지의 재미에 설민석의 재미가 더해져 읽는 동안은 결코 느낄 수 없겠지만 말이다.

8.272019
  •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로마 아그라왈 (지은이), 윤신영, 우아영 (옮긴이) | 어크로스 | 2019년 8월 "왜 건물을 짓고, 올린다고 하는지 알게 되는 책"

    이 책의 저자는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구조공학자다. 원리만 놓고 보면 거대하지 않은 건축물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인간보다 훨씬 커서 전체와 부분을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건축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력, 바람, 지진 같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강철과 콘크리트 같은 재료가 필요하고, 그 높이에서 작업을 진행할 크레인과 그곳까지 오르내릴 엘리베이터도 필수다. 그뿐인가. 그만한 건물이 버티려면 지하부터 땅을 다져야 하고 그곳에는 주차장도 들어서야 하니, 결국 거대 건축물의 설계는 인류의 생활과 상상의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다.

    로마 아그라왈은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 더 샤드의 설계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 활약하는 구조공학자 가운데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 덕분에 이 책에 등장하는 온갖 사례에는 그의 손길이 닿은 생생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건축물의 구조와 온갖 요소를 마치 엑스레이 보듯 그려내며 각각의 요소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전하는 열네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기반인 '층'에서 시작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지어 올릴 것이라는 '꿈'에 이르는 과정이 정말 손에 잡히는 듯하다. 꿈을 꾼다면 그것을 만들 수 있다는 공학자의 포부가 놀랍고, 그 말이 허언이 아닌 구체적인 건축물로 구현되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모처럼 인류의 일원이라는 게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 돈의 감각
    이명로(상승미소) (지은이)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8월 "한끝이 있는 특별한 경제 강의"

    충분히 모아 놓은 종잣돈도, 흔들리지 않을 강한 멘탈도 물론 중요하지만, 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타이밍일 것이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 경험 때문일까. 우리는 심사숙고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즉흥적이다. 돌아오는 것은 조금 더 고민했더라면 하는 후회다. 그렇다면 귀신같은 타이밍을 잡아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의 빠른 판단 역시 즉흥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치밀한 공부와 계획 하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린 것이니, 투자를 감각적으로 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돈의 감각은 그래서 중요하다. 재야의 논객으로 유명한 저자는 다행스럽게도, 돈의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기르는 것이라 말한다. 재즈의 즉흥 연주도 내공이 쌓여야 가능하듯 말이다. 특히 경제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느낄 수록 경제를 공부해야 한다. 물론 환율, 금리, 부동산, 미중 전쟁 등 그 핵심 주제들이 진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책은 경제를 잘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아차 싶게 만드는 '한끝'이 있다. 대체 "미국이 빚을 많이 질수록 한국 경제가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를 미소 짓게 할 아주 특별한 강의가 시작된다.

  •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통로 건너의 세계"

    "관념에서 감각으로." "여자에서 사람으로." "할 자유에서 하지 않을 자유로." 이 책의 목차는 '00에서 00으로'의 형식으로 통일되어 있다. 형식이 내용을 말한다. 탈코르셋은 우리를 기존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는 자가 되게 한다는, 강렬한 선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에 대한 관찰이며 분석이다. 전작에선 머리에서 입으로 여성의 언어를 꺼내주었던 이민경이 이번엔 탈코르셋으로 세계의 전환을 겪은 여성들을 한 명 한 명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교하게 분석하며 논의를 진척시켜 나간다.

    탈코르셋은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는 이슈다. 책에도 나와 있듯 탈코르셋의 범위에 대한 뚜렷한 합의가 있지 않고, 탈코르셋에 대한 강요가 여성의 신체에 대한 또 다른 사회적 억압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저자 또한 처음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탈코르셋을 바라봤고, 답답함을 해결하는 것을 숙제로 탈코르셋 운동의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덕에 책은 여러 관점에서 의문과 대답을 다각도로 짚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탈코르셋이라는 통로 건너의 세계가 궁금한 자들을 위한 입체적인 설명서다.

  •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
    제인 마운트 (지은이), 진영인 (옮긴이) | 아트북스 | 2019년 8월 "애서가들이 사랑한 책과 서점들"

    애서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제인 마운트. 그녀는 자신만의 책더미를 그리다가 애서가들 혹은, 애서가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서가나 책더미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2008년 이래로 그녀가 그린 이상적인 서가는 1,000점, 책은 1만 5,000권 정도 된다.

    책더미 그림의 표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에는 제인 마운트가 그린 책과 서가, 서점 등에 관한 다채로운 그림들이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다. 작가, 교사, 요리사, 건축가, 음악가 등 직업도 제각각인 책장 주인들이 선택한 인생의 책들은 어린이책부터 수필, 만화, 단편집, 여행서, 역사서, 요리책까지 실로 다양하다. 누군가의 책장과 책 리스트를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엿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흥미롭다. 더군다나 책의 형태, 표지 디자이너들의 창작 과정, 작가와 반려동물, 작가의 방, 서점을 지키는 고양이들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읽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애서가라면 온갖 책들의 아름다운 표지와 책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에 깊이 매료될 것이다.

