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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020
  • 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은이) | 창비 | 2020년 5월 "그 시절, 우리가 느낀 사랑의 기분"

    "소설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사건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는 것입니다"(<데이 포 나이트> 中)라는 문장처럼, 김봉곤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한다. 그 시절의 그 기분은 돌아올 수 없고 나 역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애틋한 쓸쓸함, 김봉곤의 소설은 그 시절의 사랑의 기분의 그 구체적인 울렁거림을 섬세한 문장으로 응시한다.

    종로의 '빠이롯드만년필' 전광판을 지나 마주치는 아트시네마와 카페 뎀셀브즈 3층이라는 구체적인 장소. 그 순간의 날씨와 노래들을 소설은 정확하게 묘사한다. "늦겨울 혹은 초봄의 바람, 고개를 돌려 가볍게 오르내리는 하늘색 커튼 사이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보였을 때" (<나의 여름 사람에게> 中)의 기분. "여름 안에서, 나 없이 당신에게 내가 모르는 일이 생기는 게 싫다고" (같은 소설) 애가 탔던 마음. "너무 많은 곳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느껴버리는 헤픈 나"(<데이 포 나이트> 中), "어째서 사랑받는 사람이 계속 사랑받는 것 같을까? 왜 그런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을까? (<마이 리틀 러버> 中) 같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순간들.

    소설의 서술자인 소설가 '곤'은 <그런 생활>에서 자신의 소설을 통해 자신이 퀴어인 걸 알게 된 엄마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난 근데 엄마한테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게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한테 말하는 일이라고 말했어". "오해나 착각으로 가득하더라도 상관없다고"(<나의 여름 사람에게> 中) 다시 사랑하는 용기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 룬샷
    사피 바칼 (지은이), 이지연 (옮긴이) | 흐름출판 | 2020년 4월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이긴다!"

    잘나가는 기업들의 조직 문화는 으레 칭송받기 마련이다. 자율적 근무 환경, 가족 같은 팀워크, 탁 트인 휴게실 등 창의성을 고취시키는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의 탄생을 목전에 둔 듯 많은 기업들이 그들의 조직 문화를 벤치마킹한다. 문제는 사람도, 조직 문화도 그대로인데 그 잘나가던 회사가 몰락하는 경우다. 룬샷, 즉 모두가 무시하던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것은 애초부터 아이디어의 문제도, 조직 문화의 문제도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경영인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기업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들을 기체가 액체로,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상전이' 현상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문화도 혁신도 아닌 구조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에 따르면 조직이 커지고 안정될수록 룬샷을 퇴짜놓기 쉽다. 결국 기업의 성패는 많은 룬샷을 육성할 수 있는 구조에 달려 있으며, 기업가는 룬샷을 가꾸는 세심한 정원사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비즈니스에 '한 방' 같은 건 없다. 당신과 당신의 기업은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는가?

  •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알쓸신잡'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 신작!"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공간에 '대해' 질문했던 유현준 교수가 이번엔 공간을 '통해' 문화와 생각을 들여다본다. 책의 부제는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자연적 요인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차이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날 때 탄생하는 새로운 생각을 밝혀내는 시도다.

    주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내용이 방대하다. 시간적으로는 빙하기부터 현재를, 공간적으로는 서양에서 동양을 오간다. 유현준 교수는 이 드넓은 시공간을 배경으로 여러 문화의 창조, 교류, 진화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분야를 막론한 해박한 지식은 그의 해석에 대한 든든한 뒷배다. 그의 안내를 따르는 여정에 지적 쾌감이 뒤따른다.

  •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 (지은이) | 복복서가 | 2020년 4월 "<여행의 이유> 김영하 여행 산문집"

    김영하의 여행 산문집을 이야기하자면, 2019년에 출간된 <여행의 이유> 보다 10년 앞서 출간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빠트릴 수 없다. 2009년 초판 발행된 그 책은 오랜 기간 절판 상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읽고 싶어도 접할 수 없었다. 새로운 장정과 편집, 책 속 한 문구에서 비롯된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란 제목으로 다시 독자들을 앞에 섰다. 이번 책에서는 원래의 판본에서 마지막 순간에 빠지게 된 한 꼭지도 만나볼 수 있다.

    시칠리아 여행은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 경험한 마지막 여행이었다. 구글맵도, 트립어드바이저도, 호텔스닷컴도 없던 시절, 공중전화로 호텔을 예약하고, 종이 지도를 보며 길을 찾으며 여행했다. 갖은 고생 속에서도 시칠리아 여행은 이어졌고, 마침내 작가의 삶에 큰 변화를 준 여행으로 남게 되었다.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답게 영화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살만 루슈디의 삶과 작품, 신화와 역사, 지리, 문화 등을 넘나들며 시칠리아 곳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10년 전, 시칠리아에서 보낸 작가의 시간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져 그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5.82020
  • 디플레 전쟁
    홍춘욱 (지은이) | 스마트북스 | 2020년 4월 "저물가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통계청이 집계를 시작한 196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인 0.4%였다. 9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경제 뉴스를 무심코 지나쳤던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집값이 그렇게 올랐는데 물가가 오르지 않았다니 말이다. 덕분에 집값이 아닌 월세와 전세금만 물가 통계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환기할 수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설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개인들은 디플레이션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코노미스트 홍춘욱이 돌아왔다. 진작부터 이 책을 준비해 왔던 그는 특유의 친절한 화법으로,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 신속하고 시의적절한 전망을 내어놓는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부터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주식과 부동산 시장 전망까지, 저성장 저물가 시대에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모든 것들을 아우른 디플레이션 종합 가이드북이다.

