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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020
  •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은이), 최고은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히가시노 게이고 최신작, 전세계 동시 출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요는 황망한 마음으로 고향을 향한다.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삽시간에 주민들의 일상을 잠식한다. 존경받는 교사였던 아버지의 장례식장. 마요는 아버지의 제자이면서 용의선상에 오른 학생들을 한 명씩 관찰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에서 유명한 마술사였지만 10년 동안 마요와 연락이 끊겼던 삼촌 다케시가 불시에 마을을 찾아 수상쩍은 행동을 한다. 마요는 다케시를 신뢰할 수 없지만 수사에 전혀 진척이 없는 경찰도 믿을 수 없기에, 삼촌과 함께 독자적으로 사건 해결책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이름 없는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의 전말은 무엇일까. 동시대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해온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블랙 쇼맨'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며 돌아왔다.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면면이 충실히 담겨 실감을 더하고, 당장 며칠 후를 예견할 수 없는 팬데믹 사태라는 외부 상황이 미스터리와 만나 더욱 긴장감을 자아낸다. 2020년 11월 30일 전 세계 동시 출간되어 독자를 만나는 따끈따끈한 최신간으로, 한국 독자만을 위한 작가의 메시지도 수록되어 있다.

  •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지은이),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합니다"

    주눅 들게 하는 글쓰기 책이 있고 당장 손이 달아오르게 하는 글쓰기 책이 있다. 전자는 보통 대문호들의 문장을 풀어놓으며 공통된 특징을 짚거나 글을 쓸 때 지켜야 하는 원칙들을 엄중한 문체로 짚는 책이다. 물론 이런 책이 알려주는 글쓰기의 정도가 분명 있지만, 왠지 자꾸만 내 글이 송구해지고 '소인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경험상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은 만능열쇠 같은 비법을 제시해 주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쓰고 싶게 하고, 쓸 수 있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어차피 글은 직접 써가며 느는 것이니까. 이 책은 분명하게 후자다.

    장강명 작가는 서문에서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에 대한 꿈을 밝히며 이를 위해선 저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책은 장강명 작가가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해 쓴 것이다. 아무래도 그는 이 꿈에 진심인 것 같다. 그는 책 쓰기가 얼마나 좋은 취미이며 어째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지, 자신의 흑역사와 경험담, 여러 비유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설득한다. 조금씩 수긍하다 어느새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픽션과 논픽션을 자유롭게 오가는 작가답게 각 장르별 글쓰기에 대해 여러 실용적, 직접적 노하우를 풀어놓는다.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그의 태도는 족집게 선생이 아니라 친한 선배에 가깝다. 본인의 공부 시간표와 책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공부를 도와주는 선배처럼 그는 우리가 책을 쓰도록 이끈다. 그의 열정적인 코치와 내 속에 오래 잠들어 있던 꿈이 공명하여, 책을 다 읽을 때쯤엔 2021년의 목표를 책 한 권 쓰기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캐럴라인 줍 (지은이), 메이 (옮긴이), 캐럴라인 아버 (사진) | 봄날의책 | 2020년 11월 "울프의 시간이 깃든 정원, 몽크스 하우스"

    영국 작가 20명의 집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 <작가들의 정원>에 짧은 분량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몽크스 하우스'가 소개되어 있다. 이번 책은 몽크스 하우스를 깊고 넓게 안내하는 책으로, 정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버지니아와 레너드 울프 부부의 삶과, 정원 곳곳의 공간, 사물, 꽃과 나무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풍성하게 채웠다.

    아름다운 정원 풍경 사진과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정원 배치도로 몽크스 하우스의 문을 활짝 연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정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몇 날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자라난다. 몽크스 하우스를 무대로 복원된 버지니아와 레너드 울프 부부의 일상, 그들이 정원을 구입하게 된 계기부터 정원을 구입하여 조금씩 자신들의 손길로 가꾸어 나가는 과정 등이 몽크스 하우스의 현재 모습과 교차되며 이어진다. 버지니아 울프가 거닐고, 글을 쓰며, 때로는 비타 색빌-웨스트와 시간을 보냈던 정원의 길마다 울프의 숨결을 느끼고 만나는 일은 설렘과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 왼쪽주머니 | 2020년 11월 "2019 전미도서상, 한국계 최초 수상"

    예술고등학교 연극과 학생들의 ‘신뢰 연습’ 시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교사 킹슬리가 주도하는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거나 몸짓을 전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훈련이지만, 학생들은 되려 격한 감정의 파도에 휩싸여 치명적인 상처를 받기도 한다. 세라와 데이비드는 '신뢰 연습' 도중에 서로를 발견하고 열렬한 연인이 되었지만, 일련의 사건 끝에 다시 돌아온 수업 시간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픔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의 우상이자 정신적 지주인 킹슬리 선생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당신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소설이 던지는 단 하나의 질문이다. 소설의 1부는 세라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고등학생 시절이지만, 2부에서는 세라의 친구이자 1부의 등장인물인 캐런이 화자가 되어 1부 전체가 30대의 세라가 쓴 소설임을 밝힌다. 캐런은 세라가 말하지 않은 기억의 이면을 들춰내고, 3부에서는 또 다른 화자 클레어가 등장하며 이야기를 흔들어 놓는다. 극심한 혼돈 속에서 독자는 발견하게 된다. 이 책 전체가 잘 짜여진 하나의 거대한 연극 무대라는 것을, '신뢰 연습' 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은 우리라는 것을.

12.42020
  • 2인조
    이석원 (지은이) | | 2020년 12월 "<보통의 존재> 이석원 신작 산문집"

    지난 10년 동안, 자신만의 속도로 산문집 <보통의 존재>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신중하게 펴온 이석원 작가. 주로 가족, 친구, 연인, 그저 타인과의 관계 속 갈등, 고민 등에 대해 글을 써왔다면, 이번 신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향한 이야기로 채운다.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기록한 마음의 일기를 용기 내어 독자들에게 열어 보인다.

    이십오 년 만에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일상 속 스트레스에 지쳐 몸과 마음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타인과 세상의 시선만 좇으며 사느라 스스로에게 무관심했던 날들이었음을 깨달은 작가는 의사와 약의 도움 외에도, 자신과 화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한다. 그렇게 분투한 1년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진 않았지만, 그리고 여전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그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2인조>는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다 각고의 노력 끝에 출구를 찾아내고야 만 한 작가의 뭉클한 자기고백서다.

