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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박범신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6년,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 (처녀자리)

직업:소설가 교수

최근작
2017년 11월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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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겨울강 하늬바람

누구나 가슴 속엔 숨은 악마가 있다. 상황에 따라 그 마성은 극대화되기도 하고 극소화되기고 한다. 문제는 반복이다. 역사적, 정치적 상황 변화가 언제나 희망은 아니다.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온 것들이 야비한 굴절과 전술적 침식을 통해 절망으로 바뀌는 경우는 허다하다. 1980년에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고산자

나는 늘 궁금했다. 고산자 김정호는 누구일까. 이 소설은 그런저런 오랜 궁금증에 대한 나만의 대답이다. 예컨대 '독도'의 경우, 술에 취한 난고 김병연, 일명 김삿갓이 삿대질을 하며 그를 다잡는 장면에서 역사의 끊어진 다리가 비로소 봉합된다. 기록이 빠뜨린 걸 작가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통찰력을 통합시켜 극복하고자 애쓴 결과물인 셈인데, 좋은 '물건'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소설을 쓰면서,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했고, 그래서 세상과 계속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뼈저리게 지켜온 강토에서, 나와 우리가 지금 계속 이어 살고 있다는 큰 위로와 자긍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어 행복했었다는 사실은 밝혀두고 싶다.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누구보다 먼저 나를 깊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운 내가 온다 : 터키, 살며 사랑하며 운명을 만나며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을 통해 나로부터 떠났던 나를 맞아들여 일체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새로운 생의 에너지를 얻는다. 나의 상처를 용서해 떠나보내고, 나의 용열함과 쩨쩨함도 넘어설 수 있으며, 분노와 소외도 이길 수 있다. 단지 한 스푼의 추억만이 여행의 선물이랄 수는 없다.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떠나간 이역의 길에서 만난 바람, 햇빛, 그리고 사람, 말씀은 우리의 핏속에 축적된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변화시킨다.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는 발소리도 듣게 만든다. 사랑은 찾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사랑은 내 안에 깃들어, 생의 본원적인 에너지로 둥지를 트는 것이다. 깊고 넓어지기 깊고 넓어지는 길은 여행에서 흔히 만난다. 길은 길로 이어져 끝이 없다. 소란스런 욕망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 우리는 꿈꾸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욕망으로의 목표만을 강화해 끝내 그것의 노예가 될 뿐이다. 고요하게 걸어가지만 영혼의 사방을 열고, 좁은 길로 흐르더라도 드넓은 대로의 소통을 꿈꾸는 것이 여행의 참된 생산성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세계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변화이다. 나를 혁명하는 것이 세계의 혁명이다. 제3의 눈 가지기 티베트불교 사원에 가면 사원 꼭대기에 커다랗게 눈이 그려져 있는 걸 본다. 이것은 영혼을 보는 제3의 눈이다. 제3의 눈이 없으면, 아무리 부자가 되고 지위가 높아져도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말기 때문에 삶의 품격은 비천한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자본주의 틀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딜레마다. 그러니, 제3의 눈을 갖는 것은 최종적으로 나를 찾는 일과 동의어가 된다. 제3의 눈을 가지려면, 다시 세 개의 눈이 또 필요하다. 하나는 사물의 외형을 보는‘ 사실의 눈’이고, 둘은 나의 세계관을 형성한 총체로서의 ‘기억의 눈’이며 셋은‘상상력의 눈’이다.

