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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어린이/유아

이름:이순원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7년,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 (황소자리)

직업:소설가

기타:강릉상업고등학교, 강원대학교 경영학과 졸업했다.

최근작
2024년 2월 <나는 사임당이다>

이 저자의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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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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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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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세

여기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있던 한 소년을 세상 밖으로 보낸다. 그는 왜 세상의 여자들에 대해 그토록 궁금한 것이 많았으며, 또 왜 그토록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는지. 13세의 아침에서 19세의 아침이 되기까지 그의 몸은 어떻게 성장하고 그의 마음은 또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를 그토록 일찍 어른의 세계로 내몰았는지. 어떻게 보면 그는 다소 불량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떠나라. 두려움 없이. 내 마음 안의 19세 소년. 내가 너에게 아픔과 슬픔조차 유쾌하게 말할 기운을 주겠다. 그리고 세상 끝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 작가 후기 중에서

강릉 가는 옛 길

미국에서 보내 온 구호 양곡으로 옥수수죽을 먹고 자란 한 소년이 이제 또 한 소년의 아버지가 되어 그 시절을 돌아보는 길이다. 어디 슬픔뿐이랴. 슬프게 자란 형제들의 아름다운 우애도 있었으며, 어른들의 폭력에 맞서는 당당함도 그 어린 시절에 배웠다. 처음엔 어른들을 위하여 쓴 글을 어린이도 읽을 수 있게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다듬었다. 나의 어린 독자들은 이 글을 어떻게 평가할지. 시대는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어린날의 마음이다. 지금 어린이들보다 30년쯤 먼저 이 세상을 살았던 어느 산골 어린이의 이야기로 이 글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그 속에 우리가 지나온 길을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강릉에 가고 싶다

내 고향은 강릉이다. 누가 고향을 물어 강릉이라고 대답하면 잘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들 그곳을 잘 아는 듯이 반색하며 좋은 고향을 두었다고 말한다. 강릉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린 동해와 푸른 대관령이 앞과 뒤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천혜의 요람이며 우리 국토의 가장 바른 동쪽에서 매일 아침 이 땅의 첫 빛을 받는 곳이다.

고래바위

산 위에 있는 고래 한 마리가 바다로 가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어릴 때는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가만히 생각하니 시간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중략) 그것은 산 위의 고래바위가 자기를 닮은 바다의 고래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한세상을 사는 일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 안의 욕심들을 살아오는 길섶에 하나하나 버리고 비워 가며 마침내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더 큰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요?

고래바위

어릴 때 바다가 보이는 마을 큰 산에 고래를 닮은 커다란 바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래바우'라고 불렀고, 큰 산의 이름도 '고래바우'가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고라우'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마을이어도 다른 마을처럼 먼, 큰 산에 있는 바위여서 열 살쯤 되어서야 처음 그 바위를 보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가재를 잡으러 갔다가 친구들과 함께 고래바위 등을 타고 앉아 그대로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가 등에 올라앉았을 때 바위는 살아있는 고래처럼 바다를 향해 몸을 움직이고 꼬리를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고래바위를 찾아가 보게 되었습니다.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산 위에 있는 고래 한 마리가 바다로 가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어릴 때는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가만히 생각하니 시간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산 위에는 고래바위처럼 큰 돌이 많고, 계곡 입구엔 큰 돌이 부서져 내린 각진 돌이 많았습니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따라 내려오며 돌들은 큰 돌에서 더 작은 바윗돌, 징검다릿돌, 빨랫돌, 담을 쌓는데 쓰는 호박돌, 주먹돌, 그보다 작은 조약돌, 공깃돌, 다시 그것이 닳고 부서진 왕모래와 작은 모래가 되었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다 버린 티끌 같은 명개흙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온몸으로 바다를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산 위의 고래바위가 자기를 닮은 바다의 고래를 만나러 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한세상을 사는 일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 안의 욕심들을 살아오는 길섶에 하나하나 버리고 비워가며 마침내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더 큰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요? 여기 내 고향 큰 산꼭대기에 바다를 향해 누워 있는 대왕고래 한 마리를 내 마음 안의 강물을 통해 여러분 마음 안의 강물로 띄워 보냅니다. 부디 이 고래가 길고 긴 여정 끝에 여러분의 바다에 무사히, 그리고 기쁘게 닿기를 바랍니다. 2012년 가을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그러면서 또 이런 욕심을 냅니다. 큰 산이 아니더라도 제 문학이 작은 골짜기 하나라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면 바라지만 그것 역시 소박함으로 가장한 턱없는 욕심이겠지요. 그래서 다시 욕심을 줄여 그 골짜기 안에 푸르게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이길 바란다 해도 우리 삶에, 우리 문학에 작품으로 푸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지요. 다만 바라거니, 제 소설들이 누구의 가슴엔가 따뜻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산도 골짜기도 푸른 나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가슴을 아련하게 덮을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였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그런 노래를 부를 든든한 독자가 제 옆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 정동진에 가면

