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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2020
  •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레드케이스 포함)
    이동진 (지은이), 김흥구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이동진 박물관 '파이아키아'의 모든 것"

    영화평론가이자 작가면서 팟캐스트 진행을 통해 훌륭한 이야기꾼임을 증명해 보인 이동진은 수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동진 박물관이라 불리는 특별한 공간 '파이아키아'에는 그가 수집해온 2만 권의 책, 1만 장의 음반, 5천 장의 DVD 등이 진열되어 있다. 상당한 볼륨의 이 책에는 '파이아키아'의 수집품 리스트, 각 수집품에 얽힌 고유한 이야기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책은 '파이아키아'란 작업실 명칭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책, DVD, 음반은 물론, 좋아하는 영화를 대표하는 소품, 여행 기념품 마그넷, 각종 굿즈 등 수집가 다운 화려하고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작가는 작업실을 "지나온 삶의 은유로 가득 찬 추억의 극장"이라고 표현한다. 수집품 하나하나에 담긴 특별하고도 내밀한 이야기들은 이동진 작가가 사랑하고 살아온 모든 시간의 기록 그 자체다. 사진작가가 촬영한 다양한 컷의 사진, 공간 설계자와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어 풍성한 볼거리, 읽을거리를 제공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보아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천준범 (지은이) | 부키 | 2020년 9월 "회사법은 모르지만 투자는 하고 싶어"

    "지난 분기 영업이익은 비록 적자였지만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아직 업계 1위네요. 부채비율이 낮고 PER(주가수익비율)도 괜찮으니 지금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여요." 요즘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스포츠나 연예인 이야기 대신 이런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내 일터가 아닌 남의 회사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든 '회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시장법 등을 골자로 한 '회사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A가 있고 A홀딩스가 있는데 뭔 차이죠?"라는 질문도 그래서 나오는 것일 터. 법은 어렵다는 선입견 탓도 있지만 그동안은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학 개미 시대의 사정은 다르다. 회사법이야말로 주식 투자자들이 꼭 알아야 할 필수 교양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가 합병과 분할, 자사주 취득과 소각, 지주회사 설립과 해체 등을 통해 어떻게 부를 모으고 이동시키는지, 주가가 높은 것이 왜 대주주에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닌지 등, 기업 관련 변호사인 저자가 우리 일반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회사법의 이모저모를 알기 쉽게 풀어놓는다. 기업이 부를 늘리는 '합법적' 방법인 탓에 재벌법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회사법 관련 사안들이 비록 내일의 주가를 예측해 주진 않지만, 돈의 흐름을 읽게 해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투자를 시작했거나 관심을 둔 회사가 있다면, 차트 분석보다 회사법이 먼저다.

  •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파이돈 편집부, 리베카 모릴 (지은이), 진주 K. 가디너 (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우리에게는 이제 423개의 이름이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부터 현대까지 서양 미술의 역사 전체를 되짚은 책,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초판에는 여성 미술가가 한 명도 소개되지 않았다. 현재 회화 경매에서 거래된 생존 예술가의 작품 가격은 여성 예술가의 것이 1240만 달러(약 54억), 남성 예술가의 것이 8000만 달러(약 993억)에 달한다.(12쪽) 이 책은 지난 5세기 동안 예술가로 활동한 400여 명의 여성의 작업물을 소개하고 그들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시대순이 아닌 이름순으로 큐레이팅된 기억의 목록, A부터 Z까지 예술가의 이름과 그들의 대표작을 따라 걷다보면 당신의 미술관이 풍성해진다.

    조지아 오키프의 꽃,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비비안 마이어의 비밀스러운 사진, 히토 슈타이얼의 재치, 바바라 크루거의 선언. 이 책을 만나기 전 나의 미술관에 걸려있던 작가들의 이름이다. 이 작가들의 이름 옆에 인종, 젠더, 정치 문제를 모두 말하는 니나 샤넬 애브니의 그림 <2007년 우리 반>을, 같은 여성작가인 라비니아 폰타나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후원하기도 했다는 소포니스바 안귀솔라의 자신감 넘치는 초상화 <체스 게임>을, 최초로 매그넘에서 일한 여성 사진가 이브 아널드의 고독한 사진 <홍등가의 술집 여자, 쿠바의 아바나에서>를, 상하이의 풍경을 SF적 상상력을 더해 재현한 추이 제의 <코너 빌딩>을 함께 놓는다. 500년의 여성 미술의 역사, 우리에겐 기억할 만한 423개의 이름이 있다. 정희진, 김수자, 김보라, 장영은, 유지원, 윤혜정, 김겨울이 추천했다.