  •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지은이) | 다산책방 | 2020년 5월 "백수린, 손보미, 최은미가 나의 할머니에게"

    나의 할머니는 1921년 함흥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많은 실향민의 이야기가 그렇듯,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에서 묘사하는 어머니의 삶의 궤적과 많이 겹친다.) 기억을 대부분 잃고 요양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밥솥에 밥이 있으니 먹고 가라고 하던 그의 목소리, 가벼운 옷을 '개갑다'라고 발음하던 말투, 작고 약해진 몸 같은 것은 시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다. 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자 어른의 이야기'를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독자의 지지를 받는 여섯 명의 여성 소설가들이 주목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주목하는 할머니의 이야기. 나의 할머니의 모습은 강화길의 <선베드> 속 "다 필요 없어. 이런 데 있어서 뭐해. 밥도 많이 안 주는 곳에서. 내가 할머니 돌봐줄게. 일은 그만두면 돼. 그렇지 할머니?" 라는 손녀의 대사와 겹쳐진다. 이렇듯, 이 이야기들 속에서 기억되어야 마땅한 각자의 할머니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어제 꾼 꿈>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지난한 인생의 마지막 장,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를 해줄 할머니가 되길 꿈꾸는 여성이 화자로 등장하는 윤성희의 소설은 그의 소설답게 구체적이고 단정하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통해 어머니가 멈춘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딸의 꿈을 이야기하며 할머니-엄마-나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던 백수린은 <흑설탕 캔디> 같은 할머니라는 존재의 내면을 애틋하게 그려낸다. 돌아가시던 순간의 고통스러워하던 얼굴이 아닌 '색색의 글라디올러스가 활짝 핀 봄날의 공원'의 사랑하는 할머니, 난실을 기억하고 싶은 그 마음이 와닿는다. 소설을 통해 공명하는 한 세기를 잇는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소설들을 읽노라면 스스로도 해석이 잘 안 되는, 늙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복잡한 내면의 지형도가 보이고 또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가파르게 살고 있는 딸이, 내가 향해 가고 있는 시간들을 어쨌거나 살아냈던 어머니가 확연히 보인다."는 평과 함께 작가들의 작가, 소설가 오정희가 추천했다.

  • 장군이네 떡집
    김리리 (지은이), 이승현 (그림) | 비룡소 | 2020년 4월 "많이 기다리셨죠? <만복이네 떡집> 2탄!"

    올 것이 왔다. 초등 3학년 교과서 수록작이자 2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만복이네 떡집>의 후속편! 1권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장군이네 떡집>이 무려 10년 만에 베일을 벗는다. 삼신할머니마저 한숨을 쉴 만큼 박복한 팔자로 태어난 장군이. 중요한 시험 날 화장실 변기가 역류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언제나처럼 되는 일 하나 없이 짜증나는 하루, 이상한 떡집의 문을 연 순간 반전이 시작된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기 내서 사과하는 것, 혼자 자는 게 무서운 동생을 위해 곁에 있어 주는 것. 다른 사람한테 주면 훨씬 더 커져서 나에게 되돌아오는 행복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동화다. 자신감을 잃은 아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작가의 진심이 따스하게 전해진다. 만복이도 까메오로 출연해 행복한 기운을 마구 퍼뜨린다. 동시 출간된 <소원 떡집>과 함께 총3편의 시리즈가 완결되었다.

  • 스파이의 유산
    존 르 카레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 열린책들 | 2020년 4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그 이후"

    "영국 최고의 비밀 요원" 리머스와 그가 사랑한 여인 리즈가 휘말렸던 비밀 작전. 이들은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수도 있었다. 그 사건으로부터 50여 년이 흘러, 노인이 된 전직 요원 피터 길럼이 런던 본부의 갑작스런 호출을 받기 전까지는. 조지 스마일리의 충실한 비서였던 시절은 뒤로 한 채 농장에서 평화로운 은퇴 생활을 보내던 그는 마침내 올 것이 왔음을 예감하고 "한때 살았던 세상"으로 향한다. 본부에 도착한 길럼은 리머스와 리즈의 유족이 정보부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내 변호사의 집요한 질문에 마음 깊이 묻어버린 수십 년 전 기억을 강제로 마주한다.

    "난 너무 젊었어. 너무 순진하고, 너무 직급이 낮았어. 내 탓이 아니었어."라고 되뇌던 길럼은 인생의 전성기를 바친 정보부가 노년의 자신에게 책임을 묻자 충격에 휩싸이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작전에서 수행한 일을 샅샅이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길럼의 회고록인 <스파이의 유산>이 탄생했다. 스마일리는 정말 리머스와 리즈에게 일어날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각종 비밀 기록과 길럼의 소회를 통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영국 사회학자들이 "1960년대 초의 동서 긴장 상황을 명확하게 알려 주는 데는 르카레의 소설이 필요했다"라고 말할 만큼, 작가는 실제 비밀 요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담아 역사 교과서에는 쓰이지 않은 냉전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들을 생생히 보여준다. '제임스 본드'의 환상을 들춰내고 국가, 이념, 조직이라는 '대의'를 위해 장기말처럼 쓰인 인간을 비추는 날카로운 시선. "그때 우리가 한 일은 무엇 때문이었나"라는 물음은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맴돈다. 대의를 수호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희생이 행해졌던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추구한 대의가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면 그 환멸과 허무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눈먼 대의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운가.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던 마음에 깊은 물음표가 남는다.