  • 여기 우리 마주
    최은미, 김병운, 박형서, 송지현, 오한기, 윤성희, 임솔아, 천희란 (지은이)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2021 현대문학상, 최은미 수상"

    현대문학상이 2021년의 수상자로 최은미를 호명했다. 2020년의 봄, 배제의 일상화를 경험하며 '여기 우리'가 차마 서로를 '마주'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날카로운 문장으로 돌아본다. "조용하고 어둑한, 지난봄을 생각하면 그 텅 빈 복도들이 먼저 떠오른다."(11쪽)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일하는 여성이자 엄마인 사람들. 우정과 연대가 오가던 관계는 '코로나 19' 이후 그 약한 고리를 드러내고 만다. '이태원 게이 클럽'의 기정시 53번 확진자가 '여기 우리'의 일상에 실은 존재하고 있었음을 모두가 알게 된 이후, "밤새 성토하고 찢고 찌르는 글"들이 지역카페에 이어지고, 거리의 모두가 곤두서(35쪽)고 만다. 역병의 시대, 코로나시대, 전염과 소외와 차별과 격리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라고 소설가 이기호가 추천했다.

    마스크를 쓰고 소설을 읽어야 했던 2020년, 눈에 띄는 성취를 보인 작가들의 수상후보작 역시 함께 실렸다. 퀴어문학의 '당사자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병운의 소설 <한밤에 두고온 것>속 주인공이 냉소를 한 움큼 내려놓는 순간의 뭉클함이라든지 '여성-서사-고딕'이라는 신선한 주제를 손에 들고 수많은 여자들이 모여사는 '카밀라 수녀원'의 여성 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천희란의 소설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의 새로움 같은 2020년에 어울리는 소설들이 눈에 띈다. '여기 우리 마주'하고 나누고 싶은, 제각기 제 빛깔을 지닌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 부동산
    김원철 (지은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주식이 올라도 집 고민은 계속된다"

    코스피 지수가 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개미들의 바람대로 칠만전자가 되었다. 뜬금없이 부동산 책 소개에 주식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승전'부동산'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주변 주식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온통 부동산 생각뿐이다. 말인즉 주식으로 큰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으로 집을 사겠다는 소리다. 수년간 변화가 없던 집값이 몇 달 만에 수억 원이 오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고, 집값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간 평생 내 집 마련을 못할 것만 같단다. 영끌, 패닉 바잉 등의 우려 섞인 용어가 자주 들리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에겐 코스피 지수가 2800을 넘어 3천까지 갈 것인가? 혹은 삼성전자는 10만전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물음보다 코로나 이후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한 사안이다. 구체적으로 풀어 보자면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다. 서울의 빌라보다 수도권 아파트가 나을까? 신축이 너무 비싸니 구축이라도 사야 하는가? 냉정히 저평가인 게 맞는가? 그들은 서울 혹은 주변 신축과의 갭을 메울 수 있을까?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 지방 거점 도시가 뜰 것인가? 학군은 앞으로도 중요할 것인가? 제2의 강남은 어디인가? <부동산 투자의 정석> 김원철 저자가 부동산 문제로 답답한 우리의 물음에 속시원한 답을 내놓는다.

  • 도토리랑 콩콩
    윤지회 (지은이) | 미래엔아이세움 | 2020년 12월 "<사기병> 윤지회의 다정한 인사"

    "엄마, 있잖아요."
    노란 모자를 쓴 도토리가 엄마한테 '친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힘센 친구 아몬드, 배려 깊은 쌀이, 마음 따뜻한 마카다미아, 앞에 서면 왠지 부끄러워지는 땅콩이까지 함께 있어서 너무너무 즐겁다. 그리고 강낭콩이랑은 화해해서 다행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생각나는 친구. 같이 놀자, 콩콩.'

    네 살 아들의 엄마이자, 악착 발랄 위암 투병일기 <사기병>의 윤지회 작가가 근 1년 만에 새로운 그림책을 펴냈다. 꼬마 도토리가 가족의 품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 친구를 만나고 또 성장하는 모습을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낸 이 그림책은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하는 아들 건오에게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자, 고마운 사람들에게 남기는 다정한 인사이다.

12.82020
  •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지은이), 윤진 (옮긴이)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15년간의 감금과 학대, 자유를 찾은 한 소녀의 이야기"

    부유한 아버지와 교육학을 전공한 어머니라는 이상적인 가정환경 안에서 15년 동안 감금과 학대로 고통받은 한 소녀가 있다. 그녀를 철책으로 둘러싼 집에 감금하고,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다. 그녀의 '영적 지도자', '식인귀' 역할을 자처한 아버지는 자신의 정신세계, 믿음, 욕구, 욕망만을 좇으며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딸을 감금하고 학대했다. 그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딸을 '완벽한 아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신념이 힘없는 작은 존재를 어떻게 망쳐가는지, 이 책은 낱낱이 보여준다. 세 살부터 시작된 감금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자신을 지배하고 통제하기만 한 아버지, 아버지의 또 다른 희생자인 어머니, 부모의 눈을 피해 자신에게 육체적 폭력을 가한 남성들.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상태로 보낸 15년은 고통과 절망 그 자체였다. 저자 모드 쥘리앵은 지옥 같은 세계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는 곁을 지켜준 동물들과 음악, 문학작품이었다고 말한다. 끝내 자유를 찾은 모드 쥘리앵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삶은 무엇이든 이겨낸다"라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 멘탈의 연금술
    보도 섀퍼 (지은이), 박성원 (옮긴이) | 토네이도 | 2020년 12월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라!"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버티는 힘이 절실한 계절이다. 물론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재난 탓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저마다의 문제들로 크고 작은 시련들을 겪어 왔다. 작게는 내가 투자한 주식에서부터 크게는 인생 전체에 큰 고비가 다가왔을 때 우리의 투자를, 삶을 지속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버티는 힘이다. 버티기의 다른 말은 포기하지 않기다. 그렇다, 이 책의 주제는 포기하지 않는 강한 멘탈이다. 1천만 부나 팔린 <돈>의 저자이자 세계적 코치로 활동 중인 보도 섀퍼는 말한다. 포기야말로 성공의 가장 큰 적이라고.