  • 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듀나, 정소연, 김이환, 배명훈, 이종산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서로를 구하기 위해 혼자가 된, 우리를 위한 SF"

    '뉴 노멀'을 주제로 한 배명훈의 소설 속 문장. "제 1자 세계대전을 기준으로 19세기와 20세기를 구분하는 사람은 많아도, 갇은 시기에 유행한 스베인 독감이 20세기의 문을 열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는 거의 없지 않은가."(149쪽, 인용구는 오자가 아니다) COVID-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면서 우리는 '뉴 노멀' 이후의 삶이 얼마나 다를지 막연하게 짐작만 할 뿐이다. 배명훈의 소설 속 2113년의 세계, 거센소리며 된소리가 사라진 2113년의 한국어로 쓰인 소설은 '나·랏:말ㅆㆍ미'와 같은 중세국어를 읽을 때처럼 적잖이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눈엔 아무렇지도 않게 침을 뱉으며 경기와 공연을 하는 야구 경기와 뮤지컬의 한 장면이, 술잔을 돌리며 비말을 섞어 마시던 21세기의 술자리의 풍경이 더욱 노멀하지 않게 느껴질 것임을 생각하게 되면, 팬데믹 이후 우리의 '뉴 노멀'이 어떤 모습일 수도 있는지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소설가와 예언가는 결코 같지 않으므로, 소설이 그려내는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라고 결코 단정할 수 없지만, 여기 조심스럽게 팬데믹을 소설적으로 상상해 낸 여섯 작가가 있다. 멸망Apocalypse, 전염Contagion, 뉴 노멀New Normal 챕터에 김초엽, 듀나, 정소연, 김이환, 배명훈, 이종산이 참여해 SF 앤솔러지를 엮었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끝내 서로에게 희망의 손을 내밀 신인류를 위해 이야기가 존재한다. 올 연말까지 도서 판매 수익금 5%가 어린이를 위한 코로나19 지원 사업에 후원된다.

10.82020
  • 나라말이 사라진 날
    정재환 (지은이) | 생각정원 | 2020년 9월 "다시 한글을 생각하다"

    말과 글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원어민 강사의 수업을 듣는다거나 한국인이 잘 찾지 않는 곳을 여행한다거나 한국 학생이 없는 곳으로 유학을 가는 상황 등을 떠올려 볼 수는 있지만, 하루아침에 우리말글이 사라진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그 아픈 마음을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방송인으로 유명했던 시절부터 한글 사랑이 남달랐던 정재환 교수가 그 시절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되살린다. 조선어학회의 여러 활동과 일제의 야심이 드러난 '조선어학회사건'을 중심으로, 한글의 탄생과 생존의 역사를 두루 살핀다.

    한글의 역사는 기구했다. 훈민정음이 널리 배포되었음에도 지식인들의 이중 언어생활은 계속되었고, 고종의 국문칙령 전까지 국문의 역할을 한 것은 한자였다. 독립신문이 국문전용 시대를 활짝 여는가 싶었지만 이내 일본어가 국어가 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그렇게 나라와 나라말을 영영 잃을 뻔했던 우리가 이렇게 한글을 당연하게 쓰고 있는 것은 모두 선조들의 투쟁 덕분이다. 책을 읽으며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 한글날의 의의를 다시 생각한다. 한글날은 또 하나의 삼일절이요 광복절이다.

  • 이너 시티 이야기
    숀 탠 (지은이), 김경연 (옮긴이) | 풀빛 | 2020년 9월 "세상의 동물들은 고유한 이유로 존재한다."

    <매미>, <빨간 나무>, <도착> 등으로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세계적 그림책 작가 숀 탠의 신작. 2020년 영국에서 가장 우수한 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수상작이다. <이너 시티 이야기>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 곁에 머무는 스물다섯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곁에서 그나마 온기를 전해주는 것은 오로지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하다못해 인간 자신도 동물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회색빛 건물 사이에서 계속 살아갈 작정이라면 주변 동물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비, 비둘기, 벌처럼 누군가에겐 해로운 존재도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덤덤히 살아간다.

    인간이 없애버린 동물,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 동물로서의 인간, 인간이 싫어하는 동물... 얽히고설킨 동물과 인간의 면면을 숀 탠 특유의 초현실적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작가의 팬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공존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읽기가 될 것이다.

  • 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임경선의 가을, 어른의 사랑"

    섬세한 이야기로 독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 작가 임경선이 가을에 어울리는 어른의 사랑 이야기를 내민다. "정돈된 일상을 유지해야 안심이"(14쪽) 되고, "이제는 정말 소중히 할 수 있는 것들만 조금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10쪽) 된 나이. 그렇게 조금쯤은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 것 같은 나이. 삼십대 건축가 수진은 사십대인 건축사무소 대표인 혁범과 아무도 모르는 만남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식물과 함께 일하는 이십대 한솔이 망설이지 않고 다가온다. '사랑 앞에선 좀처럼 면역이 생기지 않는' 마음과 함께 섬세한 사랑 이야기가 흐른다.

    "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지. 땅을 모욕해서는 안 돼."(37쪽)라고 말하는, 자신만의 확고한 직업윤리를 지닌 사람 혁범과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지금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지만, 저는 괜찮아질 거라는거예요." (103쪽) 라고 말하며 의연하고 솔직하게 수진에게 다가오는 한솔. 일과 사랑에 대한 각자의 어른스러움으로 진실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내어 놓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또한 세상 둘도 없이 소중하기에, 가장 애틋한 마음을 담아 가만히 그 이름을"(217쪽) 부르는 그 순간, 사랑이 그곳에 있다.