5.122020
  • 5.18 푸른 눈의 증인
    폴 코트라이트 (지은이), 최용주 (옮긴이),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외국인 최초의 5.18 광주민주항쟁 회고록"

    1980년, 26세의 외국인 봉사단원 폴 코트라이트가 목격한 5.18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기록이 4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한센병 환자를 도우며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그가 5.18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휩쓸려간 과정이 세밀한 묘사, 생생한 대화로 복원됐다. 여러 매체들 덕분에 이미 잘 알게 된 광경임에도 외국인의 눈을 통해 보니 새롭게 아프다.

    그는 40년이 지난 지금에야 세상에 나오는 이 책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며, 그간 5.18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날이 구체적으로 괴롭다.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 이들과 아픈 기억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자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일은 그날의 참상을 빼곡히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 우리 각자의 미술관
    최혜진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20년 5월 "제가 그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지금 우리는 고대하던 작품이 전시중인 미술관에 서있다. 마크 로스코, 모네, 혹은 피카소. 모처럼의 내한이라 놓칠 수 없다고들 하는 유명한 작품 앞에 선 우리.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어쩐지 명작의 명성을 생각하면 주눅이 든다.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흰 공간(이 책에서는 '화이트 큐브'라고 설명하고 있다.)의 질서를 유지하는, 혹은 나를 감시하는 안전요원의 존재. <수련 연못>의 아름다움을 실제로 경험하는 순간 느껴지는 뭉클함은 분명히 마음 속에 있지만, 누군가 이 그림 어떠세요? 묻는다면 저도 모르게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하게 된다. "제가 그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등의 책을 통해 그림과 소통하는 글쓰기를 해온 최혜진 작가와 함께하는 '있으려나 미술관' 산책. 우리는 헨리 레이번의 <더딩스턴 호수에서 스케이트 타는 로버트 워커 신부>의 표정을 보며 그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펠릭스 발토롱의 <공>의 날아가는 빨간공을 쫓아가는 어린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비슷한 경험을 떠올린다. 화가의 의도를 추측하지 않고, 자신의 반응을 신뢰하며, 나오는 감탄사를 자유롭게 내뱉는 미술관 산책.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든 주저앉아 자유롭게 적고, 모르면 모른다고 명랑하게 말하고,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나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연다. 어렵게 외출에 나서지 않아도 좋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구글 아트앤컬쳐 사이트, 미술관 뉴스레터, 책에 실린 도록을 공개한 자기만의방 출판사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abang2017/221950015392 ), 인스타그램 @ugakmi 계정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각자의 미술관'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 물이 되는 꿈
    루시드 폴 (지은이), 이수지 (그림) | 청어람미디어(청어람아이) | 2020년 5월 "루시드 폴 노래하고 이수지 그리다~~"

    루시드 폴의 노래 '물이 되는 꿈'을 듣노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과 경쾌함이 느껴진다. <파도야 놀자>로 넓은 화폭, 파란 파도와 하얀 여백만으로 한여름 바닷가 풍경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이수지 작가가 이 노랫말에 그림을 그렸다.

    물속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이는 누구일까? 작가는 수중재활센터 아이의 모습을 따라간다. 보조기구를 차고 조심스럽게 물속에 들어온 아이는 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이내 흐르는 물결을 따라 나아간다. 강으로, 바다로, 물로.... 분수처럼 솟구치고 첨벙첨벙 뛰어다닌다. 새가 되어 날아오르고, 비가 되어 돌로 흙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다시 수영장. 보조 장치는 벗어버렸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아이의 얼굴은 한없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그동안 책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시도해온 이수지 작가가 이번에는 병풍식 구성을 택했다. 5m가 넘는 그림이 하나로 이어지며 물은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씨는 풀이 되고 꽃이 된다. 산이 되고, 별이 되고, 빛이 되고, 바다가 된다. 다시 내가 된다. 이어지는 뒷면은 루시드 폴이 손으로 그린 악보가 담겨 있다. 노래와 그림과 내 마음이 악보를 따라 경쾌하게 흘러간다.

  •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은이), 김승진 (옮긴이) | 생각의힘 | 2020년 5월 "좋은 시대를 향한 모두의 경제학"

    빈부격차와 불평등 문제가 점점 극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이 힘든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간극이 심화된 영역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경제학자의 전문성을 신뢰하는 사람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해도 많다. 경제학자들의 대다수가 세금 인상에 찬성하고 있지만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학자로서의 자조가 섞였다고나 할까, 책의 제목은 다소 중의적이다. 말인즉 경제학이야말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 경제학과 대중들의 이러한 견해차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 책은 모든 것을 비용과 편익, 자유방임의 시선으로만 바라본다는 오해를 받는 경제학에 인간의 존엄함을 녹여낼 수 있는지에 대한 시도다. 이주노동자, 기후변화, 무역의 이면, 저성장 국면에서에 후생 증대 등에 주된 관심을 둔 그들의 연구는 그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저자들은 이 책이 좋은 시대를 만들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의문을 제기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노력은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준다. 학자들의 반성과 성찰, 대중들의 공감과 이해가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5.152020
  • 떠도는 땅
    김숨 (지은이) | 은행나무 | 2020년 4월 "문학의 자리엔 숭고함이 남는다"

    열병을 앓는 소년의 목소리. "엄마, 우린 들개가 되는 건가요?"
    열차 사방엔 널빤지가 대져 있고, 조그만 창문에 양철조각을 대고 못을 박아버린, 바닥에는 건초를 깐 염소 등을 실어 나르는 열차. 이 비참한 공간에 그들이 실려있는 이유는 그들이 고려인이기 때문이다. 1937년, 고려인 17만명이 소련의 극동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건이 김숨의 문장을 만난다. 특히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든 금실이 이 기차 안에 있다. 그는 낯선 땅에서 아이를 낳게 될 것을 예감한다.

