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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전경린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2년, 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안 (사수자리)

직업:소설가

기타:경남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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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굿바이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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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마을

소설을 쓰고 읽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삶이란 다른 무엇도 아니고, 일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도 이 삶의 일상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고, 저마다 개인적 시간 안에 갇혀 있으며, 여기 이곳에만 있고, 자기 몸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생각하고 인식하고 소통하는 것을 자기 내부의 문장으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늘 스쳐가고 부딪치고 어긋나고 오해하는 외국과 같은 먼 타자들과, 자기 경계선 바깥의 일상 세계를 소설을 통해 읽고, 동시에 자신을 읽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끝냈을 때, 잔인할 만큼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한가운데서도, 반짝이는 결정체 같이 지워지지 않는 기쁨을 주인공에게 선물해준 타자들의 ‘기본적 선의’를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고 또 누구도 의도하지도 않았던 의외의 기쁨, 순수한 행복이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요? 어쩌면 이 소설은 내가 가장 처음에 발표했어야 할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엔 나를 생의 가장 낮은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강이 흐르고 있으니까요. 그사이 나는 몇 번쯤 도강을 했는지..., 길모퉁이를 돌면, 그 곳은 또다시 대각선으로 밀려난 낯선 강변이겠지요. 소설과 다투는 불편함을 버리고 그냥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간 고단한 성장에 그만한 값어치가 왜 없겠는가.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첫 경험을 할 때는 셀룰로이드 종이에 든 조그마한 그것을 반드시 사용하라는 메시지라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스무 살 시절의 그 어떤 무거운 주제의식보다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며 심지어 운명에 간여할 수도 있으니까. 그 외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왜 사느냐고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내던져졌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변경할 수 없는 인과를 살고 있다. 그리고 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굿바이 R

외부에서 유입되는 공기와 소리와 물방울과 냄새 같은 것을 촘촘한 망으로 걸러 나의 세계와 섞으며 글을 써온 느낌이다. 세상도 나의 세계도 제한적이라 얼마 되지 않는 재료를 이리저리 자르고 엮고, 다시 흩트리고 재구성하고 다른 색채를 입히며 전환점들을 찾아 거듭 변주해왔다. 작가라고 해서 문장들을 몸에 지니는 것은 아니다. 문장을 가져오기 위해 물을 길어오듯 온몸으로 이곳과 저곳을 오가야 한다. 저곳은 어쩌면 림보 같은 장소이다. 림보는 죽은 자들이나 가는 변방의 경계라는데, 어쩌다가 나는 산 채로 그곳을 오가게 된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을 끌어와 벽돌처럼 단단한 현실의 언어로 수납해야 하니, 한 편 한 편 소설을 쓰는 일이란 때론 합리성을 뛰어넘는 마법이 필요할 만큼 막막한 작업이다. 다행히 소설을 쓸 때면 이따금 마술이 일어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세계와 언어와 나의 지향이 한데 어우러져 어떤 정점에 이를 때가 아닐까. 그조차 내 몫은 아니어서 가만히 덮고 나아가야 하지만, 작가만이 알 수 있는 기쁨과 숨겨진 재미 때문에 소설을 계속 써왔다. 세상사에는 태업을 일삼으면서도 나의 일에서는 꽤나 부지런한 편이어서 그동안 참 많은 소설을 썼다. 내 소설의 화자들이 여기 이 현실에 산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들은 내성적이면서 꼿꼿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소극적이며, 어딘가 대담하면서 비밀스럽다. 그녀들은 현실의 짐을 등에 지고 고독과 방랑에 익숙한 채 도처에서 이곳과 저곳 사이의 경계를 밟으며 끊어지는 말들을 힘겹게 이어간다. 다행히 나의 화자들은 내 소설 속에서만 산다. 그렇지만 내 소설의 현실이 늘 만만치 않아서 소설 속에 사는 것도 현실 못지않게 고단한 일이다. 나의 화자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 2022년 7월 전경린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지인들이 말하기를 요즘 내게서 서늘한 야생적 기운이 느껴진다고 한다. 아마도 삶과 죽음과 애욕과 운명을 향해 활짝 열려진 네팔의 힘일 것이다. 이제 쉰일곱 개의 불꽃 접시를 밤의 강물 위에 띄워 보낸다. 이 불꽃 접시 중 몇 개는 부디 당신의 수로로 흘러들어 가장 깊은 상념으 끝까지 가 닿기를...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나는 어릴 때부터 합법적으로 제도에 편입되어 기념비가 되는 사랑보다 삶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비합리적인 사랑에 매혹되었다. 그런 사랑은 야생적인 것이고 제도 바깥의 것이며 세상이 쳐놓은 휘장 너머로 무한히 열려 있었다. 거듭되고 표절되는 진부한 삶의 궤도를 이탈해 돌연한 변이를 보여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 섬광이 나는 늘 아름다웠다.