연탄가루가 날리던 그곳 바닷가에서 앞으로 어떤 세상으로 나갈지 모를 게처럼 작은 몸들을 두 칸짜리 기차에 싣고 다녔던 그 시절의 어린 친구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길 위에 쓴 편지

나는 이 짧은 글 하나하나를 내가 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듯 쓰고 싶었다. ... 이번에도 바라거니, 그동안 내 안에서 추억될 때 따뜻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 짧은 이야기들이 따뜻하게 다가각 그를 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이야기로 함께 추억하게 했으면 좋겠다.

나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에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입니다. 할아버지는 밤나무 외에도 평생 참으로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가을마다 수백 접의 감이 열리고, 자두나무와 앵두나무, 석류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했습니다. 할아버지와 그 나무는 내게 사람과 나무가 오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으며, 한 그루의 나무가 우리 인생의 큰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나무와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할아버지와 나무에게, 그리고 진정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와 이야기하며, 나무를 친구로 여기는 이 세상의 친구들에게 바칩니다.

내 인생의 한 사람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의 삶 안에 환하게 밝혀져 있는 '등불'의 이야기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내 마음의 등불을 다시 켠 듯하여 반갑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였다. 글을 쓴 사람들이 모두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비단 글을 쓴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에도 밝혀져 있는 '등불'을 다시 떠올리며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누려볼 수 있었으면 한다.

눈 오는 날

지난 여름 저는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특별한 부탁을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북극곰에서 엠마누엘레 베르토시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그림책을 출간할 예정인데 그 책이 원래 이탈리아 북부 사투리와 표준어 두 가지로 쓰여진 책이니 저더러 강원도 사투리를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북극곰이 보내온 엠마뉴엘레 베르토시의 그림 몇 장을 보았습니다. 베르토시의 색감은 마치 자연이 도화지 속으로 번진 듯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모든 캐릭터들은 베르토시만의 스타일로 생명의 숭고함과 풍부함을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캐릭터와 배경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독특한 구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북극곰이 보내온 우리말 원고를 읽어보았습니다. 제목은 <눈 오는 날>이었고 이야기는 젖소 아줌마와 당나귀 아저씨의 대화로 시작되었습니다. 젖소와 당나귀가 사는 마구간에 눈과 추위를 피해 여러 동물들이 찾아옵니다. 젖소와 당나귀는 어느 동물도 가리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마을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한 만삭의 아줌마와 아저씨가 마구간을 찾아옵니다. 동물들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안으로 맞이하고 자신들의 온기로 녹여줍니다. 그날 밤 아줌마는 무사히 아기를 낳고 마구간 위로 별 하나가 떠오릅니다.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자연과 동물이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라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사실은 자연이 늘 사람을 살리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흔쾌히 북극곰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베르토시의 이야기를 강원도 사투리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눈 오는 날>을 강원도 사투리로 옮기면서 저는 가본 적도 없는 베르토시의 고향을 본 것만 같았습니다.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리는 대관령과 그 아래에 있는, 제 고향 위촌리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베르토시가 왜 굳이 고향의 언어로 그림책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나라의 어느 지방에서 태어나 그곳의 말을 처음으로 배웁니다. 처음으로 배운 언어에는 오감과 자연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그 다음에 배운 언어들과의 엄청난 차이점일 것입니다. 외국어로 대화할 때와 모국어로 대화할 때 소통의 자유와 깊이가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투리를 최초의 언어로 배운 사람들은 사투리로 대화하는 것과 표준어로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투리를 쓴다는 것은 인간을 넘어 자연과 소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투리는 특별히 아름답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산골에서 자란 베르토시가 자기 고향 말로 작품을 쓰고 그렸습니다. 그리고 베르토시의 작품을 대한민국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제가 제 고향 말로 옮겼습니다. 베르토시가 이탈리아에서 받은 감탄과 찬사를 한국에서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봄 봄

