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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한만수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충청북도 영동

직업:소설가

최근작
2017년 11월 <우리 동네 소통령 선거>

한만수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은행과 보험회사를 17년 동안 다니는 틈틈이 습작을 하다 1990년부터 무작정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섰다. 월간 <한국시>에 시 ?억새풀?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베스트셀러 시집 <너>를 비롯하여 <백수 블루스> 등 5권의 시집과 장편소설 <파두>, <천득이> 등 120여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최근 소설 창작의 길잡이 책인 <소설 작법의 정석>을 출간했다.
2014년 12월에는 12년 6개월 동안 집필한 대하장편소설 <금강>(전15권)을 완간했다. <금강>은 우리나라 최초로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였으며, 동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그리고 물가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이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경희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학하다 중단했다.  

출간도서모두보기
2004년 제5회 무영문학상 <하루>
2003년 제9회 실천문학 신인상 <하루>

<금강 1> - 2014년 1월  더보기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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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권의 작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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