  • 물질의 물리학
    한정훈 (지은이) | 김영사 | 2020년 9월 "응집물질물리학을 소개하는 탁월한 교양서"

    술술 읽히길래, 내가 드디어 과학에 눈을 뜬 것인가 감격할 뻔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책 읽는 과정이 아무리 작가와 독자의 줄탁동시라지만 줄과 탁 중에 더 힘센 쪽은 분명 있다. 이 책은 저자의 '탁'이 압도적이다. 물질의 물리학이라는 낯선 개념을 이렇게까지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내 잠재력은 아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물질의 물리학에 대해 설명한다. 응집물질물리학은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큰 분야인데, 세상을 이루는 물질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를 하는 학문이다. 놀랍게도 국내 교양 물리학 서적 중엔 이 분야를 다루는 책이 아직까지 없었다. 이 책이 첫 단추다. 시작이 좋다.

    물질이라는 것이, 책에도 나오듯 똑떨어지게 설명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때문에 전문가와 배경지식 없는 이가 대화하기엔 서로 난감해질 요소가 많은데, 저자는 이 난관을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재미있는 비유로 돌파해버린다. 저자 본인과 멋진 물리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물질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호텔 투숙객이나 주방의 연구 같은 비유로 전자와 가설을 설명하는 식이다. 과학서인데 곳곳에서 인문서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이것은 뭐랄까, 아름다운 반칙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앞으로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 책을 내밀며 "이게 제 인생이었습니다."라고 말하겠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 이렇게 단단한 교양서로 인생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10.132020
  •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존 리 (지은이) | 베가북스 | 2020년 10월 "삶의 희망을 위한 금융 공부"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그것도 추정치일뿐 이제는 아예 조사를 하지 않을 정도다. 한글의 우수성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문맹률이 20%대였던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집중적인 문맹 퇴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그만큼 중요하다. 신용평가사 S&P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융문맹률은 67%로, 아프리카의 우간다, 가봉, 토고보다 못한 수준이다. 금융이해력 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국의 평균보다 낮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돈을 좇으면 속물, 주식은 패가망신이라 들어 온 우리는 정작 금융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 정규 과정이라기보단 각자의 필요에 따른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기에 온 국민이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가진 지금이야말로 금융 교육의 적기인지도 모른다. 이에 동학개미의 선봉장으로 주식투자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존리 대표가 금융문맹 퇴치를 위해 나선다. 그간의 강연들, 그리고 청중들과의 질의응답을 바탕으로 금융의 기본을 친절하게 전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삶의 희망과 행복을 위한 첫걸음, 그것이 바로 금융이라고.

  •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지은이), 이세진 (옮긴이) | 창비 | 2020년 10월 "2019 공쿠르상 수상작"

    몬트리올 교도소의 창살 사이로 "추위의 소리"를 가만히 듣는 남자. 인간다움이 얼마 남지 않은 "구속의 우주"에 꽤나 익숙해진 모습이다. 시종일관 차분해 보이는 그는 왜 교도소에 오게 되었을까. 세상의 시선에서 그는 그저 '죄수'라고 통칭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인간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겹의 순간과 사람과 우연을 거쳐야 했을까. 그렇게 만들어지는 오직 하나뿐인 삶. 누군가의 삶에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며 함부로 판단하려는 이에게, 우리는 말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라고.

    소설은 남자의 삶을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에 태어나 한 세기의 끝과 시작을 통과해야 했던 폴 한센의 생을. 어머니가 운영했던 독립영화관에서 만끽한 "자유의 언어'와, 목사였던 아버지의 신앙심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는 고백. 고국 프랑스를 뒤로 하고 캐나다로 향하던 마음과, 일에 짓눌리기도 위로받기도 했던 나날과,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 아내와의 다정한 시간. 하나의 인간을 구성하는 귀한 순간들. 그 뒤에는 "구세계의 접합점들이 삐걱대며 갈라지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려 있다. 어느새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세상에는 “일은 우리가 했지 우리의 돈이 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남자가 설 곳이 더는 없다. 그러나 한 인간의 생은 그렇게 저울추에 올려져 타인이 정한 무게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한 인간의 생이라는 존엄 앞에서.

  •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데이비드 재럿 (지은이), 김율희 (옮긴이) | 윌북 | 2020년 10월 "늙음과 죽음에 관한 대화"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이호다. 손으로 환자의 상태를 척척 살피고 빠르게 살려내는 원로 의사. 소설에서 묘사되는 그는 병원의 기둥 같은 대선배였다. 겸허하면서도 바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어른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인물을 떠올렸다.

    이 책의 저자는 40년간 죽음들과 마주해 온 노인 의학 전문의다. 책의 부제는 '33가지 죽음 수업'이지만, 죽음에 대해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죽음을 보아오며 몸속에 축적한 사유들을 토대로 삶과 병, 죽음, 치료행위에 대해 쓴 글의 모음에 가깝다. 죽음에 관한 통찰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좋아서 끝까지 읽었다.