8.302019
  •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은이) | 문학동네 | 2019년 8월 "<경애의 마음> 김금희 소설집"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은 그 사람만의 독특함을 발견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 '독특함'이 드러나는 순간의 공기를 김금희의 소설은 감각적으로 묘사해낸다. 손님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때는 한 문장 뒤에 오 초간 뜸을 들이며 크리스털 잔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하라는 매뉴얼을 카페 직원들에게 교육시키는 사장.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건 훨씬 손쉬운 일이나, 그의 '오랜 불행 같은 것'을 알아챈 후 그가 어떤 상황에 느꼈을 모욕감을 함께 느끼는 건 어렵고 귀한 일이다. 채식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인 직원 '은수'에 대한 관심을 카페 앞에서 펼쳐지는 그린피스의 캠페인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화답하는 사장. 그의 마음결을 짐작하는 '나'의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김금희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이상한 매뉴얼을 지닌, 부끄럽고 상처입은 어떤 이들과 (때론 자기 자신과) 비로소 같은 줄에 서게 된다.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中)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라는 힘 있는 문장으로 기억될 소설 <경애의 마음>의 작가 김금희가 꼭꼭 눌러 쓴 아홉 편의 아름다운 소설이 실린 소설집으로 독자를 찾았다. 소설은 수치심을, 모욕감을, 죄책감을 느꼈을 사람들의 그 순간을 애정어린 눈으로 들여다본다. "지금 쥘 수 있는 많은 것들 중에, 소설을 선택해준 당신에게 내 미약한 응원과 용기를 보낸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대로, 소설과 대면하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용기를 낸 독자에게 이 소설이 전해지길, 그렇게 "소설을 말할 때는 거짓말처럼 어떤 세계가 환기되면서 실제야 어떻든 아우라와 아름다움을 갖게" (<쇼퍼, 미스터리, 픽션> 中) 되는 어떤 이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며 이 소설집을 권한다.

  • 밤의 양들 1
    이정명 (지은이) | 은행나무 | 2019년 8월 "<뿌리 깊은 나무> 이정명의 지적 미스터리"

    <바람의 화원>, <뿌리 깊은 나무> 등의 소설을 통해 역사의 틈을 상상하는 이야기를 읽는 맛을 독자에게 선사한 소설가 이정명이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수의 십자가형이 집행될 유월절 일주일 전, 충격적인 네 번의 연쇄살인이 발생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성전 수비대 대장의 의뢰를 받은 밀정 마티아스가 나선다. 한편 로마인 총독 빌라도 역시 이 사건의 조사를 로마인 현자 테오필로스에게 의뢰하고, 마티아스와 테오필로스는 사건 해결을 위해 우리가 익히 아는 '갈릴리 출신 선지자'의 뒤를 쫓는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로 기록된, 익히 알려진 성자의 마지막 순간에 관한 이야기. 소설은 상상력의 힘으로 사실의 틈을 파고든다. 잔혹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는 동안 역사와 종교와 철학을 종횡하며 이야기는 유월절을 앞둔 혼란스러운 예루살렘을 비춘다. 죄와 용서와 구원, 인간의 운명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 크리에이티브는 단련된다
    이채훈 (지은이) | 더퀘스트 | 2019년 8월 "창의력 캠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창의력이 천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책을 통해 읽어 왔다. 그로 인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지만 문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 업계에서 인정받는 광고 디렉터인 저자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가 말하는 20년 차 내공의 비결은 다름 아닌 '단련'이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 낸 화려한 결과가 아닌, 단련의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 소소한 습관들은 우리도 당장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다. 꾸준함의 힘이 그렇게 무섭다는 거다.

    단련의 성패는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무심코 던진 아재개그도, 사소한 생활의 불평불만도, 서점에 진열된 책들의 제목도 그에게는 모두 영감의 원천이 된다. 그냥 지나칠 법한 일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 잠시 영문법을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책의 제목을 능동태로 바꿔 보자. "나는 크리에이티브를 단련한다." 그렇다, 결국 행위의 주체는 나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의 태도 역시 바꿔 보면 어떨까. 단련은 평범한 일상을 능동적으로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 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은이) | 눌와 | 2019년 8월 "이름을 알면 나무와 가까워집니다, 정말로요!"

    떡갈나무와 자작나무는 꽤 익숙한 이름이지만, 막상 이 나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떠올리기 쉽지 않다.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잎을 깔 수 있는 나무’라 떡갈나무라 불리고, 자작나무는 불쏘시개로 쓰여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라 불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물론 당장 이 나무들의 모습을 알 수는 없겠지만 어떤 모습이든 나무와 나뭇잎의 생김새를 상상하게 되지 않을까. 이름에는 무언가를 담기 마련인데, 그 무언가를 알게 되면 친근함이 생기고 궁금함은 늘어날 테니 말이다.

    60년 동안 나무를 연구해온 박상진 교수는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면 이름부터 주고받”듯이 “나무와 친근해지는 첫걸음도 이름을 아는 것”이라 말한다. 나무가 좋아 가까이하려 마음 먹은 이들이 가장 애를 쓰는 부분도 나무 이름 익히기이니, 이름에는 정말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500여 종에 이르는 나무 이름의 유래와 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오래 기억될 나무 이름은 '다정큼나무'일 듯하다. 생김새는 전혀 모르지만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다정스런 모습이" 떠오르니, 언제라도 만나게 된다면 이름을 크게 부르며 꽉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렇게 하나의 관계가 시작되고, 하나의 사랑이 이어지니,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관계와 사랑을 늘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