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톤의 CEO가 쓴 책이라고 하니 감이 확 오지 않는다. 600만 달러, 아니 600조 원의 사나이라고 해 두면 어떨까. 그렇다, 블랙스톤은 그 어마어마한 돈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그룹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블랙스톤의 창업자이자 수장인 슈워츠먼이 직접 쓴 책으로, 지난 인생을 회고하며 경영과 투자의 원칙을 함께 전한다. 어떤 경우에도 고객의 돈을 잃지 않겠다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득점보다는 실점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그것이 돈이 걸린 투자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 이 책을 투자서로 읽었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특히 주식 투자자들의 기대가 그러했을 터다. 그렇지만 이 위대한 투자가의 자서전은 경영의 바이블로도 손색이 없다. 창업, 채용, 투자, 인수합병, 거래와 협상 등 경영의 전반은 물론 리더십, 자선 활동, 기업 승계 등 경영자로서의 철학까지, 성공과 실패, 갈등과 해소의 드라마 속에 모두 녹여 냈다. 이야기의 생생함은 마치 그의 오래전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월스트리트의 훌륭한 동료들이 조연으로, 비욘세와 제이 지가 카메오로 출연하고 슈워츠먼이 각본, 연출, 주연을 도맡은 이 책은 좀처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한 편의 금융 영화다.
- 경영 MD 홍성원
이 책의 첫 문장
1987년 4월 MIT의 연기금 운용 팀을 만나러 보스턴으로 날아갔다. 당시 나는 블랙스톤 제1호 펀드의 투자금을 모으려고 애쓰던 중이었다.
이 책의 한 문장
순환 주기의 바닥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경우든 간에 그 바닥을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일 수 있다. ...바닥에 투자한다고 해도 상당 기간 동안에는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자산 가치는 경제가 성장 동력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적절한 시점에 자산을 매수하는 방법은 시장이 회복하기 시작해서 처음 나타나는 10~15퍼센트 성장은 포기한 다음에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던걸까. 주희는 생각했다. (42쪽) 여행 중 주희는 즐거웠고, 그래서 뉴올리언스의 축제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싸구려 자개와 구슬을 잔뜩 엮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사방에 터지는 핸드폰 카메라 플래시에 눈이 동그래져 어리둥절하게' 서있던 주희의 모습. 가슴을 보여달라고(show your tits!) 외치는 군중의 앞에 놀라서 선 주희의 얼굴이 아시안 창녀(asian slut)라는 제목을 달고 포르노 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다. (<세실, 주희>) 박민정의 소설은 분노를 앞에 두고도, 들끓는 대신 잠시 멈추어 고민하게 한다. "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slut이 아닙니다." 자신의 영상을 내려 달라고 쓰는 주희의 메일,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면 이 일은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을까. 뉴올리언스의 뒷골목에서 소녀상이 놓인 명동의 대규모 집회까지 놓인 참회를 향한 길.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걸어 세실에게 제 가족의 역사를 직면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2018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세실, 주희>는 이 난감한 고민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좋아하는 여자를 몰래 사진찍고, 그의 pc통신 아이디를 해킹한 적이 있는 오빠. 나는 그런 오빠와 오빠의 '보물섬'에서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한다. (<바비의 분위기>)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아온 고모의 자식으로 할머니의 집에 얹혀 살며 수진 언니가 경험했을 박대, 그럼에도 수진 언니는 할머니의 장례에서 눈물을 흘린다. (<신세이다이 가옥>) "장희는 의사랑 결혼해서 잘 산다니 다행이고"(140쪽)이라고 말하면 과거의 버림받은 기억이 그에게 남겼을 상흔은 없던 일이 되는가. IMF와, 486 컴퓨터와, 고덕동과 둔촌동의 차이와, 후암동 집의 쇠냄새를 엮어, 박민정이 정확한 지리적 배경, 정확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 촘촘하게 구현한 '필연적인' 혐오들은 그 '어쩔 수 없음'의 영역에 우리를 던져 놓고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의 어쩔 수 없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분노하는 대신 깊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 "그는 이 대결을 손쉽게 마무리하는 대신, 소설이 끝나고도 해소되지 않는 질문을 남겨두는데, 이는 소설이 끝나도 우리의 현실은 계속 이어진다는 당연한 사실 때문이리라." 라고 시인 황인찬은 말했다. 박민정이 묘파한 우리의 현실은 아직 그곳에 놓여 있다.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작 등이 수록된 박민정 소설집. 당혹스러운 얼굴을 한 채, 피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맞이한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첫 문장
115cm, 15kg RH+A형. 양안 1.2.
이 책의 한 문장
몇 번이고 주변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했으나 번번이 무시당했다는 이야기, 그녀의 약혼자가 보란 듯이 학교로 날마다 그녀를 만나러 온다는 이야기...... 오빠가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유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밖에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내 햄스터는 어디로 갔을까? 쓸쓸하게 묻던 오빠의 모습을 유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약혼자가 누구에게 보란듯이 학교로 온다는 말이야? 오빠, 정신 차려. 그녀는 오빠에게 보란 듯이 살고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로서 농인 세계와 청인 세계의 경계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온 이길보라 감독. 몸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부모의 영향으로 모르면 일단 해보고 가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두고 살았다. "괜찮아, 경험." 부모로부터 항상 들어온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보고 경험해왔다. 그중,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 유학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 시간의 기록을 이 책에 실었다.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 네덜란드라고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을 비롯한 구별짓기가 존재하지만,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저자는 그곳으로 가서 여러 국적의 예술인들과 함께 공부하며 온몸으로 감각하고 사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 예술인이자 코다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새로운 배움의 이야기를 두루두루 들려준다. 단순한 유학기를 넘어 낯선 도시에서 시도한 모험들, 존중과 배움의 경험을 통해 확장하고 성장한 세계를 기꺼이 나눈다. 머뭇거리느라 시도조차 못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힘 있는 응원이 되어줄 책이다.
- 에세이 MD 송진경
이 책의 첫 문장
1990년 여름, 나는 경기도 부천에서 한 농인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추천사
이길보라의 글을 읽고 나면 새삼 '청년'이라는 단어가 그간 얼마나 오염되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뻗어 나온 곳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태도, 때로는 두리번거리고 때로는 온몸으로 부딪쳐 깨닫고 배운 것들을 널리 나누려는 건강한 마음. 나는 그로부터 청년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이길보라는 위험천만한 빗길에 미끄러지고 넘어질지라도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휘청거리면서나마 다시 일어나 이 길을 걸어나갈 수 있다고 기어코 믿게 만든다. - 장류진(<일의 기쁨과 슬픔> 저자)
세상의 끝으로 출근하는 과학자의 이야기. 반칙 아닐까. 오늘도 인간사 자잘한 일들에 치여 대자연으로의 도피를 꿈꾸는 우리에겐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저자 박숭현 박사는 25년간 총 25회 해양을 탐사했다. 그의 이번 첫 책에는 해양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우연한 기회로 배를 타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파도를 거치며 스스로를 '탐험가'라 칭하는 베테랑 해양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삶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폭염과 코로나로 탐사는커녕 집 앞 외출도 힘들어진 지금,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이 책으로 대리 탐험을 해보길 권한다.
- 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첫 문장
"나 지금 해양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너 혹시 관심 있으면 올 수 있어?"
이 책의 한 문장
해양연구소에서 온누리호를 타고 동태평양에 나가자는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참여하기로 했다. 『유령선』의 주인공 핌이 친구를 따라 바다로 나갔듯, 나도 별생각 없이 항해에 나섰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잠재해 있던 바다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