    그에 따르면 성공은 끝을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결말이 실패여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을 봤다는 것 그 자체니까. 끝까지 가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우리를 갈등, 시련, 두려움, 장애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성공으로 이끈다. 당신에겐 마라톤을 완주해 낼 용기가 있는가? 포기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나를 지켜낼 것인가?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버티는 데 집중하라. 버티면 힘이 붙는다. 힘이 붙으면 이긴다." 보도 섀퍼, 그리고 그에게 힘을 준 멘탈 연금술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은이), 이영미 (옮긴이) | 엘리 | 2020년 11월 "정세랑, 천선란 추천! 모든 가능성을 그리는 SF"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묻고 싶은 얘기가 아직 남았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현실로 가자." 라는 대화가 당연하게 오가는 세계. 도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즉시 다른 시공간의 자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기에 불행도 고통도 상처도 없는 '매끄러운 세계'다. 그 속에서 다채로운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던 여고생 하즈키. 그는 전학 온 친구 마코토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른 '일반인'들과는 달리, 오직 하나의 현실만을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장애'를 가진 것을 알게 된다. 하즈키는 처음으로 인식한다. 이 평화롭고 매끄러운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세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정세랑 작가가 "어지러울 정도로 좋았다. 다시 읽고 싶고 더 읽고 싶다."는 말과 함께, 천선란 작가가 "정신없이 낯선 세계를 여행하다 돌아온 기분"이라 추천하며 함께 읽은 작품. 2019년 일본 베스트 SF 1위에 선정된 한나 렌의 소설집을 만난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을 태운 신칸센 속의 시간이 갑자기 느려지면서 생긴 일을 담은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미소 냉전이 인공지능 대결이었다는 상상을 담은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뇌과학의 발전으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작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린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을 비롯한 여섯 편의 단편들이 강렬한 빛을 발한다. 과감한 상상력의 방대한 스펙트럼 속에 어딘가 뭉클하고 서정적인 색채가 덧입혀져 한나 렌만의 독특한 세계가 탄생했다.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그리는 SF.

  • 가난의 문법
    소준철 (지은이) | 푸른숲 | 2020년 11월 "가난의 문법을 새로 써야 하는 이유"

    문법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시류에 따라 단어가 추가되고 표현이 달라져도 문법은 여간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시대가 바뀌어도 문법은 여전히 남아, 실상을 드러내지 못할 뿐 아니라 접근과 파악마저 어렵게 만들곤 하니, 상황을 상황으로 두고 문제를 문제라 여기는 데에서 멈출 게 아니라면, 한 걸음 나아가는 데 필요한 공통의 이해, 즉 문법을 개선해야만 한다.

    이 책이 주목하는 '가난의 문법'은 그간 확고한 논리를 이어왔다. 무언가를 안/못 했기에 원치 않는 가난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가난에 익숙해져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안/못 한다는 이야기는 근거도 확인도 없이 강력한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문법을 현실에 맞추려면 새로운 사례와 평균값과 표준화가 필요한데, 저자는 오늘날 도시의 가난을 보여주는 대명사로 '재활용품 수집 노인'을 제안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일상에서 숱하게 마주하는 존재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활동 외에 실제로 그들이 맡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들이 그 자리에 도착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삶의 장면들로 그들의 하루와 평생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그 뒤에 공통으로 자리한 이 사회의 '가난의 문법'을 제시한다. 알다시피 문법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이 '가난의 문법'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이며, 비단 오늘날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그간의 모든 '가난의 문법'을 되짚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유효하다.

12.112020
  •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
    뉴욕주민 (지은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12월 "월가로 가는 가장 빠른 길"

    밤 11시 30분, 슬슬 잠을 청해야 할 이 시간에 눈을 부릅뜨고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서학개미운동 탓이다. 얼마 전까진 10시 반이었는데, 서머타임 해제가 야속하다. 금융의 중심으로 나가아겠다는 포부, 좋다. 사실 미국 증시에 대한 이같은 관심에는 테슬라 등 특정 기업의 역할이 아주 컸다. 아이폰처럼 전기차를 소유하고 있진 않아도 그들은 전기차 산업 나아가 우주 산업에까지 투자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다 좋다. 이제 솔직히 말해 보자. 미국 시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가격 변동성에 혹해 감정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은 아닌지를. 일례로 1년에 한 번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10% 수익을 보고 팔았다가 환율에서 11% 손해를 보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사고 파는 건 다 같은 방식이니 그럴 만도 하다.

    미국 증시는 우리 증시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애널리스트들의 의견 제시 문화도 다르고 그 외에도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다. 가장 결정적인 건 영어가 모국어인 개인 투자자들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매 타이밍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저자 '뉴욕주민'에 대한 관심 역시 매매가 전문인 현직 트레이더만의 '전략'이 궁금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단언한다. 그런 요령 같은 건 없다고. 대신 강조하는 것은 정보력이다. 주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보와 숫자에 담긴 맥락을 읽는 것이야말로 주가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투자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힘이라 말한다. 그간 얕게만 알던 것들에 깊이를 더해주는 이 책은 서학개미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미국 주식은 없지만 마음은 벌써 월가에 가 있는 듯하다.

  •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지은이)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하재영 신작, 집과 방, 삶의 내밀한 기록"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통해 국내 동물 산업 실태를 알리고, 이 사회에서 자리를 가지지 못한 약자의 이야기를 전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하재영 작가. 집에 관한 낯설고도 친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유년기에 살던 대구시 중구 북성로를 시작으로 결혼 후 새로운 터를 잡은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까지, 지나온 집과 방의 내밀한 기록을 독자들에게 건넨다.

    북성로에서는 가부장제 가정 내 한 여성에게만 무급의 노동이 집중된 것을 목도해야 했고, 범어동에서는 길과 담이 가른 신분제의 공간에서 산다는 이유로 학교 내 따돌림을 당했으며, 신림동과 금호동에서는 더 나은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던 비혼자였다. 그리고, 반려견 피피를 떠나보낸 후 정착하게 된 현 거주지 구기동에서는 새 가족이 된 반려견 호동이와 남편과 함께 새로운 시절을 이어가는 중이다.

    하재영 작가는 집과 방의 역사가 곧 자기 자신의 역사임을 10편의 에세이를 통해 보여준다. 한국현대사, 가족의 역사 면면뿐 아니라, 여성의 삶으로 바라본 장소의 의미도 함께 담아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 책을 읽고 오래 시간 울었다고 했다. 하재영이란 사람을 형성해온 집과 방에 관한 다부진 이야기들을 읽고 그 누구라도 울 수밖에 없다.

  •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은이), 노승영 (옮긴이)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사라진 것들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기후위기에 관한 가장 좌절스러운 점은, 사실 좀체 안 와닿는다는 것이 아닐까. 숫자도(매년 멸종되는 동물의 수, 상승하는 해수면의 높이...), 언어도 ('지구 온난화', '해수 산성화'...) 머릿속 지식의 영역에서는 한자리 차지한 지 오래지만 일상의 영역으로 넘어오기엔 여전히 낯설고 멀다. 기후위기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마치 고무장갑을 끼고 촉감을 느끼려 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과학의 언어를 이야기의 언어로 바꾸어 들려주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의 특별한 풍광, 오래된 신화, 개인적 경험, 가족이 겪은 일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우리 눈앞에 데려놓는다. 생각해 보면 신비롭게 이어져가는 시간과 알고 보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대자연과 작은 생명체들, 그리고 그 끝에 종말을 향해가는 지구가 있다. 이 책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 등대 소년
    막스 뒤코스 (지은이), 류재화 (옮긴이) | 국민서관 | 2020년 11월 "프랑스 아동 문학의 거장 막스 뒤코스 신작"

    예술과 놀이를 융합하여 마법의 세계를 만들기로 유명한 프랑스 아동문학의 거장 막스 뒤코스의 2년 만의 신작. 우연히 뜯어진 벽지 사이에서 다른 세계로 통하는 틈을 발견한 티모테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벽을 넘어간다. 벽 너머 공간, 등대섬에 갇힌 모르간을 만나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간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르간을 위해 티모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베푼다.

