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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송재학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5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천

직업:시인

최근작
2023년 12월 <조홍감 붉은 가을 울음 깊은 들녘이여>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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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오랫동안 시 낭송과 행위예술로 다채롭게 시와 동행해 온 이유선의 고유성은, 시라는 육체의 발화에 대한 탐구이다. 따라서 “나는 형용사를 버렸다”(「밥의 시」)라는 단호한 언어는 이왕의 시적 여정과 이음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맨몸으로 드러눕지 않고는/해독되지 않는”(「나의 언어」) 언어는 세계에 대한 비명과 오열의 반복이면서 언어이기 전에 이미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낭송/행위가 획득해 왔던, 다시 진화하는 저 육체성은 모놀로그에서 비롯되어 심장을 가진 무대예술이면서 동시에 자기 내면으로 반사된다는 다양성을 가진다. “몸 안 향기를 다스리는 데는/몸 밖 향기만 한 게 없다”(「증발」)는 확산이 전자라면 “누구도 사랑 고백하지 않아도/혼자 출렁거리는 우울”(「어깨춤이 필요해」)이 후자이다. 그 둘 사이의 경계는 진자운동을 하지만, “누군가/시월을 진실이라고 했고 십일월을 거짓”(「달력의 뒤편」)처럼 겹의 수사학이기도 하다. 가령 “섬처럼 서 있는 가시나무가 코뿔소를 혈육인 듯 본다”(「사바나」)라고 했을 때 가시나무와 코뿔소 사이가 서로 피붙이라는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해의 단맛’이 감춘 씨앗이 ‘내 몸’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서사이면서, 스스로를 포함해서 사람과 풍경에 대한 시름을 실천하는 시인의 시선이다. 그 모두가 유배의 노래라는 시인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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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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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Hearing은 공감각이면서도 탈경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강기원이 수용하는 색채는 그러므로 아름다움일 때 눈물이면서, 소리일 때 고통의 체험이다. 가히 색채의 전집이었던 전작인 『지중해의 피』 이후 강기원의 색채 감각은 고통의 치유라는 메커니즘으로 확장되었다. 그것은 관습에의 해방과 “끊임없이 타자가 되려는 연습 — ‘역할’의 나르시시즘”처럼 현실 — 환상에 대한 질문의 거듭남이다. ― 송재학(시인)┃작품 해설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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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여기 가족(들)을 필경해야만 하는 권리가 있다. 시집은 온통 할머니, 엄마, 남동생, 자신의 아이, 심지어 계모와 이복언니까지 등장하는 나무형(Tree Structure)이라는 가계도의 형식을 따라간다. “찢어지거나 구겨지거나 버려지는”(「철거 통지문」) 가족사는 시인에게 “그렁그렁 괴어 있는”(「숨바꼭질」) 유일한 방법이다. ‘자정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품는 울음을 담는 욕조, 그게 “손과 발을 만들고 외로움을 만들었”(「욕조에서」)다. 물의 외로움이라는 깊이에 엄마가 있다. 시인의 탄생은 “엄마가 만들어내는 가장 슬픈 자리”, 이것은 발명일까. 차라리 “엄마를 지목하”고 “엄마를 의심”하고픈 욕망이다. “세상에서 내 대답을/ 가장 믿지 못하는 사람”(「죽은 신부의 얼굴」)이기에 엄마를 떠나 ‘새로운 얼굴’을 꽃피우고자 한다. 엄마에의 투영은 “나는 죽어서도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살아 있는 독백을 반복하면서, “낮에도 죽은 사람들을 보고 다”(「꽃놀이」)닌다. 엄마 대신 등장하는 할머니가 ‘검은색 세월’로 이미 ‘죽은 할머니’인 것조차 놀랍지 않다. “늬 엄마가 너를 몇 번이나 흘릴 뻔 했단다”(「공기놀이」)라는 할머니 말을 믿으면서, “얼굴보다 손바닥이 먼저 늙는”(「손금」) 유년기가 지나갔다. 엄마가 되려 하고 엄마가 된 가족사에서 태어난 벚꽃의 아이들은 “내가 나를 지나면서 두고 온 아이들”(「가임기의 나를 지나는 아이들」) 또는 “우리는 하나이거나 둘”이다. 너/ 아이 속에서 나/ 엄마를 보는 나무형 가계도가 다시 자란다. 때로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신발」)다는 신발, 때로 “나는/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는”(「가위바위보」) 놀이, 때로 “집을 보러 다니듯 나무들을 보러 다”(「나는 죽어서도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니는 나무, 때로 “꽃잎이 커다란 아홉 송이 홍작약은/ 수백 번 내 손에 포개지던 손”(「죽은 신부의 얼굴」)들처럼 몸을 통과하는 것들은 죄다 가족이라는 얼굴/ 기억을 가졌다. 스스로 위로하는 몸의 다른 의무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마음껏 파괴되었던 무릎의 문양을 읽었다.