    <한 명>, <L의 운동자> 같은 작품을 통해 역사를 살아간 인물들의 숨결을 밀도 높은 문장으로 그려내는 모습을 보여온 작가 김숨의 신작 소설. 고향을 떠나 겨우 머물게 된 소련 땅에서 그들이 소유했던 우수리스크의 땅과 염소와 개. 그들은 또 추방당해 떠나야 한다.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진' 기찻길을 다시 달려 또 다른 땅과 고난을 찾아 떠나야 하는 핍진한 삶, 말은 자꾸 끊어질 듯하고 불도 곧 꺼질 듯하다.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수난의 역사에 숨을 불어넣는 문학, 인간의 존엄에 대해 깊이 고민한 문학의 자리엔 숭고함이 남는다.

  • 부의 열차에 올라타는 법
    스에오카 요시노리 (지은이), 유나현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5월 "이번 역은 부의 열차로 갈아타실 수 있는..."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열차를 잘못 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행선지를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익숙한 경로였는데도 말이다. 요즘 우리 삶이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탄 인생 열차는 어느 역을 지나고 있는가?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혹시 그 목적지가 '부자'라면, 즉 돈, 시간, 장소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 바로 타고 있는 열차에서 내려 부의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단, 저자는 그것이 단지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가 정의하는 부자란 사회에 부를 환원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책에서 '열차'는 인생의 목적지를 향한 여행, 그 과정에서의 노동 등을 말하지만 마음가짐과 행동 양식을 뜻하기도 한다. 부의 열차를 탄다는 것은 결국 부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부자들의 생각과 습관을 체득하는 일이다. 일견 쉬운 듯 보이지만 그것은 사실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부에 관해선 유독 추월차선, 급행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다. 다 좋다. 인생은 짧고, 부를 추구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니까. 이제 종착역까지의 초조함은 잠시 잊어 두고, 부자들의 생활 양식을 하나하나씩 배워 보자.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목적지가 아닌 그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갈아탈 준비는 되었는가? 이번 역이 환승역이라면 일단 내려보는 것도 좋겠다.

  • 약탈 기사 로드리고와 꼬마둥이
    미하엘 엔데, 빌란트 프로인트 (지은이), 레기나 켄 (그림), 김인순 (옮긴이)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5월 "미하엘 엔데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

    모험에 굶주린 소년이 있었다. 때는 중세 암흑시대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무자비하고 잔인무도한 약탈 기사 '로드리고 리우바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아이는, 그 역시 '모두가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모험담은 <모모>, <끝없는 이야기>의 미하엘 엔데가 집필하기 시작했지만 그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작가 사후 25년, 독일의 한 아동 문학가가 원고를 이어 쓰며 잠들어 있던 거장의 이야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소년과 겁쟁이 약탈 기사, 우울증에 걸린 왕과 이야기에 통달한 앵무새, 교활한 궁정 마법사... 근사한 코스 요리의 다음 접시를 기다리는 기분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차례로 만난다. 미하엘 엔데와의 공동집필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손에 넣은 빌란트 프로인트는 자신이 적임자였음을 증명하는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좋은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어김 없이 따라오는 선물,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그 충만한 느낌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김환석, 김숙진, 김은주, 김종갑, 김종미, 김지훈, 노고운, 박세진, 서보경, 송원섭, 심효원, 엄태연, 유시 파리카, 유현주, 이동신, 이준석, 임소연, 정찬철, 주윤정, 차은정, 최명애, 황희선 (지은이), 이정호, 변영근, 이부록 (그림), 이감문해력연구소 (기획) | 이성과감성 | 2020년 5월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사상들"

    폭염과 혹한의 반복적 발생, 코로나 팬데믹, 훅훅 줄어드는 동물 종 수... 경고등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다. 전 지구적 생존 위기를 대면한 21세기의 사상은 유효기간 지난 사상들의 낡은 틀을 버리고 새로운 인식을 가지길 요구한다. 이 책은 21세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들의 논의를 소개한다.

    브뤼노 라투르부터 재이미 로리머까지, 각 장은 사상가들의 주요 담론에 대한 정리와 사상가의 짧은 프로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형태의 책들이 그러하듯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해석을 위한 책은 아니다. 다만 지금 주요하게 논의되는 담론의 지형을 거시적으로 살피고 흐름을 파악하기에 적합하다.

    21세기 사상의 뚜렷한 특징은 인간-비인간 이분법적 사고와 위계적 세계관을 벗어나는 방향으로의 발전이다.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공존. 이 큰 틀 안에서 여러 다른 결의 주제들이 각자의 사유를 진척시킨다. 목차를 한번 죽 훑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흥미 유발은 충분할 것이다.