    문을 열면 다른 세계로 통하기를 혹은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면 반대편의 세계가 열리기를 바란 적이 있는지? 어렸을 때의 모험 욕구를 티모테가 대신 채워줄 수 있다. 독자 역시 생생하게 느껴지는 벽지 너머의 세계를 탐험하고 모르간의 모험에 힘을 같이 실어주고 싶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 모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책을 열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12.152020
  • 지금, 인생의 체력을 길러야 할 때
    제니퍼 애슈턴 (지은이), 김지혜 (옮긴이) | 북라이프 | 2020년 12월 "2021년은 좀 더 멋지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국민 모두가 전례 없이 우울하고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설마 이 어려움으로 일 년을 다 보낼까 했는데, 정말 2020년은 이렇게 막을 내려가고 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2021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뉴노멀'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이 책은 ABC 뉴스 의학 전문 기자이자 방송인인 제니퍼 애슈턴 박사가 기록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 일지다. 매달 시도하는 단 하나의 사소한 습관이 건강은 물론 자신의 삶을 통째로 변화시켰다고 이야기하며, 이 특별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길 원한다. 저자가 말하는 습관은 아주 간단하다. 금주, 운동, 명상, 디지털 단식 등 보통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가 다짐하는 것들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이 다짐을 미리 하고, 좌절하고, 갈등했지만 성공으로 이끈 저자의 이야기를 먼저 읽으며 내년의 계획을 미리 짜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2021년은 어떤 해이길 원하는가? 더 건강하고 더 활기차고 더 멋진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가? 그런 당신에게, 결국엔 행복하고 싶은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우리 모두의 2021년을 응원한다!

  •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 마티 | 2020년 12월 "글로 이름을 남긴 여자들"

    이 멋진 제목의 책은 20세기 뉴욕에서 글로 자기 자리를 만들었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다. 파커, 아렌트, 손택, 디디언, 매카시 등의 작가들이, 여성은 남성처럼 사유할 줄 모른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펜을 휘두르며 지성을 빛낸 과정이 담겨있다. 여성 작가를 설명할 때 흔히 덧붙는 연애나 결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가뿐하게 생략한다. 이 책이 주목하는 지점은 오직 이들의 글과 일, 그리고 서로의 관계다.

    찬양 일색의 내용은 아니다. 파커가 재능의 정점을 찍고 쇠락해가던 모습도, 아렌트가 인종차별 철폐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비판받았던 때도 숨기지 않는다. 이 일면들이 합쳐져 입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완성한다. 남성 작가들만의 장벽 같은 계보, 그 옆에 뚜렷이 존재했던 기라성 같은 여성 작가들의 이름을 연결하는 책이다.

  • 옥스퍼드 세계사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클라이브 갬블, 마틴 존스, 존 브룩, 데이비드 노스럽, 이언 모리스, 마누엘 루세나 히랄도, 안자나 싱, 데이비드 크리스천, 파올로 루카 베르나르디니, 제러미 블랙 (지은이), 이재만 (옮긴이)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인류의 역사를 조망한다는 것"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은 이렇게 예언했다. "우주 밖에서 지구의 사진을 찍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차원으로 인식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후, 아폴로 8호가 보내온 '지구돋이' 사진에 경외감을 느낀 우리는 그제야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볼 수 있었다. 다시 20여 년이 지나 보이저 1호가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의 사진을 보내왔을 때, 칼 세이건은 자신의 책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인간이 가진 자부심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데 우리의 조그만 천체를 멀리서 찍은 이 사진 이상 가는 것은 없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선이란 우주적 스케일에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구 중심의 우월적 시선도 우주에선 그 각을 잃는다. 이 책을 두고 한데 모인 세계적 학자들의 시도와 노력이 그렇다. 그들은 "우리의 거만함,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 칼 세이건처럼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을 견지한 채 인류의 역사를 바라본다. 책은 20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부터 출발해 12광년 거리에 다다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인류의 과거를 탐험한다. 원서 제목이 말하듯 풍부하게 수록된 그림과 사진들은 이 책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때 그 지구의 사진이 그러했듯이.

  • 책 먹는 여우의 겨울 이야기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은이), 송순섭 (옮긴이)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12월 "눈의 나라에서 보낸 어떤 크리스마스"

    여우는 책을 좋아한다. 행복하고 뭉클하고 재밌는 내용도 좋지만, 그 책을 다 읽고 소금과 후추로 간단히 양념한 후 먹는 책은 더 좋다. 특히나 자기가 쓴 책이 제일 맛있기 때문에 책을 쓰고 책의 향을 맡고 책을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쓰지도 않은 책이 집으로 배송된다. 그 책은 자신이 쓴 게 아닌 '여우 피에니'가 쓴 것이다. "가슴뿐만 아니라 배와 머리까지 따뜻해지는 이야기"였다. 자기에게 오배송된 책을 피에니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가 사는 핀란드에 간다. 난생처음으로 산타클로스와 눈의 나라로 간 것이다.

    피에니는 산타클로스 대신 어린이들의 편지에 답장 쓰는 일을 한다. 여우가 그 맛 좋은 편지들을 놓칠 리가 없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한바탕 소동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연필을 쥐게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쓰면 여우가 답장해줄지도 모르니까.

12.182020
  • 이해인의 말
    이해인 (지은이), 안희경 (인터뷰어) | 마음산책 | 2020년 12월 "시 쓰는 수도자의 온유한 말들"

    코로나 시국, 생활 반경과 함께 급격히 좁아진 것은 생각의 반경이다. 다른 공간, 경험, 희망이 한순간 닫혀 버리고, 환기되지 못하는 마음이 불안하게 갇혀있다. 새로운 생각을 들이기 어려운 지금, 이해인 수녀의 말들이 구호물품처럼 도착했다.

    안희경 저널리스트가 이해인 수녀와 여러 날 화상으로 함께하며 인터뷰한 이 책의 내용은 좁아진 마음에 여러 창들을 낸다. 매 회차마다 따뜻한 인사말로 시작한 대화는 공동체 생활, 아픔에 대한 생각, 고독의 의미 등 인간사의 본질에 대한 문답으로 이어진다. 이해인 수녀가 50년간의 수도 생활로 거르고 걸러 "담백한 물빛의 평화"가 깃든 마음이, 경직되어 있던 우리의 마음을 찰랑 적신다. 그 자리에 새로운 생각들이 피어난다.