김유정의 「봄·봄」이 처음 발표된 게 80여 년 전이다. 8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봄·봄」은 우리 농촌의 바로 어제의 모습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 후 점순이와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은 결혼을 했을까, 아니면 일꾼의 사경을 아끼려는 봉필 영감의 욕심으로 또 다른 데릴사위가 일꾼으로 들어왔을까.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다. 여기 7인의 작가가 「봄·봄」의 뒷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소설을 써서 한자리에 모았다. 이것은 단순히 「봄·봄」의 뒷이야기로서만이 아니라 8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김유정 선생에게 바치는 한국 후배 작가들의 존경과 사랑의 헌정이기도 하다. 정말 점순이와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램프속의 여자

포켓북이야말로 왠지 내겐 램프 아래에서의 독서와 가장 어울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포켓북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 밖으로 나의 슬픈 누이들을 내 보낸다.

말을 찾아서

수록작 「강릉 가는 옛길」은 7년전쯤 중간까지 쓰다가 포기한 작품입니다. 기법과 문장으로만 상처와 동경을 억지로 화해시키려다 실패한 것이죠. 그러나 이번에는 마음의 화해가 작품속 화해를 이끌어낸 셈입니다. 소설은 삶과 연륜의 깊이가 있어야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델

사진만 찍는, 사진 속의 신랑 신부가 밧줄에 매달려 기우뚱기우뚱 아래로 끌려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봄날같이 환했던 청춘 역시 용도 폐기되어 저렇게 쓸쓸하게 끌려 내려오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들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지난 십수년간 발표해 온 내 기존의 소설들과 색깔이 많이 다르다. 아마 독자들에게도 그럴 것이고, 이미 내게도 그렇다. 그럼에도 꼭 그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가짜 신랑, 가짜 신부, 가짜 결혼, 가짜 사진, 저마다의 욕망이 빚어내는 그 농담 같은 삶 속에도 진정 순결하여 아픈 것이 있을 것이다.

뽕뽕 다리

이 글은 지금은 어른이 된, 한 산골 소년의 어린 날의 추억이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월드컵 경기장에 나갔다가 태극기로 이런 저런 옷을 만들어 입은 젊은이들을 보는 순간, 내 어린 시절 태극기에 얽힌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때와 지금,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그 달라진 세월 속에서 오직 변하지 않는 것 하나가 있다면 어린 날들의 추억이야말로 어른들 마음 속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또 하나의 고향이라는 점이다.

삿포로의 여인

삿포로에서 자라 겨울에 끊임없이 내리는 눈 말고는 모든 것이 낯선 대관령에 와서 사는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낳은 아이가 다시 대관령에서 보았던 붉은 열매의 마가목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낯선 삿포로에 가서 살고 있다. 삿포로에서 태어나 대관령에 와서 사는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대관령에서 태어나 삿포로에 가서 사는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겨울눈 같은 사랑과 봄눈 같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겨울눈은 무거워 운명적이고, 봄눈은 미처 눈을 돌릴 사이 없이 녹아버려 안타깝다.

순수

다만 이 작품이 10년 단위마다의 성의 사회사를 그린 것이든 아니면 그냥 단순히 눈과 램프와 여자가 있는 풍경을 그린 것이든, 이제까지 내가 어느 작품에서나 추구해 왔던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만은 '순수'의 이름으로 온전히 전달되었으면 싶다.

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

이 세상에 이 소설 속의 관계처럼 유지하는 엄마와 딸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오래전에 잃어버리고 만 어떤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향수, 또 그 시절을 살아온 이 땅의 딸들과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그 딸들의 딸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길을 걸으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관령 꼭대기에서 산 아래까지 걸어 내려왔을 때 나는 우리 아이가 하루 만에 부쩍 성장한 느낌을 함께 나눈 대화 속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미리 준비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도 부모님과 함께 하루 종일 산속으로 난 길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강 옆으로 난 길도 좋고 바다 옆으로 난 길도 좋겠지요.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여러분과 부모님 간의 사랑이 강물처럼 밀려들 것입니다. 대관령 고갯길을 아들과 함께 걸었던 그때, 우리 가슴속에 노을처럼 아름답게 번져오던 감동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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