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도화가 권력의 대등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 반해, 제도화의 주체는 정치라는 점, 빈곤,불평등,불안이 만연하면서, 한국 정치가 동원할 수 있는 잠재된 채 조직되지 않은 방대한 계급적 자원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애초부터 경로 의존성을 상정할 수 없는 '부재의 상황'이란 오히려 제도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치적 이니시어티브가 작동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일 수 있다는 점 등을 예민하게 포착해야 한다.
노동당 정치의 산역사이며 대모격인 바바라 카슬은 정치인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고 단언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펴낸 회고록과 일기, 전기, 자서전 등이 없었다면 그나마 이 책은 더욱 부실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기록의 보고의 나라 영국, 그 정치의 편린이나마 엿보면서 나는 내내 활용할 만한 기록이 별로 없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록할 만한 정치, 그리고 하루의 정치현장을 뒤로하고 매일 밤 외롭게 책상 앞에서 그 날의 정치를 끊임없이 회고해내는 정치인들이 있는 나라의 정치를 꿈꾸듯 상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