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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020
  • 노화의 종말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부키 | 2020년 7월 "노화는 질병이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젊음의 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오래 산다는 건 노년을 늘리는 것일 텐데, 책에도 나와있듯 감각이 둔화되고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을 이끌고 사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노년의 삶이 청년의 삶보다 가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쓰임을 다한 신체의 수명을 억지로 늘리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정해진 길이의 생 안에서 젊음을 늘리는 것이라면? 솔깃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다.

    25년간 노화와 유전에 대해 연구한 하버드대 의학 박사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이 책의 초반 1/3에 걸쳐서 "노화는 질병"임을 설명한다. 무슨 뜻일까? 노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찌해야 노화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한 가지만 스포 하자면 '소식'이다. 몸을 자주 결핍된 상태에 두는 것이 도움 된다. 미디어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내용이지만 근거로 제시된 무수한 연구 결과들을 읽으니 식습관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나머지 방법들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 젊음의 연장을 위한 투자로 그리 큰 노력과 긴 시간은 아닐 테니!

  • 코리안 티처
    서수진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2020 한겨레문학상, 여성이 선택한 여성서사 "

    심윤경, 최진영부터 최근의 강화길, 박서련까지, 믿고 읽을 만한 작가를 독자에게 소개해온 한겨레문학상의 2020년 수상작. 여성 심사위원이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 서수진 작가를 소개한다. K-유행을 타고 성업중인 한국어학원의 현실. 구체성 있는 묘사로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 곳에서 일하며 살아남는 것에 대해 묻는다.

    베트남의 한류열풍을 타고 H대 어학원은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학생을 유치한다. 공무원 시험 등 도전하는 모든 시험마다 실패해온 선이는 이번만큼은 '코리안 티처'인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 그래서 같은 수업의 베트남 학생이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에도 신고를 두고 갈등한다. 정확한 수업을 추구하지만, 딱딱한 태도 때문에 늘 강의평가가 좋지 않아 언제든 계약 해지가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미주. 어학원 내 유이한 지방대 출신이지만 '운이 좋아' 늘 강의 평가 1등을 유지하며, 평가가 나쁜 강사들은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가은. 책임강사로 일하며 다른 강사들에게 갑질을 하는 것도, 어학원에서 갑질을 당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한희. 밀려나지 않으려는 이들의 치열함은, 그저 다음 학기가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만을 위한 것이라기엔 너무 절실하다. 봄 학기, 여름 학기, 가을 학기, 겨울 학기, 겨울 단기를 거치며 만나는 이 피로한 얼굴들은 자꾸만 어떤 질문들을 던진다.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의 과거와 현재를 촘촘하게 엮어 만든 단단한 이야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곱씹어도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 자리에 놓인 이는 없어보인다. 소설가 최진영의 심사평처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를 묻는 소설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내려 앉는다.

  • 빌 캠벨,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
    에릭 슈미트, 조너선 로젠버그, 앨런 이글 (지은이), 김민주, 이엽 (옮긴이) | 김영사 | 2020년 7월 "리더에게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

    9회말 무사 만루의 위기. 흔들리는 투수를 진정시키려 감독이 마운드에 오른다. 감독의 말 한 마디에 용기를 얻은 투수는 힘찬 공으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는다. 다른 장면도 있다.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던 타자. 그는 자진해서 2군에 내려가 코치의 도움을 받아 흐트러진 타격폼을 정비한다. 그리고 1군에 복귀하자마자 맹타를 휘두른다. 갑자기 야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다. 감독이라고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감독의 마음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코치의 슬럼프는 누가 코칭해 줄 것인가? 그들의 고민은 누가 들어줄 것인가? 그리고 아마도, 조직의 리더나 회사의 CEO도 같은 처지일 것이 분명하다.

    이제 감독의 감독, 코치의 코치를 소개할 시간이다. 그것도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들의 CEO들을 코칭했던 대단한 인물을 말이다. 빌 캠벨, 그의 이름은 생소하다. 미국 내에서도 베일에 싸여 있던 인물이란다. 컬럼비아대의 풋볼 코치였던 그는 나이 마흔에 실리콘밸리에 입성, 이후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자문역을 맡으며 또 다른 코치 인생을 살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 직원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구글 회장을 지낸 에릭 슈미트가 그의 인생, 리더십, 코칭 노하우를 이 책에 모두 되살려 냈다.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접할 수 없는 그의 코칭을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다.

  • 보물섬
    신도 준조 (지은이), 이규원 (옮긴이) | 양철북 | 2020년 7월 "2018 나오키상 수상작"

    풍광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슬픈 역사를 지닌 섬, 오키나와. 지형이 바뀔 정도로 쏟아진 미군의 포탄, 일본 본토의 ‘내부 식민지’로 강제된 운명, 1952년의 오키나와는 전쟁의 상흔으로 폐허가 되었다. 발버둥쳐봤자 죽음 뿐이라는 절망 속에서, 미군 기지에 몰래 들어가 물자를 훔치는 '센카아기야'에 가담하는 소년들이 늘어난다. 목재와 밀가루부터 비누와 의약품까지, 이들이 훔쳐 배분하는 물품들로 빈곤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기본 생활이 가능해졌다. '올림픽 선수'에 버금가는 지지를 받는 센카아기야의 우두머리 '온짱'은 점점 목표를 높이고, 극동 최대의 미군 기지를 털기로 한다. 여느 때와 같은 성공적인 잠입도 잠시, 갑자기 쏟아지는 불빛과 총성 속에서 당황한 일당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다. 미친 듯이 도망친 후에야 온짱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온짱의 행방을 20년에 걸쳐 찾게 되는데…

    일본 내 미군기지의 73%가 주둔한 섬, 아직 진행 중인 ‘오키나와 문제’를 작가 신도 준조가 7년 간의 자료 조사와 집필 끝에 소설로 담았다. "지금의 일본이 완성되어가는 가운데, 어디에서 왜곡되어 버렸는가, 어디에서 무엇을 잃었기에 지금 이렇게 되어 있는가"라는 자문에 스스로 답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한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2018년 160회 나오키상을 수상했고, 심사위원 히가시노 게이고가 "싱싱하고 난폭한 청춘소설"이라는 말과 함께, 미야베 미유키가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힘겨운 현실을 헤치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제 제대로 살아볼 때가 왔다”고 성원을 보내는 이야기"라 말하며 추천했다.