5.192020
  •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은이)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신작"

    2016년에 출간되어 100만 부를 돌파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저자 김수현의 신작 에세이가 출간됐다. 전작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말해주었다면, 4년 만에 펴낸 이번 책에서는 '나로 살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균형 있게 관계 맺기'에 관한 특별한 조언들을 담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고민거리가 없었던 저자에게 어느 순간 위기가 닥쳤다. 완벽하게 신뢰했던 관계가 어그러지자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내게 되었고, 그럴수록 점차 관계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자기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존감을 지키며 나답게 사는 법,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면서 당당하게 사는 법, 마음을 표현하는 법, 그리고 사랑을 배우는 과정에 관해 따뜻하면서도 또렷한 언어로 들려준다. 무겁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은, 김수현 식 공감의 이야기와 명쾌한 처방전을 만나게 된다.

  • 기록의 쓸모
    이승희 (지은이) | 북스톤 | 2020년 5월 "기록에는 유통 기한이 없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저자 같은 마케터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럴 땐 세상에 전에 없던 아이디어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창작물들은 결국 전에 있던 것들의 모방이요 재창조니까. 문제는 그 재료들이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기록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는 기발한 결과물의 좋은 출발점이다. 그렇다. 이 책은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기록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다.

    기록은 세상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애정을 갖고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자. 바쁘다면 간단한 메모로, 때로는 한 장의 사진으로, 잠시 여유를 내어 한 편의 글로. 오늘 아침의 비처럼 흩뿌리던 일상의 파편들은 그렇게 소중한 기록으로 저장된다. 저자는 말한다. 기록은 기록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물론 '언젠가 쓸 데가 있겠지'라는 희망의 끈은 놓지 않은 채 말이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재료들이 기록될지, 그 기록은 얼마만큼의 숙성 기간을 거쳐 나를 다시 찾아올지 벌써부터 설렌다.

  •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박래군 (지은이) | | 2020년 5월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한국현대사 인권기행"

    30여 년간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온 박래군이 한국현대사가 기록된 장소들을 찾았다. 그가 앞에 설 때마다 공간은 일상적 풍경의 한 겹 아래, 숨은 기억을 열어 보여준다.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른 잔악한 폭력의 현장이다.

    그가 찾는 제주는 푸른 밤과 유채꽃, 낭만의 섬이 아니라 도민의 10분의 1이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원한 어린 섬이다. 그가 걷는 광주의 곳곳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5.18민주화운동의 기억이 묻혀있다. 그가 본 전쟁기념관에서의 전쟁은 세련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게임 같지만 그는 전쟁기념관이 말해야 할 것이 전쟁의 광기가 불러온 사회의 파괴와 민간인 학살, 지워진 여성들의 피해라는 것을 지적한다.

    박래군이 더듬어가는 현대사의 현장에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놓쳤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짚는다. 현실은 답답하고, 엉켜서 떡진 과거를 다시 풀어내는 일은 막막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고 권력이 도전받을 때 역사는 다시 쓰인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담담한 긍정을 믿고 그 옆에 함께 서는 수밖에. 이 책은 알라딘 북펀드를 통한 388명 독자의 후원으로 세상에 나왔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의 값진 응원이다.

  • 미생물
    다미앙 라베둔트, 엘렌 라이차크 (지은이), 장석훈 (옮긴이), 세드릭 유바, 크리스틴 롤라르, 최종윤 (감수) | 보림 | 2020년 5월 "100가지 미생물의 마이크로 정글"

    맨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지만 지구 생태계가 균형을 잡는 데 꼭 필요한 존재들, 미생물의 세계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온 몸을 덮은 독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무서워하는 히드로해파리, 몇 년이라도 휴면 상태로 지내며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남는다는 곰벌레, 우리 몸에서 떨어져 나간 죽은 피부 조각을 찾아 다니는 침대 속 진드기 등 바다와 연못, 개울, 숲, 부엌, 사람의 살갗에서 사는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최대 150배 크기의 그림으로 옮겼다. 큼직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미생물의 생김새는 영상보다 더 실감나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이 미생물의 다양한 생존 방식을 알려준다.

    징그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미생물들은 때로 먹이 사슬의 시작점이 되거나, 무시무시한 포식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치열한 생존 현장을 들여다보면, 알면 알수록 놀라운 존재이자 고마운 존재가 바로 미생물이다. 열심히 일하는 미생물 덕분에 생태계는 보존되고 지속 가능해진다. 정밀하고 아름다운 그림, 방대한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피로함 없는 글 솜씨, 이런 어린이 과학책을 계속 만나고 싶다.

5.222020
  • 당근 유치원
    안녕달 (지은이) | 창비 | 2020년 5월 "유치원에 가는 아기 토끼의 마음은 당근당근!"

    유치원에 처음 간 아기 토끼는 서먹서먹하고 모든 게 재미없다. 덩치 큰 곰 선생님은 목소리만 크고 힘만 세다. '아... 유치원 가기 싫어.' 그런데 곰 선생님이 아기 토끼가 만든 작품을 칭찬해 주고, 아기 토끼가 바지에 눈 똥을 흙이라고 깜빡 속아 주자 아기 토끼의 유치원 생활은 핑크빛이 된다. 우리 선생님은 예쁘고, 목소리도 크고 힘도 세다! '나는 우리 선생님이랑 결혼해야겠다.'