4.
윤달에 머무는 시인이 떠오른다. 낮달과의 대화도 한뼘이겠다. 고영민의 시공간에서는 일상과 온기가 서로 살고 있다. 서로의 계절이기도 하다. 현실의 상상력이면서 현실의 반대 혹은 기억들인 온기는 일상을 울울하고 헐렁하게 포옹한다. 울울할 때 시인의 말은 겸손해지고, 헐렁하다면 시인은 말을 줄인다. 예컨대 “봄 오는 일이/결국은 꽃 한송이 머리에 이고 와/한 열흘 누군가 앞에/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임을” 자각하는 꽃의 제의/온기는 “왔던 길 되짚어갔을/꽃의 긴 그림자”(?적막?)라는 떨림/일상과 같은 감정이다. 일상과 온기는 서로의 몸에 스며들기 위하여 서슴없이 너를 꽃이라 하는 곡진함을 발명했다. 그럴 때 고영민의 두 손은 드라이플라워의 형상이다. 그것은 바짝 말랐지만 생의 여러 지층에서 돋아나서 지금 도착했다. 이미 눈물을 헌정했기에 시인은 꽃의 의미를 다정하게 나열한다. 고영민의 시가 애틋한 소이연이 저러하다. 오래도록 시인은 날짜들에게 죄다 공손했다. 윤달이 필요할 때마다 고영민의 시집을 뒤적거려야만 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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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김수복의 최근작에서 첨신(尖新)을 읽는다. 동화와 서정이라는 정감이 때로 마주 보면서 때로 같이 묶이면서 전자는 무심을 후자에는 여러 시선을 담았다. 덧붙이자면 답설무흔의 자연을 후경으로 보태어 무애의 감정과 바닥까지 내려간 곡진한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시인의 노고가 서로 북돋우며 사방 무늬를 형성하고 있다”
6.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 모든 것!”을 위한 편애의 시편이 여기 모여 있다. 사소한 것과 사소하지 않은 것들 사이를 성찰하는 편견의 시들이기도 하다. 그 편애와 편견들은 대체로 모더니즘의 회로를 통과했기에 사유의 성과물이다. 시인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운동은 “아무것도 아닌 이 모든 것!”이거나 “언제는 언제나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으며 또한 “비슷비슷하게 비스듬해진 후”이기도 하다. 예컨대 모과가 어느 방에 놓이면 누군가 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 방은 모과가 필요한 방이 되고 만다. 어느 사이 모과 대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바구니에 담겨” 있게 된다. 그 모든 것들-우리와 모과와 방-이 서로 연결되었기에 가능한 세계 이해이다. 그 방식에 기대는 변희수의 언어는 이를테면, “왜, 라고 물으면 / 왜, 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화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표에 얹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언어는 “방에 들어와서 방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밖에서는 계속 안을 생각하고 안에서는 또 밖을 생각했다”는 뫼비우스의 분면 같은 한국어이다. 그 감정은 당연하게 몇 겹의 발화를 가지게 된다. 아름답고 중요한 시편 「이름 찾기」에서, 우리가 아는 이름 우리가 아는 색깔들을 다 지우고 사물과 운동을 그 자체로 바라볼 때 초롱꽃은 고유하게 되살아나서 멀리까지 댕댕거리거나 초롱초롱하게 매달린다, 고 시인은 믿는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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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이해존의 첫 시집은 말과 소문에 대한 추적이자 기록물이다. 말과 소문의 경계는 현실과 상상의 차이처럼 얇은 삼투막이 있을 뿐이다. 가령 「유목의 방」에서 말은 고시원 휴게실의 역할을 맡았고 소문은 푸른 장막과 바람의 발톱과 고비사막과 게르와 마유주와 초원을 대신했다. 당연히 소문을 자처한 것들이 더 많다. 또한, 말은 현실이라는 배역을, 소문은 지친 현실이라는 닮은꼴의 배역을 서로 맡았다. 말은 사람의 입속에서 머물다가 토해졌으니 그건 사람의 일부이고 소문은 어딘가 떠났다가 되돌아왔으니 몽상을 떨치지 못한다. 말은 끔찍하고 소문은 달콤하지만, 그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이다. 시인은 말과 소문을 정리하면서 치명적인 말의 두려움과 소문의 난청에 대해 끝간데 없이 자신과 세계의 기록을 열람한다. 말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몸에서 자라나는” 소문의 절벽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시인은 자신을 달래고 “밟아봐야 알 수 있는” 지뢰에 다름 아닌 생의 표정을 달랜다. 