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반세기 동안 출간된 읽을 만한 책 10권으로, 변화하는 세계상을 조명하거나 새 세기가 필요로 하는 가치에 주목한 책들을 골라보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단 한 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꼽고 싶다.
동물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가치인가, 악인가? 동물성은 소위 ‘탈근대’로 불리는 이 시대의 큰 화두다. 『채식주의자』는 과연 인간이 자신에 내재하는 동물적 폭력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 묻는다. 세계의 동물화(動物化)에 저항하는 한 편의 강렬한 시다. 인간과 세계를 고발하고 배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학의 힘으로, 다시 끌어안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문학이 대중문화의 경박화(輕薄化)에 편승하여 인간 실존의 문제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는 듯이 보이기에, 인간 존재와 생명의 본질을 파헤치는 그 치열함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를 인간의 뿌리에 관한 근원적 질문 쪽으로 되돌려 세운다. 문학이 왜 필요한지, 문학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이보다 더 잘 증언할 수는 없다.