  •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2020 퓰리처상 수상작"

    폐허로 남아 있던 '니클 아카데미'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의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옛 학교 터를 개발해 상업시설을 지으려던 정부의 계획은 중단되고 즉시 고고학자들이 동원된 조사가 시작된다. "이런 곳에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다니"라는 탄식. 땅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어둠이 햇빛 아래 낱낱이 드러난다. 수십 구의 시신, 금이 가고 구멍이 뚫린 두개골, 총알이 박힌 뼈. '학교', '감화원'라는 이름 아래 그 끔찍히도 어두운 본질을 감추고 있던 곳, '니클'. 모든 언론이 이 사건을 주목하면서 니클 출신의 피해자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 "나를 이렇게 만든 곳이 여기에요"라고 소리치면서.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매일 되새기는 소년이 있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매일 삶의 여로를 걸을 때 이런 품위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흑인 아이는 입장할 수 없는 놀이동산이 있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니 매일, 매순간 온 힘을 다해 싸워도 지켜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노동과 근면이라는 미덕에 매진해 생각하는 방법을 잊은 이들도, "오랫동안 억압당한 끝에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멍해져서 그 현실을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침대로 여기고 잠드는 법을 터득한"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엘우드는 세상이 평생 그의 귀에 속삭여온 '세상의 규칙'을 거부하고, 오직 마음 속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한다. 대학 수업을 들으러 가던 날,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고 니클에 들어가야만 했을 때에도. 결국 니클의 감방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소설은 111년 동안 수천 명의 삶을 파괴한 플로리다 주 소년원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미스터리를 방불케 하는 강한 흡인력에 이끌려 독자는 순식간에 그 어두운 시절의 한가운데로 향하게 된다.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어둠이 아닌 빛뿐'이라는 강한 신념을 믿고 실천한 사람들, 끝내 세상이 망쳐놓은 자신의 일부를 재건하는 사람들. 엘우드가 매순간 킹 목사의 말을 떠올리며 연대감과 용기를 얻어 행동할 수 있었듯이, <니클의 소년들>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작품이 그런 굳건한 존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뜨겁고도 아름다운 소설.

  • 사랑 수업
    윤홍균 (지은이) | 심플라이프 | 2020년 12월 "<자존감 수업> 윤홍균 4년 만의 신작"

    자존감 뒤에 사랑이 있더라. 이 책은 윤홍균 교수의 이 깨달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자존감을 올리는 데도 내리는 데도, 그 토대엔 사랑의 작용이 있다. 사랑은 사람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고, 우리 각자가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근원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랑과 애착의 유형을 구분하고 각 유형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등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주의 깊은 분석을 내놓는다. 자신을 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으로도 유효하다.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얼굴들에 대해서도, 어쩌면 이해하려는 노력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윤홍균 교수는 "인간관계에서 사랑을 녹여낼 수 있는 힘"을 '사랑력'이라 부르며 사랑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말한다. 4년 전 <자존감 수업> 이후 자존감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이 책으로 인해 우리가 '사랑력'을 키우는 데에 몰두하게 된다면 멋진 일이겠다.

  • 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어떤 마음이 들면 흰색을 기억해요"

    <최선 그런 것이에요> 이후 6년, 이규리가 이 계절의 초입, 올해의 마무리에 어울리는 시집을 선보인다. "눈을 보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눈을 만질 때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눈이 사라질 때의 고요함으로 죽을 수 있다면." (산문집 <시의 인기척>)이라고 말했던 시인이 그 부질없는, 희고 아름다운 것을 향한 마음을 담았다.

    우유니 사막, 첫눈, 희부연 구름, 흰빛, 흰 안개. 그 흰 이미지들을 따라가면 안됨을 알면서도 ("그러나 흰색 따라가진 마세요 그거 눈멀어 얻은 거니까요" <유전> 中) '쓸쓸하고 매운 선택'을 하고 마는 천성. "좋아요 / 흰색에 있겠어요 / 잊혀지겠어요 / 가여운 삶의 누추를 내가 갚겠어요." (같은 시) 결정한 이후의 삶은 시시하더라도 거슬림이 없다. 시는 시시함과 근사함을, 안과 밖을, 당신과 나를 대비하며 삶에 대한 입장을 취한다. "대신 무심한 편을 택하기로" (<안녕 편의점> 中) 하는 사람. "우리, 단단함에 대해 적을 것이 아니라 / 하염없이 무너지도록" (<정말 부드럽다는 건> 中) 힘쓰지 않는 사람. "나 힘없는 것만 건드렸네 슬픈 척했네" (<이 불쌍한 눈> 中) 인식하는 사람. 도무지 알 수 없고 부질없는 한 해를 보내며,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집으로 읽기 좋은 시집. 선선한 태도로 이규리가 묻는다. "당신은 첫눈입니까"

12.222020
  • 관종의 조건
    임홍택 (지은이) | 웨일북 | 2020년 12월 "어떻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인가"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다. 그런데 그것을 실감하게 되는 건 구독자가 수십만에 달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거나 지상파 TV의 콘텐츠마저 유튜브로 끊어 보게 될 때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에서 '책'을 검색하여 최신순으로 정렬했을 때다. 수많은 영상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데, 책이 이 정도면 다른 분야는 오죽할까. 그들이 모두 유명 유튜버를 꿈꾸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용히 혼자 일기 쓰듯 영상을 올리지는 않았을 터다. 영상 촬영과 편집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관심받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비단 유튜브 뿐이랴. 의도가 어떻든 이 책과 이 글 역시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은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 1인 미디어 플랫폼을 넘어, 소비 시장과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관람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이 돈이 되는 시대다. 저자는 이 새로운 흐름에 관심을 이끌어 내고자 관종이라는 신조어를 채택했다. 관종의 부정적 의미를 걷어 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는 관심 추종자와 관심병자를 구분하고,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핵심 기억'으로 남을 관심 추종자가 될 것을 주문한다. 개인과 회사 모두에게 말이다. 그러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조건들도 함께 살펴봄은 물론이다. 관심의 추구, 그 자연스러운 욕망을 이용하자. 바야흐로 관심의 시대다.