    이 의사는 "의료 서비스에는 옹졸한 훈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사람들을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 책에는 환자에 대한 아무런 편견도 판단도 없다. 이 점에서는 건조하다. 다만 저자가 단호해지거나 통념에 날카롭게 의문을 던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현 시스템에서 사람, 그중에서도 약자가 소외된 지점이다. 이 점에서는 따뜻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건조하면서 따뜻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의 생각할 때 나는 두 가지 이미지를 같이 떠올린다. 칼 같은 사람과 동굴 같은 사람. 이 책의 저자는 동굴 같은 전문가다. 그 깊은 속을 한번 거쳐 나온 말들이 책에 가득 실려 있다. 곱씹어 생각해보게 된다.

  • 괴수 학교 MS : 구미호 전학생
    조영아 (지은이), 김미진 (그림) | 비룡소 | 2020년 9월 "넌 어떤 모습이든 최고로 멋져"

    제8회 스토리킹 수상작. 어느 날 갑자기 엉덩이에서 꼬리가 자라 구미호가 된 미오. 남자친구인 수호와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다 돌연 괴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도, 남자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도 다 힘들기만 하다. 룸메이트인 제아, 소소와도 전혀 친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폐쇄적인 학교에서 수상한 사건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괴수 학교의 생생한 묘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100명의 어린이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았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미오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괴수 학교에 다니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괴수여도 괴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특별함은 사실 가장 소소해서 사랑하는 친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10.162020
  • 트렌드 코리아 2021
    김난도, 전미영, 최지혜, 이향은, 이준영, 이수진, 서유현, 권정윤, 한다혜 (지은이) | 미래의창 | 2020년 10월 "브이노믹스 고속도로에 진입합니다"

    인류는 결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는 갑작스럽게 재택근무, 화상 회의, 원격수업, 이메일 영업, 혼술혼식 등의 일들을 겪었지만, 꼭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비단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접촉하지 않는 시대로의 거대한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것이나 다름없다. 김난도 교수가 서문에서 강조하듯, 코로나 시대라 해서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미 존재했던 일련의 흐름들이 더욱 가속화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새삼스럽게, 수년 전부터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서 언급되던 키워드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팀은 그 모든 흐름들을 '브이노믹스(V-Nomics)'라는 신조어로 새롭게 제시한다. 그간 수많은 코로나 관련서와 경제 전망서들이 앞다투어 애프터 코로나, 언택트, 온라인 연결을 전면에 내세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트렌드 코리아는 역시 독보적 전망서임을 스스로 증명해 낸다. 김 교수의 말처럼,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이제 우리의 변화와 도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다가올 소의 해, 모두의 전진을 빈다.

  • 극락왕생 1
    고사리박사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당신은 얼마나 살고 싶었습니까?"

    비 오는 날이면 합정에서 당산으로 넘어가는 2호선 지하철에 나타나는 당산역 귀신. 악귀인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지옥의 호법신 도명은 그를 지옥에 끌고 가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향하고, 미션을 완수하려는 순간 관음보살이 나타나 도명을 가로막으며 말한다. "당산역 귀신, 아니 박자언에게 한 해의 시간을 다시 주려 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미션을 받아든 박자언과 도명은 2011년, 박자언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돌아가 '극락왕생'할 방법을 함께 도모하게 된다.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 탄탄한 스토리와 환상적인 세계관이 맞닿은 이 만화는 독립 연재 플래폼 '딜리헙'에서 연재를 시작했고 2019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독립 만화의 저력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단행본 1권을 시작으로 살고 싶었던, 살아야만 했던 여자들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 철학자의 거짓말
    프랑수아 누델만 (지은이), 문경자 (옮긴이) | 낮은산 | 2020년 10월 "거짓말이 알려주는 것들"

    옳음을 인식하는 이성과 옳음을 실천하는 자아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다. 그 거리만큼이 거짓말의 영역일 것이다. 항상 스스로를 검열하고 진실을 추구할 것 같은 철학자도 예외는 아니다. 되려 앞서가는 이성과 발 묶인 현실 사이의 괴리는 더 심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거짓말을 파헤친다. 거짓말을 향한 손가락질은 잠시 내려놓기로 하자. 가십을 소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사상에 대해 더 깊은 탐구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저자 프랑수아 누델만은 철학자들의 거짓말이라는 필터를 장착한 채로 그들의 사상을 다시 들여다본다. 철학자들의 대표적인 사상이 무엇을 숨기며 탄생했는지, 어떤 자아를 표방하며 만들어졌는지 생각하며 읽으니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들을 흠결 없는 인간으로 상정할 때와는 다른 각도의 탐구다. 삶과 사상이 합쳐져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이와 별개로, 당신들도 나처럼 복잡하고 입체적이고 흠결 많은 인간이구나, 하는 왠지 모를 안도감은 덤이다.