8.72020
  •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김민형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8월 "김민형 교수가 인도하는 수학적 문명의 세계"

    테드 창의 단편 '영으로 나누면'은 1=2라는 것을 증명해낸 수학자의 이야기다. 1이 2인 세계에서 수학의 대부분은 오류임이 밝혀지고 수학자의 삶은 무너져내린다. 좋은 소설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문과 출신으로서,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나에게 수학은 수학이지만 수학자에게 수학은 세계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깨달았다.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에도 이 같은 맥락의 전설이 하나 등장한다. 유리수만이 수라고 믿었던 피타고라스가 √2를 발견한 제자를 살해한 것. 그에게 무리수의 존재는 세상의 위기를 뜻했기 때문이다. 이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수학이 뭐길래? 대체 수학이 무엇인데?

    이 질문에 대해 김민형 교수는 전작 <수학이 필요한 순간>에 이어, 두 번째 책으로 답을 이어간다. 이 책은 수학의 발전과 함께 해온 인간 사고의 진화를 짚는다. 총 9개의 주제를 통해 우리 삶에 닿아있는 수학의 세계를 하나하나 살핀다. 이 책은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7명의 독자와 김민형 교수가 함께한 세미나의 내용을 옮긴 것이다. 적절한 질문과 깊은 대답이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만들어, 쉽지 않은 내용에도 집중하게 만든다. 작년 여름부터 만들어진 이 이야기가 올여름엔 우리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주길 기대한다.

  • 이토록 멋진 곤충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지은이), 니나 마리 앤더슨 (그림), 조은영 (옮긴이), 최재천 (감수) | 단추 | 2020년 7월 "사랑해주세요! 인간의 소중한 친구 '곤충'"

    노르웨이 숲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곤충학자가, 친구를 소개하듯 재미난 별명들을 붙여가며 곤충이 가진 대단한 능력을 브리핑한다. 모기가 물면 왜 가려운지 속시원히 밝혀주고, 곰팡이 때문에 좀비가 되는 희한한 딱정벌레 이야기도 들려주고, 암컷이 지배하는 흥미진진한 개미 세계로 초대하기도 한다. 50마리 곤충들이 각자 맡고 있는 특별한 임무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곤충과 지구의 다른 구성원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밝혀나간다. 곤충이 없다면 인간도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인지, 아름다운 곤충 수채화 덕분인지 이 작은 벌레들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한다.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원제:Insektenes Planet)의 저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이 어린이를 위해 쓴 곤충 생태 보고서다. '모든 사람이 곤충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집필 의도는 그대로 이어가면서 전작과 달라진 점 하나. 제아무리 냉철한 과학자라도 아이들 앞에선 부드러운 말투가 저절로 나오나 보다. 곤충이 가진 신비로운 매력을 전하는 달변에, 온화한 목소리와 상냥한 미소까지 더해졌다. 아직 곤충이 뭔지 모르는 내 아이가 훗날 엄마의 말을 알아듣게 될 때 이 책이 씌어진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 바다에서 M
    요안나 콘세이요 (지은이), 이지원 (옮긴이) | 사계절 | 2020년 8월 "요안나 콘세이요, 차가운 여름 바다에서"

    차가운 아침, 여름 바다에서 M은 복숭아뼈까지 차는 물속에 혼자 서 있다. M은 바다의 짙은 푸른빛을 닮은 눈으로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본다. 바다는 끈질기게 파도를 밀어 보낸다. 바다는 원하면 파도를 만들고, 원하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바다,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처럼 끊임없이 물결치는 파도, 내가 만약 바다라면... M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끝도 없는 바다를 향해 목청껏 외친다.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요안나 콘세이요는 차가운 여름 바다와 그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내는 소년의 성장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오해와 외로움, 혼자만의 고민, 때로는 후회가 때로는 화가 가득 차 있었을 시간, 혹은 슬픔이, 눈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리고 우리의 어딘가에 남아있는 빛바랜 기억, 혹은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가만히 위로한다. 다시 잔잔해진 바다. 석양에 빛나는 바다는 따스하고 눈부시고 한없이 평화롭다.

  • 인스티튜트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 황금가지 | 2020년 8월 "스티븐 킹 최신작, 악에 맞서는 아이들"

    열두 살 루크의 집에 괴한이 침입한다. 납치된 루크가 눈을 뜬 곳은 자신의 방과 똑같이 꾸며진 기묘한 장소다. 그곳은 텔레파시와 염력을 비롯한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잡아다가 가혹한 훈련을 시켜 테러에 이용하는 비밀 '시설'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긴 참담한 일상 속에서 루크는 죽음을 불사하더라도 탈출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시설'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는 무엇일까.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세계와 순수한 '악'이 대비를 이루며 공포를 극대화한다. 스티븐 킹은 뉴욕타임스와의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애쓰는 무방비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며 "약한 인간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쓰고 싶었다"고 언급하며 작품 구상 계기를 밝혔다. 출간 즉시 전미 베스트셀러 1위와 유럽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며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이 이어졌고, 현재 드라마 '미스터 메르세데스' 제작팀에 의해 영상화도 진행 중이다.