그건 “멀리 달아난 오른손이 왼손을 모른다”처럼 하나의 몸에서도 태연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평생 벗지 않는 얼굴”처럼 이해존의 시집은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우니까, 페루 고산의 계단식 염전인 살리나스를 자신의 풍경으로 끌어들인 시인의 울음이 이해되는 까닭 또한 그 지점에 멈추어져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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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그곳은 시인에게 “너희들 다 쓸어가고/범벅이 된/주둥이만 남아 꿀꿀대는” 시골이며 ‘아우성’이다. 그곳에 시인은 뼘을 대고 감정을 덧대고 있다. 그곳은 “더 가봐야 갈 데도 없다/갈 데도 없는 길을 가”는 격정의 검은 물이 흐르는 강 옆이다. 하지만 그곳을 ‘뜻밖의 선물’이거나 살만한 숲이라고 명명하며 시인은 마음을 열어준다. 아니, 그곳이 시인을 받아준다고 말하자. 따라서 시집은 열어주고 받아주는 상호텍스트를 되풀이한다. 예컨대 그곳은 젊은 시절의 밤처럼 “막차 놓치고 홀로 지새우는 밤이 갓길”인 동시에, 이제 되돌아온 “하지의 달을 둥글게 펴 밤 불빛에 방생하”는 땅이다. 하지의 달과 달 속의 기억들로 공간은 풍성하고 시간은 아프다. 시인의 뛰어난 시로 기억될 「풀수염」에서 “수염과 같은 보호색이었다가 어느새 수염으로 진화한 풀들”의 정체성을 살핀다면 자연과 사람은 화쟁하는 실천을 서로 익혀야 한다. 그곳에서 조금만 비켜서면 ‘칸칸칸’이 필요한 ‘고독하고 섬세한 영혼들’의 ‘불가마’ 같은 삶이 있다. 대치하는 두 개의 시공간은 서로 독을 품은 채 어긋나거나 화해하며 길항하거나 무관심하다. 그리하여 “어느 게 장인지 졸인지 모르게/머리를 박자 첨벙, 꼬리를 말자 빙빙/몸을 섞자 돌돌, 파고들자 펄펏/처음은 다른 몸이었으나 이다지 뒤섞여/이다지 허물어져 오늘만은 하낫”이라는 해학이 곳곳에 등장했다. 시집을 다 읽었다면 그곳은 남도의 동남부가 아니라 당신에게도 낯익은 땅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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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소묘는 섬세하고 문장은 불안하다. 소묘는 감정을 억제했지만 마지막 그림을 덮으면 고요와 눈물이 잉크를 감춘 것도 알 수 있다. 감추기 위해 섬세한 세필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래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섬세함이 필요했다. 그림을 쫓아 등장하는 문장 또한 같은 풍경의 시선에 닿는 중이다. 이 책에 실린 그림과 글의 실재(實在)가 사랑이라고 화가와 시인은 짐짓 단정 짓는다. 잉크 소묘는 금방 번질 것 같은 선을 감추고 있고, 덧붙인 글은 소묘 이후 남은 잉크로 새긴 듯 아슬하다. 아니다, 같은 잉크 탱크에서 또는 어떤 문장에서 찍어낸 잉크로 소묘를 한 흔적도 있다. 체온을 대신하는 잉크들은 대체로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표정 대신 동작으로 슬픔을 지시한다, 문장이 표정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장과 소묘는 같은 몸 같은 생각의 뿌리에서 치솟았다. 책을 덮고 나면 절대 마르지 않을 잉크들은 며칠 내내 우리를 간섭하리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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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시집 속의 하멜은 조선의 사람, 땅, 짐승, 언어, 나무와 풀, 가난 등을 정치하고 곰곰이 바라보는 화란인이다. 하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방인의 서사를 제외하면, “길 위에 빗살무늬로 퍼져가는 문양”의 음양오행을 이해하고 “일자무식, 까막눈이어도/ 하늘의 표정부터 읽어보는” 조선 사내의 생각과 심리와 겹치고 있다. 그러기에 하멜 혹은 시인이 억류의 고통 속에 지낸 13년의 외연을 확장해 17세기 조선의 풍속과 현실을 자신의 체험 속으로 호명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럴 때 하멜/ 시인의 발화는 “어둠의 씨줄과 날줄 사이”를 성찰하는 조선의 문장과 다름없다. 17세기 조선 사람의 세계관은 중국을 통한 12 왕국뿐이지만, 시집 속에서 하멜의 발언은 당대를 뛰어넘어 오늘의 현실까지 매듭 없이 이어진다. 우리가 “20세기 들어서야 하멜 일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처럼 우리는 하멜표류기의 텍스트를 또다시 우리 문학에 추가할 필연과 만나게 되었다.