  • 홀로 쓰고, 함께 살다
    조정래 (지은이) | 해냄 | 2020년 10월 "등단 50주년, 조정래 신작 산문집"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설가 조정래의 신작 산문집. 글쓰기 인생 50년이 건강하게 이어져온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독자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호흡을 맞춰 완성한 대화를 엮어 <홀로 쓰고, 함께 살다>로 펴냈다. <황홀한 글감옥> 이후 10년, '작가 조정래'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문학과 인생, 대표작의 세계, 문학과 사회, 세 개의 주제를 다룬다. 문학의 존재 이유와 인생의 의미 등 치열한 작가정신과 인생철학부터, 작가의 대표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탄생 과정과 집필 배경, 각종 역사 및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까지, 다각도로 접근한 다채로운 글이 촘촘하게 수록되어 있다. 작가의 문학론.인생론.사회론.역사론의 완결판으로 볼 수 있는 이 한 권을 통해 '조정래의 세계'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10.202020
  •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김유진 (지은이) | 토네이도 | 2020년 10월 "내 삶을 먼저 챙기며 시작하는 하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얼리 버드' 류의 책들을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한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일어나느니 잠을 더 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십수 년간 새벽 다섯 시 이전에 일어나 온 경험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수면 시간이 문제가 된다. 잠드는 시간이 남들과 같다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는 말을 절감하게 될 뿐이다. '4당 5락'의 시대는 갔다. 잠을 줄이면서까지 새벽에 일어날 필요는 없다. 결국 핵심은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깨어 있는 시간은 같지 않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답을 이 책으로 대신한다.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한다는 저자의 취침 시각은 밤 10시다. 저자에게 새벽 기상은 하루 일과 전체를 앞당기는 일이다. 일과 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야근, 회식 등 각종 모임,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에서의 피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저녁 시간과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새벽 시간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 게다가 집중이 잘 된다는 이점도 있으니, 지친 하루를 일찍 마감하고 일어나 자유 시간을 만끽해 보자.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단 10분이라도 말이다.

  • 그냥, 사람
    홍은전 (지은이) | 봄날의책 | 2020년 9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을 향한 홍은전의 마음"

    저자 홍은전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13년간 활동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노란 들판의 꿈>을 썼다. 두 번째로 펴낸 <그냥,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몸담았던 야학을 그만둔 이후의 기록을 모은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이 세상의 거대한 비참과 불의에 저항하는 기적 같은 존재들"에 관한 글은 홍은전의 살뜰한 마음과 사려 깊은 문장들로 이뤄진 애틋한 산문들이다.

    홍은전의 시선이 가닿은 작고 연약한 존재는 사람과 동물이다.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참사 1주기 광화문광장에서, 강제철거 지역에서,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도살장 앞에서, 차별받고 고통받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뜨겁게 전한다.

    모욕, 무시, 가난, 차별의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순간마다 깊은 슬픔과 아픔이 동반된다. 홍은전은 사회의 부조리함과 힘없는 존재들의 고통을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고, 침묵하지 말고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울음을 가까스로 삼키며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야만 하는 이유다.

  • 별빛 전사 소은하
    전수경 (지은이), 센개 (그림) | 창비 | 2020년 10월 "내가 요즘 바쁘거든. 지구를 지켜야 해서."

    첫 장편동화 <우주로 가는 계단>으로 제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및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전수경 작가가 <별빛 전사 소은하>로 돌아왔다. 반에서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조금 외롭게 생활하는 은하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다. 게임 속 가상 세계 '유니콘피아'에서 '별빛 전사'로 활약하는 주인공이라는 것.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 속에서 은하는 별을 정복하고 외계인과 능숙하게 싸움을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은하는 자신의 놀라운 정체를 깨닫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현실에선 겉돌고 특이하다는 말만 들었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달은 주인공은 외부의 시선에 더는 연연하지 않게 된다.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나는 자존감을 품은 은하의 모습을 보며, 독자들 또한 자기만의 특별함을 돌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마음의 발걸음
    리베카 솔닛 (지은이), 김정아 (옮긴이) | 반비 | 2020년 10월 "리베카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기"

    헨리 포드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아마 내가 여행에 가기 전 읽고 싶었던 책은 바로 이런 책이었던 것 같다. 그 나라의 작가가 쓴 소설도, 관광지를 매끄럽게 소개한 가이드북도 어떤 필요의 구석들을 채워주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바로 그것'으로 충만하다.

    아일랜드의 길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박물관의 전시 앞에 서서 리베카 솔닛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는 눈과 귀로 받아들인 인식을 머릿속의 여러 개념들에 충돌시키며 사유를 확장해간다. 아일랜드의 역사, 언어의 개념,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뻗어온다. 통찰이 깃든 문장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경쾌함보다는 묵직함이 주된 톤이지만, 이 책은 아일랜드 사진 한 장 없이도 당장 떠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솔닛이 보고 느낀 것들을 나는 얼만큼의 진폭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다.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가고싶은 여행지 순위를 다들 마음 속에 매기고 있을 텐데, 이 책을 읽은 현재의 내게 1위는 아일랜드다.

10.232020
  •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이슬아, 부지런하게 쓰고 사랑하는 마음"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심신 단련> <깨끗한 존경>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5종의 에세이를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펴내며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온 이슬아 작가. 그의 글은 편차가 없고, 읽는 이의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힘이 있다. 여섯 번째로 출간한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에서는 연재 노동자가 아닌, 글쓰기 교사로서의 값진 시간과 경험에 관한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슬아 글방'은 2014년 봄부터 시작되어 형제 글방, 여수 글방, 청소년 글방, 어른여자 글방, 코로나 시대의 글방으로 이어져 왔다. 아이부터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이슬아 글방을 찾아온 제자들의 이야기 사이사이, 일기 쓰기에 열심을 다했던 아이 이슬아, 작가 이슬아, 교사 이슬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재능과 반복'에서 꾸준함 없는 재능과 재능 없는 꾸준함에 관해 진솔하게 터놓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작가의 에세이 속 빛나는 문장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꾸준한 글쓰기의 힘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부지런히 쓰고, 부지런히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믿는다는 작가의 말에 다시 한 번 안심된다.