  • 피너츠 완전판 전 25권 세트 : 1950~2000
    찰스 M. 슐츠 (지은이), 신소희 (옮긴이) | 북스토리 | 2020년 12월 "세대를 뛰어넘은 고전이자 명작, 그 마지막 이야기"

    전 세계 75개국, 21개 언어, 3억 5천만 명의 독자가 사랑했던 작품 <피너츠 완전판> 첫 권이 2015년 12월 드디어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찰리 브라운, 스누피, 루시, 라이너스, 슈뢰더, 페퍼민트 패티 등 인기 캐릭터들과 그들의 멋진 대사들로 기억되는 만화 '피너츠'의 일일 연재분과 일요 특별판을 빠짐없이 수록한 완전판이었다. 그리고 2020년 12월, 5년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마침내 25권으로 대망의 완결을 맞이했다.

    때로는 코믹하고 또 때로는 날카롭게 세상을 그려낸 피너츠의 이야기는 품위와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반세기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만화 MD로서 이 기념비적인 첫 출간과 완결의 순간 모두에 글을 쓸 수 있어 마음이 벅차오른다. 2020년을 힘들게 보낸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반세기 전의 아름답고도 단단한 메시지. 피너츠와 그 친구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지은이) | 위고 | 2020년 12월 "코로나 시대의 <데카메론>"

    코로나 유행이 본격화되고 흑사병과 관련한 도서들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정혜윤 작가가 눈여겨본 책은 <데카메론>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보카치오가 흑사병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고 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을 시작하는 방식을 배우기 위해" <데카메론>을 펼쳤다는 정혜윤은, 이 책의 주제에 따라 코로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도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이야기는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말이다.

    레이첼 카슨과 도로시의 사랑, 그들이 가진 생명과 자연에의 사랑, 미셸 우엘백의 <세로토닌>에서 발견한 사랑,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3부작 속의 사랑 등 정혜윤은 문학과 현실을 오가며 아름답거나 낯설고, 이질적이거나 경이로운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사랑으로 현실을 위로할 거라 기대한 독자라면, 예상과 다른 내용을 맞이할 것이다. 그는 이 사랑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본다. 인간이 이제는 정말로 그쳐야 하는 것들 -탐욕, 오만, 소비, 증식-과 이제라도 지켜야 하는 것들 -생명, 근원, 부드러움, 다정함,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 이야기들을 통해 스며 나온다. 서늘했다가, 우리가 잊은 것을 떠올렸다가, 잃을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의 이야기는 주저 없이 쏟아진다. 빙빙 돌지 않고 뻗어나가는 글과 사이사이 주석으로 곁들인 통찰들을 읽다 보면, 그가 머릿속에서 흘러 넘치는 생각을 주워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주워 담아 잘 구성한 이야기들이 페이지마다 숨 쉬며 펄떡거린다. 코로나 이후 쏟아져 나온 세계의 위기에 관한 책들 중 가장 독창적이고 문학적인 책이다.

  •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잭 메기트-필립스 (지은이), 이사벨 폴라트 (그림), 김선희 (옮긴이) | 요요 | 2020년 12월 "해리포터 제작사 영화화 결정"

    어느 날, ‘살아 있는 아이’를 먹잇감으로 가져오라는 괴물의 요구를 받은 512살 에벤에셀. 괴물이 원하는 걸 가져다주지 않으면 ‘늙지 않는 마법의 약’을 더 얻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 죄책감을 느낄 여유 따윈 없다. 에벤에셀은 이기적이고 공감 능력 부족한 세상 제일의 냉혈한이니까. 그런 에벤에셀이 보육원에 찾아가서 자신과 비슷한 베서니를 만난다.

    베서니는 장난꾸러기, 사고뭉치이기에 괴물에게 넘겨도 전혀 미안할 것이 없었다. 다만 깡마른 베서니를 살 찌우기 위해 나흘의 시간이 에벤에셀에게 주어졌다. 그 사이에 자신과 비슷한 베서니와 우정 아닌 우정을 쌓게 되는 에벤에셀. 500년이 넘게 살면서 잊고 지냈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에벤에셀이 키우던 고양이를 괴물에게 넘긴 것, 세상에 20마리밖에 없는 앵무새를 넘긴 것...

    베서니는 짧지만 우정을 쌓아온 에벤에셀이 점점 약효가 줄어들어 늙어가는 걸 보며 괴물과 담판을 지으려 한다. 과연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입 냄새 심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12.242020
  • 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1월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장편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부터 <설이>까지, 매 장편마다 다음 작품의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물해온 소설가 심윤경의 신작 장편소설. 이 소설은 작가의 앨범 속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의 작가와 할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 속 유럽식 건물.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이 지었던 '벽수산장'의 첨탑은 작가의 기억 속 '언커크'(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를 불러냈다. 철거 후 유별날 정도로 철저하게 잊히고 만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 "이 소설은 그 유별난 잊혀짐에 대해 8년간 궁리한 결과다." (작가의 말) 작가의 상상력이 '벽수산장'을 이야기로 재건축한다.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이(그는 사기혐의로 복역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해 자신의 집이었던 벽수산장을, 현재의 '언커크'를 찾았다. 언커크 호주 대표인 애커넌의 통역으로 일하고 있는 이해동은 윤원섭과 벽수산장의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애커넌을 위해 그들 사이에서 통역으로 일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무명의 독립운동가로 고초를 겪다 돌아가신 이해동의 아버지와 자신의 위세를 벽수산장의 위용으로 과시한 윤원섭의 친일파 아버지 윤덕영. "우리는 현실적으로 아무 쓸모 없는 것들에 언제나 매혹되네." (106쪽)라는 애커넌의 말처럼, 아무 쓸모 없음을 알면서도 역사와 윤리와 정당함에 매혹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야기를 읽는다. 심윤경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이번에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 가족이 있습니다
    김유 (지은이), 조원희 (그림) | 뜨인돌 | 2020년 12월 "우리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는 건 어떨까?"

    이야기는 작은 개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할아버지 곁에는 늘 개가 있었고 개 곁에는 늘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개는 자신에게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손을 내민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홀로 기차에 오른다. 동쪽 바다로 가는 마지막 기차.

    할아버지를 찾기 위한 여정 속에서 개라는 이유만으로 학대를 당하고 개장수에게 납치가 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지만 병원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인 작은 개를 기억하지 못한다. 작고 여린 개는 잠시 슬픔에 빠지지만, 가족은 "기뻐도 슬퍼도 아파도 함께하는" 것. "가족은 버리는 게 아니"니까.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요즘 같은 시기.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져보기를. 그로 인해 따뜻하고 안전한 연말이 되기를.

  •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잭 메기트-필립스 (지은이), 이사벨 폴라트 (그림), 김선희 (옮긴이) | 요요 | 2020년 12월 "해리포터 제작사 영화화 결정"

    어느 날, ‘살아 있는 아이’를 먹잇감으로 가져오라는 괴물의 요구를 받은 512살 에벤에셀. 괴물이 원하는 걸 가져다주지 않으면 ‘늙지 않는 마법의 약’을 더 얻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 죄책감을 느낄 여유 따윈 없다. 에벤에셀은 이기적이고 공감 능력 부족한 세상 제일의 냉혈한이니까. 그런 에벤에셀이 보육원에 찾아가서 자신과 비슷한 베서니를 만난다.