8.112020
  • 고래별 1
    나윤희 (지은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8월 "그대 부디 물거품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1920년대 군산, 대지주의 몸종으로 팔려온 수아는 윤화 아가씨를 모시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한다. 어느 날 수아는 바닷가에 수영을 나갔다가 독립운동가인 의현을 발견하게 된다.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상처 입은 의현을 극진히 보살피며 의현을 연모하게 되는 수아. 그러나 윤화 아가씨에게 이 일을 들키며 의현은 성치 않은 몸으로 다시 도피를 하게 되고, 의현을 그리워하던 수아는 의현이 부탁한 서신을 전하려다 목소리를 잃게 된다.

    네이버웹툰에서 현재도 인기리에 연재 중인 '고래별'의 첫 단행본으로 엄혹했던 일제 치하를 배경으로 의현을 통해 독립운동가 단체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주인공 수아의 첫 번째 이야기를 담았다. 수준 높은 일러스트와 아름다운 문장,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치밀한 서사에 덧입혀져 자꾸 다음 장을 재촉하게 한다. 75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출간된 이 책은 기존 웹툰에서 공개하지 않은 에피소드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아름다워서 더 처연한 경성의 인어공주 이야기.

  •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내게 남은 것은 55킬로그램뿐이었다."

    심부름꾼 k가 만난 이야기. 그는 전달책 k, 소문자 k이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 왜 가는지는 모르'는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中) 심부름꾼이 영문을 모르고 바삐 재촉하는 걸음. 그 길에서 그는 카프카를, 기형도를, 배수아를, 허수경을, 황정은을 만난다. 이야기에 이야기를 비추면 시가 튕겨져 나온다. '에코'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라고 말했던 <에코의 초상> 김행숙이 6년 만에 시집을 엮었다. 감각적인 언어는 여전하지만, 시의 실험은 더욱 깊고 자유로워졌다. 전작 출간 이후 극심한 통증을 만난 시인은 "마치 외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처럼 나는 내 문장이 조합되는 과정을 생경하게 의식"하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뼈와 살이 내뱉는 비명 같은 통증 이후, 그가 마주한 것은 182센티미터 55킬로그램의 자신의 육체를 인식한 카프카가 경험했을 그 감정, 실존에 대한 생경함이다. '마지막으로 55킬로그램의 똥을 누'기 전에, (<「변신」 후기> 中) 자신의 생물성을 뼈저리게 인식한 후에도 우리에게 남은 건 오직 언어뿐. 그렇게 심부름꾼은 무수한 언어 사이를 건너며 밤을 보낸다. 계속되는 밤과 꿈. 김행숙의 말과 함께 '우리는 우리를 위해 환하게 불을 켠다.' (<우리를 위하여> 中)

  • 매머드 사이언스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크래들 | 2020년 8월 "그냥 매머드 아니고 과학 좀 하는 매머드"

    한동안 절판되어 많은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가, 스마트폰 같은 최신 자료가 보강된 개정판으로 큰 사랑을 받은 <도구와 기계의 원리>를 기억하시는지? 그 책의 저자, 칼데콧상 수상자 데이비드 맥컬레이가 쉽고 다정한 설명, 그의 장기인 섬세하고 알아보기 쉬운 그림으로 과학의 기초 원리들을 설명한다. 유머러스한 친구 매머드와 함께!

    운동량 보존의 법칙은 뭘까? (물리학) 뼈는 어떻게 생겼지? (생물학) 화합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화학) 달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리학과 지구과학)

    물질은 생명을 구성하고 생명의 작동 원리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게 발생한 힘은 작고 간단한 기계부터 복잡한 기계까지, 더 크게는 지구와 우주까지 움직인다. 보는 순간 와닿는 설명이 있는가 하면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한, 복잡한 원리도 있다. 하지만 탐구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 매머드는 몸소 털실 인형 신세가 되고(밀도 측정차) 사람 팔의 위팔두갈래근이 되고(근육의 이해) 로켓에 매달려 하늘로 발사되기도 하면서(작용과 반작용의 원리 확인차) 모든 장면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윤혜정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20년 7월 "예술가들의 질문을 질문하는 책"

    김영민 교수의 문장을 잠깐 빌려본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예약판매 중인 도서, <공부란 무엇인가> 속 문장이다.) 질문을 하나 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책을 잘 읽는 방법이자, 삶을 깊게 살아내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잡은 질문의 내핵까지 들어가는 사람이다. "엄혹한 현실인으로 살아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자기 나름의 질문을 놓치고, 제자리를 빙빙 맴돌 때, 예술가들은 삶과 세상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들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제시한다. 하나의 질문으로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만든 예술가들의 생각을 엿듣는 일은, 그래서 단순한 흥미 이상의 차원이다.

    20년 이상의 잡지 에디터 경력을 쌓은 저자 윤혜정이 거장 예술가들의 세계를 촘촘히 탐험한 기록을 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그는 세련되고 정확한 질문으로 예술가들의 사유를 매끄럽게 끌어낸다. 디터 람스, 이자벨 위페르, 박찬욱 등 거장 예술가들의 오래 묵힌 고민이 녹아난 답변들은 우리가 생각해볼 주제들을 던진다. 예술가들의 질문을 질문하는 것, 이 묘한 프랙털로 이루어진 책에서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며 즐거이 읽으시길 바란다.