11.
충주구치소 방향으로 가 본 적 없다는 독백이 사실이라도 당신은 구치소를 알고 있다.“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았지만 당신은 구치소의 감정을 알고 있다. “과거는 미래”인 것처럼 전생과 후생의 일부를 당신은 구치소에서‘탕진’해 왔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내륙의 습관에 따르면 당신을 망친 저녁은 매일 방문한다. 그때 당신의 발자국은 ‘적조’의 흔적이다. 시인의 삶이 헝클어진 시간의 매듭을 찾고 뒤섞여 버린 공간을 헤매는 일이란 걸 당신은 고백하고 있다. “검정은 다만 검정이 아니”라는 건 쉬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잠깐 목구멍과 가까운 그 말의 정거장에 멈춘다. 어쩔 수 없이 당신은 비애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풍경이 있다. 풍경 또한 ‘찰나’이긴 하지만 당신을 걱정한다. 아니 당신에게도 풍경을 위무하는 문어체가 있다. 당신은 그 시선을 “경첩을 달아 주는”일이라고 애써 반추한다. 풍경이 주어가 될 때 “이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속”하면서 당신이 먹는 한 끼의 국수처럼 “단순하되 극적”이다. 시집을 덮었지만“오늘은 당신과 나에게도/ 큰 찰나!”라는 행간은 며칠 동안 내내 독자를 간섭하리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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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와 청춘은 뒤섞일 순 있지만 갈등이 먼저이다. 가령 박진성에게서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근대성이 확보한 공간을 떠맡아서 시집은 처음부터 격렬하다. 게다가 박진성에겐 운명 같은, 병과 운명 같은, 순수란 역할이 있다. 가족사와 시인의 정신이 부딪치는 양극단을 트라이앵글로 바꾸는 미묘함이 있으니 바로 나무다. 박진성의 나무들은 신성보다 인격체의 개성을 택했다. 그 나무의 나뭇잎들은 대체로 괴로움이다. 하지만 푸르고 울창한 나뭇잎들은 죄다 음악은 아니지만 무조건 고통이랄 수 없지 않는가. 나무가 어머니/시인이거나 시인/어머니까지 넓고 자유로이 왕래하는 환유가 가능한 것도, 고통/불면이 우리 젊은 날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우리 젊은 날이 고통/불면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탓이기도 하다. 박진성의 나무들로부터 청춘의 발자국을 배웠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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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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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칠의 시집을 따라가는 것은 제주의 名詞를 읽는 일이다. 먼 바다 큰 섬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 중 어떤 것들은 물집에 가까운 제 이름이 있다. 희노애락에서 명사가 되려면 해원상생굿의 흐느낌을 거쳐야하는데, 그 발원 속에서 건져올린 심금이 따로 정리되어 시집 <물집>이 상재되었다. 따라서 정군칠의 명사들은 모두 우리와 지척지간, 간절한 생이기도 하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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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화, 음악과 함께 상생하는 그의 시드은 삶의 단면을 절개하여 모노크롬 시학으로 만들어낸다. "이모는 이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영어선생을 했다 충북 괴산의 어느 마을로 시집을 갔는데"('광기의 역사')처럼 전체적으로 시는 무채색인데다 편년체의 수사를 따른다. 당연하게 시집은 담백하다. 이왕의 권혁웅의 시가 다듬어온 미학과 거리를 두고 있다. 시집이 후일담의 양식을 찾게 된 것도, 성장시적인 요소가 많이 배어 있는 것도 시인의 기억 속 모든 삶이 함께 부글거리면서 풍화된 탓이다. 성과 속을 구별하지 않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같은 문체로 옮기려는 진정성도 지나칠 수 없겠다. 잘 만들어진 곤충채집의 느낌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대중음악의 노랫말이 '그 시절'의 상처를 반복하여 들려줌으로 표백시키는 것은 심리치료에 가깝다. 훨씬 더 어렵고 신산해야 할 생활, 훨씬 더 끔찍해야 할 삶이 그나마 정리정돈된 것도 권혁웅 시의 힘이 아닐까. 따라서 이 시집 속에 담겨진 기억의 편린들과 접촉하는 것은 아프고 눈물겹고 쓸쓸하지만 꼭 읽어내고 싶다. - 송재학 (시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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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과 길항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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