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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김원우

출생:1947년 (양자리)

직업:소설가

기타:경북대 영문과와 서강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최근작
2024년 4월 <맏언니>

무기질 청년

어떤 장르라도 그럴 테지만, '근대'나 '현대'라는 관형사가 붙어야 그 어의가 또렷해지는 '소설'에서 과장이 금물임은 굳이 강조할 것까지도 없는 문학적 사안이다. 감히 등단 이후부터 '과장'을 의식함ㄴ서 소슬 쓰기에 매달렸다면 아지곧 철이 덜 들어서 좀 까부는 발언이 될 테지만, 그것을 경계하면서 내가 보고 들은 여러 생활 세계의 면면을 곡진하게 옮겨보려고 애썼음은 분명하다. 미진한 대목들이 즐비한 중단편들이긴 해도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당대으니 증언들에 나의 소설관이 편린으로나마 만져지는 것이 나로서는 다행스럽다.

부부의 초상

어떻게 읽힐지 알 수 없는 바이지만, 이 졸작의 모티브는 ‘할말’의 표면에 누누이 밝혀져 있는 대로 말 많은 이 시대의 생활 현장에서 ‘말의 실가’라도 한번쯤 저울질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생업 중에서도 말을 많이 하는 부류를 주목하고(더불어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도), 그들이 평소에 말을 얼마나 혹사시키는지 또 허랑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나 거짓말을 마구 쏟아내면서도 평생토록 얼마나 지멋대로 호의호식하는지, 죽을 임시에까지 지가 무슨 말을 해왔는지, 또 하고 있는지를 반성할 머리가 없는 여러 잘난 인간들의 그 한심한 면면에 역정을 일삼는 내 천성의 앙앙불락을 행간에다 심어두었다. (……) 더불어 지겨운 채로나마 너무나 완강하게 꼬박꼬박 닥치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업신여기거나, 그것으로부터의 무작정 일탈을 일삼는, 흡사 ‘함부로 쏘아대는 화살’ 같은 여러 ‘뛰어난’ 소설/서사 장르가 여전히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 상투적인/기고만장한 ‘현실’의 운영 주체들인 그 작태/제도조차 아직도 내게는 무슨 귀신의 횡포로 다가온다. 실제로도 오늘날의 ‘현실’은 너무 거창하고 비대해져서 허황한 말이 되어 있다. 그것을 제대로 그리겠다면 만용이거나 헛소리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영혼.환상’ 따위도 내 안목에는 너무 난해해서 점점 무르춤해진다.

산책자의 눈길

장르마다의 독과점 체제가 막강해서 이 땅에서는 이런 장르 (감각) 미달의 글들이 치지도외의 본보기 감이라는 것도 웬만큼은 알고 있다. 그런 풍토야말로 문학의 제도적 왜곡상일 수 있고, 그것들의 총합이 한글 언어권의 문학적 전통이자 역사적 문맥이다. 일부러 까탈을 부려서가 아니라 그런저런 맥락을 여투느라고, 내 소심한 성정에 떠밀려 이때껏 소설 이외의 장르로 한 권의 책을 묶기는 한사코 사양해왔다. 이제 그 금기를 깨고 말았으니 앞으로는 장르 불명의 글들을 기량껏 파고들어서 (남들이 감돌로 값을 쳐주거나 말거나) 버력이나마 한두 개 건져내볼까 하는 뜻밖의 생병이 들었다.