    안녕달 작가 신작 <당근 유치원>은 새 유치원에 간 아기 토끼가 낮선 선생님을 만나 마음을 나누며 유치원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초록이 싱그러운 초여름 풍경, 아기 토끼들의 하루가 꼬박 담긴 유치원 교실, 지치지 않고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믿음직한 선생님의 모습이 안녕달 작가의 다정한 시선을 만나 반짝반짝 빛난다.

  •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박소연 (지은이) | 더퀘스트 | 2020년 5월 "제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소통의 실패를 이야기하자니 갑자기 너무 짧아진 앞머리에 좌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굴 탓하랴.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죄다. 그 후에는 늘 '앞머리는 1cm만 잘라 주세요'와 같은 식으로 말하게 된다. '조금만', '적당히'와 같은 표현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평소처럼'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이러저러한 사정과 전후 맥락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말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현장이 일터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지는 않을지 몰라도 말 한마디에 신뢰를 잃고, 관계가 틀어지고, 일을 망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잘못된 일의 언어를 바로잡고 일의 성과와 직결되는 소통 능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책 속 사례들은 평소 우리가 얼마나 잘못 대화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순하게 말한다는 것은 단지 짧고 간결한 표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소통의 핵심은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 즉 말에 담긴 의도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말대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던 시대는 갔다. 이제 단순하고 정확한 언어로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여보자. 소통이야말로 일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덕목인지도 모른다.

  •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작사가 김이나가 수집한 보통의 언어들"

    "예민하게 수집한 단어로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사람, 그 단어들로 연결된 문장으로 감각을 노래하는 사람" 작사가 김이나.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누군가를 이해하며, 마음을 전달하는 그에게 언어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김이나의 작사법> 출간 이후 5년 만에 펴낸 <보통의 언어들>에서 김이나의 삶과 태도를 규정짓는 언어들, 그리고 그 언어들이 갖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단정히 풀어낸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미움받다, 소중하다 '관계'의 언어, 부끄럽다, 찬란하다, 외롭다 '감정'의 언어, 성숙, 정체성 '자존감'의 언어 등, 김이나가 오랜 시간 동안 섬세하게 수집한 언어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각 언어를 통해 빚어진 매력적인 이야기가 촘촘히 이어진다. 4분 남짓의 가사나 방송에서 엿보기 어려운 보다 깊고 넓은 그의 언어적 세계를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소중한 사람에게
    전이수 (지은이) | 웅진주니어 | 2020년 5월 "사랑을 배우는 법, 함께 나누는 법"

    제주에 살고 있는 2008년생 작가 전이수, 그의 마음과 생각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그림 에세이다. SBS 영재발굴단으로 이름을 알린 후 8살부터 직접 그림책을 쓰고 그려온 이 특별한 이야기꾼은, 사회 공헌 활동을 위해 만든 갤러리 '걸어가는 늑대들'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돕고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작은 몸짓 하나, 눈빛, 한 마디 말에 대해 들려준다.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재능을 가졌던 한 소년이 멋진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가족과 자연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타인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공감한다.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은 듯 설레기도 한다. 과감한 선과 색채로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그림들은 액자에 끼워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이 책은 '독자들도 자신의 그림과 글을 보고 읽으며, 자기 안의 보물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로 끝을 맺는다. 그 바람이 분명 이루어질 거라는 행복한 예감이 들었다.

5.262020
  • 코로나 투자 전쟁
    정채진, 박석중, 이광수, 김한진, 김일구, 여의도클라스, 윤지호, 최준영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0년 5월 "투자라는 전장에서 지지 않는 법"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전 세계 주식 시장은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하게 요동친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 개인 투자자들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 속 갈등과 불안은 코로나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곧 대세상승장이 올 것이다, 아니다 오래된 상처가 곪아터지듯 진짜 경제 위기가 올 것이다,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 있는 전망과 예측을 내어놓을 수는 없다. 똑같이 삼성전자라는 주식을 매수했어도 누구는 벌고 누구는 잃는다. 결국 선택과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재산이 걸린 투자를 성공으로 이끌어야만 한다. 적어도 지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니 분위기에 휩쓸려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즉흥적으로 매매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다. 경제를 읽는 안목을 넓히고 판단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내로라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이 책을 탄생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정채진의 말처럼 전장에 나가는 장수는 우리 군대가 어떤 상태인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꾸준한 공부를 이어 가자. 진짜 기회는 준비된 자의 눈에만 보일 테니 말이다.

  • 밤의 팔레트
    강혜빈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눈부신 여름 안에서 다만 조용한 사랑이"

    어떤 유년기의 기억. "비 오는 운동장에 버려진 나를 데려갈 엄마는 없을까? 파란 오줌을 싸면서 기다리는 총소리" (<그림자 릴레이>) 자신이 파란 피, 파란 눈을 가졌다는 걸 알아챈 뒤 이 아이는 언제부턴가 내가 이 세계와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왜 나일 때만 목소리가 갈라지는 걸까.' (<돌아오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이야기>), '나의 기형은 내가 나인 것' (<그림자 릴레이>), '내가 나인 게 어떻게 쉬울 수 있죠? (<무지개가 나타났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반복되는 질문.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질수록 나는 자꾸 희미해지고, 투명해진다.

