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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박민정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5년, 대한민국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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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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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나를 버린 아버지의 조국이다, 누군가의 결연한 말을 듣는데 그 말이 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싫어하는 단어가 두 개 들어 있다. 아버지, 조국. 애초에 「행복의 과학」은 이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영원의 법」 「신비의 법」 「UFO학원의 비밀」, 이 크리피한 필름을 리뷰하는 시네필들의 좌담을 몇 번이고 돌려 들었다. 결국 어느 겨울날, 홋카이도 오타루역 앞에서 〈幸福の科?·Happy Science〉 지부를 발견한다. 내가 7년째 글쓰기 수업을 하러 가는 산본역 앞에 있는 왕국회관을 볼 때의 기분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들이 천천히 합쳐져 이상한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졌다. 초고를 친구들과 돌려 보며, ‘이야기’와 ‘고백’ 중 어떤 뉘앙스가 적합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일본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른다. 그건 자랑도 아니고 자책도 아니다. 친구들은 실제로 ‘행복실현당’이 존재하지만 그들이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의석을 낸 적은 없다는 사실, 1991년 압구정동에 맥도날드 1호점은 존재했지만 소설에서와 같은 살인 사건은 없었다는 사실, 어떤 이의 성 기노시타(木下)는 박(朴)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나 또 어떤 이의 성 기노시타는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 등을 흥미로워했다. 그러나 몇 계절을 지나는 동안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하나’라는 인물이다. 나를 버린 아버지의 조국이다,라는 말이 주는 매혹 덕분에 ‘현지처’의 딸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내 소설이라는 물건이 나 자신의 지극한 취미이거나 과업을 넘어 과연 세상에 필요한 것일까에 대해 고민해왔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초고를 완성하는 단계에서 이 글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른다. 나의 고민은 그보다 훨씬 검소한 단계에서 지독하게 깊어졌다. 어쩌면 나약한 인간의 정념일 뿐이거나 그 현학적 취미의 전시가 아닐까. 전부 맞다. 그러나 이제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확신한다. 필요하다. 내 소설 같은 소설도 세상에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선언에 앞서 필요한 것은 쓰는 행위를 지속하는 자신이고, 쓰는 행위가 물건으로 가능하기까지 만들어지는 섬세한 조건들이다. 지면이 겨우 주어질 때마다 나는 그것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선언이란 언젠가 겸연쩍게 기적에 굴복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확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의 여러 분들께 감사드린다.

모르그 디오라마

지금은 이미 그 이후다, 여기는 종말 이후라고 생각하는 건 나이브하지만 매혹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반쯤엔 그런 정서가 깔려 있다. 세기말의 종말론에 심취했던 1999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피토레스크’, 언제나 구글 페이지에서 자료를 찾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지금 우리는 이미 종말 이후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불법 촬영 따위가 인간의 존엄을 영영 파괴할 수는 없으리라고 믿지만(그러려고 하지만) 간혹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끝난 거 아닌가, 이만하면. 이 소설은 누군가 플래시-빛을 터뜨릴 때, 자기 삶에서 빛이 영영 꺼져가던 순간에 대해서 종말론적 우화로 말하기를 즐겨 했던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자기가 잠깐 죽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범죄의 피해자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끝없는 자기분석을 통해서. 상담사와의 대담을 통해서. 결코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던 말을 비로소 꺼내는 결말이 내겐 중요했다. 불법 촬영물이 돌아다니는 지금, 자기 인생의 지옥과 대면하는 사람의 이야기말로 진정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아닌가. 나는 그렇게 믿었다. 믿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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