  •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오은영 (지은이), 차상미 (그림) | 김영사 | 2020년 10월 "소리 내어 읽어볼까요? "사랑하지! 짱 사랑하지!" "

    엄마는 아이를 위해 건강한 식단을 고민하고 몇 시간씩 요리해서 식탁에 차려보지만 아이는 잘 먹지 않는다. 안타까움으로 아이를 어르고 달래던 엄마는 결국 "그럼, 먹지 마!"라며 식탁을 치워버린다. 아빠는 몇 달을 준비해서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다. 세심한 일정과 충만한 의욕을 안고 출발했지만, 공항에서부터 짜증이 치솟고 아이들을 닦달하고 화내고 후회하는 것으로 여행은 마무리된다. "다시는 같이 여행가나 봐라."

    부모는 아이를 정말 정말 사랑하고, 그래서 항상 더 많이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아이는 자신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 엄마의 마음이나 행복한 시간을 기대하며 여행을 준비한 아빠의 정성을 모른다. 대신 야단을 치는 엄마의 모습과 화를 내는 아빠의 얼굴만 기억될 뿐이다. 원래의 좋은 의도는 전달되지 않는다.

    오은영 박사는 이런 흔한 육아 상황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수단이 '말'이라면, 이런 상황에 적절한 '말'을 미리 조금 연습해보면 어떨까? 오은영 박사는 흔히 접하는 다양한 육아 상황을 정리하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부모의 말'을 소개한다. 소리 내어 읽어서 외국어를 배우듯이 몸에 익히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말이, 아이와의 행복한 대화가 생겨날 것이다. 물론,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것이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자. 그리고 꼭 껴안고 소리 내어 말해보자. "사랑하지! 짱 사랑하지!"

  •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긴이) | 비채 | 2020년 10월 "무라카미 하루키, 아버지를 이야기하다"

    전쟁의 상흔이 남은 1950년대 후반의 어느 여름날 오후, 아버지와 소년은 해변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갔다. 고양이를 담은 상자를 방품림에 내려놓은 뒤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찌된 일인지 고양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소년 하루키의 어린 시절 회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오랜 시간 저자 스스로 꺼내기 힘들었던 가장 사적인 이야기,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에 관한 것이다.

    하루키는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한 평범한 아들로서 아버지 개인의 역사와, 세월에 잊힌 것과 세월이 불러일으킨 것을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조심스럽게 기록했다.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내용이나 문장의 결이 다른 글과 같이 엮기 어려워 독립된 작은 책으로 출간했다는 점을 후기에서 언급한다. 아버지와 이십 년 이상 절연 상태로 지내다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어렵게 화해했던 그에게 아버지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겪은 참혹한 전쟁의 기억, 그 기억으로 하루키에게도 남겨진 트라우마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 남기게 된 이유이자 이 책의 의미를 분명히 밝힌다. 잊고 싶은 역사라 할지라도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 에픽 #01
    정지향, 김민섭, 이길보라, 김순천, 유재영, 손지상, 오혜진, 한설, 김혜진, 서장원, 이기호, 이산화, 정지돈, 의외의사실 (지은이) | 다산북스 | 2020년 10월 "당신과 나 사이의 이야기, 에픽의 시작"

    "모든 텍스트는 문학이다" 선언하며 새로운 문학잡지가 독자에게 선을 보인다. 하나의 내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에픽epiic>이다. 서사를 아우르고자 하는 야심찬 기획, 논픽션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오빠를 잃은 정지향의 세계가 남편을 잃은 심명빈의 세계를 자조모임에서 만나 공명하는 이야기 i + i를 시작으로 <대리사회> 김민섭, <기억의 전쟁>의 감독 이길보라,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김순천이 그들이 해오던 작업의 연장선상을 주제로 한 논픽션을 실었다. 형제복지원을 다룬 소설 <은희>와 선감학원 피해생존자의 구술을 기록한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를 함께 읽는 오혜진의 1+1 리뷰 등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설과 그래픽노블을 같은 파트로 묶은 구성도 눈에 띈다. 장르와 작법을 넘나들며 개성있는 서사를 발표해온 작가들, 김혜진, 서장원, 이기호, 이산화, 정지돈, 의외의사실이 각자의 다채로움을 녹인 이야기를 선보인다. 홈페이지 (https://epiic.kr/ )를 통해 듣는 이야기를 만날 수도 있다. 매 계절을 밝힐 반가운 읽을거리와 함께, 문지혁 편집위원의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0.272020
  • 세계미래보고서 2021 (포스트 코로나 특별판)
    박영숙, 제롬 글렌 (지은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10월 "혼돈을 넘어 대변혁의 시대로!"