    본연의 빛깔을 지닌 모든 사람과 함께 걷는 시.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단면이 파랗고 축축하다면 여름도 여자도 아닌 얼굴을 나눠 입고 싶'다고. (<몇 시의 샴>) 생각하며 '있잖아, 보통이란 뭘까.'라고 묻는다. 파란 색으로 물든 강혜빈의 첫 시집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을 계속하며 '내가 나인 것을 참아보기로 했어' (<타원에 가까운>) 라고 말하기까지의 마음을 함께 나눈다. "가끔 우리가 살아 있는 게 기적 같아." (<미니멀리스트>) 라고 서로 나누던 대화. '내 안은 돌멩이로 가득 찬 줄 알았는데 / 찰랑찰랑 물소리가 나' (<여름 서정>)라고 고백하는 여름의 마음. 어떤 사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싸움이 된다. '우리가 온순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라고 볼드체로 말하며, (<무지개가 나타났다>) 어떤 파란 색이 자신을 조금도 바꾸지 않은 채 '팔레트 위에서' 다른 사랑의 색과 뒤섞인다. 밤의 팔레트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 어떤 웃음은 그 소리만으로 투쟁이 된다. 시인 박상수의 해설처럼 강혜빈의 첫 시집의 이 '웃음소리는 먼 미래까지' 전해질 것이다.

  • 마켓컬리 인사이트
    김난도 (지은이) | 다산북스 | 2020년 5월 "난 이제 더 이상 샛별이 아니에요"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라고나 할까. 전국 방방곡곡을 장악한 거대한 유통 공룡들의 틈바구니에서 신생 스타트업이 유통 시장을 선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졌다. 그 승자 독식 시장에서 우리는 어쩌면 골리앗에 맞설 다윗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을까. 독과점이 가로막고 있던 혁신, 즉 새로운 서비스에 목말랐던 우리 고객들은 마침내 다윗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바로 2020년 5월, 창립 5주년을 맞은 마켓컬리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려줄 적임자를 함께 찾았다.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 분석의 일인자 김난도 교수다. 마켓컬리는 특정 기업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이자 현상으로 평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난도 교수는 배송, 큐레이션, 소싱과 마케팅 등 각 영역에서 그들만의 차별점과 성공 요인을 살펴보고 그 너머에 있는 문화적 흐름과 시대의 욕구까지를 아우른 포괄적 분석을 선보인다. 여기에 김슬아 대표와 나눈 네 차례의 대담도 추가하여 내용의 밀도를 높였다. 이 책은 마켓컬리와 경쟁 구도에 있으면서 '골리앗의 복수'를 꿈꾸는 기존 강자들, 그들과 같은 성장 동력이 절실한 중견 기업들, 언택트(untact) 시대의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상하는 스타트업들 모두를 충족시킬 종합 리포트이자 벤치마킹 자료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이 책이 반가운 이들은 마켓컬리의 고객과 직원들이 아닐까. '알라딘 인사이트'에 대한 바람과 함께 부러운 마음을 건넨다.

  • 이야기의 탄생
    윌 스토 (지은이), 문희경 (옮긴이) | 흐름출판 | 2020년 5월 "김초엽, 정재승 추천! 뇌과학 기반의 글쓰기"

    "telling 말고 showing을 하라." "은유를 잘 활용하되 이미 닳고 닳은 표현은 금물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그간 너무 많이 들었다.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의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떻게'에 '왜'를 붙여준다는 것이다. 근거는 뇌과학. 저자는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뇌의 작동 방식을 살피고, 이를 활용해 뇌에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글쓰기 방법을 설명한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뇌는 글의 내용으로 구체적인 세계를 만들어내어 그것을 실제로 '본다'. 그래서 showing이 중요하다. 구석구석 치밀한 묘사는 독자가 머릿속에서 들여다볼 완성도 높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뇌는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리적 속성이 있는 개념과 결부시켜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 효과적 은유가 중요하다. 가령 사랑을 따뜻함이나 말랑말랑함과, 복잡한 관계를 거친 실타래와 연결하는 형태로 말이다. 별로 와닿지 않는다고? 그건 이것이 닳고 닳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표현일수록 뇌의 운동계가 적게 활성화되기에 효과가 없다. 새로운 표현으로 뇌가 실제 느끼는 감각을 최대한 자극하는 것이 매력적인 글쓰기의 비법이다(라며 은근슬쩍 넘어가 본다).

    이 책이 바로 독자들의 뇌를 잘 요리하는 방식으로 쓰여서 그런 것인지, 설명은 명쾌하고 내용은 흥미롭다. 다 읽고 나니 글쓰기에 관한 어떤 앎을 얻은 것 같아 이제는 정말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 예감이 샘솟았지만 이 글을 쓰며 역시 글쓰기는 순간의 깨달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글쓰기 능력의 즉각적인 향상을 불러오진 못했지만 이 책이 해낸 일은 있다. 인간이 이야기를 인식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 세계는 곧 이야기다. 잘 쓰고 싶은 작가뿐 아니라 잘 읽고 싶은 독자, 세상을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모두 도움을 줄 책이다.