8.142020
  • 35년 1~7 세트 - 전7권
    박시백 (지은이) | 비아북 | 2020년 8월 "75주년에 아로새기는 우리의 역사"

    박시백 화백의 <35년> 시리즈가 출간 2년여 만에 완간되었다. 국내외 답사를 포함한 준비 과정을 포함하면 5년 만의 결실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총 스무 권으로 갈무리했던 그는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를 총 일곱 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그려 냈다. 얼추 5년마다 한 권인 셈이니 그만큼 알차고 단단하게 되살려 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 장면들을 충실히 구현한 만화뿐만 아니라 각종 사료와 도표, 인명사전과 연표까지 곁들였음은 물론이다.

    그 모든 작업을 박시백 화백이 손수 진행했다는 이 작품은 일제에 맞서 싸웠던 35년의 세월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박시백 화백은 말한다. 8.15 해방은 우리 선조들의 힘으로 일궈낸 일이니 자랑스러움을 간직한 역사로 바라보자고.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투쟁 정신이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렇다. 그것은 광복 75주년을 맞은 우리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 도시를 걷는 여자들
    로런 엘킨 (지은이), 홍한별 (옮긴이) | 반비 | 2020년 7월 "여자로서 도시를 걷고 사유하는 것"

    플라뇌르. 도시를 걸으며 관찰하고 느끼고 사유하는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의 남성 명사다. 저자 로런 앨킨은 이 단어를 여성형으로 바꾸어 스스로에게 붙인다. 플라뇌즈.

    호명은 존재를 가시화한다. 앨킨은 "마치 페니스가 지팡이처럼 걷는 데 꼭 필요한 부속품이라도 되는 것마냥" 남성들에게만 도시 산보를 허락했던 사회에서 숨었던 플라뇌즈들을 드러낸다.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아녜스 바르다, 진 리스, 소피 칼... 그는 이 여성 예술가들이 앞서 걸었던 바로 그 도시들을 걸으며 그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사유를 넓혀나간다.

    억압의 기능만 남아있는 금기를 깨고 기존의 통념을 전복하는 글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런 글에서도 표현 방식은 여럿인데, 이 책의 매력은 과도하게 힘 들어가지 않은 태도에서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여자라면 고어텍스를 입고 쭈그려 앉지 않아도 전복적일 수 있다. 그냥 문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도시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전복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여성의 플라네리(산보)도 그저 플라네리로만 받아들여지는 세계가 정상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

    허지웅 작가가 <나의 친애하는 적> 이후 4년 만에 에세이를 펴냈다. 새 책을 준비하는 사이, 작가에게 어둡고 깊은 시련의 과정이 있었다. 2018년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지독한 투병의 시간을 통과했다. 버티고 견뎌내어 드디어 독자들 앞에 다시 선 작가가 진심을 다해 한 문장 한 문장 힘주어 써내려간 25편의 이야기가 <살고 싶다는 농담>에 고스란히 담겼다.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온몸이 부어 물건을 집을 수 없고, 손발 끝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밤마다 제발 덜 아프기를 아무에게나 빌었다. 천장이 내려와 몸을 누를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겨우 잠들었다 깨면 바닥에 뒹굴곤 했다. 천장과 바닥이 호시탐탐 노리는 고통의 날을 감당하고 난 뒤 살기로, 살아내기로 결정했다.

    고통이 끝날 것 같지 않은 기분으로 맞이했던 숱한 밤과 낮들을 보내며 깨달은 마음과 다짐과 생각들이 이 한 권에 간절하게 녹아져 있다.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과 같은 마음의 모두에게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살기로 결정하라고, 삶의 바닥에서도 괜찮다고 버티라고, 따뜻한 조언과 응원을 건넨다.

  • 호아킨 소로야 - 바다, 바닷가에서
    호아킨 소로야 (지은이) | 에이치비프레스 | 2020년 8월 "발렌시아의 해변, 자연의 빛을 향해 "

    "저는 언제나 발렌시아로 돌아갈 생각만 합니다. 그 해변으로 가 그림을 그릴 생각만 합니다. 발렌시아 해변이 바로 그림입니다."(90쪽) 스페인의 바다를 그린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세계를 소개한다. 한낮의 발렌시아 해변, 충실한 어부들<돌아오는 고깃배>과 뛰노는 어린이들 <바다의 아이들>, 빛을 받고 선 자신의 아내와 딸<바닷가 산책>. 호아킨 소로야는 태양빛을 머금은 붓으로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화폭 위에 옮겼다. 흐드러지는 빛,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그 순간의 찬란함이 그의 그림 안에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 파블로 피카소 등의 스페인 화가들이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와 <게르니카> 등의 강렬한 이미지로 대표적인 스페인 화가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세계 최고의 화가'로 불리기도 했던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은 점차 잊히고 말았다. 그렇지만 '바다 위에서 빛은 여전히 빛나고'(92쪽) 이 아름다움은 백여 년의 시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했다.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바다, 그 자연을 가득 담은 싱그러운 책을 만난다.

8.182020
  • 투자의 모험
    스티븐 슈워츠먼 (지은이), 이경식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8월 "600조를 다루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블랙스톤의 CEO가 쓴 책이라고 하니 감이 확 오지 않는다. 600만 달러, 아니 600조 원의 사나이라고 해 두면 어떨까. 그렇다, 블랙스톤은 그 어마어마한 돈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그룹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블랙스톤의 창업자이자 수장인 슈워츠먼이 직접 쓴 책으로, 지난 인생을 회고하며 경영과 투자의 원칙을 함께 전한다. 어떤 경우에도 고객의 돈을 잃지 않겠다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득점보다는 실점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그것이 돈이 걸린 투자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 이 책을 투자서로 읽었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특히 주식 투자자들의 기대가 그러했을 터다. 그렇지만 이 위대한 투자가의 자서전은 경영의 바이블로도 손색이 없다. 창업, 채용, 투자, 인수합병, 거래와 협상 등 경영의 전반은 물론 리더십, 자선 활동, 기업 승계 등 경영자로서의 철학까지, 성공과 실패, 갈등과 해소의 드라마 속에 모두 녹여 냈다. 이야기의 생생함은 마치 그의 오래전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월스트리트의 훌륭한 동료들이 조연으로, 비욘세와 제이 지가 카메오로 출연하고 슈워츠먼이 각본, 연출, 주연을 도맡은 이 책은 좀처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한 편의 금융 영화다.