    십년 넘게 매년 발간되고 있는 이 시리즈에 부제가 붙은 적이 있었던가. 특별해 보이지도 않고 특별해서도 안 되는 부제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부제를 달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어쨌든 포스트 코로나를 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혼돈의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젠 마음을 추스리고 일어나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저자도 서문에서 밝히듯 치사율 높은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경고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있어 왔다. 대비가 미흡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코로나 때문에 아니 '덕분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준비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올 초 세계경제포럼이 주창한 '위대한 리셋'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제 더욱 넓은 시야로, 미래에 대한 신호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앞으로도 '원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예상되어 온 일들'이 우리를 당황시킬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단순히 최첨단 미래 기술의 향연으로 읽어서는 안 되겠다.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준비 도구로 이 책을 활용하자. 혼란과 혼돈을 넘어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할 힘이, 우리에겐 아직 있다.

  • 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지은이) | 아작 | 2020년 10월 "김보영의 "가장 SF다운 SF""

    <얼마나 닮았는가>에 따라 익숙함을 느끼고 거부감을 느끼는 마음들. '나'는 인간이고 '너'는 AI이며, 내가 느끼는 걸 너는 느끼지 못할 것이란 / 느낄 것이란 선험적 판단. 김보영의 소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쓸데없고 복잡하고 지키지 않아도 될 수만 가지 규칙을 지키느라 하루를 온통 소비하는"(354쪽)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존재하는 '눈치'라는 것이 없는 사람. '길 가다 잠시 만난 사람과 내 친척의 얼굴을 같은 무게를 갖고 기억'(357쪽)하느라 정보값이 너무 많아 남들처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 나태함을, 귀찮음을, 엇나감을 어찌할 수 없듯 자신의 규칙을 어찌할 수 없는 사람. 이 사람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오가며 삶을 반복하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어떤 세계에서는 이런 사람을 '아스퍼거'로 분류한다. (<같은 무게> 中)

    합성신체를 만들어 파는 기업 덕분에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 취업 등을 이유로 대부분 남성이 되기를 선택해 이제 세계에 여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화장실을 만드는 일이 비효율적인 일이 되고, 육아실, 수유실, 생리대 자판기 같은 게 모두 사라져버리고 만 세상. 과학을 기반으로 그려낸 이 세계는 낯설지만 '여자가 왜 그런 옷을 입고 거리를 나다니느냐'(75쪽)는 말이 남기는 여운은 익숙한 것이다. 주목을 원하지 않고, 무시당하거나 지워지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하는 (75쪽) <빨간 두건 아가씨>의 바람은 그래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소설가로 정평이 난 작가, 김보영이 묵묵히 쌓아올린 이야기의 탑을 만난다. 2010년 엮은 <진화신화> 이후 10년 만이다. 김보영의 작품을 따라 읽어온 독자라면 웹진, 수상작품집, 앤솔러지북 등으로 공개된 작품들이 적절한 맥락으로 어우러진 작품집의 구성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김보영의 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마음을 울리는 지적인 이야기의 향연을 반갑게 맞이하게 될 듯하다. "김보영의 작품은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 이유 자체가 되어준다."고 말하며 소설가 문목하가 추천했다.

  • 부의 골든타임
    박종훈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0월 "버블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들"

    '버블'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씩 말해 보자. 나이탓인지 추억의 오락실 게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커다란 풍선을 만들 수 있었던 껌, 모 전자의 세탁기와 그 CM송도 생각난다. 버블을 한글로 바꾸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남은 물론이다. 참 아름다운 장면들인데, 버블이 경제를 만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붕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버블, 경제의 이상 과열 현상을 이야기한다. 말인즉, 실물 경제의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돈이 그 자체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버블이라 칭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사라지지 않으면 버블이 아니다. 그것은 버블의 숙명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금의 경제 상황을 버블이라 진단했다는 건 머지않아 좋지 못한 상황이 도래함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우리 개인 투자자들에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바로 그 기회를 포착하는 법을 논한다. 저자 박종훈 기자는 팬데믹 버블이 가져올 위험과 기회의 요인들을 두루 점검한다. 지금이 부의 골든타임이라는 말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은 마냥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투자와 공부는 바로 지금이다. 머뭇거리다간 진짜 늦어 버릴 것이다.

  •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
    최원형 (지은이), 이시누 (그림) | 책읽는곰 | 2020년 10월 "기억해, 우리도 이 지구의 일부라는 거!"

    동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고래똥 소장님과 동물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담았다.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환경 문제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산 채로 털이 뽑히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농장을 탈출한 거위, 환경 변화로 먹이 식물인 기린초와 함께 사라져 가는 붉은점모시나비,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알을 낳으러 갈 수 없게 된 개구리와 두꺼비, 도로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새끼와 의사소통이 어려운 참새, 살충제 때문에 살기 힘든 벌...

