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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허만하

최근작
2023년 8월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길 위에서 쓴 편지

끊임없이 미지의 길 위에 서고 싶었다. 시시각각 새로운 감수성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런 소망으로 나는 나들이 길 위에 섰다. 그것이 시의 길이란 사실을 길 위에서 깨닫기도 했다. 길은 나에게 사색의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그러면서 길은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우리가 밟았던 무명의 길이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걸어올 때, 나는 글로써 그 부름에 응답했다.

바다의 성분

독자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의 언어를 가진다. 순도 높은 자기의 언어를 가질 때 비로소 한 시인은 태어난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K에게 드리는 편지 길을 떠나기 앞서 하루가 다르게 맑아지고 있는 햇살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편지를 띄웁니다. 시의 순결이 사라지고 있는 이 무잡한 시대에 시집 없는 시인으로 남는 것이 아름다운 선택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 작품 자신이 만들어내는 독자를 만나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가난한 나의 시를 엄격히 다지는 길이란 생각에 이른 것입니다. 요즘도 책을 읽고 습작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싱싱한 에스프리를 지닌 신인으로 있고 싶습니다. 방울벌레 소리가 맑은 것은 오랫동안 듣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란 말이 있습니다. 갑자기 이 말이 왜 떠오르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나들이길에서 영남 알프스 먼산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민한 감수성은 벌써 첫눈의 예감에 설레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간은 언제나 짧았습니다. 감은사 터 쌍탑이 있는 풍경, 어깨에 쌓이던 찰스강 기슭의 함박눈. 당신이 글을 쓴다는 것은 신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작품이란 제기된 적이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이 못난 시집의 탄생을 자기 일처럼 반기며 도와준 두 젊은 시인을 걸음이 계실 때 소개하고 싶습니다. 1999년 가을

시의 근원을 찾아서

시에 대한 참된 사랑은 필연적으로 시론을 낳기 마련이다. 나의 시론은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가꾸는 읽기와, 내 나들이와 문맥을 같이하는 시적 체험, 그리고 사유의 지평이 겹치는 데서 태어났다. 그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철학자와 과확자가 표현의 방법으로 이론과 개념을 쓰는 데 반해서 시인은 은유와 상징을 쓴다. 풍부한 상상력은 개성적인 사상성에 이어진다. 나의 시적 논의는 시와 산문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계면을 열어가는 자유로운 날갯짓이고 싶었다. 자유로운 날갯짓은 시와 철학 사이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논리의 뼈대로만 이루어지는 연설과 모놀로그의 허황함을 기피하는 제3의 길에서 시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나는 내 글에서 풍기는 살냄새를 애써 지우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실존의 향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생의 꽃

시인에게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완성에 대한 정열이 있을 뿐이다. 시적으로 세계와 사귀기 위하여 끊임없이 말을 다지며 자신의 감성과 지성의 총체를 갈고닦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새 시집을 펴는 일도 이와 같은 자기 수련의 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즈음에 이르러, 시를 쓰는 일이 가장 어렵고도 적극적인 삶의 방법이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허만하 시선집

물이 없는 땅에서 시퍼런 강을 만드는 것이 시의 권능이다. 자아와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터전이 시다. 이 터전에서 자아의 무한확대와 세계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 시는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는 언제나 천지창조의 순간이다. ... 시는 바깥에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안에서 우러나는 것도 아니다. 바깥과 안이 하나가 되는 계면(界面)에, 풀잎이 맺히는 여름 아침이슬처럼 태어나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되풀이한다. 시는 물이 없는 땅에 강을 만드는 언어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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