깨소금과 옥떨메

『깨소금과 옥떨메』는 아주 오래전, 내가 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끝물에 썼다. 곧 베스트셀러가 됐고, 당시의 많은 십대들이 너나없이 열광하며 읽고 아껴주었던 소설이다. 지금도 초로의 얼굴을 한 중년부인들을 길에서 만나거나 하면 제일 먼저 곧잘 ‘깨소금과 옥떨메’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 초로의 부인들 얼굴은 한결같이 어떤 판타지에 둘러싸인 듯, 환하고 환한 표정이다. 이 소설을 쓰고 나서 나는 곧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가난하지만 햇빛처럼 환하던 아이들과 함께 나도 아이들이 되어 보냈던 시절이 행복했었는지, 전업 작가로서 마음속으로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며 매일매일 오로지 소설 쓰기에만 매달려 산 그 이후가 행복했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얼른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그 시절 담임했던 아이들이 곧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폐간된 학생잡지 『여학생』에 연재했는데, 매달 잡지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듣고 그 시대 아이들만 쓰던 ‘은어’를 취재해 모으고 하던 일이 상기도 눈에 선하다. 나 혼자 썼다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썼다는 느낌이 든다. 오래 묵은 책이라 재출간을 망설였으나,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그런저런 추억이 많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햇빛 같던 소녀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만약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십대라면, 당신의 어머니가 이런 학창시절을 보내냈다고 여기면 된다. 다시 읽어보았더니, 가난했지만 봄꽃처럼 눈부시던, 샘물처럼 맑던 그 시절의 아이들이 너무도 그립다. 당신의 학창시절이 더 충만한가, 이 소설에 그려진 당신 어머니의 학창시절이 더 충만한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십대가 간직한 영혼의 순결성과 그 맑고 환한 빛은 여전하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 당신의 영혼이 이 소설 속의 소녀들 같았으면 참 좋겠다. 삼월의 햇빛 같은. 사월의 봄꽃 같은. 아니 마르지 않고 언제나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우물 같은. ― 2009년 박범신 '작가 후기'

나마스테

곧 봄이 와서 천지에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났는데, 그러나 어떤 때 소스라쳐 돌아보면 죽은 그들이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날엔 하루종일 히말라야 설산 너머, 티베트의 광야에 우뚝 서 있다는 만년빙하의 얼음산 카일라스가 그리웠다. 한바퀴 오체투지로 산돌이 하고 나면 삶과 죽음의 경계도 없고, 부자와 빈자의 층하도 없고, 문명과 반문명의 간격도 없는 곳에서 살게 된다는. 욕망에 따른 온갖 번뇌 망상과 원죄가 다 씻겨져, 마침내 다르마타의 눈부신 흰빛과 같은 순정한 본성만 떠오르게 된다는, 영혼의 심지, 그 카일라스.

남자들, 쓸쓸하다

여기 모아놓은 원고의 반 이상은 지난여름까지 한 여성지에 연재했던 글이다. 우선 독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걸 전제하고 썼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여성 독자들을 전제했으니 여성의 비위에 잘 맞춰 쓰는 게 도리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으나 처음부터 나는 그럴 마음이 별로 없었다. 여성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여성을 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신

사랑에서, 주호백과 닮은 당신, 나는 그러나 정염과 슬픔 사이의 골짜기를 낮은 포복으로 갈팡질팡 여기까지 왔네. 사랑의 끝엔 무엇이 있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그야, 당연히 사랑이 있지!” 당신은 담담하게 대답했어. 내가 한없이 비루하게 느껴졌던 그 순간, 나는 이 소설의 작은 뼈 하나를 얻었다네. 사랑의 지속을 믿지 않는 남자 곁에서 그것의 영원성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오랜 당신, 독자들에게 진솔하게 허락을 구하면서, 나이 일흔에 쓴 이 소설을 부끄럽지만 나의 ‘당신’에게 주느니, 부디 순하고 기쁘게 받아주길! 2015년 10월 내 생일 저녁에 - 헌사

더러운 책상

나는 작가보다 예인(藝人)이라 불릴 때가 훨씬 좋다. 이 소설은 예인이라 불리고 싶은 내게 아주 특별하다. 내가 평생 가장 사랑했고, 평생 가장 증오했던, 그의 젊은 목숨에 대한 가감 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지만 죽지 않는다. 결코 늙지 않는 짐승이 그에게 깃들여 있으므로, 우주에서 늑대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예민하게 수선하면서, 그 끔찍한 상처의 내벽을 따라, 오늘도 그는 영원으로 가려고 화류항 젖은 길을 끝없이 흐른다. 불과 열여섯 살의 그가 너무도 또렷이 보았던 것처럼 세계는 지금 광기에 휩싸여 있다. 부디 그의 비명 소리에 귀 기올여주길. 당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늙지 않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주길. 2003년 4월 불빛 가득한 뜰에서