  • 바비의 분위기
    박민정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우리에게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던걸까. 주희는 생각했다. (42쪽) 여행 중 주희는 즐거웠고, 그래서 뉴올리언스의 축제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싸구려 자개와 구슬을 잔뜩 엮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사방에 터지는 핸드폰 카메라 플래시에 눈이 동그래져 어리둥절하게' 서있던 주희의 모습. 가슴을 보여달라고(show your tits!) 외치는 군중의 앞에 놀라서 선 주희의 얼굴이 아시안 창녀(asian slut)라는 제목을 달고 포르노 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다. (<세실, 주희>) 박민정의 소설은 분노를 앞에 두고도, 들끓는 대신 잠시 멈추어 고민하게 한다. "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slut이 아닙니다." 자신의 영상을 내려 달라고 쓰는 주희의 메일,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면 이 일은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을까. 뉴올리언스의 뒷골목에서 소녀상이 놓인 명동의 대규모 집회까지 놓인 참회를 향한 길.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걸어 세실에게 제 가족의 역사를 직면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2018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세실, 주희>는 이 난감한 고민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좋아하는 여자를 몰래 사진찍고, 그의 pc통신 아이디를 해킹한 적이 있는 오빠. 나는 그런 오빠와 오빠의 '보물섬'에서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한다. (<바비의 분위기>)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아온 고모의 자식으로 할머니의 집에 얹혀 살며 수진 언니가 경험했을 박대, 그럼에도 수진 언니는 할머니의 장례에서 눈물을 흘린다. (<신세이다이 가옥>) "장희는 의사랑 결혼해서 잘 산다니 다행이고"(140쪽)이라고 말하면 과거의 버림받은 기억이 그에게 남겼을 상흔은 없던 일이 되는가. IMF와, 486 컴퓨터와, 고덕동과 둔촌동의 차이와, 후암동 집의 쇠냄새를 엮어, 박민정이 정확한 지리적 배경, 정확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 촘촘하게 구현한 '필연적인' 혐오들은 그 '어쩔 수 없음'의 영역에 우리를 던져 놓고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의 어쩔 수 없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분노하는 대신 깊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 "그는 이 대결을 손쉽게 마무리하는 대신, 소설이 끝나고도 해소되지 않는 질문을 남겨두는데, 이는 소설이 끝나도 우리의 현실은 계속 이어진다는 당연한 사실 때문이리라." 라고 시인 황인찬은 말했다. 박민정이 묘파한 우리의 현실은 아직 그곳에 놓여 있다.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작 등이 수록된 박민정 소설집. 당혹스러운 얼굴을 한 채, 피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맞이한다.

  •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이길보라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8월 ""괜찮아, 경험.""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로서 농인 세계와 청인 세계의 경계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온 이길보라 감독. 몸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부모의 영향으로 모르면 일단 해보고 가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두고 살았다. "괜찮아, 경험." 부모로부터 항상 들어온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보고 경험해왔다. 그중,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 유학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 시간의 기록을 이 책에 실었다.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 네덜란드라고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을 비롯한 구별짓기가 존재하지만,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저자는 그곳으로 가서 여러 국적의 예술인들과 함께 공부하며 온몸으로 감각하고 사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 예술인이자 코다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새로운 배움의 이야기를 두루두루 들려준다. 단순한 유학기를 넘어 낯선 도시에서 시도한 모험들, 존중과 배움의 경험을 통해 확장하고 성장한 세계를 기꺼이 나눈다. 머뭇거리느라 시도조차 못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힘 있는 응원이 되어줄 책이다.

  • 남극이 부른다
    박숭현 (지은이) | 동아시아 | 2020년 7월 "해양과학자가 풀어내는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

    세상의 끝으로 출근하는 과학자의 이야기. 반칙 아닐까. 오늘도 인간사 자잘한 일들에 치여 대자연으로의 도피를 꿈꾸는 우리에겐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저자 박숭현 박사는 25년간 총 25회 해양을 탐사했다. 그의 이번 첫 책에는 해양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우연한 기회로 배를 타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파도를 거치며 스스로를 '탐험가'라 칭하는 베테랑 해양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삶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폭염과 코로나로 탐사는커녕 집 앞 외출도 힘들어진 지금,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이 책으로 대리 탐험을 해보길 권한다.

8.212020
  • 완전학습 바이블
    임작가 (지은이) | 다산에듀 | 2020년 8월 "공부정서를 길러 주면 공부머리가 완성됩니다!"

    대기업 엔지니어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저자는 우연히 보게 된 EBS 다큐 '아이의 사생활 - 자아존중감' 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억압했던 결핍의 원인을 발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폭넓은 교육학 이론을 섭렵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구독자 11만 명, 누적 조회 수 1,000만 뷰의 유튜브 채널 '인생멘토 임작가'와 온라인 학습공동체 '자공마을'을 통해 수많은 학부모와 소통하며 공부정서와 완전학습법을 전파하고 있다.