    베서니는 장난꾸러기, 사고뭉치이기에 괴물에게 넘겨도 전혀 미안할 것이 없었다. 다만 깡마른 베서니를 살 찌우기 위해 나흘의 시간이 에벤에셀에게 주어졌다. 그 사이에 자신과 비슷한 베서니와 우정 아닌 우정을 쌓게 되는 에벤에셀. 500년이 넘게 살면서 잊고 지냈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에벤에셀이 키우던 고양이를 괴물에게 넘긴 것, 세상에 20마리밖에 없는 앵무새를 넘긴 것...

    베서니는 짧지만 우정을 쌓아온 에벤에셀이 점점 약효가 줄어들어 늙어가는 걸 보며 괴물과 담판을 지으려 한다. 과연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입 냄새 심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 관종의 조건
    임홍택 (지은이) | 웨일북 | 2020년 12월 "어떻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인가"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다. 그런데 그것을 실감하게 되는 건 구독자가 수십만에 달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거나 지상파 TV의 콘텐츠마저 유튜브로 끊어 보게 될 때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에서 '책'을 검색하여 최신순으로 정렬했을 때다. 수많은 영상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데, 책이 이 정도면 다른 분야는 오죽할까. 그들이 모두 유명 유튜버를 꿈꾸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용히 혼자 일기 쓰듯 영상을 올리지는 않았을 터다. 영상 촬영과 편집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관심받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비단 유튜브 뿐이랴. 의도가 어떻든 이 책과 이 글 역시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은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 1인 미디어 플랫폼을 넘어, 소비 시장과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관람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이 돈이 되는 시대다. 저자는 이 새로운 흐름에 관심을 이끌어 내고자 관종이라는 신조어를 채택했다. 관종의 부정적 의미를 걷어 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는 관심 추종자와 관심병자를 구분하고,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핵심 기억'으로 남을 관심 추종자가 될 것을 주문한다. 개인과 회사 모두에게 말이다. 그러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조건들도 함께 살펴봄은 물론이다. 관심의 추구, 그 자연스러운 욕망을 이용하자. 바야흐로 관심의 시대다.

12.292020
  •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이라영 (지은이)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정세랑, 이다혜, 최은영 추천!"

    이라영의 책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역시 분노일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가 밝히기도 했지만, 직접 말하지 않는다 해도 그의 글에서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모를 순 없다. 나는 이라영의 글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온도를 좋아한다. 그의 분노는 너무 투박하지도 과하게 정제되지도 않은 상태다. 독자에게 옮겨붙기에 적정 상태의 이 분노는 현실의 모순과 권력의 오만을 날렵하게 찌른다.

    이라영의 분노에 곧잘 공명하는 독자라면 이번 책에서 역시 기대한 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시작은 이 문장들이 품고 있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여성의 이야기를 모른 채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젤다의 글은 한 편도 안 읽고 젤다에 대한 이야기만 가십처럼 소비한다. 아니, 아니야. 젤다의 시각에선 다른 이야기가 있어." 그는 미국의 여러 여성 작가들과 작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약하거나 강한 연결고리로 엮인 세상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시공간을 오가는 그의 분노가 오독되거나 소비되어 온 미국의 여성 작가들과 현재 한국의 약자들 사이에 공통점의 다리를 놓는다.

  • 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우리가 가져보지 못한 그리운 세계"

    <내가 싸우듯이>,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정지돈 장편소설. 여기 실존인물 '정웰링턴'이 있다. 1927년 하와이에서 태어났고, 의학을 전공했으며, 체코의 헤프에서 의사로 일했다. 체코 여성 안나와 결혼했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체코 시민권을 얻었다. 그의 어머니인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인 현앨리스는 미국 스파이로 오인받아 북한에서 처형되었다. 한때 북한에 가길 바랐던 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코 비밀경찰과 협력하던 공산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자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에게 매혹당했다"는 말. 작가 정지돈은 정웰링턴의 삶을 통해 우리가 가져보지 못한 그리운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 보여준다.

    정웰링턴의 삶의 연표를 요약해 기억하는 건 이 소설을 체험하는 정확한 방법은 아닐 듯하다. 정웰링턴이 걸었을 체코의 거리의 추위. "세계가 변한 건가? 내가 변했나?"(9쪽) 이어지는 자문. "당시에는 아무것도 무의미하지 않았다. 모든 행위가 유의미했으며 의미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뜻했고 그것은 영원불변의 법칙이 존재함을 뜻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 (19쪽)로 이어지는 논리의 궤적. "그는 책을 읽으며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체험할 수 있는 어떤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28쪽)라는 문장을 읽으며 '어떤 예감만이 존재하던 시절'에 함께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이 지적인 소설은 정지돈의 글쓰기답게 수많은 사실과 결정적인 허구를 엮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81쪽)을 깨닫는 과정을, 어떤 마무리에 대한 예감을 체험하게 한다.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에 관해 이야기한 책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의 번역가이기도 한 김수환은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추천한다. "내가 늘 신기해하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인간이란 자기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에조차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향수를 지닌 어떤 독자를 위한, 유머와 비감 모두에 매혹되는, 오직 그들에게 꼭 알맞은 소설이 이곳에 도착했다.

  • 부자의 공식
    이정윤 (지은이) | 베가북스 | 2020년 12월 "100억짜리 부자 수업"

    부자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1년에 1억 만들기', '무일푼에서 10억 자산가 되기'와 같은 말을 들을 때면 괜한 반감을 느낀다. 다 부풀려진 광고일 뿐, 빠르게 부자가 되는 방법 같은 건 없다고 체념하게 되는 것.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 이야기를 누가 했는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인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주인공은 20년 동안 원금의 200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슈퍼개미, 이정윤 세무사다. 그는 이 책에서 한술, 아니 몇 술 더 떠 10년 안에 100억 부자가 되자고 말한다. 과연 가능한 일인 걸까?

    우리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기 위해 우선 '부자 공식 G×R'을 알아야 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선 소득성장률(G)과 투자수익률(R)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미래의 부를 결정짓는 데 있어 이 두 값이 절대적이라 말하며 각각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을 부자학, 경제학, 투자학의 세 파트로 나누어 설명한다. '달성하지 못할 것 같지만 죽도록 노력하면 달성 가능할 목표'에서 우리의 부는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통과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책의 내용을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 [세트] 무민 가족과 크리스마스 대소동 + 무민 가족과 마법의 모자 + 무민 골짜기로 가는 길 - 전3권
    토베 얀손 (원작), 이유진 (옮긴이) | 어린이작가정신 | 2020년 12월 "반짝거리는 무민 골짜기로 가는 길"

    무민 탄생 75주년을 맞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재해석한 무민 명작 시리즈. 무민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무민을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하마도 아니고 곰도 아닌 무민 그 자체인 무민.