상황은 시시때때 변할지언정 역사는 반복되고 개인의 삶 또한 반복된다. 문제는 반복되는 것조차 반복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위기의식에 있다. 청년작가 시절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위기로 간주, 항상 위태롭게 보고 가파르게 부딪치며 살고 싶다. 작가는 위험한 짐승이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

(우리 문학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질문은 이 책에 대고 하면 된다. 여기에 우리 소설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질문과 암시, 그리고 불온한 욕망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소설문학의 중심을 꿰뚫는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고 또한 오랫동안 유효할 것이다. '젊은 그들'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우리 소설문학의 아침을 맞고 있으니까.

비우니 향기롭다

그리운 '저기'와 비천한 '여기'의 가파른 단층에 사다리를 놓고 싶은 열망을 버리는 것은 인생에 대한 유기이자 죄일 것이다. 히말라야가, 신과 우주로 나아가는 길을 잊고 있던 내게, 죽비로 내려쳐서, 그것을 가열차게 깨닫도록 해주었다.

비즈니스

서울에서 이른 바 ‘강남(江南)’과 ‘강북(江北)’의 경제 문화적 편차는 이미 정상 수준을 벗어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려온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던가. 어떤 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잘살게 됐으면서 예전보다 오히려 훨씬 더 가난해졌다고 느낀다. 서울만 그런 게 아니다. 보편적인 현상이다. 전국 어느 도시를 가든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는 양지와 음지처럼 선연히 분리, 계급화된다. 사람들은 그래서 오늘도 ‘신시가지’만을 향해 기능적으로 뚫린 대로를 불철주야 달려간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꿈이며 이상이다. (……) 사실, 이런 식의 현실 비판적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 ‘문학판’에서도 거의 실종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진행형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삶의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문학판’에서 오히려 유기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래도 좋은가. 우리네 삶을 몰강스럽게 옥죄는 전 세계적 ‘자본의 폭력성’에 대해, 문학은 여전히, 그리고 끈질기게 발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봄 나는 ‘갈망의 삼부작’으로 명명한 마지막 작품 『은교』를 펴낸 바 있다. 최근작 『촐라체』, 『고산자』, 『은교』에서는 삶의 본원이라 할 존재론적 슬픔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어스레한 골방에서 존재론적 슬픔과 만나고 있을 때에도 우리를 둘러싼 반인간적 세계 구조는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었다. 피 튀기는 ‘저잣거리’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내가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응은 중국에서 먼저 왔고, 또 뜨거웠다. 10월엔 상해에 다녀오기도 했다. 『소설계』 편집자는 뜨겁게 손을 잡아주었다. 마치 동지처럼. (……) 연재 지면을 마련하고 동시에 출판까지 함으로써, 비로소 우리와 중국문학이 육친의 마음으로 직접 스킨십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자음과모음』, 중국 『소설계』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것이 어쩌다 한 번 스쳐 지나는 사례가 되지 않기를 진실로 바라면서.

빈방

상상하고 또 사실적으로 느끼거니와, 내 몸 안엔 늙지 않는 예민하고 포악한 짐승이 살고 있다. 그놈은 날카롭고 긴 가시발톱을 수없이 갖고 있어서 내가 쓰지 않으면 생살을 찢고 나오려고 지랄발광을 하니 쓸 수밖에 없다. 그놈을 내 뜻에 맞게 순치시켜 쓰지 않고도 평화롭게 춤추며 놀 날을 기다려보지만 죽기 전에 과연 그런 꿈같은 날들이 올는지는 모르겠다. 연초록의 숲이 날로 짙어져 검은빛이 되고 있다. 울울창창 뻗어나는 숲을 보고 있으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내 몸속의 짐승 같아 무섭다.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

나는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문학이 싸움보다 사랑인 줄 알았고 삶이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으며 감히 날이 갈수록 보다 더 향기로워지는 인간의 길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밤새 뜰에 모닥불 피워놓고 젊은 그들과 술잔 돌리면서 가장 황홀한 마지막 밤을 지새울 때, 옳거니, 오래전 제 몸주를 떠났을 수많은 별빛들이 산지사방 쏟아져 내리는구나. 젊은 그들과 강강술래로 손에 손잡고 모닥불 싸고돌며 감히 통 크게 혼잣말로 소리쳐보는 것은 '영원'이다. 인간으로 아름답게 사는 길을 내게 보여준 한터산방의 모든 우주가 내 안에서 지금껏 떠나지 않고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산다는 것은

