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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성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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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7일 출고 

들리는 설교를 위해 저자는 예화 사용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여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 예화는 강단을 살리는 ‘비타민’이다. 설교의 ‘윤활유’와도 같다. 들을 내용이 없는 설교는 공허하다. 더불어 예화 없는 설교는 청중의 귀를 열지 못한다.

2.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우리를 도우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더욱 깊게 알아 갈 수 있는지를 ‘기억’, ‘예배’, ‘율법’, ‘언약’, ‘은혜’라는 방편으로 설명한다. 신명기의 이 특별한 초대에 귀를 기울여 보자.

3.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는 탁월한 설교자이자, 담임목사로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설교로 풀어내고 성도를 설득하는 커뮤니케이터다. 저자는 이전에는 교회 사역의 효율성에 초점을 두고 사역의 종류를 설명했다. 이제는 사역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모든 주제와 사역을 그 안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4.

알렉산더 스튜어트는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이 어려운 책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로 다섯 가지 간단한 원칙을 제시한다. 그런 다음 장별로 이 원칙의 유익함을 설명하고 더 깊은 연구를 위한 권고 사항을 제시한다.

5.

룻기는 길이가 짧고 줄거리 전개가 단순해서 읽기 쉬워 보인다. 에스더서 같은 대반전도 없고, 출애굽기의 기적적 요소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무게감에 걸맞은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룻기는 결코 만만히 볼 책이 아니다.

6.

“악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인생을 잘 보전하기 위해 악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그 답을 알아야 지금의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악에 대한 질문과 대답, 그리고 치료에 대한 내용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악의 문제와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악의 특징과 그 종말에 대해 고찰한다.

7.

설교는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신 가장 우선적인 특권이며 무거운 책임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설교자를 사용하신다. 당신의 설교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혹시 세속화된 설교자들처럼 성경적 설교를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8.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에 소망을 두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바울은 지상의 어려운 상황에서 이 질문을 묵상한 후 골로새 교회에 두 통의 편지를 써서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골 1:5)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숨겨진 소망을 제시한다.

9.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요한계시록 읽기. 요한계시록이 단순히 미래에 대한 묵시가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창조 세계를 미리 맛봄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길과 힘을 제공받도록 하는 계시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10.

어두운 밤에 빛을 비추는 듯한 본회퍼의 문장이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가닿기를 바라며 그의 여러 저작에서 글을 발췌해 엮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예지로 빛나는 깊은 신학이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에 오롯이 담겨 진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감탄할 것이다.

11.

계시록 저자는 당대에 통용되던 이미지를 토대로 자신의 환상/묵시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에 『제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요한계시록』은 요한계시록의 환상과 묵시 이미지를 제2성전 유대 문학의 다양한 문헌과 비교하고 대조하여 계시록 이미지의 의미를 해석할 근거를 마련한다.

12.

장로교회의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을 해설한 책이다. ‘요리문답’이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기독교 핵심 교리에 관한 공적 신앙 교육서이다. 독자들의 피상적인 성경 이해를 탈피하게 하여 뿌리 깊은 신앙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13.

유대인 기독교인이 말하는 모세오경 속의 예수 그리스도.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으로서 다음 질문을 탐구한다.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애초에 왜 토라를 주셨는가? 메시아는 우리에게 율법을 다시 알려주기 위해 오신 것인가? 유대인은 율법 아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