5.292020
  • 기억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은이), 전미연 (옮긴이) | 열린책들 | 2020년 5월 "베르베르 신작,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모험"

    "자신의 영혼 깊숙이 묻혀 있는 기억들을 발견해 보고 싶으신 분 계신가요?" 역사 교사 르네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최면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관객 체험 대상자로 선택된다. 최면 속 깊숙한 무의식 속에서 그가 처음으로 본 전생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자신이다.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을 뒤흔든다. 전생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일상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기억의 문을 연 르네는 자신에게 총 111번의 전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백작 부인, 고대 로마 갤리선 노잡이, 캄보디아 승려, 인도 궁궐의 여인, 일본 사무라이를 비롯한 수많은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르네는 자신의 존재를 출발시킨 태초의 전생을 보고싶다는 일념으로 1만 2천년 전, 현대인이 '아틀란티스'라 부르는 전설 속의 섬으로 향하게 되는데…

    '나'의 잊혀진 기억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기억>의 원제는 '판도라의 상자'다. 전생을 알게 된다는 것은 금단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는 의미일까.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하여 그 대답으로 이 작품을 써냈다. 현생과 전생을 넘나드는 모험을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에서 '기억'의 역할은 무엇인지 탐구하며 그 상상력을 다채롭게 발휘한다. 인간의 생이 “부정적인 지난 경험에 대한 반작용적 소원의 실현 과정”이라는 시각도 흥미롭다. 현생 또한 전생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난 실패를 보완하며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현생은 전생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정체가 된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라는 소설의 첫문장이 의미심장하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지은이), 안준범 (옮긴이) | 문학동네 | 2020년 5월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또다른 역작!"

    <21세기 자본> 출간 이후, 피케티 열풍이 불었다. 그는 이 책 한 권으로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전 세계에 충격을 준 불평등에 관한 그의 논의는 이번 책에서 더 넓고 깊게 이어진다.

    <21세기 자본>의 주요 발견은, 세계의 나라들이 각기 다른 정책을 펴는데도 불구하고 20세기를 장기간 보면 모두 소득 불평등의 그래프에서 큰 U자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이번 책에서는 이런 불평등을 정당화하거나 자연스럽게 만드는 체제 및 이데올로기에 주목한다. 이 책은 유럽,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의 정치사회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수 세기에 걸쳐 분석하며 평등한 사회로의 진화 가능성을 살핀다. 전작이 경제학을 깊게 다루었다면 이번엔 역사, 정치, 사회학적으로 방대한 범위를 오간다.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쏟아지지만 너무 많이 언급되기에 되려 어느샌가 무감해진 것 같기도 하다. 지난 30년간 상승한 세계의 불평등을 정리된 도표와 이에 대한 분석을 살피니 양극단으로 치닫는 세계가 새삼 충격적이다. 자본의 비대해진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피케티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와닿는다.

  •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캐런 리날디 (지은이), 박여진 (옮긴이) | 갤리온 | 2020년 5월 "일단 떠나자, 동해 바다로!"

    아찔하다. 제목을 보자마자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마감할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후 수영을 꼭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여태 배우지 않고 있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수영을 배우려면 기꺼이 물에 빠져야 하는데 두려움이 이를 가로막는다. 그것은 곧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처음부터 수영을 잘하고 싶지 허우적대기는 싫은 것이다. 완벽주의라는 말로 포장되는 이러한 성향은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경계하는 '시작하기도 전에 그만두고 싶은 상황'을 만드는 주범이다. 문득, 이런저런 변명거리만 찾는 상황에 한심함을 느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책은 여러 이유로 하지 못했던 일들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한다. 바다가 너무 무서워 되레 서핑에 도전했다는 저자는 보기 좋게 실패했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파도를 제대로 즐기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는 그녀는 그 오랜 실패의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을 '새로움'에서 찾는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며 전율을 느껴 보자는 것. 단, 그 일이 무엇이든 선수가 되려 하지 말고 직업으로 삼을 생각도 말자고 강조한다. 중요한 건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해 봤다는 사실 자체다. 이제 시도조차 하지 않은 변명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첫 순간을 위한 용기가 이 책에 있다.

  • 귤의 맛
    조남주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5월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신작"

    입시에 도움도 안 되고 인기도 없는 중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 네 친구가 있다. 하루종일 학원을 가고 문제집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영화를 못 보는 것이 당연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중얼중얼 암기하는 학생이 '반듯하다'고 칭찬받는, 한국 중학생이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하는 기형적인 일상. 마음껏 푸르러야 할 시기에 드리워진 각자의 그늘을, 네 친구는 서로를 버팀목 삼아 함께 통과한다. 치열하게 싸우고 바닥을 보이며 어긋나다가도 어느새 새어나간 진심에 서로를 보듬으며 단단해진 우정.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처음으로 함께 떠난 제주 여행에서 네 친구는 충동적인 약속을 하고 만다. 꼭 지키자는 염원과 함께 타임캡슐에 담아 땅에 묻은 약속. 공통된 희망이지만 저마다의 이유는 너무도 다르다. 소설은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네 친구의 속사정을 시점을 교차하며 찬찬히 보여준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가 "초록의 시간"을 지나는 소녀들을 그린다. 작가는 한창 그 시기를 통과하는 딸을 보며 또래 청소년들은 무슨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남들도 다 겪는 일이야"라는 말 아래 정작 자신의 생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아이들. "내 선택이 아닌데"라고 되뇌지만 의견을 말할 새 없이 "어른들의 절차"가 진행되어 삶이 이리저리 급선회한다. 지금 이 속도와 방향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나는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하는 네 친구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담겨 있다. "힘든 건 힘든 거라고, 그럴 수도 있는 거"라는 위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