    부모의 공부머리가 신체적으로 유전되지는 않지만, 부모가 공부에 대해 어떤 정서를 심어주느냐에 따라 아이의 공부에 대한 태도와 성적은 달라진다. 결국 아이의 공부머리는 공부정서가 결정하고, 공부정서는 부모의 지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표 학습은 모든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 여기에서 '엄마표 학습'은 엄마가 교과목을 가르치거나 감시하고 야단치는 것이 아니다. 엄마도 아이와 동일한 입장에서 완전학습을 연습하고 멘토링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공부정서가 무엇인지, '완전학습(Mastery Learning)'으로 정의되는 엄마표 학습, 그리고 과목별 완전학습법까지 총정리해 담았다.

  •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은이) | 어크로스 | 2020년 8월 "삶을 모욕하지 않기 위해"

    '꼰대 담론'이 퇴치한 것은 꼰대뿐만이 아니다. 꼰대로 몰릴까 겁내는 잠재적 스승까지도 함께 없앴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김성우, 엄기호 교수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지식과 깨달음이 그간 사회의 선배와 스승들을 통해 공짜 수업의 형태로 전해져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꼰대', '진지충', '선비' 같은 단어들의 등장 이후 진지하게 삶의 정수를 말하는 사람들은 많이 사라졌고, 우리는 자유의 영역을 조금 넓힌 대신 공짜 교육의 기회를 잃는 중이다.

    그래서 김영민 교수의 이 책이 반갑다. 이 책은 먼저 공부하며 살아가는 자로서 인생의 화양연화를 낭비할지도 모를 이들을 염려하며 쓴 글의 모음이다. 그는 더 나은 인간으로 살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과 삶의 태도, 공부의 과정 속에서 취해야 할 자세를 말한다. 책소개를 여기까지만 읽고 '진지충'을 피해 도망하려는 이들에게, 우선 딱 한 챕터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면, 웃기기 때문이다. 분명 진지한 내용은 맞는데 자꾸만 낄낄대게 된다. "불온한 생각을 어디엔가 지뢰처럼 숨겨놓기 위해서라도 당대의 관습과 기대를 숙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는 책 속 문장처럼, 그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젊은 세대들에게 통할만한 유머 사이에 버무려 놓았다. 시니컬한 유머 뒤엔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워주는 명료한 중심이 있다.

    선배와 스승의 공짜 교육이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재밌지만 엄중하게 올곧은 방향을 일러주는 이 글들은 귀하게 느껴진다(물론 이 책도 공짜는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말들이 한가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섭도록 냉정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지나치게 과열되었지만 애초에 불공정한 이 세계에서 노비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다 결국은 시시한 인간이 되고 마는 우리를 직시하며, 그는 인간의 변화를 가져올 공부의 필요성을 말한다. 삶을 모욕하지 않기 위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엔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지은이) | 허블 | 2020년 8월 "부서진 너와 작은 내가 만날 때"

    "연재를 만나기 전까지 콜리는 C-27로 불렸다."(11쪽) 품명으로 불리던 한 휴머노이드가 브로콜리의 색과 닮아 콜리라는 이름을 얻기까지의 여정. 이 소설은 오직 로봇에만 재능과 관심이 있는 소녀 연재와 하늘의 아름다움과 말의 고됨을 알아챌 줄 아는 모자란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더는 시속 100km로 달릴 수 없게 관절이 마모된 말과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하게 된 연재의 언니 은혜 등, 제 속도로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부드럽게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빛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과학문학상이 우리가 기억하게 될 이름, 천선란을 호명한다.

    2035년, 경마 경기의 기수가 사람 대신 휴머노이드로 대체되면서 말은 시속 100km를 향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과도한 속도는 말의 관절에 부담을 주고, 달릴 수 없게 된 말은 금세 다른 말로 대체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온 연재는 로봇 베티에게 밀려 일자리를 잃는다. 연재의 아버지인 '소방관'은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한 예산 때문에 우선 순위에 밀려 교체되지 못한, 오래된 소방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연재의 언니 은혜는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을 하지 못해 '사이보그 인간'이 되지 못하고 휠체어를 사용해야 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그 기술의 속도를 채 따라잡지 못하는 곳에 아직 우리가 사랑하는 무엇들이 있다. 사람이라고, 동물이라고, 기계라고 함부로 지칭하기 어려운 주어들은 제 속도에 맞게 움직이며 살아가고, 존재하고 있다.

    천선란의 이 이야기는 작가의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둔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소설가 최진영의 추천처럼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정상성과 결함, 실수와 기회, 자유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등장하는 존재 하나하나를 응원하며 우리의 마음 속에도 천 개의 파랑처럼 찬란한 빛무리가 퍼져나갈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등속운동을 유지하며 자신에게 다시 생긴 삶을 이어갈"(10쪽) 말 투데이의 저답고 아름다운 달리기처럼.

  • 투자의 태도
    곽상준 (지은이) | 위너스북 | 2020년 8월 "투자의 성공 = 태도 X 시간"

    거침없는 회복세로 2500선 돌파를 목전에 뒀던 코스피 지수가 조정을 겪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코로나 재확산 탓으로 돌릴 테고 또 누군가는 그동안 너무 오른 게 사실이라며 일시적 조정장이라 평할 것이다. 문제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여겨 주식을 내다 파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다는 데 있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적당한 선에서 수익 실현에 나선 것일 수도, 빠르게 손절한 것일 수도 있다. 그와 반대로 단기 반등을 노린 저점 매수에 나선 이들도 많다. 저자는 묻는다. 그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경마장이나 카지노 시장이 아니더냐고.

    단기적 성공에서 짜릿함을 느꼈다면 투자와 노름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큰 실패를 경험하고 시장을 떠난다. 저자는 단언한다. 인내 없이는 수익도 없다고. 심사숙고의 영역인 투자의 세계에서 직관과 즉흥적 판단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이다. 물론 무조건 장기투자, 가치투자가 답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태도를 갖출 때 비로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평소 얼마나 일희일비하고 있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지금 흔들리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이 답이다.