물의 정거장

나의 소설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지극히 완강하고 평범한 삶의 구조 속에서 피워올린 좀 끔찍하게 찬란한 무지개 같다. 여기엔 이즘도 없고 주장도 없다. 다만 내면의 욕망과 갈등과 환상과 슬픔과 비명과 상상과 고적한 선의 정경이 있으며, 생의 공포와 길항이 있으며, 혼란 속에서도 분명한 좁고 긴 길이 오롯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 여성의 내면풍경이 이 땅의 많은 여성들과 무수히 포개어질 수 있는 것이니 오히려 애처롭다. 누군들 삶 속에 유랑이 없겠는가. 멀리 나아가는 것이나,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나, 되돌아오는 것이나... 우리는 빠져나갈 수 없는 나선형 궤적을 유랑하며 삶을 축적하는 것을...

붉은 리본

제게 이 글들은 마치 십년이라는 숲의 미로를 지나오는 동안 굽어지는 길과 갈라지는 길마다 나뭇가지에 하나씩 묶었던 붉은 리본들 같습니다. 더러는 오래 되어 자줏빛으로, 보랏빛으로 바래기도 했겠지요. 그 길을 내가 되돌아갈 리야 없겠지만, 누군가 해질 무렵 그 숲을 헤맬 때 나뭇가지에 묶인 붉은 길 표식 리본을 발견하고 어떤 모험가가 지나간 길인 것에 안도하고 공감하고 용기를 내기를 바래봅니다.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현실이란 단어를 사전으로 찾아보면, 가능적 존재에 대한 현재적 존재라고 해석되어 있다. 삶과 희망 사이에서, 시간들과 공간들 사이에서 가능태로서의 나와 답답하고 막막한 현재적 나 사이에서, 삐걱이고 어긋나고 헛돌고 비켜 가면서, 나는 이곳의 나와 잠시, 혹은 오래, 어쩌면 영원히 헤어져 살아간다. 그러므로 해질 무렵에 시간이 붕괴하듯 내면의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두려움과 슬픔의 밀의는 바로 이산된 자신을 향한 그리움의 통각이 아닐까.

엄마의 집

한 여자가 집을 갖는다는 것은, 경제적이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자신이 전적으로 통제하는 일이다. 인간적인 공허와 경제적 강박이 외풍처럼 넘나든다 해도, 나의 집을 가지고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은 초월적일 만큼 즐거운 일이다.

여름휴가

한때, 내 아이가 가진 나의 이미지는 얼음산과 사자입니다. 얼음산은 햇볕에 끊임없이 녹습니다. 삼엄한 사자는 햇볕을 쫓으며 얼음산을 빙빙 돕니다. 나는 얼음산을 지키는 사자이고 동시에 녹는 얼음산입니다. 햇볕과 사자 사이에서 얼음산은 녹아내리고 또 얼기를 계속합니다. 사자와 햇볕과 얼음산의 긴장과 고뇌와 화평의 상호작용에 따라 얼음의 퇴적층은 서서히 제 풍경을 만들어 갑니다. 이 기막힌 은유는 실은 생의 본질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삶도 사랑도 문학도, 치열하게 그 극단까지 가 본 사람은 결국 불가해하고 불가능한 이 생의 심연과 마주섭니다. 그것과 오래 마주서서 의미가 무의미로 전환되는 지점을 겪어 본 사람은 이 세계와 타자와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관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엔 물은 물로 흐르고 사자는 흐르는 물과 햇볕의 꿈속에서 마지막 잠이 들겠지요. 그러면 얼음 풍경의 기억도 헛것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삶을 살지 않고 문제시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안일하게 살기에는 너무 위태롭고 가시적인 현실논리 속에서 살기에는 너무 모순적이고, 눈앞의 것에 충실하기에는 그 이면이 너무 깊고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1995년에 등단해 문학이라는 배에 훌쩍 올라선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태생적 한계를 부여한 고향으로부터, 나와 닮은 혈친들로부터, 지인들로부터 멀리 떠나왔고 홀로 더 홀로 흘러왔지요. 어느 곳에서나 시간은 흐르고 날씨는 하루하루 변하며 사람들은 왔다가 멀어져가고 풍경은 지나갑니다. 내성적인 나는 타자들에게 냉정해지는 방식으로 자유로워지려했지만,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냉정이었고 개인적 삶에 대한 더 확고한 열정이기도 했습니다. 세계내에서 완전히 사적인 경험, 사적인 고통, 사적인 문제해결, 사적인 개인사는 없습니다. 나로부터 풀려나 타자에게로 이행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더 아래로 더 깊숙이 내려가 내가 남과 분별되지 않는 그곳에서 현재적 개인들의 실존을 문제 삼음으로써, 타자와 집단을 통합하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위로 더 위로 올라가 우주와 일체감을 느끼는 한편 지상의 유한하고 보잘것없는 한 존재로서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문학이란 언어라는 허구적 구조로 세계와 인간 사이의 내적 의미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실제 세계는 언어와는 전혀 다른 물질로서, 도달할 방법 없는 무한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세계적 진실과 언어적 진실의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말을 잃고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언어적 알리바이 없이는 우리가 도달한 내적 세계의 한 지점에 꽂을 깃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언어로서 오리무중적인 모색을 감행해 삶 속에서 새로운 지평으로 열리는 의식과 감각과 사고의 현 위치를 표현하는 지난한 작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몇 년을 산 듯합니다. 먼 훗날에 나의 생애를 뒤돌아본다면 올해를 기점으로 그 전과 그 후를 나눌 것입니다. 그만큼 극적인 전환의 해로 여깁니다. 2004년이라는 개인적 연대기의 끝에 이러한 애정 어린 상을 수상하니 한 해의 의미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님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수상을 계기로 하여 문학적 책무를 다시 확인하고 차분한 집중력으로 눈을 닦아 새롭게 나아가겠습니다. - 전경린, <수상소감>에서

