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시인의 말
너를 마지막으로 내 청춘은 끝이 났다 말하는 순간, 지상 첫 붉은 열망의 파도가 다시 밀려온다네, 라고 쓴 적이 있다. 글쎄, 지금의 내게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내 곁엔 늘 희망이 있었고, 나는 그 희망의 낡지 않은 처음을 노래하며 젊은 날을 통과해왔다. ……아무쪼록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의 가장 여린 속살이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좋겠다.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었다. 한 3년 시의 아득한 후방을 맴돌았다고나 할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시의 초심(初心)을 만났다. 그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처음 서툴게 시작하는 자의 심정을 다시 갖게 된 것이 나는 기쁘다.
1999년 2월
유하
개정판 시인의 말
오랫동안 시를 떠나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만, 떠나온 길이 아득하긴 하다. 세기말의 끝에서 출간했던 시집을 다시 펴낸다. 덕분에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내 안의 시인과 재회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시인의 나라 백성으로 가장 충실하게 살아갈 때 이 시집을 썼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백성의 충실함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갑고 서글펐다.
긴 세월, 한편에 놓아두었던 기타를 튜닝하듯 여기의 여러 시편들을 다시 만지고 손질해본다. 조금이나마 시의 울림통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출간의 기회를 마련해준 문학동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2년 9월
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