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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김해자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2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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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내가 지은 집에는 내가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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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의 시간

시는 아무도 말을 가로채지 않는 대화 같다. 글자에 수많은 얼굴이 비치는 종이거울 같기도 하다. 거울 뒤란에서 잠자고 있던 이름들이 불려 나올 때마다 다시 태어나는 종이거울 안에서, 나는 나무이자 벌목꾼이고 사슴이자 사냥꾼이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공습이 이어지고, 세계가 극단적인 비대칭을 향해 폭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맞아 죽은 자이자 때려눕힌 자이고 독재자이자 야만적인 인류사다. 절망해야 할 이유가 아흔이라면 희망할 근거는 서너조각에 불과했다. 그래서 썼는지도 모른다. 더듬거리며.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시절에 시라니? 그래도 썼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가 아닌 것이 떨어져 나가고 바로 너인 것이 내가 될 때까지. 2023년 늦가을 천안 광덕에서

시의 눈, 벌레의 눈

과거 독재 정권하의 국민교육헌장처럼 강제로 외우는 대신, 실체도 모른 채 우리를 붙드는 이미지가 명멸하는 광고처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각자도생의 국민교육헌장으로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이 구금되고 닦달당하고 있습니다. 물신과 우월함을 조장하는 신흥종교의 우산 아래 내던져지는 동안, 땅과 대기와 바다가 몸부림치고 일상의 모든 부문에서 그 끝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독생대 인류세(獨生代 人類世)를 우리는 통과하고 있습니다. 외따로 떨어져 점으로 존재하는 고독한 인간들의 군상과, 스스로 멸절을 택하는(강요당한) 사람들과 날마다 멸종되고 있는 생명체들이 마지막으로 두드리는 절박한 요청 앞에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용하기까지 한 하찮은 시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호모사피엔스는 언어와 뒷담화 때문에 강력해지고 지구를 지배하는 무소불위의 독불장군이 되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죽이고 이 행성을 파괴하고 멸종시키는 주범이 되어왔던 것은 아닌가, 새삼 언어의 의미와 의무를 떠올리게 됩니다. 시는 언어의 에센스라고들 말합니다. 저자가 따로 없던 역사 이전 시대에, 시는 공동으로 창조하고 같이 향유하는 둥근 원의 노래였습니다. 오랫동안 시는 상처를 받고 기진맥진해서 일어설 힘조차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위로와 치유의 소리였으며, 염원과 발원의 기도이자 응답이었습니다. 발화하며 나오는 소리가 공기를 통과하고 모든 원자를 춤추게 하며 세상 끝까지 도달하는 사라지지 않는 음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심장처럼 박동하는 시구 속 리듬에 귀를 기울이며 우주와 미물과 나와 내 옆의 사람들과 통했습니다. 이미지의 범람으로 실감과 생물의 펄떡거리는 감각이 실종된 이 너무나도 문명화된 세상에서 시는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집에 가자

바쁘고 시끄럽기만 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선 자주 지진이 나고 화산이 폭발했으므로. 살기 위해 내 시대의 한복판으로부터, 익숙한 동지와 친구들에게서조차 멀어졌다. 서울 떠난 지 7년, 낮엔 농사 배우고 식물 탐구하며 밤엔 공부하고 바느질했다. 부르는 곳마다 강의도 다녔다. 기초수급자와 노숙자, 대안학교 학생들과 요양병동 어르신들과 농부와 어부들…. 강의료는 별로 안 줬지만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 시 안 쓰는 시인들이 스승이 되어주었다. 언어와 예술과 희망이란 걸 점차 믿지 못하게 된 내게, 잠자리와 몸빼와 된장국 한 사발에도 정치와 시가 녹아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은둔한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저잣거리에 서 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시가 내게 왔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것들은 늘 멀리 있어서, 다가가는 만큼 멀어지기만 해서, 취해서 우는 대신 노래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시는 내게 현재형의 동사이자, 걸어 다니는 물건. 종이거울 속에 비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받아썼다. 잘못 알아들은 것도 적잖아 부끄럽지만, 성치 않은 머리로 이만큼 받아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나 죽으면 관 속에 무엇을 담고 갈까, 생각하다 별로 가져갈 게 없다는 결론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하난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싸고 가벼운 시집을 덮고 가고 싶다. 쓸쓸하고 낮고 따스한 영혼들에게 이 못난 시집을 바친다. 2015년 여름, 천안 광덕에서

축제

지난날 시는 내게 어렵고 황송한 손님이었다. 그래서 그가 오는 찰나에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다 받아 적지 못했다. 몇 조각 부서진 거품꽃일 뿐인 족적을 내려놓는 지금에 와서야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도 늘 찾아오고 있었던 손님을 환하게 맞고 있다. 시를 쓴 적이 없다. 이제야 시작이다. 병중에 쓰여진 이 어눌한 시집을 일찍 죽어간 동지들과 노동자 그리고 아픈 사람들에게 바친다. 생전에 큰 은혜 입었던 청화스님 열반송으로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此世他世間 去來不相關((이 세상 저 세상 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蒙恩大千界 報恩恨細澗((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 갚음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해자네 점집

또 한 겹의 시간을 뜯어냈다. 갈마드는 대지의 시간 앞에서 나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청맹과니, 암시나 모름시나 잘만 살았다. 사람과 꽃과 나비와 알곡과 대지에 경배하며. 그 모든 계절의 바람과 떨어진 꽃과 주검들이여, 새벽이면 얼음을 깨고 들여다보던 시간의 동공이여, 절뚝거리며 걸어온 그 모든 발길과 발이 닿은 바닥이여, 공짜로 배달된 흰 시간 앞에서, 살아가야 할 날들이 저리 넉넉하고 깨끗하다. 밥과 술 그리고 웃음까지 나눠 먹는 이웃들과 친구들이 이 시들 중 몇 편이라도 듣고 껄껄 웃었으면 좋겠다. 2018년 4월 천안 광덕에서

휴먼필

힘깨나 쓰는 권리봉을 휘두르자는 게 아니라면, 참으로 존엄하고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인권이라는 게 진실로 존재한다면,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생명의 권리가 근원적으로 함께할 때다. 인간에게 진화와 비약 그리고 수직적인 상승이라는 게 있긴 하다면, 1그램 차이도 없는 저마다 목숨의 무게를 볼 수 있을 때다. 이 책에서 필자 모두가 표현하는 바가 바로 그것. 우린 생각한 것을 글로 쓸 수 있는 인간이므로 인간의 권리, 그 너머를 소망하고 꿈꾸는 거다. 배제 속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깃털 하나 차이가 없는 영혼과 삶의 무게를 다는 생명의 저울이 죽음 저편으로 기울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이 겨자씨만 한 존엄성이 살아 숨 쉬게 하자. - 기획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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