    <무민 골짜기 이야기>는 토베 얀손의 무민 시리즈 첫 작품인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를 어린이들에게 좀 더 친숙한 그림과 쉬운 글로 다시 만나 보는 작품이다. 무민과 무민 가족이 어떻게 무민 골짜기에 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다. 잃어버린 무민파파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 무민과 무민마마의 모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무민 가족과 마법의 모자>는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그림책이다. 폭풍우가 얼마나 거셌는지, 달의 분화구에 있던 마법사의 모자가 무민 골짜기에 뚝 떨어진다. 이 모자는 무민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이제 무민 골짜기는 마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세 번째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인 <무민 가족과 크리스마스 대소동>은 작가의 무민 연작소설 가운데에서도 단편 일곱 편을 엮은 <보이지 않는 아이>의 「전나무」를 바탕으로 새롭게 꾸민 그림책이다.

    편견 없는 마음과 상냥한 배려심을 가진 무민 가족. 낯선 이도 친구로 만드는 재능을 가진 무민 친구들과 반짝거리는 골짜기에서 한바탕 모험을 꿈꿔보는 겨울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12.312020
  • 하루 한 장 마음챙김
    루이스 L. 헤이 (지은이), 로버트 홀든 (엮은이), 박선령 (옮긴이) | 니들북 | 2021년 1월 "루이스 헤이와 함께 긍정의 1년을!"

    36년 동안 5천만 부나 판매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치유>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루이스 헤이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 치료 전문가일 것이다. 긍정 확언을 통한 영적 성장과 자기 치유의 길을 제시해온 그녀를 세계적 영적 지도자라 부르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은 그녀가 평생 집필한 30권이 넘는 책들 가운데에서 핵심이 되는 것들을 가려 뽑아 만든 루이스 헤이 생전 마지막 기획작이다. 책은 2월 29일을 포함하여,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총 366개 항목의 '하루 한 페이지' 컨셉으로 구성되어 읽는 이들의 부담을 덜어 준다.

    사실 우리 내면의 여러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이 책은 단번에 읽기보다는 기획 의도대로 하루에 하나씩 마음에 새기는 작업이 훨씬 중요하겠다. 책의 기획과 편찬을 맡은 심리학자 로버트 홀든은 단순히 366개의 정수를 모아 놓은 수준을 넘어 1년 내내 균형 잡힌 흐름으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천 방법들을 고루 배치했다고 강조한다. 밑져야 본전이니 매일 아침 일어나 그 날의 내용을 한 번, 아니 세 번 정도 읽어 보면 어떨까. 치유와 긍정의 2021년을 위한, 나의 새해 첫 아주 작은 습관은 바로 이 책이다.

  • 스토리텔링 바이블
    대니얼 조슈아 루빈 (지은이), 이한이 (옮긴이) | 블랙피쉬 | 2020년 12월 "새해에는 제발 잘 쓰게 해주세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이 책을 2021년의 첫 소비로 추천한다. 올해의 목표도 아마 좋은 이야기를 짓는 것일 텐데, 새해가 새로운 영감을 가져오진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다만 기대하는 건 새해의 기운을 핑계 삼은 새로운 방식의 노력이다.

    이 책은 소설, 영화, 연극,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하고 좋은 스토리텔링을 품고 있는 작품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의 원칙을 설명한다. '원칙'이라는 단어가 정붙이기 어려워 보이지만 고루한 이론보다는 적극적인 실전에 가까운 내용이다. 예제와 원칙 설명, 연습 문제의 제안 등 어릴 적 풀었던 학습지가 생각나는 형식인데, 예시 내용들이 흥미롭고 실질적인 팁들을 주기에 전혀 지루하진 않다. 순차대로 완독해도 좋고, 글을 쓰다 막힐 때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읽어도 좋다. 왠지 올해는 대작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을 주는 책이다.

  • 눈의 시
    아주라 다고스티노 (지은이), 에스테파니아 브라보 (그림), 정원정, 무루(박서영) (옮긴이) | 오후의소묘 | 2020년 12월 "눈의 세상에서 선명해지는 건 아무것도 아닌 존재"

    외로운 벤치와 벌거벗은 나무 후면, 화면을 가득 채운 흰 토끼의 얼굴. 토끼는 스노볼 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나란히 걷는 다정한 노부부. 눈 쌓인 풍경 위로 깨달음이 내려 앉는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깨닫는 건 걷는 동안 우리가 함께였다는 것."

    외로운 2020년을 마무리하고 더 나은 2021년을 기다리며 소개하는 그림책. 시적인 그림책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풍경을 널리 알려 온 출판사 오후의소묘가 푸른빛 따뜻한 그림책을 선보인다. 저자인 이탈리아의 시인 아주라 다고스티노는 보이지 않는 것과 작은 것에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눈의 시적인 속성에 주목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섬 위의 주먹>, <할머니의 팡도르> 등을 함께 번역한 정원정, 무루(박서영) 작가가 함께 옮긴 이야기. 겨울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이제 곧 눈이 내릴 거야."

  • 메리 포핀스 (Special Edition)
    패멀라 린던 트래버스 (지은이), 로렌 차일드 (그림), 우순교 (옮긴이) | 시공주니어 | 2020년 12월 "로렌 차일드 콜라주로 만나는 메리 포핀스"

    2000년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 로렌 차일드는 가족과의 첫 극장 나들이를 기억한다. 1964년, 월트디즈니에서 제작한 영화 [메리 포핀스]를 보는 일은 그만큼 '굉장한 사건'이었고, 로렌 차일드의 가족들은 이 영화를 '가족사의 한 부분이 될 만큼' 좋아했다고 한다.

    1934년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는 이후 1988년까지 50년 동안 속편을 쓰게 되는 유모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우산을 타고 하늘을 나는, 아이들과 동화 속 주인공을 만나게도 해주는, 동물과 이야기하는 법까지 알고 있는 괴팍한 유모 '메리 포핀스'에게 아이들은 완전히 현혹된다.

    2018년 로렌 차일드는 원작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를 연상시키는 색상과 패턴의 직물을 활용해 자신의 현대적인 일러스트와 혼합한다. 그렇게 재탄생한 <메리 포핀스>를 통해 우리는 우산을 타고 바람처럼 날아가 버린, 전대미문의 유모와 다시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