‘산다는 것은’ 왜 오랜 병인가. 오욕칠정(五慾七情) 때문이다. 감각기관들이 느끼는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정(情)이야말로 모든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빛깔이고 도덕률(道德律)이라 할 것이다. 인생관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람이 오욕칠정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가느냐는 기준에 불과하다. 여기 모은 글들은 우리가 시간을 통해 만나는 ‘오랜 병’에 관한 나의 내밀한 ‘혼잣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랜 병은 오랜 꿈이다. 당신이 단지 목표에 불과한 것들을 꿈이라고 착각하면서 숨 가쁜 자본주의적 시간 속으로 내달릴 때, 우리들의 오랜 꿈은, 더 깊고 푸른 갈망은, 상복과 같은 검은 망토를 둘러쓰고 우리들의 등 뒤에 따라와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러니 뒤돌아보라. 당신이 혹시 온갖 핑계로 버리고 왔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당신이 거기 있지 않은가. 이 팍팍한 세상에서, 이 질주의 가파른 레이스에서 진실로 삶이 충만해지는 길을, 등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작가라는 이름의 운명으로 산 지 올해 딱 삼십 년째입니다. 아시다시피 산문은 촘촘한 논리의 그물망에 포위되어 이지요. 나의 '시인'은 그래서 전사의 갑옷에 횡경막이 눌려 오랫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지냈습니다. 이제 부끄럽지만 작가 나이 이립(而立)의 서른을 자축하며, 더도 말고 오늘 하루, 나의 '시인'이 갑옷을 뚫고 나와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얼쑤절쑤 춤 한번 추고 가는 것, 너그러이 용허새주시지요. 새천년의 봄빛이 저리도 깊은걸요. 2003년 봄, 북악 아래에서

소소한 풍경

(……) 생의 어느 작은 틈은 여전히 검푸른 어둠에 싸여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비밀’이다. 작가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인물들이 최종적으로 그리워한 지점도 그럴 것이다. 오아시스가 아름다운 것은 사막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종족에게 그것이 비밀이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읽고 나선 부디 그들을 기억에서 지워주기 바란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졌을지 모르는 불멸에의 꿈도 그렇다. 감히 ‘비밀’의 봉인을 열고자 한 나에게 죄 있을진저.

수요일은 모차르트를 듣는다

1987년 초판 발행했던 이 책은 '박범신 문학전집'으로 치면 15권째이다. 주관과 객관 사이의 가파른 틈에 끼여 시시때때로 비명을 지르면서, 가시방석 같았던 내적 분열을 소설쓰기의 '피어린 노동'으로 막아내려고 했던 1980년대가 턱밑으로 쫓아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머지않아 '박범신 문학전집'도 1990년대를 맞이하게 될 터이다. 참, 별것이 다 나를 쫓아 들어온다. 시간순서에 따른 발행방법을 바꾸자고 해볼까. 조금 실성한 듯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서재 창 너머 북악의 숲으로 가을빛이 지금, 날렵한 '도적'처럼 스며들고 있는 게 보인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1

희망이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조국은 동강나 있고,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더 끈질기고 열렬하게, 희망은 계속된다. 나무들이 각자 부러지고 뽑히고 죽어가더라도 또다른 새로운 나무들이 나고, 자라고, 우거짐으로써 숲은 영원하다는 원리가 역사의 희망이다. 숲은 잠드는 법이 없다. ...우리가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은 영원히 잠들지 않는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2

희망이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조국은 동강나 있고,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더 끈질기고 열렬하게, 희망은 계속된다. 나무들이 각자 부러지고 뽑히고 죽어가더라도 또다른 새로운 나무들이 나고, 자라고, 우거짐으로써 숲은 영원하다는 원리가 역사의 희망이다. 숲은 잠드는 법이 없다. ...우리가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은 영원히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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