숨어 사는 즐거움

조선의 안티테제 허균의 마음 조선조는 유교라는 이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거대한 사유의 바다였다. 주린 배를 끌어안고서도 눈에 불을 켜고 자아 인식, 나아가서 도덕의 최고선으로서의 자아실현을 고집하는 무서운 엄숙과 자부심 앞에서는 수많은 사유의 집적을 낳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유물이나 유적보다 찬란히 빛나는 오벨리스크(기념탑)이자 파라오(큰집)에 값한다. 선집(選集).문집(文集).휘집(彙集).실록(實錄) 등의 형식을 빌린 그 숱한 글들은 한문으로 쓰여진 기록물이긴 해도 조선조가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했다는 확실한 증빙 자료이다. 한편으로 아무리 전형적인 엄숙주의 아래서 질식할 것 같은 유교 사회라 할지라도 숨통을 틔어주는 혁신 사상은 어차피 도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이른바 안티테제로서 사유의 또 다른 마련이다. 그것은 이른바 안티테제로서 사유의 또 다른 미덕이다. 환기 장치로서의 그런 사유 양식, 곧 혁신 사상이 여러 불비한 조건들 때문에 발붙일 땅을 찾지 못할 때 그 사회는 붕괴하고 만다. 국문학사상 최초의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예교라는 원시 유교의 실천 강령만을 씨가 닳도록 쓰다듬어온 따분한 조선조 유교 사회에서 혁신 사상의 선각자였음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넓은 시가 자체가 안티테제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홍길동전』이 없었다면 조선조는 내일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원시 유교 사상이 철저히 지배한 고리삭은 왕조였다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선조는 그처럼 보수 지향적 측면이 여실했던 폐쇄 사회였다. 그에 대한 도도한 반기가 실학 사상의 대두였다. 불행하게도 실학 사상은 어떤 소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는데, 그것의 실증적 국면을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이 허균이었다. 그 구체적인 실물은 『홍길동전』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알다시피 『홍길동전』은 이상향 유구국(琉球國)을 건설하기까지의 의적(義賊)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썼을 허균의 복잡한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가 고집불통의 조선조 유교 사회에 얼마나 염증을 내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혁명가상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는 이해할 수 있다. 허균의 혁신 사상은 실로 천의무봉이다. 우선 숭불 자체가 탄핵의 대상이었던 유교 사회에서 허균이 불교에 깊이 경도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의 비범한 개혁 사상을 웅변하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 독실한 불교 신앙 때문에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면서도 늠름했다는 허균이 도교 사상, 나아가서 은둔 사상 및 신선 사상에 심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허균은 치세 전반에 대한 파천황의 개혁 이론을 주저 없이 개진한다. 곧 그는 관불이신(官不移身)을 금과옥조로 섬기는 양반 사회에서 신분 계급의 타파와 적서(嫡庶)를 구별 않는 과감한 인재 등용까지 내놓는다. 관구자부(官久自富)에 연연하는 당시의 지배 계급 및 그 제도적 모순에 철퇴를 때리는 혁명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가 전개한 부국강병책과 붕당배척론은 비록 새로운 내정 개혁책은 아니라 할지라도 뒤이어 일어난 실학 사상의 비조로서 손색이 없는 경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호학(好學)의 선비답게 천주교의 천리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일찌감치 수렴하여 새로운 문물 및 서학(西學) 이론에까지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허균은 아웃사이더였다. 아웃사이더는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제도의 포폄을 주관하는 선각자이다. 아웃사이더는 어느 시대라도 질시와 핍박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어떤 막강한 기득권도 부정하지만 그의 이데아는 흔들림이 없다. 허균이 바로 그런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파란 많은 한평생은 그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도구였을 뿐이다. 실천 없는 사유의 세계를 거침없이 질타한 허균의 쟁쟁한 육성은 빡빡하고 시난고난했던 조선조의 각성제였다. 허균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은둔 사상의 실천적 국면을 조리정연하게 편찬한 『한정록』은 그의 철저한 아웃사이더 정신의 산물이다. 이 책은 그의 나이 42세 때, 그로서는 극도로 불우한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틈틈이 중국의 고서들을 보면서 예전 선비들의 한적한 삶의 모습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들을 손수 가려 편집한, 일종의 독서노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세속을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 중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와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의 일화, 그리고 벼슬을 물러난 뒤 한가롭게 살다간 이야기, 산천을 두루 보아 정신을 수양하는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룬 글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관한 희귀한 정보도 읽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동양의 유구한 역사상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과 저서들 가운데서 동양적 사고의 진수라 할 만한 일화, 잠언,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값진 책이라 할 수 있다. 분주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성찰의 계기를 가져다 줄 것이며,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 소나기처럼 가슴 상쾌한 청량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숨어사는 즐거움』은 허균의 『한정록』을 대본으로 편자 나름대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엮은 책이다. 괜히 현대적 감각 운운하며 손대다가 원작이 주는 한문의 맛을 탕감하는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자만 보아도 지레 염증을 내고 책을 덮어버리는 요즈음의 세태를 감안하여, 가능한 한 읽기 쉽게 한글로 푸는 작업을 해보았다. 그리고 원저에서 요즘 정서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든지 복잡하고 번쇄한 고사?일화 등은 나름대로 추려내는 작업을 거쳤음을 미리 밝혀둔다.

짐승의 시간

얼핏 드러나 있는 대로 <짐승의 시간>은 이 땅의 정치 기상도가 경색 일변도로 치닫던 한때의 서울의 풍속도이다. 따라서 그즈음 내가 보고 듣고 몸소 겪었던 여러 직간접의 경험을 한몫에 쓸어담아 보려는 내 작의는 분명했기 때문에, 그 성취 정도야 어찌 되었든, 그 당시의 일빈적인 '젊은 의식'만큼은 어떤 가식이나 분식도 스스로 뿌리친 날것의 상태로 그려져 있다. 물론 그 때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기류 전반을 직시하는 한 연극학도의 시각은 반세속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대로의 한계는 여실하다. 그렇긴 해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총체적 성격이 그때 이미 노란 싹수를 보이고 있었다는 예단을 곧이곧대로 토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육체적 구체성은 나름대로 엄연하며, 바로 이런 의미 때문에라도 이 작품은 내 하찮은 문학세계의 원형(原型)에 값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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