열정의 습관

이 책을 쓰는 일은 밤에 사랑을 나누는 일과도 흡사했다. 예측할 수 없는 너무나 풍부하고 무한한 어둠과 어둠 속에서 흑단처럼 빛나는 눈동자들과 꽃잎처럼 포개지는 그들의 육체와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는 집요한 의식이 내가 가진 질료였다. 이 책을 위해 쉽지 않은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 글 쓰는 동안 나에게 영감을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이 소설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지만, 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는 안다. 이번 소설을 쓰는 사이에 말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기분이다. (…) 모든 말이 너무 깊고 너무 넓고 너무 높은 순간이 있었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

권위적인 시대에 온통 금지된 것투성이였던 성장기를 유독 엄격하게 보낸 뒤에 나는 아마 기나긴 권태에 빠져버렸던 것 같다. 권태의 명확한 증상은 나를 포함해 세상 일체가 얄팍한 가짜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백 년 동안의 잠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무감각과 권태의 둑 너머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생생한 물질이라는 듯 슬픔이 출렁거렸다. 관습에 도금된 권태로부터의 도주는 슬픔으로의 투항 외에는 없다는 듯이. 나에게 슬픔은 만물의 순환과 같이 생명의 조건이며 존재들이 복역해야 할 독특한 의무 같았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

허기진 마음이 아득히 평화로워졌다. 어머니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왜 이제야 작가가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섬처럼 홀로 떠돌던 내가, 뚜렷한 작가적 개성과 작품의 완결성을 획득해 한국문학 그 자체가 된, 선배작가들의 대열에 끼었다는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수상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주어졌다. 전경린이 도달할 수 있었던 완결판으로 수상했어야 했지만 아쉽게도 그 완결판은 아직도 쓰이지 않고 내 생의 심연 속에서 어른대고 있다. 이번 수상의 뜻이 내게 그것을 요구하는 특별한 신뢰라고 느낀다.

최소한의 사랑

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지 못해 세상엔 이토록 많은 고통과 상처가 난마처럼 얽히는 것이다. 최소한을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왜 우리는 최대한의 욕망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

황진이 1

어쩌면 황진이는, 여성이 잠적했던 오랜 역사 속에서 집단 무의식을 통해 우리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상상해낸 동경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긴 세월 동안 고독하게 득세해온 남성에게는 그들에게 대적할 만한 담대한 인격과 신비로운 운명과 미적 권력을 가진 매혹적인 아니마로서, 여성에게는 실종된 여성성의 긴 공백을 단번에 메울 수 있는 존재론적 자유혼의 표상으로서, 진은 시대를 넘어서 거듭 불려나온 그리운 이름인 것이다.

황진이 2

어쩌면 황진이는, 여성이 잠적했던 오랜 역사 속에서 집단 무의식을 통해 우리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상상해낸 동경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긴 세월 동안 고독하게 득세해온 남성에게는 그들에게 대적할 만한 담대한 인격과 신비로운 운명과 미적 권력을 가진 매혹적인 아니마로서, 여성에게는 실종된 여성성의 긴 공백을 단번에 메울 수 있는 존재론적 자유혼의 표상으로서, 진은 시대를 넘어서 거듭 불려나온 그리운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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