    '환경 문제' 하면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좁은 얼음 조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의 모습, 불타오르는 아마존 밀림의 모습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환경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우리가 모른 채 또는 모른 척 지나쳤던 문제들은 이 순간에도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어린이 독자에게 환경 문제를 일깨워주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손쉬운 실천도 알려준다고 하니 작게나마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10.302020
  • 별뜨기에 관하여
    이영도 (지은이) | 황금가지 | 2020년 10월 "이영도식 스페이스 오페라"

    표제작 <별뜨기에 관하여> 속 한 장면. 실뜨기를 하듯 별뜨기를 하는, 점성학자 지구인이 위탄인과 같은 우주선을 탔다. 그들의 공통의 목적은 별을 찾아내는 것. 지구인과 위탄인은 범은하 문화교류촉진위원회'에 의해 서로 죽이 잘 맞는 종족이라고 '짝패'로 결정된 이후 줄곧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산소포화도부터 달라 전혀 죽이 맞지 않는 이들. 위탄인 제르비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일삼았던 지구인의 야만의 역사를, 지구인인 '나'를 경멸하는 것 같다. 나는 과연 제르비와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을까.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등의 작품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내는 독보적 재능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이영도의 첫 SF 단편소설집. 위탄인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서로 교환한 동화책을 표준어를 쓰는 이 교수와 문화어를 쓰는 인민군 출신 박 대위가 힘을 합쳐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야기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 인공지능 로봇이 대속하겠다며 소동을 일으키는 <구세주가 된 로봇에 대하여>, 우주 시대를 누리게 된 지구 문명에서 발생한 기이한 연쇄살인을 다룬 이야기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 등 네 편의 '위탄인 시리즈'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주의 눈에 지금의 우리를 비추어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 이영도 특유의 힘 있는 대화체와 재치 있는 문장이 연주하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즐겁게 감상한다.

  •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은이), 민경욱 (옮긴이) | ㈜소미미디어 | 2020년 10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판계 미스터리"

    미스터리 작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추리소설을 써낼까.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속 작가들은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미 완성한 소설의 무대를 홋카이도에서 하와이로 싹 바꿔야 한다거나, 대필 작가가 있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고 있거나, 자신의 소설 속 살인 사건을 똑같이 모방한 사례가 현실에서 벌어난다면? 혹은 분량을 두배로 늘려 달라거나, 더욱 완벽한 '밀실'을 창조해 달라거나, 더 '임팩트' 있게 써달라는 편집자의 피드백을 받았다면 작가는 어떻게 할까.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우리 '독자'는 액자 구조를 통해 책 속 작가가 쓴 초안 원고와 수정본을 함께 읽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철두철미하고 예리할 것만 같은 추리 작가들의 모습이 허술하고 인간적이어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이 피식 터진다. 힘을 뺀 채 헛웃음을 터뜨리며 읽다보면 능수능란한 추리 대가의 솜씨가 훅 덮쳐와 작가의 장난기가 엿보이기도 하고, 베스트셀러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기꺼이 거래할 수 있는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날아오기도 한다. 새로운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소설집.

  • 습관의 디테일
    BJ 포그 (지은이), 김미정 (옮긴이)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행동, 원리를 알아야 바꾼다!"

    새벽 4시 30분, 아니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퇴근 후 공원 한 바퀴를 도는 것도 며칠 뿐이다. 3kg만 더 빼면 좋겠는데 말이다. 좋은 습관을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렵다. 마찬가지로, 나쁜 습관을 덜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 밥만 먹고 나면 소파에 드러눕는 남편, 뭐가 좋은지 계속 흥얼거리는 동료, 담배꽁초를 휙 내던지는 앞차 운전자 등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힘들이지 않고 행동하고 있지만 그 습관을 없애려는 시도는 고달프다. 행동이 습관이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습관은 그만큼 무섭다.

    어떤 행동은 습관이 되지 않아 매번 쥐어 짜내야 하는 반면 어떤 행동은 별다른 노력 없이 습관이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세심하고 체계적인 습관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스탠퍼드대 행동설계연구소장으로 20년 넘게 연구해 온 저자에 따르면 모든 행동의 작동 원리는 같다. 모든 행동은 동기, 능력, 자극의 세 요소를 조정해 가며 이끌어 내거나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당연하고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팔 굽혀 펴기 한 번'도 하기 힘든게 현실 아니던가. 책의 제안대로 우리의 행동을 조금씩 변화시켜 보자.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아주 작은 변화를 통한 모든 것의 변화다."

  • 상자 세상
    윤여림 (지은이), 이명하 (그림) | 천개의바람 | 2020년 11월 "나 꿈에서 나무였다"

    시의성 높은 주제인 과소비, 쓰레기, 환경 등의 이야기를 ‘상자’라는 상징적 키워드로 풀어낸 그림책이다. ‘상자’는 사람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버려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상징한다. ‘상자’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이 그림책의 이야기성은 더욱 확장된다.

    버려진 상자들이 모여 도시와 사람들을 먹어 치우고 배가 불러 잠이 든다. 상자들은 꿈에서 나무였던 자신들을 깨닫고 다시 나무가 되기 위해 스스로 뭉친다. 우뚝 솟은 상자 나무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을 짐작케 한다.

    다시 아무렇지 않게 쇼핑을 하고 상자를 창 밖으로 버리며 끝나는 이 그림책은, 묵직한 울림을 남기며 책을 닫게 만든다. 바람 그림책 시리즈의 100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