8.252020
  • 영화하는 여자들
    주진숙, 이순진 (지은이), (사)여성영화인모임 (기획) | 사계절 | 2020년 8월 "이 점들이 만들어온 그림"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연대표가 나온다. 20명의 인터뷰이들이 지난 30여 년간 남긴 발자국이 촘촘하게 표기되어 있는 연대표다. 1986년부터 순서대로 찬찬히 보다보면 기분이 조금이 이상해진다. 이 여성 영화인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지지 않고 버텨온 시간이 모여 이런 모양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인터뷰집 형태의 한국 여성 영화사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10년 단위로 묶인 여성 영화인들이 남성 중심의 영화판에서 자신이 해온 일을 이야기한다. 시기에 관계없이 현장에서 치열하게 헤쳐나간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연대별로 달리 느껴지는 업계의 상황과 흐름이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변화일 것이다.

    무시당하고 설 자리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요소는 '내가 속한 집단을 위해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고, 이에 대한 나름의 대답은 언제나 울림이 있다. 이 책의 인터뷰이들 역시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들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은 흔적이 잔뜩 배어나온다. 그 고민들이 뒤에 올 여성들을 위한 길을 조금씩 넓혀왔다. 이 이어달리기에서, 2020년대의 여성 영화인들이 만들어갈 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기대된다.

  • 사업을 키운다는 것
    스가하라 유이치로 (지은이), 나지윤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8월 "실패로 쌓아올린 작지만 강한 기업"

    올해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야구가 시작되기 전, 야구장 앞을 점령한 수많은 분식 노점들은 마치 종로의 광장시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다 팔리지 않고 남게 될 저 수많은 김밥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그대로 버려질까? 설마 다음 날 다시 팔지는 않겠지? 아주 잠시 분식집 아들로 살았던 학창시절, 우리 형제의 야식은 언제나 엄마가 가져온 떡볶이였음을 떠올리자 그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지만 왜 팔릴 만큼만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하기사 늘 하는 장사지만 늘 다른 것이 손님 아니던가. 유통 기한이 짧은 음식 장사는 그래서 더 어려운 법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중소기업이 있다. 달걀 가게라는 뜻의 도시락 회사 다마고야다.

    다마고야의 사장인 저자는 창업자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년 동안 10배 가까운 성장을 일구어 냈다. 연매출 1천억 원, 하루에 무려 7만 개 이상의 도시락을 판매하는 이 회사의 폐기율은 업계 평균의 30분의 1 수준인 0.1%에 불과하다. 수요 예측, 재료 수급, 배송망 구축 등을 무기로 오전 9시부터 12시, 단 3시간 만에 주문과 배송을 모두 끝내는 그들의 노하우는 중소기업과 창업가들에게 훌륭한 사례가 되어 준다.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섣부른 사업의 확장 또한 경계한다. 사업을 키운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라는 소리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일반적 대기업들의 사례와 달리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이제 무엇을 키워 낼 것인지, 고민은 각자의 몫이다.

  • 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지은이), 조동섭 (옮긴이) | 밝은세상 | 2020년 8월 "<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신작"

    스물한 살의 샘은 혼자 파리를 여행하는 중이다. 프랑스어도 모르고 수중에 돈도 없지만 무작정 파리로 왔다. 하버드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단 한번이라도 '보헤미안의 삶'을 실현해보기 위해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다. 온통 회색빛인 1월의 파리는 그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것만 같다. 짙어지는 외로움 속에서 찾은 한 서점, 샘은 그곳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한다. 서가 사이에서 우연히 만난 이자벨에게 첫눈에 매혹된 것이다. 그의 인생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게 되는데…

    먼 훗날, "이자벨 전에 나는 인생을 전혀 몰랐다."라는 말로 샘은 그 만남을 회고한다. 삶의 목적을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일상의 견고한 질서를 만드는, "오로지 성취를 통해 가치를 증명하려는 미국식 야망"으로 이뤄진 샘의 세계. 그리고 '순간' 만이 존재하는 이자벨의 세계. 소설 속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미국과 프랑스의 삶의 방식이 계속해서 대비를 이루며, 미국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프랑스에 오래 거주하면서 느낀 면면을 엿볼 수 있다.

  • 만약의 세계
    요시타케 신스케 (지은이), 양지연 (옮긴이)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8월 "소중한 것들이 쌓인 내 마음 속 세계"

    <이게 정말 사과일까?>, <이게 정말 나일까?>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으려나 서점>을 위시한 상상력 충만한 작품으로 어른들의 마음까지 훔친, 한 번 펼치면 연령불문 전작주의자로 만드는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새 그림책.

    우리들 마음 속에 '만약의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 너무나 소중했지만 이유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가 버린 존재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발견한 마음 속 세상 '만약의 세계'를 믿어보고 싶을 것이다.

    정말 소중한 것이 사라지면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는 '만약의 세계'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딛고 선 조막만 한 '매일의 세계'. 기억과 현실의 교차점, 어제 속에서 오늘을 깨닫고 내일로 발걸음을 딛는 사람(아이 또는 어른)에게 상실은 중요한 성장 동력이기도 할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 내가 사랑했던 것들의 행방과 그 뒤를 따르고 있는 나의 오늘을 되돌아보게 한다. 내 속에 차곡차곡 쌓인 만약의 세계를 가늠해 볼 기회.

8.282020
  •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은이), 전미연 (옮긴이) | 열린책들 | 2020년 8월 "베르베르 신작 희곡, 다음 생을 결정짓는 심판"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곧 심판이 시작되오니 피고인석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영혼 번호'로 이름이 불린 아나톨 피숑은 어리둥절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폐암 수술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의 '수호천사' 겸 변호인 카롤린은 그가 수술 도중에 급사했으므로 그의 영혼이 천국에 있는 법정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린다. 생전에 판사로 일했던 아나톨은 갑자기 피고인의 처지가 된 것이다.

    천국의 법정, 한 인간의 일생을 돌아보는 엄정한 심판의 결과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 아나톨과 카롤린은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피력하지만 천국의 검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가 기억하지도 못했던 죄가 하나씩 들추어진다. 아나톨은 끝까지 잘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극형을 피할 수 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선보이는 유쾌한 희곡.

  • 설민석의 만만 한국사 1
    설민석, 신지희 (지은이), 김덕영 (그림), 단꿈 연구소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20년 8월 "설민석의 새로운 한국사 학습 만화"

    야외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시절, 열정적이고 쉬운 설명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역사 강사 설민석이 준비한 새로운 한국사 학습 만화. <설민석의 만만 한국사>에서 '만만'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꾸린 '재미 만점 역사 만화'와 앞선 만화의 내용을 문제로 풀어보는 '효과 만점 문제 풀이'를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집에서도 그리고 혼자서도 놀이처럼 몰입하며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설쌤의 족집게 정보 코너, 키포인트 문제, 한눈에 보는 특강,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문제 등 다양한 형식의 퀴즈와 기출문제는 흥미를 유지하면서 효과적으로 역사 교과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온달과 평강, 설쌤과 로빈 캐릭터가 유물과 유적, 건국 신화,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함께 추적한다. 1권은 한반도의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 더 셜리 클럽
    박서련 (지은이) | 민음사 | 2020년 8월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사랑의 연대"

    맬버른의 한 거리, 페스티벌의 현장. 흔한 심벌즈조차 치지 않고, 느리게 걷기만 하는 할머니들과 '셜리'는 마주쳤다. "더 셜리 클럽 빅토리아 지부." 할머니들의 가슴마다 달려 있는 명찰엔 셜리 J, 셜리 M, 셜리 O라고 써있다. 한국에선 스무 살의 설희였던 '셜리'는 운명처럼 할머니들의 행렬을 따라 나선다. "내 이름도 셜리예요" 외치고 싶은 마음에 따라간 호프. 그곳에서 셜리는 목소리가 또렷한 보랏빛인, 절대 셜리일 리 없는 S와 우연히 마주치고 그와 친구가 되며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임시-명예-회원으로 '더 셜리 클럽'에 가입을 성공한다.

    요시다케 신스케가 상상한 '있으려나 서점'처럼, 읽는 내내 '있으려나 더 셜리 클럽' 하고 상상하게 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라는 멜버른에서 펼쳐지는 셜리의 워킹홀리데이 여행기. 스콘을 잘 만드는 셜리 페이튼, 스키를 즐기는 순두부를 닮은 셜리 모튼, 치즈를 사랑하는 셜리 벨머린, 우리의 셜리가 울 때 자수 손수건을 챙겨주는 셜리 마르테이즈, 울루루에서 숙박을 운영하는 셜리 넬슨. 그들은 누구세요? 셜리예요. 나도 셜리랍니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재미와 음식과 우정을 나눈다. 더 셜리 클럽이 우리의 셜리를 돕는 이유는 오직 셜리가 셜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동화 속 세상 같다고 하지만 어쩐지 그 동화를 자꾸 믿고 싶어진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등의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져온 작가 박서련이 조금은 결이 다른 이야기로 독자를 찾았다. 유행이 지난 이름이라 할머니들로만 이루어진 '더 셜리 클럽'의 환대 안에서 셜리는 여행을 계속한다. 혼혈인지 이민자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잘 모르는 S의 보랏빛 목소리에 반해 무작정 용감해지는 셜리의 모험담은 무해하고 산뜻하고 경쾌하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199쪽)라는 셜리 넬슨의 조언처럼, 우리는 사랑 안에서 비로소 내가 된다. <우리들> 윤가은 감독, 시인 박준 추천. 소소한 서운함도 모두 추억이 되고 하루하루가 선명한 색으로 기억되는 그 시간들, 여행의 나날이 그리워지는 사랑스러운 소설.

  • 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은이), 김영현 (옮긴이) | 다다서재 | 2020년 8월 "서로 다른 가족, 다르기에 경이로운 나날들"

    "음악, 있어!"
    귀에 집게손가락을 대고 눈을 감으며 음음음, 하듯이 흥겹게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는 이쓰키.
    "지금, 음악, 즐거워? 다행이다. 아빠는, 음악, 몰라. 몰라. 아쉽다. 이쓰키한테는 음악, 있어! 신나! 즐거워!"
    '음악'을 뜻하는 수어를 보고서야 가게 내에 흐르는 음악으로 이쓰키가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빠 하루미치는 이쓰키에게 처음 고백한다. 우리가 사실은 서로 다른 존재임을.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은 그렇게 '서로 다른 기념일'이 되었다.

    하루미치는 청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음성언어인 일본어 교육을 받았다. 그의 파트너 마나미는 농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태어났을 때부터 수화언어로 소통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 이쓰키가 태어났다. 언어도, 감각도 다른 세 가족의 일상 풍경과 이야기를 차분한 문체로 담아낸 <서로 다른 기념일>. 침묵과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 그 두 세계의 경계선이 어떻게 허물어지고, 두 세계가 어떻게 포개어져 가는지 하루미치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가슴 뭉클한 순간을 선사하는 이 책은 몸도 언어도 다르지만 우린 모두 소통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선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